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하라, 그러면 열리리라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 지식 개방의 이상이 낳은 ‘저자 착취’ 공공재여야 할 지식이 ‘오픈 액세스’라는 이름 아래 연구자가 돈을 내야 하는 상업적 장벽으로 변질되면서, 연구자들은 지식의 주인임에도 오히려 출판사의 청구서 앞에 무력해졌다.
- 관성과 신뢰를 활용한 ‘구독-개방(S2O)’의 출현 도서관들이 늘 해오던 구독을 갱신하면, 출판사는 미리 설정한 ‘문턱(구독 기관 수)’을 넘는 즉시 그해 발행 논문 전체를 저자 부담금 없이 만인에게 개방한다. 이는 이타심을 강요하는 대신, 구독 갱신이라는 도서관의 관성과 게임이론적 ‘상호확증계약’ 구조를 결합해 협력이 곧 가장 편안한 선택이 되도록 판을 짠 모델이다.
- 공유재로서의 지식, 공동체의 의지로 여는 문 S2O는 완성된 해답은 아니지만, 지식을 상품이 아닌 공유지로 되돌리려는 학술 공동체의 집단적 신뢰가 자본의 논리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논문 한 편이 심사를 통과해 게재가 확정되는 날, 과학자들은 축하 대신 청구서를 받는다. 이른바 논문게재료(APC), 곧 ‘내 논문을 세상에 무료로 열어주는 대가로 내가 출판사에 지불해야 하는 돈’이다. 액수는 학술지에 따라 수백만 원을 오르내린다(주- 네이처 등의 학술지는 APC가 최고 1700만원에 달한다. ‘논문 1편에 1700만원’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6051456001).
데이터를 만든 것도 나고, 원고를 쓴 것도 나이며, 다른 이의 논문을 무보수로 심사해준 것도 나인데, 정작 내가 빚어낸 지식을 남들이 읽게 하려면 다시 내가 돈을 내야 한다. 이 기묘한 셈법 앞에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지식을 모두에게 개방하겠다는 가장 숭고한 이상이, 어쩌다 이토록 우스꽝스러운 청구서로 되돌아왔는 지의 문제는, 논문을 출판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생존법칙 아래서 사치스러운 질문일 뿐이다.
‘오픈 액세스’라는 배신당한 약속
이 청구서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스무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모인 학자들은 하나의 선언을 남겼다. 공공의 돈으로 수행된 연구는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오픈액세스(Open Access)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세금으로 빚은 지식이 값비싼 구독료의 장벽 뒤에 갇혀, 정작 그 세금을 낸 시민과 가난한 나라의 연구자에게 닿지 못하는 부조리를 끝내자는 이상이었다. 고귀한 꿈이었다.
문제는 그 꿈을 실현하는 방식이었다. 독자에게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출판사들은 저자에게 돈을 받기 시작했다. 읽는 이 앞의 장벽을 허무는 대신, 쓰는 이 앞에 새 장벽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오픈액세스의 주류가 된 ‘저자 지불’ 모델이다.
그리고 이 모델은 이내 거대 상업 출판사들의 ‘노다지’가 되었다. 엘스비어, 스프링어 네이처, 와일리 같은 소수의 기업이 학술 출판 시장을 장악한 채 논문 한 편을 개방하는 값을 부른다. 네이처 포트폴리오만 해도 그 금액은 학술지에 따라 2,490유로에서 무려 1만 850유로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논문 한 편에 1천5백만 원을 웃도는 셈이다.(필자주- Open access at the Nature Portfolio. https://www.nature.com/nature-portfolio/open-access APC 2,490~10,850유로)
결과는 ‘이상의 배신’이었다. 읽는 이의 장벽을 허물겠다던 운동이, 쓰는 이를 가려내는 장벽으로 변질됐다. 넉넉한 연구비를 쥔 부유한 실험실은 얼마든지 논문을 열 수 있지만, 연구비가 빈약한 젊은 연구자와 인문학자, 그리고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의 과학자들은 제 이름으로 지식을 개방할 권리에서 조용히 밀려났다.
개방의 이름 아래 ‘새로운 불평등’이 자라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적잖은 이들이 이렇게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상업 자본에 포획된 도그마적 오픈액세스라면 차라리 폐기하는 편이 낫다고.
구독을 열다
바로 이 막다른 골목에서 조용히 등장한 제3의 길이 있다. 이름하여 ‘구독-개방(Subscribe to Open, S2O)’이다. 설계자는 학술도서관 연합체 SPARC의 컨설턴트 레임 크로우(Raym Crow)였고, 이를 처음 본격적으로 실험한 곳은 리뷰 논문으로 이름난 애뉴얼 리뷰스(Annual Reviews)였다. 발상은 어이없을 만큼 단순하다.(필자주-Subscribe to Open, De Gruyter Brill. https://www.degruyterbrill.com/publishing/about-us/about-de-gruyter-brill/open-access/subscribe-to-open)
출판사는 예년과 똑같이 학술지 구독을 판매한다. 도서관들은 늘 그래왔듯 구독을 갱신한다. 다만 여기에 하나의 약속이 걸린다. 충분한 수의 기존 구독 기관이 그해에도 구독을 유지하면 - 즉, 미리 정해둔 ‘문턱(threshold)’을 넘기면- 그해 발행되는 그 학술지의 모든 논문이 전 세계 누구에게나 무료로 열린다.
