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김우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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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국감에 드러난 ‘AI라는 이름표’
초파리 연구실에서 새 계통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다. 바이알 옆면에 유전형을 적고, 날짜를 적고, 어디서 왔는지를 적는다. 이 이름표가 틀리면 그 뒤의 모든 실험이 틀린다. 그래서 연구실의 오래된 규칙은 늘 같다. 이름표는 내용물을 확인한 다음에 붙인다. 교배를 해 보고, 표현형을 보고, 필요하면 PCR로 확인한 뒤에야 바이알에 이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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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초파리 방에서 빛의 스위치를 생각하다
초파리 방의 어떤 실험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파리 먹이에 레티날(비타민 A의 한 형태)을 섞고, 바이알을 은박지로 싸서 빛을 막는다. 며칠 뒤 붉은 LED를 켜면, 특정 신경세포에 빛 스위치를 단 파리가 그 순간 다른 행동을 한다. 날개를 떨며 구애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주둥이를 뻗기도 한다. 불을 끄면 파리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걷는다. 우리 실험실을 찾는 학부생들에게 가끔 빛을 비추면 바로 잠이 드는 초파리 광유전학의 신비함을 보여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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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부캉이’라 부른 뒤: 구경에서 기록으로
연구자는 초파리 방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동작을 한다. 파리가 든 바이알(소형 유리 또는 플라스틱 용기)을 실험대에 가볍게 두드린다. 그러면 바닥에 떨어진 파리들이 일제히 벽을 타고 위로 기어오른다. 놀란 초파리는 위로 간다. 이 단순한 습성은 ‘음성 주지성’이라 불리고, 오랫동안 운동 기능과 노화를 재는 실험으로 쓰여 왔다. 우리는 그 파리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수백 마리를 세고, 비율을 내고, 그래프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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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학문 권력의 ‘성채’를 허물어라
지난 9월 15일, 중국공산당의 이론지 《구시(求是)》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설 전문 한 편을 실었다. 올해 노동절 직전인 4월 30일 상하이에서 열린 ‘기초연구 강화 좌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나는 이 연설에서 한 단어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학벌(学阀). 시진핑 주석은 “연구 생태계를 정화해야 한다”면서 “연구진실성을 강화하고 과학기술계의 학풍을 바로잡으며, ‘파벌 문화(圈子文化)’와 ‘학벌’ 행태를 타파하고, 논문만을 중시하고 최상위 학술지만을 중시하고 각종 칭호(帽子)만을 중시하고 수상실적만을 중시하는 경향을 실질적으로 바로잡으며, 연구 부패를 단호히 처벌하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이를 두고 시진핑이 처음으로 ‘학벌’ 타파를 언급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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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약탈적 학술출판의 종말: 국가의 결단으로
지난 8월 학술지 《FEBS Letters》에 실린 한 편의 정책 제안서를 읽다가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폴 레이니, 케네스 티미스 등 유럽미생물학회 ‘약탈적 출판 관행 대책반’ 소속 학자들이 쓴 이 글의 제목은 「약탈적 학술 출판사에 돈을 그만 지불하라」였다. 공공 연구비가 최소한의 편집 감독도 없는 수천 개 학술지의 논문게재료(APC, 저자가 논문을 싣기 위해 출판사에 내는 돈)로 흘러 들어가고 있으니, 앞으로는 투명한 품질 기준을 통과해 ‘인증(accreditation)’받은 학술지에만 공공 자금을 지급하자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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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통역에게 국가의 기술 전략을 묻는 나라
나는 하얼빈에서 초파리를 키운다. 중국에 온 지 5년이 넘었고, 그 사이 한국에서 날아오는 질문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연구가 되기는 하느냐’고 물었다. 딥시크 이후에는 ‘중국이 어떻게 그것을 해냈느냐’고 묻는다. 거부감이 두려움으로, 두려움이 배우자는 결심으로 바뀌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가운 변화다. 중국의 발전을 애써 부정하는 일은 이제 우스꽝스럽고, 반도체 몇 년의 우위를 전 분야의 우월로 부풀리는 착각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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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실패한 과학교사와 설명하는 과학교수님
올해 극장에서 나는 두 명의 생물학자를 만났다. 한 사람은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라일랜드 그레이스, 다른 한 사람은 전지현이 연기한 권세정 교수다. 두 영화 모두 잘 됐다. 3월에 개봉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국내에서만 200만 명을 넘겼고 전 세계에서 5억 달러 넘게 벌었다. 5월에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열흘 남짓 만에 300만 관객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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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위트(wit), 부고 없이 떠난 ‘보통 과학자’
