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대법관 제청을 거부할 수 있는가

대법관 임명권에 대한 헌법적 해석

  • 임명권의 소극적 거부권 인정 헌법상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 않으므로,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에 대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고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한다.
  • 제청권과 임명권의 한계 구분 대통령이 특정 후보자를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임명권의 범위 내에 해당하지만, 후보군의 범위나 추천 절차(추천위원회 구성 등)까지 지정하여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헌법기관간 권한의 경계 존중 사전 협의 관행이 없었다는 이유로 대법원장의 제청 자체를 ‘절차적 흠결’로 몰아세우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각 헌법기관이 권한의 경계를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권력분립 원리에 부합한다.

(이 문제에 대해 언급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논쟁 구조가 너무 대결적으로 흘러가는군요. 많은 분들이 위헌론을 제기하는 데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의 접근방법을 모두 찬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헌법은 각각의 독립적 권한을 인정한다

대법관 임명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에 전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봉기 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했지만, 대통령은 그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하고 대법원장에게 새로운 후보자를 재제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이런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헌법은 대법관 임명에 대법원장과 대통령, 국회가 각각 관여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법원장의 제청에 앞서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의 협의를 통해 의견을 조정해 왔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도록 ‘헌법적 관행’이 완충장치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번에는 그 관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대법원장이 제청한 사람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관행이 해결해 주던 문제가 법의 문제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는 헌법 제104조 제2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정면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이 짧은 문장 안에 세 헌법기관의 권한이 들어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이다.

나는 이 세 권한을 각각 독립적인 실질적 권한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대법원장의 제청권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없다. 대통령의 임명권은 오로지 대법원장이 제청한 사람을 대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의 적극적 선택권을 제한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대법원장의 권한은 제청으로 끝난다. 대법원장이 실질적인 대법관 임명권자는 아니다. 대법원장이 특정인을 제청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에게 그 사람을 반드시 임명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석하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임명권’은 사실상 형식적인 권한이 된다. 대통령은 대법원장이 정한 사람을 국회에 전달하고, 국회가 동의하면 임명장을 수여하는 역할에 그치게 된다. 헌법이 굳이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부여했다고 규정한 이상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대통령의 임명권에는 제청된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을 ‘소극적 거부권’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제한한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누구를 임명할 수 있는지를 제한하고, 대통령은 제청된 사람을 실제로 임명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국회의 동의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회 역시 대법관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국회의 동의권은 대통령에게 “이 사람을 임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 명령권이 아니다. 대통령이 특정인을 임명하려 할 때 그것을 허용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소극적 통제권’이다.

결국 헌법 제104조 제2항의 구조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대법원장은 후보자를 선택하여 제청한다. 대통령은 제청된 후보자를 임명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국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려는 후보자에 대하여 동의 여부를 결정한다.”

어느 기관도 혼자서는 대법관을 만들 수 없다. 세 헌법기관의 의사가 합치되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대법관이 탄생한다. 이것이 헌법이 의도한 상호통제의 인사구조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임명권에 속한 두가지 단계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대통령의 결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임명권은 두 단계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에 대해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단계이고, 둘째는 국회의 동의를 받은 뒤 실제로 임명하는 단계이다.

물론 대통령의 임명권이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는 것은 두 번째 단계다. 그러나 임명권을 실질적인 권한이라고 이해한다면 첫 번째 단계에서 대통령의 판단권이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통령이 어떤 후보자를 최종적으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는데도 반드시 그 후보자를 국회에 보내 동의를 요청해야 한다고 할 이유가 무엇인가. 국회의 동의는 대통령에게 임명을 명령하는 절차가 아니라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를 통제하는 절차이다. 대통령 자신이 임명할 의사가 없다면 국회가 통제해야 할 임명행위 자체가 없다.

따라서 나는 대통령이 손봉기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한 결정 자체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 임명권의 범위 안에 있다고 본다.

동의안 미제출과 재제청 요청은 문제없어

그러나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구별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하지 않는 것과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손봉기 후보자에 대한 대법원장의 제청은 그 자체로 유효하다. 대통령이 그것을 취소하거나 무효화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단지 그 제청을 받은 후보자에 대하여 자신의 임명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후속절차인 국회 동의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일을 (언론이) ‘제청 반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 청와대 공식 브리핑도 ‘반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표현이 헌법적으로도 정확하다.

재제청 요청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에게 대법원장을 상대로 한 별도의 ‘제청요구권’이 있다고 볼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 기존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상 대법관 공석을 채우려면 대법원장이 다른 후보자를 제청해야 한다. 따라서 재제청 요청 자체는 임명동의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따라오는 사실상의 후속조치라고 이해하면 충분하다.

재제청 절차에 관여하는 것은 월권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재제청할 후보자의 범위나 재제청의 절차까지 관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청와대는 이번 발표에서 대법원장에게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신속하게 재제청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했다. 기존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군에서 다시 제청해 달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이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누구를 어떤 절차를 거쳐 제청할 것인지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속하는 문제다. 기존 추천위원회의 추천 결과를 그대로 활용할 것인지, 새로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시 추천절차를 밟을 것인지 역시 법률에 따라 대법원장이 판단할 일이다. 대통령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더구나 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제2항은 추천위원회를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재제청을 새로운 제청으로 볼 경우 새로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문제의 법률적 판단 역시 일차적으로 대법원장이 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의 경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에게는 제청된 후보자에 대한 소극적 거부권이 있지만, 제청할 후보자에 대한 적극적 선택권은 없다. 대통령이 후자의 영역까지 관여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임명권 행사를 넘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개입하는 문제가 된다.

따라서 청와대는 “손봉기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겠다. 새로운 후보자를 제청해 달라”는 데에서 그쳤어야 한다. 그 이후 누구를, 어떤 절차를 거쳐 제청할 것인지는 대법원장에게 맡겼야 한다.

헌법 기관의 권한 경계를 상호 인정해야

이번 청와대 발표에서 또 하나 문제 삼을 부분이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결정을 설명하면서 대법원장의 이번 제청이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실질적 권한으로 인정한다면 대법원장의 제청 자체에 흠결이 있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대법원장의 제청은 적법하고 유효한 헌법상 권한 행사로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은 그와 별개의 헌법상 임명권에 따라 그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권력분립의 원리에 더 충실하다.

특히 그동안 이루어져 온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의 사전협의를 제청의 법적 요건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사전협의는 두 헌법기관의 권한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유용한 헌법적 관행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제약하는 헌법상 요건은 아니다.

대통령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청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한다면 자칫 대통령에게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사실상의 사전동의권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것은 헌법이 예정한 권한배분과 다르다.

이번 사태를 현 정부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헌법이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권한을 어떻게 배분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번 일은 그동안 사전협의라는 관행 속에 가려져 있던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의 관계를 정면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에 대해 국회 동의절차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실질적 임명권의 행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장의 제청 자체를 불완전한 것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제청권은 제청권대로, 임명권은 임명권대로 존중하면 된다.

헌법기관 사이의 권한 충돌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느 한쪽의 권한을 확대하여 다른 쪽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에게 주어진 권한의 경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 역시 그 원칙에서 평가하는 것이 헌법에 가장 충실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필자인 박찬운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박찬운 한양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찬운(한양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전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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