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재벌은 어떻게 멸종하는가
- 혈연 중심의 폐쇄적 세습 재벌의 혈연 중심 지배구조는 생물학적 ‘근친교배’와 유사하여 외부 지적 자본의 유입을 차단하고 기업의 전략적 다양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 내부거래와 부실의 누적 일감 몰아주기와 터널링을 통한 부실 계열사 연명은 기업 집단의 재무적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내부 모순과 엔트로피를 극대화한다.
- 생태계 수탈과 개방형 전환 하청 생태계를 고사시키는 약탈적 구조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므로, 독립적 전문경영과 개방형 혁신으로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
①편에 이어서
자연계 성비 파탄과 똑같은 ‘재벌 체제’
자연계의 유전적 근친교배와 성비 파탄이 종을 절멸로 몰아넣는 작동 원리는 산업 생태계 내에서 혈연 중심의 폐쇄적 지배구조를 고수하는 ‘재벌 체제’의 멸망 구조와 유사하다.
진화경제학의 개척자인 리처드 넬슨과 시드니 윈터 교수는 기업을 시장 환경 속에서 고유한 루틴(기업 DNA)을 복제하고 진화시키는 유기체로 규정한 바 있다. 생명체가 유전자를 통해 형질을 보전하듯 기업은 조직 내부의 지식과 의사결정 규칙을 통해 생존 역량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혈연 세습에 집착하는 지배구조는 기업의 통제권을 시장 경쟁에 기초한 역량 검증이 아니라 유전적 혈통이라는 협소한 통로로만 국한시키는 치명적인 우를 범한다. 이는 생물학에서 외부 대립유전자의 유입이 차단되어 유전자 pool이 극단적으로 협소해지는 ‘근친교배’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이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경영 역량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통계학적인 평균으로의 회귀 법칙을 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폐쇄적 혈통주의’는 무자격 후계자에게 그룹 전체의 운명을 맡기는 도박을 강행하게 한다.
지배구조의 지배적 지위 남용과 대리인 비용의 위험성이 항상 기업 경영에는 존재하는데, 대기업 총수의 사익 추구와 전횡을 견제해야 할 이사회는 총수 일가와 가신형 전문 경영인들로 채워져 거수기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이질적인 외부 지적 자본의 수혈이 차단된 재벌 집단은 심각한 집단사고와 인지적 단일화의 늪에 빠진다. 다른 배경을 가진 전문가의 비판이나 시장의 객관적인 신호는 총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순물로 취급되어 철저히 배제된다.
‘전략적 다양성’의 상실이 가져오는 후과
생물학적 근친교배 집단이 면역 유전자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듯, ‘전략적 다양성’을 상실한 닫힌 지배구조는 거대한 환경 변화의 징후를 감지하더라도 이를 내부적으로 교정할 다변화된 인지적 대립유전자를 완전히 상실해 버리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근친교배의 대표적인 유전적 병리는 자연도태가 되었어야 할 유해 열성 돌연변이가 동형접합 상태로 축적되어 질병을 유발하는 근친교배 약세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기업 집단 내부에서 발생하는 자원 배분의 심각한 왜곡과 부실 계열사의 인위적 연명 과정으로 경영 현장에서 표출된다.
기업 지배 구조론에서 ‘터널링’(Tunneling)이란 기업의 지배주주(또는 경영진)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의 자산이나 이익을 외부로 빼돌려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이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다.
지배주주가 피라미드식 소유구조를 악용하여 우량 계열사의 자산을 사익 추구용 계열사로 불법 이전하는 수탈 구조를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는 한국 기업사에서 수도 없이 많이 보아온 현상이다.
또한 정상적인 시장 생태계의 정화 기능 아래서라면 마땅히 파산하여 퇴출당했어야 할 비효율적 사업부와 좀비 계열사들이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온실 속에서 기생하게 된다.
총수 지배권 위해 핵심기업의 현금 빼돌려
소수 지분만을 가진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핵심 제조업 계열사의 현금이 비상장 승계 창구 회사로 유출되며 그룹 전체의 자본 효율성을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유해 유전자가 집단 내부에서 정화되지 못한 채 보호를 받으며 전체 개체군의 유전적 부하를 증폭시키는 생물학적 병리와 완벽히 일치하는 구조이다.
이는 나아가 혁신적인 연구개발에 투입되어야 할 핵심 자본이 부실한 혈통 기업의 연명 치료에 낭비되면서 집단 전체의 ‘재무적 면역력’이 바닥에 이르는 상태가 되기 쉽다. 독립적인 감사 시스템과 소액주주의 견제권이라는 외부 면역 체계가 거세된 상태에서, 누적된 내부 부실은 거대한 부채와 비효율이라는 ‘잠재적 종양’으로 전이되는 셈이다.
이는 겉으로는 거대한 외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부 유전체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썩어 들어가는 유전병 환자와 다를 바가 없다.