며칠 전, 한 초파리 유전학자가 세상을 떠났다. 부고는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 네이쳐(Nature)誌도, 사이언스(Science)誌도, 그가 평생을 바친 초파리 학회의 소식지조차 그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기예르모 마르케스(Guillermo Marqués).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의 부재를 알게 된 것조차 그의 박사 제자였던 한 한국인 과학자가 페이스북에 남긴 짧은 글을 통해서였다. 스승의 아내는 부고 대신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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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구독하라, 그러면 열리리라
논문 한 편이 심사를 통과해 게재가 확정되는 날, 과학자들은 축하 대신 청구서를 받는다. 이른바 논문게재료(APC), 곧 ‘내 논문을 세상에 무료로 열어주는 대가로 내가 출판사에 지불해야 하는 돈’이다. 액수는 학술지에 따라 수백만 원을 오르내린다( 주- 네이처 등의 학술지는 APC가 최고 1700만원에 달한다. ‘논문 1편에 1700만원’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6051456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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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투명한 뇌, 혁신이라는 이름의 잔인함
세계 최고 수준의 신경과학 연구기지인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HHMI)의 자넬리아 연구캠퍼스(Janelia Research Campus)가 뇌 과학계의 판도를 뒤흔들 대담하고도 가혹한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1. 자넬리아는 기존에 운영되던 ‘4D 세포 생리학(4D Cellular Physiology)’과 ‘기계론적 인지신경과학(Mechanistic Cognitive Neuroscience)’ 프로그램을 전격 폐지하고, 오랜 시간 전 세계 뇌과학 연구의 핵심 표준으로 군림해 온 설치류(마우스 및 랫드) 연구 모델을 향후 3년 안에 완전히 종료(Sunset)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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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AI 백년대계, 깃발 뒤 기생충이 자란다
토머스 헌트 모건의 좁은 실험실, ‘파리방(fly room)’이라 불리던 그곳에서 현대 유전학이 태어났다.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구슬처럼 꿰여 있다는 사실도, 스무 살 남짓의 스터티번트가 하룻밤 사이에 그려낸 최초의 유전자 지도도, 결국 2밀리미터(㎜)짜리 초파리를 렌즈 아래 올려놓고 한 마리 한 마리 세어가며 얻어낸 것이다. 멀러가 엑스선으로 돌연변이를 만들어낸 것도, 행동조차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는 낯선 생각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두 이 작은 몸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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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가짜 우상’과 지식 생태계의 붕괴
올해초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세계 대학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이른바 ‘학술용병’을 대거 동원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국내 체류도, 강의도, 실질적 연구 교류도 전무한 해외 다작 학자들을 비전임 교수로 무더기 영입하고, 그들이 어딘가에서 써낸 논문에 한국 대학의 이름을 슬쩍 끼워 넣는 대가로 억대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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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자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앞선 두 편의 칼럼에서 나는 우리나라 과학 생태계가 당한 두 가지 폭력을 기록했다. 하나는 바깥에서 가해진 것-거대 상업 출판사들이 수십 년간 연구자들의 지식을 착취해 온 학술 카르텔이고 (주- 거대 학술카르텔을 향한 중국의 선전포고 ) , 다른 하나는 안에서 가해진 것- 무능하고 무지한 행정 권력이 기초과학의 심장에 칼을 꽂은 R&D 예산 잔혹사였다. (주- ‘암세포’ 도려낸 중국, ‘심장’ 멎게 한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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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기술계 ‘과거청산’, 반드시 해야한다
“돈이 없어서 연구하고 공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2022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과학자들 앞에서 이런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이 어떻게 부서졌는지, 아니 왜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것이 있다. 단순히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후 우리 과학기술계가 스스로에 대해 무엇을 드러냈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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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암세포’ 도려낸 중국, ‘심장’ 멎게 한 한국
생물학적 진화처럼 지식 생태계 역시 치열한 군비경쟁의 장이다. 수많은 ‘보통 과학자’들이 미시적인 실험실에서 피땀 흘려 축적한 데이터는 동료 평가라는 거름망을 거쳐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진화한다. 과거에는 순수한 진리 탐구의 영역으로 여겨졌으나, 혁신의 속도가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21세기에 이르러 이 생태계 내부에는 숙주의 양분을 착취하고 지배하려는 극도로 탐욕스러운 돌연변이가 출현했다. 바로 학술 생태계에 똬리를 튼 ‘행정 권력과 관료주의’라는 기생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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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IVY 데이의 편지: 연구는 팔리지 않는다
