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수컷 오리 ‘초거대’ 음경, but 암컷의 승리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오리의 성(性) 갈등과 진화적 군비경쟁

물 속에 있는 아르헨티나 파란부리 오리 수컷. 사진= 위키피디아.
물 속에 있는 아르헨티나 파란부리 오리 수컷. 사진= 위키피디아.
  • 성적 갈등과 진화적 군비경쟁 ‘부모 투자’ 비용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오리 수컷은 강제 교미를 위한 거대한 나선형 음경을 진화시켰고, 암컷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반대 방향의 나선형 질과 주머니 구조를 발달시켰다.
  • 수컷의 강압과 암컷의 방어 서식지 내 성비 불균형으로 다수의 수컷이 폭력적 강제 교미를 시도하지만, 암컷은 물리적 방어벽을 통해 대다수의 강제 삽입을 원천 차단한다.
  • 자발적 선택의 최종 승리 강제 교미의 시도 빈도에도 불구하고, 암컷이 자발적으로 선호하는 수컷에게만 생식관을 개방한 결과 최종 부화하는 새끼의 95% 이상이 합의된 짝의 유전자를 이어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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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태계 속 암수 ‘군비경쟁’

생물학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번식 행동은 낭만적인 화합의 산물이 아니다. 한정된 자원과 유전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암수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게임의 장’이기도 하다.

조류인 오리목(Anseriformes)의 독특한 생식기 구조와 암수 번식 전략은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군비경쟁, 정보 비대칭성, 기회주의적 강탈, 그리고 이에 맞서는 방어적 제도화 메커니즘에 비유되는 극명한 모델이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부모 투자(Parental Investment)이론’을 통해 암수 간의 근본적인 번식 이해관계 차이를 명쾌하게 규명을 했다. 그가 밝혀낸 바에 의하면 난자를 생산하고 포란과 양육의 막대한 에너지를 부담하는 암컷은 양질의 유전자를 신중하게 선별하려는 강력한 경제적 동기를 지닌다.

반면, 정자 생산 비용이 극히 ‘저렴한’ 수컷은 가능한 한 많은 짝짓기 기회를 확보해 자신의 유전자를 무차별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착취적’ 전략을 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모 투자’의 극단적 비대칭성은 암수 간의 필연적인 ‘성적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이는 상호 간의 물리적 형질을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진화적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남아메리카 오리 수컷의 초비대 음경

미국의 조류학자 리처드 프럼과 콜롬비아 출신의 진화형태학자 패트리샤 브레넌은 오리의 생식기 형태가 강제 교미에 대한 저항과 선택권 수호라는 극적인 성적 갈등의 산물임을 실증적으로 입증해냈다.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아르헨티나파란부리오리(Oxyura vittata)의 경우, 수컷의 발기 시 음경 길이가 무려 42.5㎝에 달해 자신의 전체 몸통 길이인 30㎝를 훌쩍 능가하는 기형적 형태를 과시한다.

발기하면 길이가 42.5 ㎝나 되는 아르헨티나 파란부리오리 수컷.
발기하면 길이가 42.5 ㎝나 되는 아르헨티나 파란부리오리 수컷.

오리 수컷들에게 나타난 기형적인 생식기 진화는 약탈적 교미 전략과 결합하여 빚어낸 극단적인 형태학적 과잉의 결과물이다. 평소에는 복강 내부의 주머니 속에 10분의 1 크기로 숨겨져 있던 음경은, 교미 순간에 림프액의 폭발적인 수압을 바탕으로 시속 120㎞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속도로 외부로 확장된다.

더욱이 이 음경의 외벽에는 거친 돌기와 역방향 가시가 촘촘히 돋아나 있으며, 기하학적으로는 반시계 방향으로 비틀려 뻗어나가는 나선형 모양을 지니고 있다. 이는 암컷의 물리적 도주를 차단하고 생식관 내부에 정자를 강제로 투입하기 위해 진화한 가공할 만한 ‘침투용 무기’다.

폭력에 맞서는 암컷 오리의 ‘기괴한’ 방어 무기

일방적인 폭력에 노출된 암컷 오리 역시 수동적인 피해자로 남지 않도록 진화했다. 진화의 장구한 기간 동안 암컷 오리는 수컷의 폭력적 침습을 물리적으로 완벽히 차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고도의 형태학적 방어 장벽을 체내에 구축한 것이다.

번식기에 도달한 암컷 오리의 질 구조는 척추동물 암컷 중 가장 복잡하고 기괴한 기하학적 미로를 형성한다. 암컷 오리의 질은 수컷의 음경 회전 방향인 반시계 방향과 정확히 반대로 꼬여 있는 시계 방향의 나선형 굴곡을 완벽히 형성하고 있다.

