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역진화: 고래는 왜 바다로 갔을까?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바다로 간 고래, 아날로그로 간 IT
- 육지에서 바다로 향한 고래의 여정 고래는 약 5,000만 년 전 생존과 먹이 확보를 위해 육지를 떠나 바다로 회귀하는 극적인 ‘역진화’를 선택했다.
- 고래는 진화적 승리의 역사 이 과정에서 하악골 청각 수용(TPC), 정수리 분출공, 구형 렌즈 안구, 심해 잠수용 미오글로빈 등 감각과 대사 기전 전체를 수중 매질에 맞춰 완전히 재설계했다.
- 현대 산업 생태계도 발견되는 역진화 이러한 현상은 생물학을 넘어 현대 산업에서도 나타나는데, 무조건적인 기술 고도화 대신 의도적으로 기술의 층위를 낮추거나 과거의 원형으로 회귀하는 전략이 빈번히 발생한다.
- 본질적 가치와 욕망을 파고드는 산업 전략 고래처럼 산업의 역진화도 기술의 퇴행이 아니라, 고도화된 기술이 점유하지 못한 인간의 정서적 욕망과 시장의 실리적 틈새를 파고들어 새로운 생존의 길을 여는 고도의 가치 재정의 과정이다.
고래는 왜 바다로 도망갔을까
생물 진화사에서 포유류의 해양 회귀는 단순한 서식지 이동을 넘어 생체 구조와 대사 기전 전체를 재편한 극적인 사건이다.
오늘날의 고래류(Cetacea)는 약 5,000만 년 전 시신세(Eocene) 초기에 육상 우목 포유류(Artiodactyla) 조상으로부터 분기되어 바다로 갔다. 약 5,600만년 전 발생한 팔레오세-에오세 극열(極熱)기(PETM)에는 지구 평균 기온이 약 5.6°C 급상승하며 해양 온도를 크게 높였다. 이는 팔레오세 후반에서 에오세 초반 사이에 있었던 온난기로 약 5,580만 년 전부터 대략 17만 년 동안 계속된 기후변화 사건을 의미한다.
초기 고래류 조상은 먹이 획득보다는 육상 포식자로부터의 피식 압력을 회피하고 안전한 대피처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다로 갔다. 주요 거점이 되었던 아프라카와 아시아 사이, 또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에 형성된 테티스해(海)의 높은 생산성은 이들의 수중 체류 시간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촉매가 되었다.
이후 올리고세(Oligocene)에 이르는 과정에서 전 지구적 기온 하강 및 규조류(diatoms)의 폭발적 다양화가 맞물리며 고래류의 바다행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 DNA 분석은 고래류가 하마과(Hippopotamidae)와 가장 가까운 자매군(sister group)을 형성하며, 약 5,550만 년 전에 분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하마와 고래는 동일한 조상을 지니고 있고 하마는 육지에서, 고래는 바다에서 생활함으로써 진화의 패턴이 바뀐 것이다.
바다에서 다시 몸을 만들다
공기에 최적화되어 있던 포유류의 감각 기관은 물이라는 매질의 높은 밀도와 굴절률, 전도성에 맞춰 완전히 재설계되어야 했다. 공기 중에서 고막을 통해 진동을 증폭하던 기존 포유류의 귀 구조는 물 속에서 주위 조직과 물의 임피던스(Impedance, 온저항)가 유사해짐에 따라 음원의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고래류는 외이도를 물리적으로 폐쇄하는 대신, 아래턱뼈(mandible)를 음향 수용 창으로 삼는 기막힌 진화를 이룩한 것이다.
이러한 청각 구조의 완성도는 발달 단계에서도 엿보인다. 현대 수염고래인 지느러미고래(fin whale)의 배아 분석 결과, 태아기 6개월 단계부터 TPC(Tympano-Periotic Complex)의 고실개골 밀도가 일반 육상 포유류의 성체 뼈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급격히 광물화(mineralization)되는 현상이 확인된다.
