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적 학술출판의 종말: 국가의 결단으로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 무력한 개인의 저항 블랙리스트, 보이콧, 선언문 등 지난 20년간 학계가 주도한 개별적·자발적 저항은 학술 출판사들의 거센 상업적 공세와 연구자들의 평가 압박 속에서 모두 한계에 부딪혔다.
- 국내 재정 유출의 심각성 논문 편수와 임팩트 팩터 중심의 낡은 평가 체계가 연구자들을 부실 학술지로 몰아세우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막대한 국민 세금이 해외 대형 출판사와 부실 학술지의 논문게재료(APC)로 새어나가고 있다.
- 정부 차원의 결단 촉구 개인의 절제나 자정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명백하므로, 중국의 사례처럼 공공 연구비 지원 기준 정립과 평가 체계 개혁 등 국가적 차원의 결단과 개입이 시급하다.

AI가 그린 초록, 개혁 선언의 아이러니
지난 8월 학술지 《FEBS Letters》에 실린 한 편의 정책 제안서를 읽다가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폴 레이니, 케네스 티미스 등 유럽미생물학회 ‘약탈적 출판 관행 대책반’ 소속 학자들이 쓴 이 글의 제목은 「약탈적 학술 출판사에 돈을 그만 지불하라」였다.
공공 연구비가 최소한의 편집 감독도 없는 수천 개 학술지의 논문게재료(APC, 저자가 논문을 싣기 위해 출판사에 내는 돈)로 흘러 들어가고 있으니, 앞으로는 투명한 품질 기준을 통과해 ‘인증(accreditation)’받은 학술지에만 공공 자금을 지급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이 엄숙한 개혁 선언문의 사사(감사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래픽 초록 이미지 생성에 생성형 AI를 사용했다.” 개혁을 외치는 문서조차 이미 새 시대의 도구에 슬그머니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아이러니가 사소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논문이 인용한 통계는 참혹하다. 오트만 하우스타인 등의 2024년 추산(arXiv 사전공개)에 따르면, 엘스비어·프런티어스·MDPI·PLOS·스프링거 네이처·와일리 여섯 출판사가 2019~2023년 거둬들인 APC는 물가조정 기준 83억 달러가 넘는다.
연간으로 보면 2019년 9억1천만 달러에서 2023년 25억4천만 달러로 179%나 뛰었는데, 정작 2023년 학술지 수익 1위는 엘스비어가 아니라 6억 8천만 달러를 거둔 MDPI였다. 연구는 세금으로 하고, 저작권과 이윤은 출판사가 가져간다.
문제는 이 진단이 조금도 새롭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 20여 년간 과학자들은 똑같은 진단을 내리고 똑같은 처방을 선언해 왔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까.
블랙리스트에서 보이콧까지, 실패의 계보
시작은 명단이었다. 미국 콜로라도대 덴버의 사서 제프리 비올은 2010년경부터 ‘비올의 리스트’라는 약탈적 출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리스트는 한때 학계의 필수 참고자료였지만, 2017년 1월 그는 돌연 리스트를 내렸다.
출판사들의 소송 위협과 대학의 압력에 시달린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스위스 출판사 프런티어스가 자사를 리스트에 올린 데 항의해 그의 고용주에게 민원을 넣었다는 정황도 보도됐다. 한 사람의 어깨에 얹힌 감시는 그렇게 무너졌다.
블랙리스트가 안 되니 화이트리스트로 가자는 흐름이 생겼다. 오픈액세스 학술지 디렉터리(DOAJ)는 2014년 우수 학술지에 ‘Seal(인장)’을 부여했다. 그러나 2025년 4월, DOAJ는 이 Seal을 폐지했다. 이유가 상징적이다. Seal이 의도치 않게 학술지 ‘랭킹’처럼 오해됐고, 자원이 풍부한 강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Seal을 받은 학술지는 전체의 7.9%(1,683종)에 불과했는데, 그중 88%가 경제적 북반구와 대형 상업 출판사 소속이었다. 좋은 학술지를 가리려던 도구가 기존 강자를 더 빛나게 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연구자들의 집단행동 역시 계속되었다. 2012년 수학자 티모시 가워스가 블로그에 엘스비어 불매를 선언하자 ‘지식의 대가(The Cost of Knowledge)’ 서명 운동이 벌어져, 그해 4월 23일 서명자가 1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전 세계 연구자 수백만 명에 비하면 미미했고, 엘스비어의 이윤율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실제로 작동한 저항은 ‘편집진 집단 사임’이었다. 2015년 언어학 학술지 《링구아》의 편집장 요한 로리크와 편집진 전원이 사임해 오픈액세스 학술지 《글로사》를 창간했다. 2023년에는 뇌영상 최고 학술지 《뉴로이미지》의 편집자 42명 전원이 3,450달러의 APC에 항의하며 사임하고 《이미징 뉴로사이언스》를 세웠다. 용감했지만, 미미한 저항에 불과했다.
평가체계를 바꾸자는 선언도 줄을 이었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 연구평가선언(DORA)은 임팩트 팩터를 개인 연구자 평가에 쓰지 말자고 했고, 2025년까지 168개국 2만6,573명(개인·기관 포함)이 서명했다. 2015년 라이덴 선언, 2022년 출범한 유럽 중심의 CoARA(연구평가개혁연합)에는 800곳 넘는 기관이 가입했다.
그러나 서명과 실천은 다른 문제다. 여러 연구가, DORA에 서명한 기관조차 승진·채용 심사에서 여전히 임팩트 팩터를 은밀히 쓴다고 지적했다. 선언은, 가식이었다.
정책 차원의 개혁도 있었다. 2018년 유럽의 ‘Plan S’는 공공 연구비 논문의 즉시 오픈액세스를 의무화했지만, 과도기 수단으로 도입한 ‘전환계약’이 오히려 대형 출판사의 수익을 굳혀버렸고, 주관 기구 cOAlition S는 2024년 말 그 지원을 끝냈다.
미국은 2022년 이른바 ‘넬슨 메모’로 2025년까지 연방 연구 논문의 즉시 공개를 의무화했으나, 2025년 트럼프 행정부는 이 메모를 백악관 사이트에서 내리고 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가장 극단적인 저항은 개인의 몫이었다. 2013년 1월, 스물여섯 살의 활동가 에런 스워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JSTOR에서 논문을 대량 내려받은 혐의로 최대 수십 년 형을 위협받던 중이었다. 그가 2008년에 쓴 「게릴라 오픈액세스 선언」의 한 문장-“정보는 권력이다”-은 지금도 인용되지만, 그 대가는 한 젊은이의 목숨이었다.