지난 27일 오전 9시(미 동부 시간 기준 3월 26일 목요일 오후 7시)는 아이비(IVY) 데이였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콜롬비아. 미국 명문 사립대학들이 일제히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로 유명하다. 그날 밤, 어딘가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있었을 것이고, 어딘가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리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웃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시장의 설계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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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지적 포주’ 엡스타인과 타락한 과학 천재들
현대 과학은 오랫동안 객관성과 합리성의 최후 보루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19년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체포와 죽음, 그리고 2026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공개되고 있는 ‘엡스타인 파일’은 이 거룩한 신화가 얼마나 참혹한 기만인지를 폭로한다.( 주 -Connections of Jeffrey Epstein - Wikipedia, accessed March 5, 2026, https://en.wikipedia.org/wiki/Connections_of_Jeffrey_Epste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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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사회주의로서의 과학과 과학지식인
“과학은 우리들의 정신생활에 중요한 요소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김일선 경성제대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조선학 운동을 비판하며 들고 나온 화두는 ‘과학적 조선학’의 필요성이었다. 식민지 시기에 근대학문으로의 이행을 경험하던 조선에서, ‘과학’은 근대적 학문방법론의 상징으로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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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한국 마르스크주의 경제학의 기원과 과학
“진보적 조선학은 ‘과학적 연구방법’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세계사적 보편성에 입각하여 조선의 특수성을 해석하려는 작업이었다. 중국 신문화운동의 구호가 ‘과학과 민주’였다면 진보적 조선학의 표어는 ‘전통의 과학화’라고 할 수 있겠다.”(류승완, 1920~1930년대 조선학의 분화에 대한 일 고찰) 일제는 1920년대부터 관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연구를 시작한다. 조선통치의 학문으로 시작된 관학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시작되어, 일제가 만든 고등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식민지 민중을 압도하는 학지(學知)가 되어 자기증식을 해나갔다.” 관학은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도입되었고, 이를 위해 “일제는 고등교육기관을 설립 및 장악하고 친일지식인들에게 일자리를 주었으며, 이들 친일지식인들은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기부정의 논리를 개발하고 나아가 조선과 일본의 동일화논리를 만들어낸다.” 관학은 고등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수행되었다는 권위 외에도, ‘근대학문’이라는 권위를 동시에 지닌 채, 조선 민중 전체에 주입된다. 식민지 조선은 정치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일본에 큰 열패감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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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다시는 무경험자가 과기정책을 좌우해선 안된다
일반인과 전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컷 해놓고, 거기에서 과학기술인재의 사회적 지위 및 경제적 보상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어놓고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을 내놓는 연구원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씽크탱크임을 내세우는 수많은 연구위원들은 디지털이니 융합이니 하는 화려한 개념들을 사용하며 마치 그들의 과학기술혁신정책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에게 가슴으로 와닿는 정책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설문조사를 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면서도 그 결과가 정책제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이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관료들의 경력을 위해 왜곡되고 있다는 의심을 낳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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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문재인 정권의 과학기술정책 브레인에게 묻는다
“글로벌 더블-뉴노멀은 우리가 기존과는 다른 사회로 전환해야 하는 분기점에 서 있음을 의미하며, 국가적으로 혁신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또한, 글로벌 충격에 따른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으로 이어가기 위해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선도적 어젠다를 제시하는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하겠습니다.”-문미옥, STEPI Outlook 발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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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기술 경쟁력의 추락과 불안한 미래
