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는 민주주의에도 부담을 준다
[조선규의 Special Report] 고금리가 바꿀 우리 세상은? 부채의 시대에서 구조 전환의 시대로
- 저금리·부채 중심 경제의 한계 과거와 같은 저금리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자산 가격 상승과 빚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취약한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 양극화 심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고금리는 취약계층의 부담을 키워 자산과 기회의 격차를 넓히며, 이는 시민들의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불신을 높여 민주주의에도 부담을 주게 된다.
- 생산성·소득 중심의 구조 전환 자금이 미래 기술과 인적자본 등 생산적 분야로 흐르도록 유도하고, 혁신의 성과가 실질소득 및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지는 회복력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금리가 낮아지고 돈을 빌리기 쉬워지는 경제에 익숙해져 왔다. 돈을 빌려 집을 사고, 자산 가격이 오르면 다시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방식이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부채는 성장의 수단이었고, 자산 가격 상승은 미래의 부를 보장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경제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국제유가와 지정학적 갈등, 물가 상승 압력, 정부의 재정 부담, 인공지능 산업의 막대한 투자 수요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22일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9%였다.
금리가 앞으로 계속 상승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저금리 환경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을 버리는 일이다. 금리가 높아지면 대출이자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 기준, 주식과 부동산의 가치, 가계의 소비와 저축도 달라진다. 고금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경제의 작동 원리를 다시 묻는 구조적 변화다.
부채의 크기가 아니라 부채가 만드는 가치
부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기업이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은 미래의 생산성과 소득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빌린 돈이 어디에 사용되느냐에 있다. 새로운 생산능력을 만드는 부채와 기존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되는 부채는 다르다.
자산 가격이 오르는 동안에는 부채 중심 경제가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리가 상승하거나 소득이 감소하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소비가 위축된다. 자산 가격까지 하락하면 가계는 생활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축소한다. 개별 경제주체의 상환 부담이 경제 전체의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복리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1억 원을 연 5% 복리로 운용하면 10년 뒤 약 1억 6,289만 원이 되지만, 갚지 않은 이자가 부채에 더해져도 부채는 같은 원리로 불어난다. 충분한 자산을 가진 사람은 수익을 재투자할 수 있지만, 소득 대부분을 대출 상환에 사용하는 사람은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의 차이가 경제적 기회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고금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대출 축소가 아니다. 생산적인 투자를 위한 금융은 유지하되 상환 능력을 넘어선 부채와 자산 가격 상승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힘은 빚의 크기가 아니라 빌린 돈으로 만들어 낸 실질적인 가치와 소득이다.
투자와 기술혁신의 기준도 달라진다
금리가 높아지면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만으로 평가받던 자산은 재평가될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 성장 가능성에 크게 의존하는 기업이 금리 변화에 민감하다. 부동산시장에서도 대출 부담이 커지면서 지역별 수요와 자산 가치의 차이가 두드러질 수 있다. 이제 투자자는 과거의 가격 상승보다 기업의 수익성, 현금흐름, 부채 수준과 자산의 적정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AI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생산성을 높일 잠재력이 있지만, 기술의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관련 기업이 반드시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 등에는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하다. 실제 수요와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투자비 회수가 늦어지면 기업의 재무 부담은 커질 수 있다.
중요한 질문은 AI가 실제로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는가,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술 발전의 성과가 일부 기업의 이익에만 머무르지 않고 노동자의 소득과 새로운 일자리, 소비자의 편익으로 이어지는지도 살펴야 한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 전체의 번영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양극화는 경제적 기회의 격차로 이어진다
고금리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금융자산과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은 충격을 견딜 여력이 있지만, 대출 상환 부담이 큰 가계와 자금 조달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취약하다. 자산 소유의 차이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기술 변화까지 겹치면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자산이 부족한 사람은 실패를 감당할 여력이 적어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기 어렵다. 반면 자산과 소득이 충분한 사람은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반복되면 경제적 격차는 교육과 창업, 직업 선택의 기회 격차로 이어진다.
경제적 불안은 민주주의에도 부담을 준다. 기존 제도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시민이 늘어나면 사회적 불신과 정치적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 반드시 권위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갈등만 키우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부채 탕감이나 자산 가격 부양이 아니다. 상환 능력에 맞는 채무조정과 실효성 있는 사회안전망, 직업 전환 교육, 합리적인 주거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시민들이 미래를 계획하고 새로운 기회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리의 변화보다 경제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고금리 시대에 필요한 구조 전환은 분명하다. 첫째, 자금이 기존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생산설비와 기술개발, 인적자본 등 미래의 생산성을 높이는 분야로 흘러가야 한다. 둘째, 자산 가격 중심의 성장에서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 양질의 일자리를 중시하는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AI를 비롯한 기술혁신의 성과가 더 많은 사람의 소득과 기회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 역시 물가 안정과 취약계층 보호,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투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사회안전망은 도전을 막는 장치가 아니라 실업과 산업 전환의 충격을 줄여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어야 한다.
부채가 늘어야 자산 가격이 오르고, 자산 가격이 올라야 소비가 유지되는 경제라면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술혁신이 생산성을 높이고 그 성과가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진다면 경제는 금리 변화에도 더 큰 회복력을 가질 수 있다.
금리의 방향은 우리가 모두 통제할 수 없지만, 금리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 저금리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금리가 높아도 버틸 수 있는 기업과 부채에 짓눌리지 않는 가계, 기술혁신의 혜택을 함께 누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고금리가 바꾸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바꾸어야 할 것은 금리 자체가 아니다. 부채와 자산 가격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경제의 구조다. 미래는 과거의 상식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데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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