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에 드러난 ‘AI라는 이름표’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초파리 방에서 연구비의 유행을 생각하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과기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과기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AI 워싱 논란 국정감사에서 과기정통부의 AI 관련 R&D 과제 분석에서 약 30.6%가 AI와 관련성이 약한 것으로 분류됐다. 특허분류 코드의 한계는 있지만, 과제의 이름표와 실제 내용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 연구비가 바꾸는 연구 방향 AI에 예산과 인력, 제도가 집중되면서 연구자들은 지원을 받기 위해 과제에 AI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그 결과 기초연구가 밀리고 연구자의 시간도 본래의 질문보다 이름표를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 있다.
  • 이름보다 질문이 먼저다 초파리 유전학처럼 먼저 관찰하고 그다음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학의 원칙이다. 유행어 없이도 좋은 연구 질문을 지원하고, 연구자가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기초연구의 통로를 넓혀야 한다.

초파리 연구실에서 새 계통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다. 바이알 옆면에 유전형을 적고, 날짜를 적고, 어디서 왔는지를 적는다. 이 이름표가 틀리면 그 뒤의 모든 실험이 틀린다. 그래서 연구실의 오래된 규칙은 늘 같다. 이름표는 내용물을 확인한 다음에 붙인다. 교배를 해 보고, 표현형을 보고, 필요하면 PCR로 확인한 뒤에야 바이알에 이름이 생긴다.

며칠 전 국정감사 기사를 읽다가 그 규칙이 떠올랐다. 국가 연구개발 과제에 ‘AI’라는 이름표가 먼저 붙고, 내용은 나중에 따라오는 일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이름표를 먼저 붙이는 순간, 바이알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덜 중요해진다. 나는 이것이 한 부처의 분류 실수가 아니라, 연구비가 움직이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278건 중 85건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2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연희 의원실은 과기정통부가 제출한 AI 관련 R&D 과제 980건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과제 공고(RFP)와 실제 과제가 1대 1로 대응되는 278건을 골라, 특허분류(CPC)의 AI 관련 코드와 대조했다. 그 결과 85건, 약 30.6%가 AI와의 관련성이 약한 것으로 분류됐다.

85건의 내역도 흥미롭다. 관련성을 확인할 수 없는 과제가 29건, AI가 부수적으로만 언급된 과제가 31건, 사실상 다른 기술을 다루는 과제가 25건이었다. 의원실은 내년 AI 관련 R&D 예산이 약 4조원 규모로 커지는 상황에서 이런 ‘AI 워싱’이 예산의 실체를 흐린다고 지적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일부 과제가 AI로 잘못 분류된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하고, 검증을 거쳐 재발 방지책을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분석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특허분류 코드는 기술을 묶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고, AI를 도구로 쓰는 생명과학이나 재료 연구는 코드상 AI로 잡히지 않을 수 있다. 나는 30.6%라는 숫자를 정확한 오분류율로 읽기보다, 이름표와 내용 사이의 거리가 제법 크다는 신호로 읽는다.

이름표가 돈을 부를 때

연구자는 왜 과제에 AI라는 이름을 붙일까. 답은 어렵지 않다. 그 이름에 돈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감사장에서는 정부 약 5조 원과 민간 약 11조 원을 합친 16조 원 규모의 회사 구조로 거론된 프런티어 AI 사업을 두고 하루 종일 공방이 오갔다고 뉴스핌은 전했다. 디지털데일리 보도로는 14년 만에 다시 열리는 기업 전문연구요원 신규 배정도 AI 분야에 한정된다. 예산과 인력과 제도가 모두 하나의 이름 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연구계획서에 AI를 한 줄 더 쓰는 것은 부정직이라기보다 ‘적응’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연구자는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는 방법은 심사위원이 찾는 단어를 계획서에 넣는 것이다. 경제학에는 어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좋은 지표이기를 멈춘다는 오래된 경구가 있다. ‘AI 과제 수’나 ‘AI 예산 규모’가 정책의 성과 지표가 되면, 그 숫자는 가장 쉽게 부풀릴 수 있는 숫자가 된다. 이것은 기사가 아니라 나의 해석이다.

