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암컷은 왜 사냥 대신 유혹을 선택했을까

[하명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생물계, 유혹과 생존의 치명적 서사

호사도요. 암컷(오른쪽)이 수컷보다 크고 더 밝은 색을 띠며, 머리, 목, 목 옆면이 짙은 밤갈색이고 가슴에는 뚜렷한 검은 띠가 있다. 수컷은 더 옅고 회색이 더 많고 덩치도 작다.
호사도요. 암컷(오른쪽)이 수컷보다 크고 더 밝은 색을 띠며, 머리, 목, 목 옆면이 짙은 밤갈색이고 가슴에는 뚜렷한 검은 띠가 있다. 수컷은 더 옅고 회색이 더 많고 덩치도 작다.
  • 유혹이라는 생존법 자연계의 화려함은 대개 수컷의 몫이지만, 어떤 암컷들도 이를 받아들여 ‘능동적 무기’로 재설계했다. 이는 번식의 키를 쥔 수컷을 홀려 생존 자원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본능적 전략이다.
  • 성적 매력 뿜은 치명적 거래 실고기의 문양과 춤파리의 부풀린 배는 자신의 매혹을 내보이고 수컷의 ‘혼인 예물’과 ‘독박 육아’라는 실질적 이익을 얻는 치명적인 생물학적 계약이다.
  • ‘자본’을 유혹하는 도시의 교태 지자체의 브랜딩은 현대판 ‘성 선택’이다. 거대 자본(수컷)을 유혹해 내 영토에 안착시키기 위해, 도시(암컷)는 가장 매혹적인 인프라를 드러내며 생존을 건 유혹의 전쟁을 벌인다.

아름다움은 정밀한 ‘정보전달 체계’

생물학적 세계에서 미(美)란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아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生)의 근본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도로 정밀한 ‘정보 전달 체계’다.

찰스 다윈이 제시한 ‘성 선택’(Sexual Selection) 이론은 개체가 생존에 불리해 보이는 화려한 형질이지만 이를 진화시키는 이유를 설명하며, 주로 수컷의 장식과 암컷의 선택이라는 구도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대 진화생물학은 이러한 전통적 이분법을 넘어, 암컷 또한 수컷을 유인하거나 동성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적 행동과 장식을 발달시킨다는 점을 밝혀내고 있다.

따라서 암컷의 미적 형질은 단순한 유전적 부산물이 아니라, 특정 환경과 운영성비(Operational Sex Ratio, OSR) 하에서 발생하는 ‘적응적 전략’이라 말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암컷의 화려한 장식은, 수컷의 형질이 암컷에게 유전적으로 전이된 결과(상관 유전, 세트로 묶여서 유전되는 것)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찰 데이터는 암컷이 능동적으로 미적 장식을 사용해 수컷을 유혹하거나 자원을 획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암컷과 수컷의 성비 불균형

이러한 행동을 촉발하는 핵심 동인(動因)은 운영 성비(OSR)이다. OSR은 인구 내에서 번식 가능한 암수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 탓에 특정 성별이 부족해질 때 남은 성별 간의 경쟁이 격화된다.

예를 들어, 실고기(Pipefish)의 일종인 스틱마토포라 니그라(Stigmatopora nigra)는 전형적인 성 역할 역전(Sex-role reversal)을 보여준다. 이 종에서 수컷은 육아낭을 통해 새끼를 돌보며 번식 속도가 암컷보다 느리기 때문에, 번식 시장에서 수컷은 암컷의 성비에 모자라는 제한된 자원이 된다.

실고기(Pipefish)의 일종인 스틱마토포라 니그라(Stigmatopora nigra).
실고기(Pipefish)의 일종인 스틱마토포라 니그라(Stigmatopora nigra).

이에 따라 암컷은 넓은 복부와 선명한 줄무늬라는 미적 장식을 발달시켜 수컷의 선택을 받으려 노력한다. 분석 결과, 암컷의 복부 너비와 줄무늬 두께는 단순히 시각적 유혹에 그치지 않고, 암컷의 체구 및 산란 능력과 정(+)의 상관관계를 갖는 정직한 신호(Honest Signal)임이 확인이 되었다.

