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 혐오표현일까
- 혐오표현의 판단 기준 특정 집단에 부정적인 발언을 했다고 곧바로 혐오표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발언의 맥락과 의도, 내용, 전파 범위, 해악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 부적절한 발언과 혐오표현은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국인 노동자 관련 발언은 부정확하고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곧바로 외국인 혐오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 혐오라는 낙인의 무게 ‘혐오표현’이라는 규정은 발언자에게 도덕적·정치적 낙인을 남길 우려가 크다. 개념이 남용되면 진정한 혐오표현의 심각성마저 희석될 수도 있다. ‘혐호표현’이란 말은 정확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과 반발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혐오표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농어촌의 인력 부족 문제를 논의하던 중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도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임금을 본국으로 송금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일부 이주노동자 단체와 정치권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통령은 외국인 노동자도 국내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그 효과가 크지 않다는 비교의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나는 이 논란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혐오표현’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쉽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도대체 혐오표현이란 무엇인가. 어떤 표현을 혐오표현이라고 규정하려면 무엇을 따져보아야 하는가.
인권법상 ‘혐오표현’에 대해
국제인권법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단일한 정의가 확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혐오표현은 인종, 국적, 종교, 성별 등 특정한 정체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공격하거나 멸시하는 표현을 말한다. 그러나 어떤 발언이 불쾌감을 준다거나 특정 집단에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혐오표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인권법은 특히 차별과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증오의 고취를 중대한 문제로 다룬다. 유엔 자유권규약 제20조 제2항이 그 대표적인 규정이다. 유엔의 라바트 행동계획(2012년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열린 전문가 워크숍을 바탕으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정리한 유엔 인권지침-편집자주)은 이러한 선동에 대한 형사적 규제를 판단할 때 발언의 맥락, 발언자의 지위와 의도, 표현의 내용, 전파 범위와 해악의 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한다.
물론 법적으로 금지되는 선동만이 혐오표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표현을 혐오라고 규정할 때 그 전체적인 맥락과 실질적 의미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부적절한 발언과 혐오표현은 별개다
나는 이번 대통령 발언이 적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공직자다. 그의 말 한마디는 정책의 방향을 암시하고 국민의 인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누구보다 정확하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처럼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기 쉬운 사람들에 관해 말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의 경제적 가치를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것과 그것이 ‘혐오표현’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대통령은 농어촌의 인력 부족과 내국인 고용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경제적 기여를 언급했다. 그 판단이 정확한지는 얼마든지 따질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실제로 우리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해외 송금이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통계와 사실에 근거하여 반박하면 된다. 그런데 이러한 발언을 곧바로 외국인 혐오표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혐오표현’이라는 단정으로 인한 사회적 효과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혐오라고 규정하는 순간 일어나는 사회적 효과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혐오표현을 했다는 비판은 단순히 표현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발언자를 인권의식이 부족한 사람, 나아가 차별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낙인찍는 효과를 낳는다. 그에 따른 사회적·정치적 타격은 결코 작지 않다. 발언자는 자신이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혐오라는 말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부정확한 발언은 부정확하다고 비판하면 되고, 부적절한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면 된다.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면 그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비판을 넘어 혐오표현이라고 규정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혐오라는 말이 갖는 사회적 파괴력을 생각한다면 결코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언어 역시 정확해야
나는 이번 대통령 발언을 혐오표현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정치적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발언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혐오’라는 낙인을 찍는 순간 논쟁의 성격은 달라진다. 외국인 노동자의 경제적 기여와 농어촌 고용정책에 관한 실질적 토론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대통령의 인권의식과 도덕성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벌어진다. 이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혐오라는 말이 남용될수록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진정한 혐오표현의 심각성마저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집단을 비인간화하거나 차별과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혐오표현이라는 개념은 정확하고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 대통령에게 정제된 언어를 요구한다면, 대통령을 비판하는 언어 역시 정확하고 절제되어야 한다.
인권의 언어가 정치적 공격과 도덕적 낙인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자유로운 토론을 지켜가는 성숙한 민주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이 글은 필자인 박찬운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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