수컷이 강제로 나사처럼 조이려 할 때 암컷의 생식관은 반대 방향의 나사산으로 맞서며 물리적인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구조다. 이에 더하여 암컷의 질 내부에는 정자가 수정이 일어나는 나팔관 쪽으로 전진하지 못하도록 가두어 버리는 여러 개의 주머니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원치 않는 수컷이 강제력을 동원하여 억지로 삽입을 시도할 경우, 수컷의 음경은 시계 반대 방향의 저항에 가로막히거나 주머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헛돌게 되며, 결국 사정에 완전히 실패한 채 물러나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암컷 오리의 ‘나선형 질과 주머니’ 구조는 게임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수컷의 약탈적 교미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 진화한 완벽한 형태학적 방어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리처드 프럼과 패트리샤 브레넌은 암컷 오리의 복잡한 나선형 질 구조가 수컷의 물리적 강압을 무력화하기 위해 고안된 정교한 해부학적 장치임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생명체의 신체 구조 자체가 일종의 ‘적응적 방어’ 제도로 진화했음을 입증했다. 오리의 번식 행위는 물리적 강압을 동원하는 약탈적 행위자와 자신을 보호하려는 치열한 진화적 공방의 결정판인 셈이다.

성비 구조의 심각한 불균형이 낳은 ‘군비경쟁’

이처럼 과도하게 왜곡된 오리류의 번식 생태계는 심각하게 왜곡된 운영 성비 구조 때문에 발생했다. 서식지 내에서 성숙한 수컷의 개체 수가 암컷에 비해 현저히 많은 불균형 구조 속에서, 수컷 간의 짝짓기 경쟁은 극단적인 한계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화려한 깃털 장식과 구애의 춤을 통해 암컷의 자발적 선택을 받는 수컷은 전체 집단 중 소수의 승자에 불과하다. 나머지 다수의 짝을 찾지 못한 수컷들은 막대한 번식 기회비용과 번식 실패에 직면하게 되는 형국이다.

이러한 경쟁적 압력 속에서 선택을 받지 못한 수컷들은 암컷의 동의를 구하는 정공법을 포기하고, 신체적 무력을 행사하여 짝짓기를 강행한다. 야생 오리 집단에서 관찰되는 교미 시도 중 3분의 1 이상이 암컷의 거부 의사를 무시하고 자행되는 폭력적인 강제 교미로 집계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위해 수컷 오리는 척추동물 중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고 공격적인 음경 구조를 진화시켰다.

암컷 오리의 완벽한 승리

수컷이 아무리 거대하고 폭발적인 음경 무기를 휘두른다 할지라도, 암컷이 질 근육의 긴장도를 유지한 채 나선형 방어벽을 닫아걸면 강제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의 80% 이상은 실질적인 삽입조차 달성하지 못한다.

암컷 오리의 나선형 질이 지닌 경이로움은 무조건적인 차단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선호하는 짝에게는 생식의 문을 열어 준다. 합의에 기반한 자발적이고 낭만적인 구애 관계가 형성될 때, 암컷의 신체 내부에서는 강제 교미 시와는 정반대의 생리적 반응이 전개되는 것이다.

윤기 나는 깃털과 우아한 구애의 몸짓을 지닌 매력적인 수컷이 다가와 정중하게 짝짓기를 청할 때, 암컷 오리는 물속에서 조용히 몸을 낮추고 꼬리를 들어 올려 수용의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다.

이 순간 암컷은 질 벽의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주머니 입구를 닫아 생식관의 통로를 일직선에 가깝게 개방하는 생리학적 협력 상태로 전환된다. 그 결과 선호하는 수컷의 나선형 음경은 아무런 물리적 저항 없이 암컷의 질 내부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여 안전하게 정자를 안착시킬 수 있게 한다.

야생 오리 생태계에서 수많은 폭력적 강제 교미 시도가 끊임없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알을 깨고 태어나는 새끼 오리의 무려 95%는 암컷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합의된 짝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들이다.

폭력과 강압에 의한 원치 않는 교미를 통해 잉태되는 새끼의 비율은 전체의 5% 미만에 불과하다. 교미라는 물리적 행위의 발생 자체를 외부의 물리력에 의해 100% 통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최종적인 수정과 착상의 권력만큼은 암컷의 완전한 승리인 셈이다. ②로 이어짐.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8 수컷 오리의 초거대 음경과 암컷 오리의 나선형 질 구조, 왜?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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