이는 출생 직후 어미의 저주파 통신음을 즉각적으로 수용하여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를 확보하고 험난한 해양 환경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진화한 발달 유전학적 적응이다.
수면 위로 부상해 빠르게 숨을 쉬고 다시 하강하는 유기적인 수중 거동을 위해서는 비공(콧구멍)이 이마와 정수리 부위로 이동하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굴 전면부 뼈가 후방으로 밀려나 두개골 상부 뼈들과 기하학적으로 포개지는 두개골 텔레스코핑(Skull Telescoping)이 일어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존 육상 포유류의 감각계 중 미각은 물 속에서 거의 쓸모가 없어졌다. 고래류는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을 수용하는 5개 감각 수용체 유전자 중 4개가 슈도진(pseudogene, 가유전자)화되어 기능을 완전히 유실했다.
오직 짠맛(salt) 수용체 유전자만이 선택압을 받아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미각의 목적이라기보다 염도가 높은 바다환경에서 혈액 내 나트륨 함량과 혈압을 일정하게 통제하기 위한 내과적 항상성 모니터링 수단으로 해석된다.
수중 안구 환경의 가혹한 압력과 온도 하강을 이겨내기 위해 고래의 눈은 공막(sclera)과 각막(cornea)이 매우 두껍게 강화되었다. 물속에서는 각막의 빛 굴절 능력이 상실되므로 안구 내 구형 렌즈가 빛의 굴절과 초점 정합을 전담하게 된다.
미각을 잃었지만, 시각은 이중초점 렌즈로
고래의 렌즈는 어류의 안구 구조와 흡사하게 내부 중심 코어의 밀도가 가장 높고 외곽으로 갈수록 밀도가 낮아지는 정밀한 굴절률 구배 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조절근의 물리적 수축 없이도 물속과 공기 중 모두에서 무한대 초점을 자동으로 맞추는 수동적 이중초점(bifocal) 렌즈 시스템을 획득했다.
고래류가 거친 원양의 깊은 수심으로 다이빙하여 장시간 동안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힘은 세포 생화학적 제어 기술과 심혈관계의 물리적 방어 기전에서 비롯된다. 고래는 심해의 무지막지한 압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흉강을 단단하게 고정하지 않고, 오히려 압력에 완벽히 굴복하는 역설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잠수 시 수압이 가해지면 고래의 연골성 관절식 갈비뼈 구조는 안쪽으로 부드럽게 무너지며 흉강 전체를 수축시킨다. 이에 따라 폐 또한 부피가 무제한적으로 줄어드는 폐를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 폐포 내부에 남아 있던 공기는 가스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 상부의 단단한 기관지로 완전히 밀려 올라간다.
잠수 과정에서 고래는 대사율을 제한하기 위해 즉각적인 분당 60회 미만인 서맥을 유도한다. 범고래의 경우 수면에서의 심박수가 분당 약 60회인 것에 비해 다이빙 상태에서는 약 30회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뚝 떨어진다.
이와 함께 말초 혈관을 능동적으로 수축시켜 근육이나 피부, 위장관과 같이 무산소 내성이 있는 말초 조직으로 향하는 산소화된 혈류 공급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산소 결핍에 치명적인 뇌와 심장 시스템으로만 한정된 산소를 전략적으로 집중 배분한다.
혈류 공급이 완벽하게 차단된 활동 근육 구조는 자체적으로 저장하고 있는 산소에 의존하여 유산소 및 혐기성 대사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래류의 활동 골격근에는 산소 결합 단백질인 미오글로빈(Myoglobin, Mb)이 일반 지상 동물의 최대 30배 이상에 달하는 검붉은 고농도로 집적되어 있다.
정온 동물인 고래가 찬 바닷물 속에서 심부 온도(37°C)를 완벽히 통제하는 비결은 미세한 동정맥들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뒤엉켜 교차하는 특수 혈관 네트워크인 원더넷(기적의 혈관망)에 기반한다.
