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캉이’라 부른 뒤: 구경에서 기록으로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초파리 방에서 ‘도시의 상어’를 생각하다
- 도시에 갇힌 상어 9월 18일 부산 북항 친수공원 인공 수로에서 몸길이 3.5m가량의 상어가 발견됐다. 시민들은 ‘부캉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누적 방문객은 70만 명을 넘었다. 물대포와 대형 그물을 동원한 구조는 10월 3일까지 모두 실패했다.
- 한 마리 뒤의 바다 국립수산과학원 집계로 올해 1~8월 동해안 대형 상어 혼획은 7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9건)의 약 2.5배다. 한국 연근해 수온은 1968년 이후 1.6℃ 올랐다. 부캉이는 사건이지만, 그 배경은 추세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이름 붙인 한 마리에 대한 사랑과 개체군에 대한 기록은 서로 다르지 않다. 구경을 관찰로, 관찰을 공유된 기록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과학이 ‘도시의 상어’에게서 배울 일이다.

연구자는 초파리 방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동작을 한다. 파리가 든 바이알(소형 유리 또는 플라스틱 용기)을 실험대에 가볍게 두드린다. 그러면 바닥에 떨어진 파리들이 일제히 벽을 타고 위로 기어오른다. 놀란 초파리는 위로 간다. 이 단순한 습성은 ‘음성 주지성’이라 불리고, 오랫동안 운동 기능과 노화를 재는 실험으로 쓰여 왔다. 우리는 그 파리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수백 마리를 세고, 비율을 내고, 그래프를 그린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이 관찰된 동물에겐 이름이 생겼다. 부산 북항의 인공 수로에 들어온 상어, ‘부캉이’다. 사람들은 다리 위에 줄지어 서서 지느러미가 수면을 가르는 순간을 기다렸고, 해경과 소방, 국립수산과학원이 구조에 나섰다. 개천절인 어제, 부캉이는 대형 그물을 넘어 다시 수로 안쪽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나는 이 상어 이야기가 단지 귀여운 해프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동물의 행동, 기후의 변화, 그리고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상어에게 이름을 붙이는 도시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부캉이’는 무태상어로 추정되는 3.5m 남짓한 개체다. 9월 18일 처음 목격된 뒤 길이 1.5㎞, 폭 30~60m, 깊이 2.5~4m의 수로를 오가며 지냈다. 9월 29일까지 누적 방문객이 63만 명을 넘었고, 10월 3일 보도에서는 7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부산시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됐다는 보도도 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동물은 ‘종’에서 ‘개체’가 된다. 무태상어 한 마리는 통계의 한 점이지만, ‘부캉이’는 걱정하고 응원할 대상이다. 일부 시민들은 그냥 수로에 두자고 말했고,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바다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수로의 환경이 바다와 너무 다르고, 숭어가 있는데도 먹이 활동이 관찰되지 않았으며, 수온이 20℃ 아래로 떨어지면 버티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름’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본다. ‘이름’은 관심을 만든다. 70만 명이 상어를 보러 가는 일은 어떤 과학관도 쉽게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름’은 동물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기기도 한다. 우리 도시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동물에게 필요한 것이 바다라는 사실과 부딪힌다. 사랑이 곧 그 생물에 대한 이해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름 붙이기를 비웃고 싶지는 않다. 과학자도 이름을 붙인다. 초파리 유전자 이름에는 연구자들의 농담과 상상력이 가득하고, 그 이름 덕분에 낯선 유전자가 기억되고 이야기된다.
문제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이름이 만든 관심을 어디로 흘려보내느냐다. 관심이 동물을 붙잡아 두려는 욕망으로 갈 수도 있고, 그 동물이 사는 바다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갈 수도 있다. 나는 후자를 기대한다.