한국, 그리고 연구자를 ‘밀어내는 힘’
2018년 뉴스타파와 MBC의 보도로 드러난 와셋(WASET)·오믹스(OMICS) 부실학회 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관광지에서 열리는 ‘가짜 학회’에 국립대 교수와 출연연 연구자들이 국가 연구비로 대거 참가했다.
교육부가 전수조사를 벌였지만, 부실학술활동 공시는 2019년을 끝으로 사라졌고 재발 방지 입법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 차례 소동으로 끝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조용히 진행 중이다. 국내 APC 지출은 2019년 460억 원에서 2023년 1,000억 원 규모로 불었고, 그중 MDPI 한 출판사의 점유율이 급증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KISTI에 의뢰한 분석에 따르면, 2017~2021년 정부 R&D 지원 SCI급 논문 12만 6,505편 중 15.9%인 2만 103편이 부실 의심 학술지에 실렸고, 그 4분의 3이 MDPI 계열이었으며 유출된 게재료 추정치는 649억 원에 달했다.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논문 편수와 임팩트 팩터로 사람을 줄 세우는 평가체계, 곧 연구자를 부실 학술지로 ‘밀어내는 힘’이 있다.

레이니 등의 제안이 옳게 짚은 대목이 바로 여기다. 연구자를 부실 학술지로 ‘끌어당기는 힘(출판사의 유혹)’뿐 아니라 ‘미는 힘(평가 압력)’을 함께 개혁하지 않으면 어떤 인증제도 실패하고야 만다.
흥미롭게도 이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실제로 손댄 드문 사례가 이웃 중국이다. 중국은 2020년 과기부·교육부 통지로 SCI 지상주의와 논문 현금 보상제를 폐지했고, 중국과학원 문헌정보센터는 ‘국제학술지 예경고 명단’을 매년 갱신해 자국 학계를 지키고 있다.
나는 초파리를 연구한다. 20세기 초 토머스 모건의 ‘파리방(fly room)’에서 모건과 브리지스, 드메렉은 애써 키운 초파리 계통을 세계 누구에게나 공짜로 나눠주었다. 과학은 원래 ‘공유지’였다. 임팩트 팩터도, APC 과점도, 부실 학회 관광도 그 공유지에 세운 사설 매표소일 뿐이다.
수많은 선언이 실패한 이유는 처방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매표소를 유지하는 편이 우리 모두에게- 나 자신을 포함해- 당장은 편했기 때문이다. FEBS 논문이 AI로 초록을 그렸다는 사소한 고백이 뼈아픈 것도 그래서다. 개혁을 말하면서도 우리는 이미 다음 시대의 편의에 발을 담그고 있다.
내 논문 한 편을 어디에 출판할 것인지를 정하는 순간의 불편함을 견디는 일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절제만으로 매표소가 헐리지는 않는다. 지난 20년의 실패가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돈줄을 쥔 쪽이 움직이지 않는 한 어떤 선언도 종이 쪼가리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그 돈줄은 정부와 한국연구재단이다. 공공 연구비로 게재료를 낼 수 있는 학술지의 기준을 세우고, 그 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연구자 평가에서 논문 편수와 임팩트 팩터의 비중을 실제로 덜어내는 일.
중국이 이미 국가 차원에서 손을 댄 일을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학계 내부의 취향 다툼이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 부실 학술지의 계좌로 흘러드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국가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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