단열용 블러버(Blubber) 지방층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가슴지느러미, 등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 및 구강 내 설부(tongue) 영역은 열 소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아킬레스건이다. 고래는 이러한 취약 영역으로 가는 동맥 주위를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차가운 정맥혈관 다발들로 빽빽하게 포위하는 역류 열교환 회로를 설계해 두었다.
이 시스템 하에서 심장에서 나오는 뜨거운 동맥 피의 열은 말초 끝단 피부에 도달하기 직전, 옆을 나란히 달리는 차가운 정맥 피로 전도되어 고스란히 몸통 심부로 재회수된다. 그 결과 정작 지느러미 가장자리 피부로 전달되는 혈류는 이미 차갑게 냉각된 상태에 도달해 있어 외부 해수로 유실되는 열에너지가 극단적으로 억제된다.
고래의 생존기는 진화적 승리의 역사
고래류의 해양 회귀 여정은 기후적 변동성과 형태학적 혁신, 그리고 분자생물학적 항상성 재구축이 정밀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완성된 ‘진화적 승리의 역사’다.
이들은 뼈의 밀도 조절을 통한 중력 극복에서 출발하여 하악골을 통한 음향 청각 경로 확보, 두개골 텔레스코핑을 통한 분출공의 형성, 구형 렌즈의 안착, 그리고 정전기적 반발력을 이용한 고농도 미오글로빈의 침전 방지에 이르기까지 육상 동물의 설계 구도를 완전히 해체하고 재조립하였다.
수천만 년의 시공간 속에서 가혹한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며 바다를 지배해 온 고래들의 섬세하고 정교한 내부 생리생화학적 조율 체계를 완성하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고래가 바다로 간 것을 진화학적 관점으로 보면 ‘역진화(Reverse Evolution)’라고 할 수 있다. 육지에 적응하기 위해서 개발한 기능들을 다시 바다에 적응하기 위해서 축소하거나 기능을 마비시키고 대신 바다에 적응할 수 있는 기능들을 포유류가 가지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발전시킨 것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을 한다. 첫째는 포식을 당하지 않는 생존의 유리함이고, 둘째는 먹이감의 확보에 있다. 실제 고래를 이길 바다의 포식자는 없고 먹이 경쟁도 되지 않는다. 현재로 보면 고래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가장 상위의 왕좌에 올라 있는 바다 동물이다. 바다로 되돌아감으로써 얻어진 생태계내의 지위인 셈이다.
고래를 닮은 산업 생태계의 ‘역진화’
현상은 산업 생태계 내에서도 볼 수 있다. 이미 사라진 기술이라고 보는데 다시 부각되고 전혀 소용이 없어 보이는 산업들이 다시 부활을 하는 경우다. 우리는 잊혀졌다고 생각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살아남아 그 나름의 진화를 하고 있는 산업들을 볼 수 있다. 마치 고래가 바다로 돌아가듯이 그 산업은 현대 사회의 감성 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산업의 진화가 반드시 기술적 고도화 또는 직진 진화로만 흐르지 않고, 생존과 시장 확장을 위해 과거의 형태나 원리로 되돌아가거나 기술적 복잡성을 덜어내는 역진화(Reverse Evolution) 혹은 기술적 퇴행을 통한 진화가 현실적으로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고래가 육지에서 다시 바다로 돌아가 환경에 최적화했듯, 산업의 진화에서도 기술적 효율보다는 가치나 시장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기술의 층위를 낮추거나 본질적인 원형으로 회귀하는 사례들이 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첫째는 기술의 복잡성을 제거하고 감성과 직관성에 맞추어 역진화를 하는 경우다. 과도한 기술적 고도화가 오히려 사용자 경험을 저해할 때, 시장은 더 단순하고 아날로그적인 형태로 회귀한다.