과학은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대상만을 탐구의 대상으로 한다. 이상하는 이를 “과학 공동체의 역사를 구성하는 주 연결고리는 재확인 및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과 가설의 연결성”이라고 표현했다. 즉, 과학자집단 혹은 과학자사회를 다른 영역의 공동체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특별한 방식으로 얻어진 ‘숫자’들을 ‘이론’ 혹은 ‘가설’과 연결하며 학문을 수행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유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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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와 리빙랩의 실패
과학기술 또한 사회혁신에 동참해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시민사회적 이념은 과학정책연구자들이 오래전부터 조금씩 주장해왔던 ‘리빙랩(Living Lab)’이라는 아젠다를 만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시민사회가 과학기술연구에 직접 참여해서 사회혁신을 주도한다는 리빙랩의 단순한 아이디어는 문재인 정부의 입맛에 맞는 과학기술정책으로 각광받았고, 수천억 원이 넘는 예산이 매년 여기에 투자되면서 과학기술계보다 시민사회로부터 더 큰 환영을 받는 악순환을 창출했다. 과학기술정책이 포퓰리즘에 기반해서는 안된다는 교훈과 더불어 전문가에 대한 존중과 현장에 대한 경험이 없이 실행되는 포퓰리즘적 정책의 위험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던 리빙랩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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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사회혁신’에 끌려다닌 文정부 과학기술
‘사람이 먼저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 캠프의 슬로건이었던 구호다. 정철이라는 홍보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슬로건은 이후 2017년 캠프에서 ‘나라를 나라답게’로 변용되었고, 이재명 캠프에선 ‘이재명은 합니다’로 이어졌다. 슬로건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서 과학기술인에 대한 존중은 당연한 상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관련 국정과제 중에서, 과학기술인에 대한 과제는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조성’과 ‘청년과학자와 기초연구 지원으로 과학기술 미래역량 확충’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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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경제와 포퓰리즘에 종속된 文정부 과학기술정책
윤석열 당선자의 인수위원회가 ‘국민께 드리는 20개 약속’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정과제 이행의 지향점인 국정비전은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로 정해졌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2017년 7월 19일 문재인 정부 역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고, 당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국정비전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다. 두 정부 국정기조 모두에서 ‘국민의 나라’가 강조되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두 정부가 내세운 국정 목표 또한 크게 다르지 않고 좋은 어감의 단어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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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적 학문을 위한 식민지 지식인의 대립
“조선학은 결코 조선의 과거만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초월적 존재를 신앙대상으로 하는 종교도 아니다. 그것은 이것들의 전문적 과학적 연구의 제성과가 전체적 연관하에서 현대적 의식을 통하여 비판 조성된 때 비로소 나타나는 일개의 고차적 개념이다.”-신남철 한국의 인문학계는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을 한국 근대 학술의 기점으로 간주한다. 특히 대다수의 인문학자들은 ‘실학(양명학)-민족주의적 조선학 운동(국학)-한국 인문학’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한국 학문의 정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종현의 말처럼 “이러한 계보화는 냉전체제 하에서 식민지 시기 마르크스주의적인 학문 전통을 소거하고 구축된 것”일 뿐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찾는 작업은 냉전적 사유를 전제하고 있다. 박종현의 또다른 말처럼 ‘실학-좌파적 맥락의 과학적 조선연구-북한의 사회과학’으로 이어지는 계보 역시 냉전 체제의 산물인 동시에, 좌우로 나뉜 역사학계가 공통적으로 보편을 열망하며 생겨난 균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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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조선학 운동과 과학적 역사학의 대결
“우리 원시족의 생활발전사를 전반에 걸쳐서 구명하려면 유일한 과학적인 방법론에 입각하여 여러 과학 부문의 엄정한 비판적인 성과를 정리하여 통일적으로 고찰해야 할 것이다.”- 백남운 ‘동경삼재(東京三才)’, 한말 일제 초에 일본유학을 통해 등장한 근대적 지식인 중에서 가장 기재가 넘치던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동경으로 유학을 떠난 이들은 동양의 런던으로 불리던 일본 동경에서 근대를 뼛속까지 경험했고, 새로운 한국을 건설할 신청년으로 추앙받았다. 홍명희는 1888년, 최남선은 1890년, 이광수는 1892년 생으로 비슷한 연배의 이들은 일본유학파라는 공통점 외에도, ‘문학’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학술적 특징까지 공유했다. 근대학문의 세례를 받았으나 전형적인 인문학 지식인이었던 이들은 귀국 이후 홍명희의 경우 자연주의 문학을 통해, 최남선의 경우 역사와 조선문화라는 영역을 통해, 그리고 이광수는 문학과 사회평론이라는 영역을 통해 식민지 조선을 일깨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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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식민지 조선의 ‘슬픈 혁명’과 ‘이기적인 영웅’