즉 암컷은 성 선택을 받기 위해서 아름다움으로 치장을 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수컷의 숫자가 암컷에 비해 적다는 점이다.

부풀리는 복부, 선명한 줄무늬의 이득

암컷의 미적 행동은 상당한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암컷은 자원을 장식에 투자하기보다 난자의 질이나 직접적인 생식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적 장식을 유지하려 한다. 이는 수익이 비용을 압도하기 때문이라고 진화 생물학자들은 판단을 하고 있다.

춤파리(Rhamphomyia)의 경우, 암컷은 사냥을 하지 않고 수컷이 가져다 주는 혼인 예물에 의존하여 영양을 섭취한다. 이때 화려한 다리 비늘이나 복부 주머니는 수컷을 더 빨리 유인하여 양질의 먹이를 확보하게 해준다.

이러한 영양 획득은 장식 유지에 드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즉, 수컷이 확보해 주는 영양분으로 충분히 암컷의 생존과 번식을 유지할 수 있기에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다. 바로 ‘경제적 이익’이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사례로 호사 도요(Rostratula benghalensis)를 들 수 있다. 새들 중 성 역할 반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이 크고 깃털의 색상과 무늬가 훨씬 화려하다.

암컷은 진한 밤색과 금빛 무늬를 띄고 있다. 번식기가 되면 암컷은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춤을 추는 등 적극적인 미적 구애 행동을 펼친다.

호사 도요는 수컷이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독박 육아’를 한다. 암컷이 보금자리에 알을 낳아 두면 수컷은 새끼 양육을 전담한다. 때문에 암컷은 더 많은 수컷과 교미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을 한다. 새끼의 양육을 전담할 수컷을 찾기 위해 미적 장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잘록한 허리, 빛나는 깃털, 더 매력적이지?

미적 장식은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만큼 강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를 반영하기도 한다. 비효율로 보이는 장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개체의 우수한 건강 상태와 유전적 품질을 증명하는 셈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허리-엉덩이 비율(WHR)과 같은 신체적 특징이 여성의 생식 호르몬 수치 및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미적 지표로 작용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핸디캡의 원리가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미적 장식을 추구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성비에 따른 암컷의 생식 본능이 작동하는 것과 수컷의 노력을 이용해 암컷이 얻는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때, 암컷도 미적 장식을 추구한다.

이런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암컷의 행동이 수컷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수컷의 미적 형질은 종종 생존에 극단적으로 해로운 수준까지 비대해지는 경향(Fisherian Runaway)이 있는 반면, 암컷은 자신의 생존 및 생식 능력과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암컷이 이 부분에서 더 생존 본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 유치하는 싱가포르의 치명적 유혹은?

이러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산업 생태계에서 투자유치를 적극 하려는 ‘지역 경제 전략’에서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기업 유치를 위해 도시의 외관과 인프라를 가꾸는 지방자치단체의 활동은 선택을 받기 위해 자지체를 ‘아름다운 상품’으로 포지셔닝하는 ‘구애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대기업의 공장 증설이나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벌이는 활동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규모의 ‘미적 구애’ 중 하나로 비유할 수 있다. 기업(수컷)은 자본과 일자리라는 생존 자원을 쥐고 있으며, 수많은 지자체(암컷)는 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도시의 외관을 가꾸고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한다.

도시 브랜딩(City Branding)은 이러한 구애의 핵심 도구다. 지자체는 랜드마크 건축물을 짓거나(빌바오 효과, 쇠락해가던 공업 도시 빌바오가 단 하나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로 화려하게 부활한 현상), 녹색 인프라를 구축하여 도시를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포장한다.