구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연구자에게도. 반대로 문턱을 넘지 못하면, 그해 논문은 예전처럼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유료의 벽 뒤에 머문다.
핵심은 이것이다. 저자는 단 한 푼도 내지 않는다. APC라는 청구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도서관도 예전보다 더 내지 않는다. 늘 내던 구독료를 그대로 낼 뿐이다. 그런데 그 익숙한 구독료가, 마치 마술처럼, 소수를 위한 열쇠에서 만인을 위한 개방으로 뒤바뀐다.

죄수의 딜레마를 푸는 법
이 모델의 진짜 아름다움은 그것이 인간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언뜻 이런 의심이 든다. 어차피 남들이 구독료를 내서 학술지가 열린다면, 나는 구독을 끊고 공짜로 읽으면 그만 아닌가.
모두가 그렇게 영악하게 계산하는 순간, 아무도 구독하지 않고 학술지는 도로 닫힌다. 경제학자들이 ‘공유지의 비극’이라 부르고, 또 ‘죄수의 딜레마’라 부르는 바로 그 함정이다.
구독-개방은 이 함정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는다. 대신 우회한다. 이 모델은 도서관에 새로운 선의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늘 하던 일- 구독 갱신- 을 계속하라고 말할 뿐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 이타심이 아니라 관성임을 꿰뚫은 설계다. 갱신 버튼을 누르지 않을 적극적인 이유가 없는 한, 대다수 도서관은 하던 대로 한다. 그리고 그 관성의 총합이 문턱을 넘기면, 개방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협력을 호소하는 대신, 협력이 가장 편안한 선택이 되도록 판을 짜둔 것. 게임이론가들이 ‘상호확증계약(mutual assurance contract)’이라 부르는 우아한 구조가 여기에 있다. 나의 작은 갱신 하나가, 나만이 아니라 만인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열리기 시작한 문들
이것이 탁상공론이 아님은 지난 몇 해의 성적표가 증명한다. 처음 이 길을 낸 애뉴얼 리뷰스는 2023년, 2024년, 2025년 발행분을 해마다 빠짐없이 개방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논문을 읽는 독자가 두세 배로 불었다.
인류학 학술지들을 묶어 도서관 사서들이 앞장서 개방을 이끈 베르한(Berghahn)의 실험도 자리를 잡았다. 학술서 전문 출판사 드 그뤼터 브릴, 물리학의 EDP 사이언스, 유럽수학회 출판부가 뒤를 이었다. 오늘날 이 방식 아래 개방을 오가는 학술지는 쉰 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340종을 웃돈다.(필자주-Subscribe to Open, Annual Reviews. https://www.annualreviews.org/S2O)
무게감 있는 합류도 이어졌다. 1665년 창간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심사 학술지로 꼽히는 「철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를 품은 영국 왕립학회는 2026년부터 여덟 종의 구독 학술지 전체를 이 방식으로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서관들이 구독만 유지해주면, 350년 된 학술지의 논문이 저자 부담금 한 푼 없이 만인에게 열린다는 것이다. 유럽의 연구비 지원 연합체 ‘cOAlition S’ 역시 APC에 의존하지 않는 정당한 개방의 경로로 이 모델을 공식 인정했다.(필자주-The Royal Society journals move to Subscribe to Open (2025). https://royalsociety.org/news/2025/08/subscribe-to-open/)

공짜 승객의 유혹
그러나 이 우아한 구조에도 그늘은 있다. 관성이 개방을 지탱하는 힘이라면, 관성은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언젠가 예산에 쪼들린 도서관들이 하나둘 ‘어차피 누군가는 내겠지’라며 갱신을 멈추는 순간, 문턱은 무너진다. 학술출판 평론가들이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공짜 승객(free rider)’의 문제다.
실제로 어떤 해에는 문턱을 넘지 못해 그해 논문이 다시 유료의 벽 뒤로 되돌아간 학술지도 있었다. 이 모델은 해마다 새롭게 신뢰를 갱신해야 하는, 태생적으로 불안정한 계약이다. 거대 상업 출판사의 방대한 논문 홍수에까지 이 방식이 통할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니 구독-개방을 만병통치약처럼 떠받드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이것은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해마다 공동체의 신뢰로 다시 세워야 하는 취약한 다리에 가깝다. 다만 그 취약함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이 모델이 무엇에 기대고 서 있는지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것은 자본의 힘이 아니라, 지식을 공유재로 여기는 학술 공동체의 집단적 의지다.
2밀리미터의 렌즈
지식이란 본래 누가 쓴다고 닳지 않고, 만인이 나눠 가질수록 오히려 불어나는 희귀한 재화다. 경제학의 언어로는 ‘공공재’라 하고, 더 오래된 말로는 그저 ‘공유지’라 한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우리는 이 공유지를 지키겠다면서 오히려 그 앞에 새로운 문지기와 통행세를 세우는 아이러니를 되풀이해왔다.
구독-개방은 그 아이러니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문을 닫는 행위(구독)를 문을 여는 행위(개방)로 뒤집는, 작지만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
2밀리미터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도서관 사서가 해마다 무심히 누르는 구독 갱신 버튼 하나에도 거대한 구조가 비친다. 그 작은 클릭이 소수의 열쇠가 될지 만인의 개방이 될지는, 끝내 우리가 지식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볼 것인가, 함께 지켜야 할 공유지로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한 편의 논문을 여는 가장 우아한 방법은, 어쩌면 아무도 새로 돈을 내지 않고 그저 서로를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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