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생존은 하이에나처럼, 경영은 대만기업처럼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구글 AI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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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대와 차별화 중소기업은 개별 대응의 한계를 넘어 가치사슬 내에서 ‘분열-융합형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대기업이 효율성을 이유로 버린 고난도 영역을 독자적인 기술력(치악력)으로 파고들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 플랫폼과 통행증 브랜드는 유행에 따라 사라지지만 제조 플랫폼은 생태계의 중심을 지키며, 때로는 막대한 초기 비용과 파괴적 위험을 감수하는 ‘산업적 통행증’을 확보함으로써 시장의 영속적인 주도권을 쟁취할 수 있다.
  • 성장의 패러다임 변화 한국의 중소기업은 단순한 OEM 공급처에 머물지 말고, 하이에나처럼 기술 자본을 축적하여 생태계를 통제하는 ‘골수 독점형 쐐기 기업’으로 진화해야만 대기업 중심의 구조를 넘어 자생적인 성장 엔진을 확보할 수 있다.

①< ‘가짜 음경’을 진화시킨 하이에나> 에 이어서

하이에나와 비슷한 강소 중소기업

하이에나의 진화 생물학적 특성과 닮은 산업내의 사례를 본다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중소생산 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는 점박이하이에나의 분열-융합 사회 구조는, 자원이 제한되고 거대 포식자(대기업/글로벌 빅테크)가 지배하는 가혹한 시장 환경에서 중소 제조·생산 기업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하이에나가 평소 2~3마리씩 흩어져 비용을 최소화하고 기동성을 높인다. 중소기업 역시 평소에는 각자의 핵심 제조·생산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대기업처럼 방대한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을 쓰지 않는 만큼, 핵심 공정이나 부품 생산에만 집중해 가볍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하이에나는 1,600㎢의 넓은 영토를 소그룹들이 나누어 감시한다. 각 중소기업이 자신들만의 틈새시장(니치마켓)과 로컬 네트워크에서 트렌드와 발주 정보를 독자 수집해 시장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것과 같다.

대형 사냥감이 나타나거나 사자가 위협할 때 하이에나 떼가 순식간에 뭉치듯, 대형 프로젝트 수주나 글로벌 규제 대응(환경·ESG 등)이 필요할 때 중소기업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결속할 수 있어야 한다.

단독으로는 입찰조차 불가능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나오면 설계, 금형, 사출, 조립, 물류 등 가치사슬(Value Chain) 상의 중소기업들이 순식간에 결합해 대기업 규모의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기술 탈취나 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압박이 들어올 때, 개별 대응하면 짓밟히지만 ‘생산 동맹’을 통해 공동 대응, 즉 ‘공동 특허’ 확보나 원자재 공동 구매를 함으로써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점박이하이에나는 단독 사냥 성공률(약 25%)보다 무리 지어 사냥할 때의 성공률(약 70~80%)이 사자보다 훨씬 높다.

중소 생산 기업들이 평소에는 자기 전문 분야에서 ‘작고 날카롭게’ 생존하다가, 대형 시장을 타격할 때는 ‘거대하고 유연하게’ 융합하는 분열-융합형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자본력으로 밀어붙이는 거대 기업(사자)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시장 성공률을 거둘 수 있다.

고영양가 ‘골수’를 독차지한 대만기업들

둘째로 점박이하이에나의 치악력은 단순히 ‘무언가를 무는 힘’이 아니다. 사자나 표범 같은 경쟁자들이 살코기만 먹고 버린 단단한 통뼈를 부수어 그 속에 숨겨진 고(高)영양가의 골수를 독점하는 독보적 무기다. 남들이 먹지 못해 포기한 영역을 완전히 분쇄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압도적인 생존 기술인 셈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이 하이에나의 치악력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며 생존하는 집단이 바로 대만의 중소기업들이다.

대기업(사자)들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시장 규모가 작거나, 기술적 난이도에 비해 마진이 박한 단단한 뼈와 같은 사업은 효율성이 떨어져 직접 다루지 않고 버린다. 대만 중소기업들은 바로 이 영역을 부수는 특화된 기술력을 가졌다.