이는 암컷 동물이 자신의 건강함과 자원 보유 능력을 화려한 깃털이나 피부색으로 드러내는 모습과 유사하다. 싱가포르는 국가 자체를 고도로 정교한 브랜드로 만들어 글로벌 기업들을 유인하는 방식을 썼는데, 가장 진화된 형태의 ‘미적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생태계에서 수컷이 암컷에게 ‘혼인 예물’을 제공한다면, 경제 생태계에서는 지자체가 기업에게 ‘투자 예물’을 제공한다. 부지 무상 제공,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은 기업의 선택을 받기 위한 강력한 유인책이다.

도로, 전력, 숙련된 노동력 등은 지자체의 산업적 기반을 증명한다. 단순히 말로만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축된 인프라를 보여주는 것은 암컷이 자신의 신체적 강인함을 증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역사적 유산이나 예술적 감성을 강조하는 도시 마케팅은 기업 경영진이나 직원들에게 정서적 만족감을 약속하며, 이는 경쟁 지자체와의 차별화 요소가 된다.

도시 브랜드를 미적으로 극대화한 싱가포르.
도시 브랜드를 미적으로 극대화한 싱가포르.

‘수컷 쇼케이스’가 열리는 것처럼

생물학에서 레크(Lek)는 동물 행동학에서 수컷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 암컷에게 자신의 건강함이나 우월함을 과시 또는 구애 행동을 하는 공동 장소나 그러한 행동 방식을 의미한다. 수컷의 ‘쇼케이스’인 셈이다.

투자 유치 시장에서는 지자체들이 기업이라는 단 한 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경쟁하는 ‘역(逆) 레크’ 상황이 벌어진다. 각 지자체는 자신의 부스, 즉 도시를 최대한 화려하게 장식하고, 기업의 경영 환경에 최적화된 춤, 즉 정책을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장래에 기업이 가져다줄 세수와 고용이라는 이득이 더 클 것이라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암컷의 미적 행동은 수컷의 미적 행동과 근본적인 원리 면에서 다르지 않다. 두 성별 모두 미적 행동을 통해 다음과 같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한다.

첫째는 적합성(Fitness)의 과시를 통해, 미적 장식은 개체의 유전적, 물리적 품질을 보여주려 한다. 수컷의 공작 꼬리가 건강의 상징이듯, 실고기 암컷의 줄무늬나 지자체의 세련된 도시 경관도 그 주체의 견고함을 상징한다.

둘째는 정보 비대칭의 해소다. 선택을 하는 주체는 상대방의 내부 상태를 직접 알 수 없다. 미적 장식은 “나는 선택할 가치가 있다”라는 복잡한 데이터를 시각적, 청각적 신호로 압축해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셋째는 과도한 에너지 소비의 정당화를 의미한다. 고비용 장식은 아무나 가질 수 없기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자체가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축제를 여는 것은, 그만큼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암컷의 미적 행동은 단순히 수컷을 모방하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생존 자원을 확보하고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고도의 적응 전략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고기와 춤파리의 사례 그리고 호사 도요에서 보듯, 암컷은 환경적 제약(OSR 역전, 자원 부족)에 대응하여 수컷 못지않게 정교한 미적 장식을 진화시켰다.

이러한 생물학적 원리는 지자체의 투자 유치 활동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지자체의 도시 브랜딩은 ‘자본’이라는 생존 자원을 끌어들이기 위한 지자체적 차원의 구애다.

생태계 내의 미적 행동은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라 선택을 받아야 하는 주체가 선택권을 쥔 주체에게 보내는 ‘보편적인’ 생존 신호이다. 다만, 암컷의 전략은 수컷에 비해 더 직접적인 이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신호의 정직성을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최적화하는 경향을 보인다.(수컷은 그렇지 못하다. 극단적으로 해로운 수준까지도 불사한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다양한 경쟁 환경에서도 단순히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질적인 품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각화하고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적 행동은 결국 데이터의 예술이며, 그 예술의 목적은 단 하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선택을 이끌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2:00 암컷은 왜 사냥을 포기하고 '유혹'을 선택했을까?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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