“우리 대한으로 하야곰 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하랴 하면 능히 이책임을 감당하도록 그를 교도하여라.”- 최남선 최남선은 일본 와세다대학 고등사범부의 지리역사학과에 입학했으나 3개월만에 자퇴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던 기회였던 일본유학을 무려 2차에 걸쳐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1908년 11월 귀국하여 <소년>이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소년>은 혁신적인 미디어의 계발을 통해 새로운 한국 건설의 주체인 ‘소년’ 세대의 계몽을 이루려던 최남선의 야망이 담긴 잡지였다. 최남선은 이 잡지를 통해 주로 지리와 역사 관련 지식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유길준이나 장지연 등에 의해 세계 및 조선지리가 상당한 수준으로 저술된 시점이었고, 따라서 <소년>이 다루던 지리역사학엔 그다지 혁신적인 내용이 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최남선과 그의 동료들이 일본 유학을 통해 습득한 근대 학문의 방법론, 특히 ‘과학적 사유’를 전면에 내세웠다. ‘과학’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소년>은 분명 다른 잡지에 비해 혁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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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식민지의 두 문화...문과와 이과의 차별
국내에서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자는 논의는 오래되었다. 2018년 박근혜 정부가 문이과를 통합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질적으로 수능에서 문이과 선택과목이 지정되면서 현재 문이과통합은 2022년까지 연기된 상태다. 지난해 처음으로 문이과 통합수능이 치러졌고, 수학에 강한 이과 학생들의 프리미엄이 현실화되면서 이들의 교차지원으로 대학입시는 대혼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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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혈액형별 성격으로 대통령 측근을 만들 나라
윤석열 당선자가 현재의 청와대엔 결코 들어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국방부가 있는 용산에 대통령 집무실을 꾸리겠다고 한다. 여야가 이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중요한 건 현재 청와대 자리에 무언가 문제가 있긴 하다는 점엔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현 청와대의 주인인 문재인 대통령도 광화문 시대를 공언했을 정도면, 조선시대의 궁궐 뒤에 군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위치에 자리잡은 청와대엔 문제가 많은 것이다. 탁현민 비서관은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관실 사이의 거리가 뛰어가면 30초 정도 밖에 안걸린다고 항변을 했지만, 문 하나만 열면 비서관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백악관 구조를 고려해 볼 때, 그리고 한국 사회가 열린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탁 비서관의 고집과는 달리 청와대의 위치와 구조엔 분명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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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적 계몽주의자 ‘이광수의 친일’
“1910년대 이광수는 당시 조선의 청년 엘리트에게 서양 근대과학이 가한 충격이 얼마나 심대했던가를 명확하게 예증한다. 일본 유학 시절 한때 자연과학만을 학문이라고 여길 정도로 자연과학을 경배했던 그는 과학의 보급이 조선민족의 갱생에 핵심적이라고 믿었고 과학지식을 기반으로 조선 사회와 문화의 변혁을 추구했다.”- 황종연, “신 없는 자연-초기 이광수 문학에서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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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가와 시인, 이데올로기 혹은 방법론의 과학
“1910년대 담론에서 과학 기술은 위대한 발명의 꿈과 문명 발전의 숭고를 내포한 대상이며 새로움의 향방이 불분명한 어떤 것으로, 경이로운 환상이나 기묘한 풍경으로 구성된다. 과학은 그 중립성과 객관성으로 인해 피식민 지식인들의 새로운 이상으로 떠오르지만 식민지 조선의 상황에서 발달된 과학 기술의 습득과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은 1910년대 담론에서 과학과 기술이 현실성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암기되는 지식의 대상이나 엽기적인 취미와 몽상의 대상으로 표상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최신 과학 기술과 문명은 현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허구적인 몽상과 신비한 미혹의 세계로 나타나며, 동시대 과학 문명 제국의 시선을 전유한 피식민 지식인들은 그에 대한 모방 욕망과 피식민의 소외된 현실 사이에서 균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계몽 담론이 요청하는 개척 과제인 동시에 대중의 엽기적 흥미가 향하는 대상으로, 피식민 지식인의 과학과의 거리감은 과학 기술 발전을 합리적인 연구 결과로 보기보다는 마술이나 신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공명하고 있다.”- 김주리, “1910년대 과학, 기술의 표상과 근대 소설: 식민지의 미친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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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대각성’의 시대...망국 이후 찾아온 과학의 열망