사례를 들자면 세계 고급 자전거 시장의 80%는 대만산 프레임과 부품이 장악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가전이나 자동차에 집중할 때, 대만의 중소기업들은 탄소섬유 복합재 가공 기술과 초정밀 용접 기술이라는 ‘치악력’을 길렀다. 거대 자전거 브랜드조차 이들의 정밀 가공 기술 없이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독점적 지위를 구축했다.

또 다른 사례로 대만 TSMC라는 거인 뒤에 포진해 있는 패키징(Pacakging)과 테스트를 담당하는 수많은 강소기업들이다. 반도체 미세화 공정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이 패키징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 되었는데, 대기업이 직접 투자하기엔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이 고난도 후공정 영역을 대만 기업들이 특유의 끈질긴 R&D, 즉 치악력으로 독점해 버렸다.

점박이하이에나의 치악력이 무서운 이유는 사자가 사냥한 먹이를 ‘훔쳐 먹는 청소부’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자가 절대 탐낼 수 없는 뼈 속의 골수라는 독자적인 시장을 개척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대만 중소기업들처럼 한국의 생산 기업들도 범용 제품 시장에서 대기업과 단가 싸움을 벌일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특화된 기술적 치악력을 갈고 닦아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골수 독점형 쐐기 기업으로 포지셔닝해야 한다.

브랜드 마케터보다 본질적인 기술 플랫폼

셋째로 하이에나 수컷은 연고가 없는 새로운 집단에서 서열 최하위로 시작하며 끊임없는 권력 변동과 생존 위협에 직면한다. 반면 암컷은 자신이 태어난 클랜에 평생 잔류하며 어머니와 자매와 딸로 이어지는 공고한 혈연 네트워크를 축적하고 있다.

이 혈연 자본은 물리적 위협이 발생했을 때 강력한 집단 방어 기제로 작용하며, 수컷이 결코 암컷의 지배 권력에 대항할 수 없게 만드는 근본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를 비즈니스 생태계에 투영하면 수컷은 트렌드와 소비자 취향에 따라 명멸을 거듭하는 브랜드 마케터와 같고, 암컷은 한 영토에서 수십 년간 기술 자본을 축적하며 인프라를 지키는 생산 제조 플랫폼과 같다.

브랜드는 시장의 유행에 따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지만, 고도화된 생산 인프라를 구축한 제조 플랫폼은 생태계의 중심에서 영속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대만 전자산업의 제조업자 개발 생산 체제와 한국 화장품 산업의 제조 클러스터는 이와 같은 모계 중심의 지배 구조가 산업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다.

대만의 폭스콘, 콴타, 위스트론과 같은 기업들은 글로벌 빅테크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명멸하는 과정에서도 전 세계 전자 기기와 서버 생산의 중심축을 유지한다. 브랜드의 외피가 어떻게 바뀌든 이들이 보유한 공급망 연합은 깨지지 않는다.

한국 화장품 산업에서의 ‘은수저 효과’

한국의 화장품 산업 역시 대형 브랜드 중심에서 중소 인디 브랜드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제조 플랫폼 기업들이 강력한 우두머리 암컷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씨앤씨인터내셔널과 같은 고도화된 제조업자 개발 생산 기업들은 수십 년간 축적한 피부 과학 데이터와 원천 처방 기술을 자산으로 보유한다. 이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졌으나 생산 기반이 없는 신생 인디 브랜드들에게 기획부터 효능 검증 및 생산까지 일괄 제공하는 원스톱 턴키 시스템을 지원한다.

이 구조 속에서 탄생한 인디 브랜드들은 태어날 때부터 제조 플랫폼의 강력한 기술 자본을 상속받는 ‘은수저 효과’를 누린다. 특정한 인디 브랜드가 시장에서 도태되어 사라지더라도 원천 기술을 보유한 제조 플랫폼은 새로운 이주 수컷과 같은 신생 브랜드들을 계속해서 생태계로 유입시키며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브랜드의 리스크를 완벽하게 분산하고 제조 인프라를 중심으로 생태계 전체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하이에나식 비즈니스 설계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초기비용 치러더라도 ‘산업 통행증’ 노려야

넷째로 점박이하이에나의 가짜 음경은 신체적 고통과 높은 출산 사망률이라는 막대한 해부학적 손실비용을 치르더라도, 공동체 내부의 정식 일원으로 포용돼 얻는 안전 보장과 먹이 독점의 이익 때문에 유지되는 독특한 형질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에서도 이처럼 초기에 막대한 비용과 비효율, 심지어 독소 조항에 가까운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폐쇄적이고 강력한 핵심 공급망 생태계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산업적 통행증’ 사례들이 존재한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인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 생태계는 하이에나의 폐쇄적 클랜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띤다.

