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中 유럽의 교훈: ‘기본자산’ 논의하자

지난 24일 프랑스 파리 등 전역에서 벌어진 청년들과 노동자들의 연대 시위.
지난 24일 프랑스 파리 등 전역에서 벌어진 청년들과 노동자들의 연대 시위.
  • 청년 위기의 전조와 ‘기회 사재기’ 유럽과 프랑스의 청년 시위처럼, 한국 역시 자산 불평등과 부의 세습으로 인해 청년들이 도전할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 불평등이 무너뜨린 공정성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삶을 결정하는 ‘기회의 사재기’와 능력주의의 그늘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와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 ‘기본자산’이라는 사회적 상속 실험 글로벌 위기가 주는 교훈에 발맞추어, 이제는 모든 청년에게 최소한의 출발 자금을 보장하는 ‘기본자산’ 제도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유럽의 시위사태와 ‘자산 불평등’의 심화

프랑스 고교생과 노동자들의 시위가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생활고와 주택 문제 등 청년들의 고통을 등한시 했던 전세계가 몸살을 알고 있다. 우리는 예외일 수 있을까.

최근 우리 사회의 불편한 단면을 보여주는 보고서와 논문이 잇달아 보도되었다. 하나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6-8월 임금 근로자 중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405만 원인 반면, 비정규직은 211만 원에 그쳤다. 비정규직 중 한시적 근로자 역시 220만 원에 불과했다.

또 다른 자료는 학술지《한국사회정책》에 실린 <가족 자원과 청년 노동시장 이행의 불평등>이란 논문이다. 부모의 가구소득을 하위 10%(1분위), 중위 40∼50%(5분위), 상위 10%(10분위)로 나누어, 자녀가 34세가 되었을 때의 안정적인 정규직으로 이행할 확률을 추정했더니 각각 23%, 79%, 94%로 벌어졌다. 부모의 소득이 최상위권인 청년과 최하위권인 청년 사이에 정규직 취업 가능성이 4배 넘게 차이나는 셈이다.

사실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소득·자산의 불평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만 최근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눈에 띤다. 정부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나타난 지니계수(0에서 1 사이의 값으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를 보면 세금과 이전소득을 반영한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2017년 0.352에서 2024년 0.325로 다소 낮아졌다.

반면 부채를 뺀 순자산 지니계수는 같은 기간 0.584에서 0.625로 오히려 높아졌다. 상위 10% 계층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41.8%에서 46.1%로 상승했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배경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소득 지니계수가 조금이나마 개선된 데에는 최저임금의 단계적 인상과 근로장려세제 확대, 그리고 공적 이전소득의 재분배 기능이 강화된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반면 순자산 지니계수가 악화되는 것은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가격의 급등 때문만이 아니다.

자료= 202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 202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이미 자산을 소유한 계층이 그 자산을 굴려 얻는 수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 자산이 적은 가구는 소득이 조금 늘어나더라도 주거비와 생활비로 인해 자산을 모으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졌다. 여기에 부모 세대로부터 내려오는 상속과 증여의 불균형이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방대한 통계로 입증했듯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상태가 계속되면 상속받은 자산이 노동을 통해 축적된 소득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되고 결국 부의 집중과 세습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소득 불평등은 다소 완화되는데 자산 불평등은 오히려 확대되는 현상을 모순이라고 보아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소득은 자산을 모으는 종잣돈이 되고, 그렇게 모인 자산은 다시 미래의 소득과 기회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된다. 문제는 소득이 자산으로 전환되는 정도가 가구마다 천차만별이라는 데 있다.

당장 빠져나가는 생활비와 대출 이자, 집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저축 여력이 크게 달라지는 데다, 이미 쌓아둔 자산이 만들어내는 수익과 가격 상승의 이익 역시 자산을 가진 계층에게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고착화가 무너뜨리는 것들

이처럼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면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심각한 균열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당장 경제의 기초 체력부터 약해진다. 부와 소득이 소수에게 쏠리면 사회 전체의 소비 여력이 떨어진다. 다수의 중산층과 서민이 높은 주거비와 부채 상환에 묶여 지갑을 닫게 되니 내수가 얼어붙고, 이는 다시 경제 전반의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흔들린다는 점도 뼈아프다. 평생 성실하게 일해서 모은 월급보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가격이 올라 얻는 불로소득이 훨씬 큰 사회에서, 누가 노동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려 하겠는가. 일해서는 자산을 모을 수 없다는 좌절감은 청년들을 무리한 ‘영끌’ 이나 ‘한탕주의’로 내몰고 크나큰 상대적 박탈감을 남긴다.

나아가 내집 마련이나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다질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 아닌 포기의 영역이 된다. 우리가 마주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인구 위기 역시 자산 격차가 만들어낸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맞닿아 있다.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인식이 퍼질수록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연대와 민주주의의 기반마저 위태로워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부와 지위가 부모에서 자식 세대로 고스란히 세습된다는 점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대학 진학과 일자리의 질을 결정하고, 이것이 다시 사회의 건전한 이동성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진다. 부모의 자산 격차가 자녀 세대의 주거와 교육, 취업 기회의 격차를 낳고, 여기에 상속과 증여를 통한 자산의 대물림까지 더해지면서 자녀 세대에서는 소득과 자산의 격차가 한층 심해지는 구조가 고착되는 것이다.