“순수한 문과계통의 학문만을 학습하여 가지고 교문을 나온 그네들은 자연과학에 아무런 교양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과학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반신불수의 대학 졸업생들이다. 불행히도 그네들의 수효는 전 졸업생 수의 약 칠 할이나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인문계통 졸업생이 사회에 나와서는 정치 경제 법률기타 모든 중요 방면에 지도자격으로 군림하여 이공학부 출신의 기술자를 부리는 지위를 점하게 된다. 이와 같은 불완전한 학제 밑에서 대학을 졸업한 자가 어떠한 기회에 과학의 위력을 느끼게 되면 이에 대한 기본 질적 문제를 고찰할 만한 과학적 교양이 없음에 따라 전연(全然)히 맹목적, 맹신적으로 그 위력에 추종하여 자연과학의 공식적 성과에 대하여는 그야말로 무조건 굴복과 동시에 덮어놓고 경의와 신앙을 가지게 된다. 때로는 자존심에 사로잡혀 자기 지위에 종속된 권력이나 위력행사를 감행하다가 대사를 잡치는 지도자도 종종 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을 설복시키려면 단순히 자연과학의 공식적 위용을 과시하면 충분하다.”- 최규남, ”한경희. 한국 엔지니어의 형성과 발전. 들녘, 2021”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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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미국 유학생의 오리엔탈리즘과 한계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미국이라는 제국에서의 배움을 선택했지만, 이러한 선택은 자아를 혼종적 주체로 구성했다. 조선에서 건너온 유학생은 제국과 식민,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분법에 의해 항상 타자로서 호명되었다. 우월한 주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열등한 타자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유학생은 타자로서의 자기 인식과 더불어 제국의 문화를 일상을 통해 내면화했다. 그들은 미국 문화를 내면화했지만 결코 미국인이 될 수 없는 모순된 주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타자성과 주체성으로 혼종된 주체는 조선을 그리워하지만 동시에 그 시선은 오리엔탈리즘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미국을 내면화 했지만 결코 타자의 위치를 넘어설 수 없었다.”- 송명진 “조선의 아메리칸 드림과 식민지인의 자기 인식. 문화와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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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들의 출세주의와 과학기술 1세대의 지연
“그 당시는 가장 똑똑한 사람은 문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던 시기였어요. 글을 쓴다든지 말이죠. 좋은 문장가는 대단한 존경을 받던 시대였으니까 모든 학문의 목적이 문학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 전까지는 글이나 시를 잘 써야 과거에 급제해 관리로 등용될 수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 가장 부러움을 샀던 일이라면 관리가 되어 높은 지위에 올라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거였으니까요. 갑오경장 이후부터는 과거제도가 폐지되어 문학을 한다는 것이 별 소용이 없게 되자 법률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긴 했지만요. 그러한 시대였지만 우리 집안은 밥 먹는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고 집안에서도 둘째라 뭘 하라고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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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이공계 유학생과 이공계 중인의 탄생
“식민지 상황에서 근대적 교육은 조선인들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바꿀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 얼마나 빨리 학교 교육에 접하느냐, 얼마나 길게 교육 과정을 거치느냐에 의해 각자의 인생이 크게 갈렸다. 그 방향은 조선인들이 선택하는 전공 분야와 맞물렸다. 과학기술은 매우 새로운 학문 영역으로, 전공자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낯설고 불확실한 전도가 이들 앞에 놓여 있었다.”- 김근배,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과학기술자 되기: 초기 북한 이공계 대학 교원들의 이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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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의 중인들, 왜 ‘근대화의 주역’이 못됐나
“갑신정변 참여층은 단순히 주도세력의 하수인으로서 정변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개화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화된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였고 사회적 변혁을 기대하고 있었다. 근대화 초기 단계에서 나타난 갑신정변은 결코 주도세력만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참여층의 적극적 참여와 행동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 그들은 고변하여 출세할 수 있는 안전한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고발하지 않고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정변에 적극 동참하여 행동했다.”- 박은숙, 논문 <갑신정변 참여층의 개화사상과 정변 인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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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캠프의 철학자들...과학기술 외면한 한국정치
대선후보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대전 카이스트에선 과학기술정책대학원과 카이스트 총학생회 등이 주관하는 ‘대선캠프와의 과학정책 대화’가 열렸고, 서울에선 과총(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이 주관하는 ‘대선후보 초청 과학기술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내용을 말하기 전에 과연 이런 행사를 주관한 과학기술계가 진정으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행사를 열었는지 묻고 싶다. 비슷한 시기에, 국민의 눈높이에선 비슷비슷해 보이는, 온갖 과학기술단체가 둘로 쪼개져 서울과 대전에서 각각 바쁜 대선후보를 부르는 전략을 써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한 쪽은 카이스트와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등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젋은’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담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은 ‘과총’을 중심으로 30여개 단체가 뭉쳤다는데, 외부에서 보기엔 과학기술계의 공익보다 각 단체의 자존심 싸움으로 행사를 둘로 쪼갠 못난 짓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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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은 왜 조선의 패망을 못막았나
