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통치: 숫자 넘어 백성의 삶을 보다
- 세종의 선택과 민본 원칙 세종은 굶주림을 피해 이동하는 백성을 통계적 ‘호구(戶口)’로 묶어두려 한 관료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주를 허용하며 진제소를 설치해 실질적인 구휼을 단행했다.
- 삶을 향한 통찰 이는 이동이라는 현상 너머의 원인을 살피고, 백성의 실제 삶을 정책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던 유교적 민본정치의 철학적 실천이었다.
- 오늘날의 시사점 현대의 지역소멸 대응 역시 인구 통계와 하드웨어 유치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머물고 살아갈 수 있는 정주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집중해야 함을 시사한다.
새벽녘에 읽고 있던 『세종실록』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닿았다. 자세히 인용한다.
‘세종 4년, 굶주림으로 살던 곳을 떠나려는 백성들이 있었다. 관리들은 그들을 붙잡아 두자고 청했다. 백성들이 떠나면 고을의 호구(戶口)가 줄고, 세금과 역을 부담할 사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종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진제소(賑災所, 흉년이나 재난을 당한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설치했던 임시 관청-편집자주)를 설치하여 그들을 진휼(賑恤, 구휼과 같은 의미-편집자주)토록 하였다’
한참을 되풀이해 다시 읽었다. 세종의 한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아, 세종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세종은 읽은 것이 아니라 그 속을 보았다
세종은 읽은 것이 아니라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관리의 글을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당시 왕이 백성들 속으로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니. 하지만 세종은 그 글을 읽어내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그래서 백성들의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늠했고, 이주를 금지하는 것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그리고 관리의 요청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정책이자 고통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관리에게 백성은 고을의 ‘호구’였다. 세금의 징수와 노동력 징발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백성이라는 호구(戶口)가 호구(虎口)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백성이 고을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그 책임을 자신이 져야하는 것을 의미했다.
세종에게 백성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주를 허용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진제소를 설치하여 진휼하도록 하였다.
세종은 관리와 달리, 백성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숫자로만 본 것이 아니라, 유민이라는 숫자 뒤에 숨어 있는 굶주린 사람, 그리고 그들의 떠난 사실보다 ‘그들을 떠나게 한 조건’을 보려 했다.
‘민본정치’라는 유교의 이상
세종은 왕의 역할을 다양하게 인식했다. 군주국가라는 통치구조 속에서의 최정점에 있는 관리자나 통치자이기도 했지만, 유가사상이라는 이념을 달성하기 위해 실천가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중히 여긴 것은 아닐까?
물론 세종도 국가의 통치자로서, 봉건 군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건설하고자 했고, 토지제도, 세금, 군역 등 각종 제도를 정비했으며, 국방과 영토확장을 위해 백성을 동원하기도 했다.
또 세종 5년에는 백성들이 군역 등 신분상 의무를 피해 이동하는 것은 금지하기도 한다. 충청도 감사가 유망자가 많음을 보고하고 엄격한 금지책을 요청했다. 이에 의정부와 육조는 각 도의 유망자를 조사하여 본래의 지역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고, 세종은 이를 따랐다.
이 점을 고려하면 세종은 굶주림으로 인한 이동과 국가의 신분상 의무를 피하기 위한 이동을 구분해서 사고했을 것이다. 즉 똑같은 유민이라도 사람이 이동한 현상 그 자체보다 이동을 만들어낸 원인을 보았고, 그에 따라 다른 대안을 낸 것이다. 국가 통치와 민본정치의 균형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세종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이념을 지키려 한 군주이기도 했다. 논어 마지막 장은 천하의 백성이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려 준 군주의 지위가 영원히 끊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맹자에서도 백성이 가장 중요하고, 사직(국가)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고 말한다.
이것이 조선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세종의 정치가 매력적인 것은 이 유교적 정치철학과 이상을 정책과 행정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이다.
원칙을 지속적으로 고수하다
세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역할,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장기간 지속되는 일관된 원칙이 있고, 이를 지키는 일. 그러면 그 원칙은 무엇일까? 백성의 실제 삶을 정책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태도이다.
지금 우리는?
지역소멸과 청년 유출을 마주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15세기 지방관들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료들은 청년들이 왜 수도권을 향해 떠나는지 외면한 채, 지역 인구 지키기라는 실적과 행정 통계에만 매달린다.
수많은 예산을 끌어와 공장을 짓고 대기업 유치 현수막을 내걸지만, 정작 그곳에 살아야 할 사람의 삶은 설계도에 없다.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앞세워도, 정주할 만한 교육과 의료, 문화적 자본이라는 토양이 갖춰지지 않은 지방 도시는 청년들에게 머물고 싶은 고향이 아니라 탈출해야 할 곳에 불과하다.
호구를 지키기 위해 이주를 금지해 달라던 수령들의 단견과 하드웨어 예산만 따내면 사람이 저절로 모여들 것이라 믿는 정책 관성이 무엇이 다를까.
세종의 정치가 의미있는 이유는 냉철한 제도 설계로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세종은 백성을 살아 숨 쉬는 주체로 보았다. 유민의 발길을 억지로 막지 않고 구휼의 망을 촘촘히 짠 것도, 북방 사민 정책* 때 파격적인 삶의 안전망을 먼저 제공한 것도 사람이 자발적으로 머물게 만드는 환경을 설계하고자 한 결과일 것이다.
지방을 살리고 청년의 미래를 여는 열쇠는 그들이 그 땅에서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정교한 정주 생태계의 복원에 있다.
통치자는 백성의 이동을 막을 권력이 있지만, 참된 정치는 백성이 스스로 정착하게 만드는 과정을 설계한다. 관료의 눈에는 장부상의 호구만 보이고, 진정한 지도자의 눈에는 사람의 삶이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삶을 보듬어 안았던 세종의 깊은 통찰이다.
*조선 세종 때의 사민정책(徙民政策). 여진족을 몰아내고 새로 개척한 북방 국경 지역인 4군 6진(압록강 및 두만강 유역)에 남쪽 지방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국경을 방어하고 영토를 영구적으로 다지기 위해 시행한 국가적 인구 재배치 정책. 회유책(인센티브)으로, 이주민들에게 일정 기간 세금을 면제해주고, 집과 농토, 농기구, 종자를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여 정착을 도왔다. 또 강제 이주책으로 남쪽(삼남 지방)의 인구를 일정 비율로 할당하여 북방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특히 죄를 지은 이들이나 신분이 낮은 이들을 중심으로 우선 이주가 이루어지기도 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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