초기에 인텔, TSMC, 삼성과 같은 거대 반도체 기업들은 ASML의 EUV 장비 개발을 위해 수조 원에 달하는 지분 투자와 연구개발 분담금이라는 막대한 금융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당시 이 투자는 기술적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여 기업의 재무 구조에 치명적인 손실을 줄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ASML 클랜의 정식 일원이 된 기업들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미세하고 고도화된 반도체를 독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장비 할당권’이라는 보상을 받았다. 초기의 막대한 비용 지출이 미래의 시장 지배권과 안전 보장을 위한 필수적인 비즈니스 포용 통행증으로 작용한 결과다.

애플의 대만협력사들이 따낸 ‘통행증’

대만의 폭스콘을 비롯한 애플의 핵심 협력사들은 애플의 독점적인 공급망 클랜에 진입하기 위해 해부학적 손실비용에 비견되는 가혹한 조건을 수용한다. 애플은 협력사에게 오직 애플 제품만을 생산할 수 있는 전용 장비와 공장을 전액 협력사 부담으로 투자하도록 요구하며, 마진율을 극도로 제한하는 까다로운 원가 검증 시스템을 적용한다. 만약 애플과의 계약이 해지되거나 물량이 감소하면 협력사는 투자한 수천억 원의 설비를 고스란히 고철로 날려야 하는 위험을 안고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글로벌 부품 제조 중소기업들이 이 독소 조항에 가까운 조건을 수용하는 이유는, 일단 애플의 공식 공급망에 포함되는 순간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대규모 물량을 확보할 수 있으며, 애플의 협력업체라는 강력한 레퍼런스 자산을 통해 시장의 다른 거대 포식자들 사이에서 생존율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 및 바이오 테크 분야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기 위해 치르는 다국적 임상 3상 시험은 하이에나가 치르는 난산만큼이나 파괴적인 실패 위험을 내포한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자금이 소요되는 임상 시험은 최종 단계에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아 수많은 중소 바이오 벤처 기업들을 파산으로 몰고 가는 모순적인 관문이다. 그러나 이 가혹한 규제와 엄청난 자본적 손실 위험을 뚫고 FDA 승인이라는 만남 의례를 통과하는 순간, 해당 기업은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특허권과 상상을 초월하는 고부가가치의 골수를 빨아먹을 권리를 부여받는다.

이 가혹한 인증 절차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의료 생태계 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다른 경쟁자들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강력한 ‘사회적 포용 통행증’으로 기능을 한다.

자연의 하이에나가 보여주는 모순적인 생존 방식처럼, 현대 산업 생태계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위험해 보이는 진입 장벽과 비용을 정면으로 돌파하여 생태계의 내부자가 될때 그 기업들만이 시장의 최상위 지배자로 군림하는 영속적인 주도권을 거머쥐게 된다.

약하면 협력하고, 기술에 집중하고, 장악하면 놓치지 말아야

하이에나가 보여주는 생존 특징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배워야 할 부분들을 정확히 보여 주고 있다.

힘이 약하면 협력해야 하고, 기술에 집중해서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기술 장악력을 가져야 하며, OEM이든 ODM이든 중소기업이 생존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많은 비용이 들지는 몰라도 독점적 생존을 구축할 수 있는 나름의 길로 가기만 한다면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성장 발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대기업 중심의 산업 발전을 이뤘다면, 이제는 중소기업도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중소기업이 기술과 시장의 뿌리이고 산업의 버팀목이다. 중소기업이라고 성장하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해야 하는지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하이에나가 흉칙해보여도 그 절대적 영역을 확보한 생존법에서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끝)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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