문제는 그 대가를 누가 치르느냐다. 이름표가 부풀면 정작 AI 연구에 필요한 계산 자원과 인력이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AI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연구, 이를테면 한 유전자의 기능을 10년씩 붙잡고 있는 기초연구는 이름표 경쟁에서 처음부터 불리하다. 유행의 이름은 바뀌어 왔다. 나노, 융합, 바이오, 4차 산업혁명. 나는 이 목록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무엇을 연구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흐려졌다고 생각한다.

이름표의 문제는 연구 현장에서 더 구체적이다. 과제가 AI로 분류되면 중간평가와 최종평가에서도 AI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원래의 질문이 단백질의 구조였든, 토양의 미생물이었든, 보고서에는 모델과 데이터셋과 정확도가 들어가야 한다.

그러는 사이 연구자의 시간은 원래 질문이 아니라 이름표를 정당화하는 일에 쓰인다. 나는 이 비용이 예산표에는 잡히지 않지만 가장 비싼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파리 방의 이름 붙이기

초파리 유전학은 이름 붙이기의 전통이 독특한 분야다. 모건의 파리방에서 처음 주목받은 돌연변이는 눈이 흰 수컷이었고, 그 유전자는 white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초파리 유전자들은 대개 돌연변이가 보여 준 모습을 따라 이름을 얻었다. 날개가 쪼그라들면 그 모양을, 배아의 무늬가 어긋나면 그 무늬를, 행동이 이상하면 그 행동을 이름에 담았다.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지나치게 재치 있는 이름들이지만, 원칙은 하나였다. 먼저 보고, 그 다음에 부른다.

그 원칙 덕분에 초파리 유전자의 이름은 그 자체로 작은 실험 기록이 된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표현형에서 출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나중에 그 유전자가 이름과 전혀 다른 일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 이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처음 관찰된 사실을 기억할 뿐이다. 나는 이것이 과학에서 분류가 지식이 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초파리 연구자들은 이 이름들을 공용 데이터베이스에 모아 함께 관리해 왔다. 누군가 같은 유전자에 다른 이름을 붙이면 기록을 대조해 하나로 정리하고, 옛 이름은 동의어로 남긴다. 이름을 정직하게 관리하는 일이 공동체 전체의 일이었던 셈이다. 나는 이 지루한 관리 작업이 파리방이 남긴 가장 실용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연구비의 이름표는 그 반대로 움직인다. 먼저 부르고, 그 다음에 채운다. 정책이 ‘AI’라는 이름을 정하면 연구자는 그 이름에 맞는 내용을 찾아 나선다. 바이알에 이름표를 먼저 붙이고 나중에 파리를 넣는 연구실을 상상해 보라. 처음 몇 번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몇 세대가 지나면 아무도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게 된다.

유행을 따르지 않을 자유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해 두면, 나는 AI 연구에 대한 투자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계산 자원과 인재가 필요한 분야에 국가가 큰돈을 쓰는 결정은 정치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 결정이 다른 연구의 언어까지 바꿔 놓는 방식이다. 모든 연구가 AI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나라의 과학은 하나의 단어로만 말하게 된다.

이번 감사에서 나온 대안은 검증 강화와 재발 방지다.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이름표와 무관하게 좋은 질문을 지원하는 통로가 충분한지 묻고 싶다. 연구자가 유행어 없이도 자기 연구를 설명할 수 있고, 그 설명만으로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초연구의 자리 말이다. 그런 자리가 넓을수록 연구자는 이름표를 부풀릴 이유가 줄어든다. 이것도 나의 해석이다.

헬로디디가 전한 대전의 한 AI 정책 포럼에서는 생성형 AI 이용자의 다수가 아직 단순 검색에 머물러 있다는 수치가 소개되기도 했다. 기술의 실제 쓰임과 정책의 기대 사이에는 늘 시차가 있다. 그 시차를 메우는 것은 이름표가 아니라 시간이다. 그리고 기초연구는 바로 그 시간을 사는 일이다. 이것 역시 나의 해석이다.

모건의 파리방이 백 년 넘게 쓰이는 지식을 남긴 것은 그 방이 유행을 좇았기 때문이 아니라, 본 것을 본 대로 적고 그 기록을 서로 나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름표를 정직하게 붙이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이 쌓여 한 분야의 기억이 된다.

오늘 저녁에도 누군가 연구실에서 새 바이알에 이름을 적을 것이다. 확인한 다음에, 본 것만큼만. 나는 국가의 연구비 장부도 그 정도의 겸손을 가졌으면 한다.

글쓴이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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