‘기회의 사재기’와 ‘능력주의’라는 가면

자산 불평등의 더 깊은 문제는 단순히 가진 돈의 차이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기회의 차이로 전환된다는 데 있다. 분배 결과가 다소 불평등하더라도 출발선에서 주어지는 기회만큼은 평등하다면 사회의 역동성을 살리고 불평등을 완화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기회마저 소수에게 독점되고 사재기된다면 대다수 청년은 도전할 발판조차 잃어버린 채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두가지 핵심 메커니즘으로 ‘착취’와 ‘기회 사재기’를 들고 있다. 여기서 기회의 사재기는 사회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한 집단이 좋은 교육, 괜찮은 일자리, 자산, 인맥처럼 희소한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독점하고, 다른 집단이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불평등은 다른 조직들이 그 배타적인 기준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방과 불리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마저 어쩔 수 없다며 그 질서에 순응해버리는 적응을 통해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굳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산 계층은 좋은 학군지의 주택을 선점해 양질의 교육과 자격증에 다가갈 길을 독점한다. 주택자산과 교육자산의 사재기다. 부모 세대가 가진 배경을 통해 알짜 정보와 인맥을 나누어 갖는 사회적 자본의 사재기를 이어간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실패를 감당할 능력의 사재기’다. 부모의 자산이라는 안전망에 있는 청년은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며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청년에게 한 번의 실패는 바로 생존의 위협이 된다. 더구나 이 모든 불공정한 과정은 개인의 노력과 실력으로 얻은 결과라는 능력주의 신화 뒤에 교묘히 숨어 정당성을 얻는다. 능력주의가 기회의 사재기를 가리고 합법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사회적 상속, 기본자산이라는 출발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조세 체제의 합리적 재설계와 공공주거 확충, 교육 개혁, 노동시장 이중구조 타파 등 다각적인 복지와 사회투자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부모의 배경과 상관없이 사회가 모든 청년에게 최소한의 자산을 물려주는 사회적 상속, 즉 ‘기본자산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본자산 논의는 18세기 말 토머스 페인의 자연권 사상에서 출발하여 현대에 이르러 피케티의 ‘자본 과세 모델’로 구체화되었다. 땅과 자연은 인류 모두의 자산이므로 토지 보유자에게 세금을 걷어 성인이 되는 모든 시민에게 출발 자금을 주자는 것이 페인의 생각이었다. 이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피케티는 누진적 부유세와 상속세를 재원으로 삼아, 만 25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성인 평균 자산의 60% 가량을 지급하자는 모델을 제안했다.

아직까지 큰 목돈을 일시에 지급한 나라는 없지만, 영국이 시행했던 아동신탁기금이나 최근 미국 일부 주에서 도입한 베이비 본드, 그리고 싱가포르처럼 생애 초기부터 교육 및 주거용 공적 자금을 적립해주는 유사한 제도는 이미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은 출생시점에 일정 금액을 공적신탁 형태로 예치하여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되, 인출 용도는 엄격 제한하는 추세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MAGA 신생아 계좌 정책(베이비 본드)을 보도하는 독일 DW 매체 보도 이미지.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MAGA 신생아 계좌 정책(베이비 본드)을 보도하는 독일 DW 매체 보도 이미지.

우리나라도 청년도약계좌, 청년내일저축계좌, 디딤씨앗통장 같은 자산형성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들은 대상을 일부 계층으로 제한하거나, 청년이 먼저 일정 금액을 매달 저축해야만 정부가 돈을 보태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당장 생계가 빠듯해 매달 저축할 여력조차 없는 취약계층 청년들은 정작 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기본자산과는 결이 다르다.

재원 조달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 당장 25세 정도에 도달한 청년들에게 일정 금액(예를 들면 5천만 원 정도)의 기본자산을 지급하는 것은 큰 비용이 든다. 그런데 출생아를 대상으로 일정금액(약 2천만 원)을 예치하고 국민연금 등을 활용해 운용한다면 그 비용(작년 출생아수 22.6만명 기준으로 4조 5,200만 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존 청소년들에게도 단계적으로 기본자산을 지급한다면 그 금액은 증가할 수 있다.

재원 조달은 상속·증여세를 목적세화하여 사회적 상속 특별기금을 설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각종 현금성 지원금이나 지자체 중복 예산(일회성 출산장려금 등)의 통폐합,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지방교육 재정교부금 개편 등과 연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기본자산의 재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본자산은 기회 확대위한 마중물

기본자산 도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기본자산은 ‘기회의 사재기’에 맞서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만약 기득권의 배타적인 울타리를 허무는 제도 개혁이라는 충분조건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청년들에게 자산이 주어진 만큼 대학이나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스펙의 문턱만 더 높아지는 자격 인플레이션(울타리 올리기)이 벌어질 수도 있고, 주거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풀린 자금이 결국 사교육 시장이나 부동산 임대료로 빨려 들어가 자산 계층의 배만 불리는 지대의 역류 현상이 나타날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의 가능성 때문에 논의를 멈춰서는 안 된다. 예상되는 한계들은 정교한 제도 설계와 주거·교육·노동 개혁을 병행함으로써 풀어가야 할 과제다. 부모의 자산이 자녀의 운명을 결정짓고 기회마저 사재기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자산과 기회의 불평등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어지기 전에, 이제는 우리 사회도 기본자산이라는 사회적 상속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글쓴이

황동언 그린비즈 솔루션 정책연구실장

황동언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현대경제연구원 등에서 경제 및 환경정책, 동북아 경제 및 통상, 규제 개혁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총리 소속 규제개혁추진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파견되어 공정경제 및 규제개혁 업무를 담당한 경험도 있다. 지금은 그린비즈 솔루션 정책연구실장으로 있다.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