위험하면 아래로, 위험하면 위로
구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30년 가까이 상어를 연구해 온 최윤 군산대 명예교수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수면 근처에서 큰 먹이를 사냥하는 상어와 달리, 바닥 가까이에서 먹이를 찾는 상어는 위협을 받으면 본능적으로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물대포로 밀어내려 하자 부캉이가 깊이 잠수하거나 수로 벽에 붙어 버린 것도 그래서라는 해석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실험대 위의 바이알을 떠올렸다. 초파리는 놀라면 위로 가고, 이 상어는 놀라면 아래로 간다. 방향은 반대지만 원리는 같다. 동물은 위협 앞에서 자기 몸이 진화해 온 환경이 알려주는 쪽으로 움직인다. 사람이 원하는 방향, 곧 ‘출구’는 동물의 머릿속에 없다. 행동유전학이 오래 배워 온 교훈도 이것이다.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 동물이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최 교수는 사나흘에 걸쳐 천천히 압박하고, 상어가 다시 떠오를 시간을 주라고 조언했다. 11월에 수온이 20℃ 아래로 내려가면 상어가 스스로 따뜻한 바다로 떠날 수도 있다고 했다. 이것은 전문가의 예측이고, 아직 결과는 모른다.
다만 이 조언에서 나는 구조의 성패보다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동물의 시간과 행정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한 마리의 상어와 일흔세 번의 혼획
‘부캉이’가 화제가 되는 동안 국립수산과학원의 숫자가 함께 보도됐다. 올해 1~8월 동해안에서 그물에 걸린 대형 상어는 7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9건의 약 2.5배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청상아리였다.
한국 연근해 표층 수온은 1968년부터 2025년까지 1.6℃ 올라, 같은 기간 세계 평균 상승 폭의 두 배쯤 된다. 연구자들은 난류성 어종의 분포가 북쪽으로 넓어지면서 이를 쫓는 대형 포식자의 출몰도 잦아졌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나는 조심스러워진다. ‘부캉이’ 한 마리가 왜 하필 북항 수로에 들어왔는지를 기후변화로 곧장 설명할 수는 없다. 개체의 사건과 개체군의 추세는 다른 층위의 질문이다. 혼획(원하지 않거나 잡을 의도가 없던 다른 해양 생물이 그물이나 낚시에 우연히 함께 잡히는 현상-편집자주) 건수의 증가도 어획 노력이나 보고 방식의 변화를 함께 따져 봐야 한다.
그러나 한 마리의 상어가 수십만 명의 눈을 바다 쪽으로 돌려놓은 것은 분명하다. 73이라는 숫자는 ‘부캉이’가 없었다면 이렇게 많이 읽히지 않았을 것이다.
초파리유전학도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10년 모건의 방에서 발견된 흰 눈 수컷 한 마리가 없었다면, 반성유전(伴性遺傳, 성별을 결정하는 X-성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에 의해 형질이나 유전병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현상-편집자주)의 발견도 그렇게 빨리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한 마리가 과학이 된 것은 그 뒤에 이어진 수많은 교배와 계수, 그리고 기록 덕분이었다. 한 개체는 질문을 열고, 개체군은 답을 준다.

구경하는 눈, 기록하는 눈
그렇다면 70만 명의 구경은 어디로 가는가. ‘부캉이’를 보러 간 사람들은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찍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상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이 기록이 한곳에 모였다면 상어의 행동 양식과 수온, 시간대의 관계를 살피는 소박한 자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상상이지만, 시민의 관찰이 과학의 자료가 되는 일은 조류 조사나 생물 다양성 기록에서 이미 흔하다.
북항에서는 1m 크기의 물고기가 ‘부캉이 새끼’라는 소문도 돌았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자는 무태상어 배아의 평균 길이가 61.7㎝라는 자료를 들어 그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 짧은 일화가 좋았다. 소문에 대한 답이 ‘권위’가 아니라 ‘측정된 숫자’였기 때문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거창한 강연보다 이런 순간에 더 잘 일어난다.
그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도 생각해 볼 만하다. 배아의 평균 길이 같은 자료는 누군가 오랫동안 상어를 해부하고, 재고, 적어 둔 결과다. 화려한 성과 지표에는 잘 잡히지 않는, 이른바 ‘느린 과학’이다.
수십 년 쌓인 수온 관측 자료도 마찬가지다. ‘부캉이’를 둘러싼 거의 모든 과학적 설명은 이런 지루한 기록 위에 서 있다. 사회가 한 마리의 상어에 열광할 때, 그 열광을 받쳐 주는 것은 누구도 박수 치지 않았던 관측망과 표본 상자들이다.
초파리 방의 전통은 결국 관찰을 함께 쓰는 문화였다. 누가 어떤 돌연변이를 봤는지, 어떤 조건에서 그 표현형이 나타났는지를 서로에게 알리는 일 말이다. 구경하는 눈과 기록하는 눈의 차이는 지능이나 학위가 아니라 습관과 제도에 있다. 도시가 상어에게 이름을 붙여 줄 수 있다면, 그 상어를 함께 기록하는 방법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부캉이’가 언제 바다로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제 그물을 넘어 다시 수로로 돌아온 그 상어는 우리가 원하는 결말을 따라 주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우리의 이야기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 마리의 상어가 70만 명에게 보여 주었으니까.
오늘 저녁에도 나는 바이알을 두드릴 것이다. 위로 기어오르는 파리들을 세면서, 아래로 숨는 상어를 생각할 것이다. 이름이 있든 없든, 모든 동물은 자기 몸의 역사가 알려주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 방향을 읽어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함께 적어두는 일이 보통 과학자의 몫이다.
출처
그물까지 넘은 부캉이… 하루 만에 수로 안으로 돌아왔다. 한국일보 (2026.10.3).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100314120000129
“부캉이 구조 실패 의외…11월에 수온 차가워지면 스스로 떠날 수도”. 헤럴드경제 (2026.10.1). https://v.daum.net/v/20261001121013324
“부캉이 그냥 두자”는 시민들…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바다로”. 서울경제 (2026.9.30). https://m.sedaily.com/article/20096822
상어 ‘부캉이’가 울린 경종…기후변화로 급변한 해양생태계. 세계일보 (2026.9.30).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930502543
부캉이 우연이 아니었다…부산 앞바다의 이상 신호. 한국경제 (2026.9.30).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93033407
“이제 바다로 가자”…부산 상어 ‘부캉이’ 구조 작전 착수. 시사저널 (2026.9.29).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8596
북항 1m 물고기 ‘부캉이 새끼’ 가능성 낮아…배아 평균 61.7㎝. 문화일보 (2026.9). https://www.munhwa.com/article/11618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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