필름 카메라는 이미 사라진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필름과 카메라가 다시 등장을 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는 화질, 편의성, 센서 기술에서 정점에 달해 있다. 그러나 최근 시장은 다시 필름 카메라로 회귀하는 데 이는 기술의 완성도보다 사진을 찍는 행위의 과정이라는 가치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고도화가 가져다 준 편리함을 버리고, 의도적으로 불편함과 기다림(현상)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아날로그 감성은 예술작품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기에 디지털이 가지지 못한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감성으로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LP 레코드의 부활이다. 음원 데이터는 무손실 압축 기술로 완벽에 가까워졌지만, 대중은 다시 LP로 돌아가고 있다. 이는 음질이라는 기술적 지표를 따르는 대신, 물리적 소유와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시장적 니즈가 기술을 압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즉 디지털이 가지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감성이 이 시장을 붐업 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비용과 확장성 최적화하기 위해서 기술을 다운사이징시키는 전략이다. 최첨단 기술이 특정 산업의 주류가 되기에는 비용이나 접근성이 떨어질 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전 세대의 검증된 기술로 회귀하거나 이를 결합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차전지 시장에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 장악이다. 이 배터리는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판단을 하고 2010년 초반에 한국에서는 포기를 했다. 하지만 중국은 안전성과 장기적인 가격을 통한 시장 장악을 위해서 집중 투자를 하였다.
사실 기술에서 자신감이 적었기 때문에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로 전략적 투자를 중국 정부 차원에서 진행했고 그 결과는 전세계 시장 장악을 했다. 현재 80%의 이차전지 시장이 LFP로 바뀌었고, 이 시장을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고래가 육지를 포기하고 바다로 가면서 ‘바다의 제왕’이 되었듯이 중국은 LFP로 이차전지의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한국이 NCM(니켈, 코발트, 망간) 에너지 밀도라는 기술적 고지를 점령했다는 승리감에 취해 있을 때,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낮고 무거웠던 LFP로 돌아간 것이 결국 시장을 확장하고 전략적 성공을 거든 것이다.
셋째로는 기능의 본질적 회귀 현상으로 가치를 재정의하면서 새로운 마켓 포지션을 잡는 것이다. 산업이 너무 복잡해져서 그 본질을 잃어버렸을 때, 초기의 단순한 기능만을 남겨 핵심 시장을 재공략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통 음식을 ‘슬로우 푸드’로 현대적 해석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 식품 산업은 가공 기술과 보존 기술의 끝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현대 시장은 다시 발효, 숙성 등 과거의 원형적 제조 방식(기술적 진보 이전의 방식)으로 회귀하여 고가의 프리미엄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슬로우 푸드로 만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 소비도 많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런 음식을 통해 건강과 친환경 감성을 경험하며 특히나 푸드 산업이 가지고 있는 거대화, 산업화에 맞서고자 한다. 인공적인 것은 나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고 이는 결국 오랜 문화적 경험을 통해 축적된 삶의 양식을 따라가고자 하는 열망들이 이런 시장을 재정의하게 된 것이다.
욕망과 감성이 이끄는 곳에 시장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술을 선형적인 발전의 도구가 아니라 시장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바라볼 때 왜 이런 시장이 되살아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산업의 진화에서 ‘역진화’는 패배가 아니라 ‘기술의 탈맥락화’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역진화를 선택하는 것은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기술이 점유하지 못한 인간의 욕망이 더 중요한 시장으로 다시 파고드는 고도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보다 빠르고, 보다 효율적인 산업만이 살아남거나 진화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고래가 바다로 돌아간 까닭은 좀 더 생존에 자유롭기 위해서 돌아간 것이다. 산업에서 이런 역진화를 하는 것도 바로 욕망과 감성으로 만들어지는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도 보다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친환경이며 공동체를 기초로 한 사회적 진화를 원하고 있고, 이 추세는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 진다고 하여도 대세는 아닐지라도 그 나름의 시장을 만들어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속에 새로운 기업 생존의 길이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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