“18세기 중반 서구 천문학과 수학에 가장 깊은 소양을 보인 인물이었던 홍대용이었다...홍대용은 관측과 계산의 전문적 연구 활동을 수행한 과학자라기보다는 서구 과학의 대체적 특징을 파악하고 지구설 등 서구 과학 지식이 지닌 세계관적 함의에 천착한 ‘과학사상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박성래의 눈에는 홍대용이 훗날 근대 한국이 서구과학에 대한 교양 수준의 이해를 넘어 ‘전문적’ 과학기술의 수용에 실패하게 될 전조이기도 했다. 홍대용은 19세기 말 이래 서구 과학 지식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고 과학이 국가의 부강에 중요하므로 적극 진흥해야 한다는 인식도 널리 확산되었지만, 정작 과학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과학기술자 집단의 양성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요컨대 전문화 없는 아마추어적인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이었다는 것이다.” -임종태, “과학사 학계는 왜 실학을 저평가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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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의 좌절, 과학기술 근대화의 ‘기회 상실’
금장태는 조선시대의 사상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조선시대의 사상적 특징은 16세기 말까지의 조선전기가 대체로 주자학의 ‘도학’(道學)을 정착시켜가는 단계라면, 17세기부터 시작되는 조선후기는 ‘도학’이 정통이념으로 확고하게 정립되지만, 다른 한편에서 양명학의 ‘심학’(心學)이 수용되고 서양의 과학지식과 천주교 신앙을 포함하는 ‘서학’(西學)이 전래됐으며, ‘도학’의 이념적 전통과 달리 현실제도의 개혁과 실용적 방법을 추구하는 ‘실학’(實學)이 등장해 사상적 동요가 일어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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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혁명적 소그룹의 특징과 조선 개화당의 실패
세상을 변화시킨 소그룹은 과학사 바깥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과학기술사에서 특정 시공간을 점유하는 혁명적 소그룹이 발견되는 건 과학기술이 가진 특성 때문인지 모른다. 과학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한 혁명적 변화를 자주 경험하며, 기술 또한 매우 빠르게 도약하는 특징을 보인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활동하던 ‘잡종’들에게서도 자주 혁명적 소그룹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초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비엔나 학단/빈 학단/비엔나 써클’도 그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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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두 과학자의 ‘죽음’과 한국 과학저널리즘의 ‘무지’
에드워드 윌슨(1929-2021)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국내 언론은 일제히 그의 죽음을 타전했다. 대부분 ‘통섭’과 ‘사회생물학’을 윌슨의 유산으로 꼽았다. 뉴욕타임즈는 유명한 기생충 학자이자 생물학에 대한 대중적 저술로 유명한 과학 작가 칼 짐머에게 부고를 맡겼다. 칼 짐머는 글의 서두에서 “생물다양성, 곤충, 인간본성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두 차례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생물학자이자 작가”로 윌슨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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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亡國), 그리고 좌절된 과학기술의 근대화
19세기 중후반 동아시아 3국이 서양열강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의 시대를 항해하고 있을 무렵, 각 국의 운명을 결정할 개화된 지식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실천이 동도서기(東道西器)로 나타나건, 중체서용(中體西用)으로 나타나건, 서양열강의 존재는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국가존립의 위협이었다. 서구열강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었고, 각 국에서 이를 누구보다 먼저 인지하고 민중과 국가의 자립과 독립을 위해 근대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책임은, 개화기 지식인들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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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의 조선, 물리학의 일본...그 운명의 갈림길
한·중·일, ‘윤리학에서 물리학’으로의 전회( 轉回)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문명의 힘을 물리학에서 찾았다. 그처럼 강력하게 서양학문의 수용을 주장했던 일본 사상가는 흔치 않다. 