재벌 내부거래 체제의 독성
내부거래 독점에 기반한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 계열 내 시장)은 구성원들에게 단기적인 수익성과 안락함을 보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환경 적응도를 영구히 파괴하는 독약인 것이다.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통찰한 자본주의 발전의 본질은, 끊임없이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조적 파괴의 역동성’에 있다. 그러나 계열사 간의 일감 몰아주기로 보장된 내부 시장에 안주하는 기업 집단은 치열한 글로벌 자유 경쟁 시장에서 요구되는 원가 절감과 기술 혁신의 유인을 완전히 상실하는 구조가 되기 쉽다.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대체하여 내부 조직화를 꾀할 때에는 거래비용의 절감이 전제되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재벌의 폐쇄적 내부거래는 거래비용의 절감이 아니라 총수 일가의 사적 이익 보전과 기득권 보호를 위한 인위적 방벽으로 악용되고 있다. 온실 속에서 자생력을 잃어버린 계열사들은 독자적인 기술력 없이 모기업의 발주에만 목을 매는 유약한 기생체로 전락한다.
이러한 적응도 저하는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대두, 글로벌 탄소중립 규범, 플랫폼화 등 산업 패러다임이 단절적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에서 그 기업 집단의 급속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의 성공 공식과 구태의연한 설비 투자에 갇힌 경영진은 파괴적 기술 혁신을 수용할 유연성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지분관계로 얽힌 연쇄 도산 매커니즘
더 심각한 점은 계열사들이 지분 관계와 상호출자, 채무보증이라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얽혀 있을 경우 더욱 심각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 하나의 주력 계열사가 외부 충격으로 무너지는 순간, 그 충격파가 도미노처럼 연결된 계열사 전체로 전이되며 집단 전체가 연쇄적으로 침몰하는 연쇄 도산 매커니즘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폐쇄적 재벌 체제의 독점적 확장은 자신들만의 파멸에 그치지 않고 외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포식적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거대 독점 자본은 하청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유망 스타트업의 핵심 기술 인력을 탈취하는 데 골몰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혁신 유전자를 내재화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중소 벤처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성장하여 새로운 혁신의 싹을 틔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면서, 국가 경제의 하부 생태계는 급속도로 사막화가 진행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생태계에서 과밀화된 수컷들이 암컷을 핍박하여 번식 기반을 파괴하고 서식지의 먹이사슬을 무너뜨리는 파괴적 피드백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는 현상이다. 주변 생태계가 고사하여 독립적인 벤처와 혁신 기업이 사라지면, 역설적으로 재벌 자신도 외부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역량을 수혈을 받을 수 있는 원천을 잃어버리는 구조다.
고립된 서식지에서 스스로 굶어죽는 운명
건강한 공생 관계가 파괴된 고립된 서식지에서 포식자는 결국 먹이가 고갈되어 굶어 죽는 닫힌 환경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외부와의 에너지 교환이 차단된 닫힌 계는 내부 엔트로피가 극대화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법이다. 외부의 새로운 피를 거부하고 내부의 폐쇄된 혈통과 부당 지원에만 의존하는 기업 집단은 시스템 내부의 비효율과 모순이라는 엔트로피를 극단까지 축적하는 셈이다.
누적된 모순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닫힌 계는 외부 충격 없이도 스스로 붕괴하는 열역학적 사멸의 길을 걷게 되는 이치와 일치한다.
진화생물학이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는 ‘다양성이 결여된 닫힌 시스템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자연의 철칙이다. 기후변화 속에서 수컷 편향과 유효 집단 크기의 축소, 그리고 숙주 게놈의 파괴는 생명체가 유전적 개방성을 상실했을 때 치러야 하는 가혹한 대가다.
이와 완전히 쌍둥이처럼 닮은 재벌 체제의 혈연 세습, 내부거래 독점, 하청 생태계 수탈은 산업 유기체가 밟아가는 가장 전형적인 유전적 멸종의 전조 현상이다.
기업집단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항상 열려있어야
기업 집단이 지속 가능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닫힌 계’에서 ‘열린 계’로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혈통이라는 협소한 유전자 pool을 과감히 해체하고 독립적인 전문경영인과 객관적인 이사회를 통해 지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급선무이다.
내부거래를 통한 인위적 온실을 철폐해 시장의 선택 압력에 노출시키고, 부실한 계열사는 과감히 도태시키는 정화 기능을 회복해야만 한다. 나아가 주변 생태계와의 약탈적 관계를 청산하고 외부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과의 개방형 혁신을 통해 공진화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복원해야 한다.
자연계가 수십억 년 동안 멸종의 위기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올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낯선 대립유전자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환경과 공명하며 다양성을 축적해 온 개방성에 있었다.
유전적 근친교배의 덫을 걷어내고 다양성과 상생의 법칙을 수용하지 않는 기업 집단에게 주어질 미래는 진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멸종 생물들의 화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그러므로 산업 생태계도 자연계가 주는 교훈을 잊지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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