일본은 후쿠자와의 사상을 바탕으로 근대화에 성공했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후쿠자와와 비슷한 정도로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을 주장했던 건 1919년 5·4 신문화운동을 통해서였고, 조선은 식민지가 된 1930년대나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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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19세기말 한· 중· 일 지식인들의 세계주의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전근대와 다른 부강의 기초로 인식한 ‘근대 지식’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성, 전문성, 합리성 등을 강조하는 실사구시적 학문 태도와 서구학문의 보편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성순보>는 조선의 전통 학문 범주에서는 중시되지 않았던 격물, 격치로서의 과학을 기술적인 면에 한정되었지만 근대 지식, 學으로 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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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김옥균의 개혁과 과학기술 의지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김옥균은 1851년 충남 공주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그는 한학을 공부했으며 특히 강릉 이율곡을 모신 서원에서 율곡의 학풍과 실학을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16세인 그가 서울로 돌아온 1866년은 미국의 제너럴 셔먼호가 개항을 요구한 양요의 해였고,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대원군이 쇄국을 위해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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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한국 근대과학의 좌절된 씨앗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개항 이후 문호개방정책과 함께 가장 강하게 당시 위정자나 지식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서구과학 분야였다. 근대화의 추진과 침략에 대한 대응이라는 이중과제를 안고, 부국강병의 실현이라는 대명제 아래 서양의 장점은 바로 과학기술에 있다는 인식은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의지로 확산되었다- ” 이배용 <개화기 서구 과학기술 수용의 역사적 의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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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대선캠프, 왜 과학에 적대적인가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이재명 캠프의 과학기술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캠프 선대위 모습이 드러났다. 상임선대위원장과 상임총괄본부장 및 고문단/자문단/특보단/공보단에는 대부분 정치인들이 자리잡았다. 대통령후보 직속 위원회는 복지, 경제성장, 통일외교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부동산 분야에 설치되었다. 정책위 및 특위에 다양한 분야 인물들이 선정됐는데, 바로 이 정책위 및 특위의 구성으로 이재명 캠프가 추구하는 국정철학을 예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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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암살한 조선, 아무 관심없던 과학기술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 조선은 적어도 동방의 불란서가 되어야 한다.” -김옥균 홍종우는 대부분 김옥균를 암살한 출세 기회주의자 혹은 군주제를 지지하면서 훗날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에 맞서 황국협회를 만들어 보부상을 동원해 독립협회를 탄압한 수구파의 관료로 평가되고 있다. 1988년 출간된 <만인보>의 6권엔 홍종우에 대한 시가 적혀 있는데, 시인은 그를 조선의 수구반동세력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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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혁명가를 암살하다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1880년대 이후 개화를 위해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의식은 해마다 높아갔다. 그러나 이처럼 높아가는 과학기술의 필요에 대한 인식과는 정반대로 과학기술의 실제 수용 정도는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었다. 1890년대 이후 1910년 나라가 망하기까지 서양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성취 정도 사이의 격차는 해마다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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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백인 석학들의 뻔한 수업②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과학 분야 이외의 석학에 대해 굳이 감별을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개고기 식용화 금지라는 화두를 꺼낸 한국의 맥락에서, 굳이 수십년 동안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피터 싱어를 소환하느니, 좀 더 새로운 학계의 인물을 부르는건 어땠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폴 크루그먼과 마이클 샌델, 제프리 삭스, 유발 하라리도 너무 뻔한 선택이다. 이들이 모두 백인 남성이라는 점을 넘어서, 이미 한국에서 이들의 번역서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현실에서, 다시 이들의 이야기를 밀도조차 낮은 강연으로 듣는다는 게 EBS의 시청률을 높이는 것 외에 어떤 학문적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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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백인 석학들의 뻔한 수업①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EBS의 소위 ‘위대한 수업’이라는 천박한 기획 한국의 지식생태계에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석학이 드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에겐 세계에 내놓을만한 독창적인 사상가도, 한 분야를 선도하는 학파도 없다. 메이지 유신 이전부터 서구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완벽한 번역과 축적의 시간을 거친 일본과의 비교는 말할 것도 없고, 수천년간 동아시아의 학문을 이끌어온 중국과의 비교도 불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