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방에서 빛의 스위치를 생각하다

  • 빛이 상을 받았다 202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빛으로 여닫히는 이온 채널을 발견하고 이를 ‘광유전학’으로 키운 칼 다이서로스, 페터 헤게만, 게오르크 나겔에게 돌아갔다. 예측 기관들이 유력하게 꼽았던 GLP-1 연구는 이번에 호명되지 않았다.
  • 출발점은 초록 조류의 눈이었다 광유전학의 핵심 부품인 채널로돕신은 빛을 향해 헤엄치는 단세포 조류가 어떻게 빛을 느끼는지 묻던 연구에서 나왔다. 뇌과학을 바꾸겠다는 계획은 그 출발점에 없었다.
  • 좋은 도구는 발견만큼이나 나눔으로 완성된다 광유전학이 전 세계 실험실의 일상이 된 과정은 쓸모를 묻지 않은 기초연구와 열린 공유, 그리고 세포를 정확히 겨누는 유전학이 만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 준다.

▶ 칼럼의 핵심 요약본을 들어보세요

초파리 방의 어떤 실험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파리 먹이에 레티날(비타민 A의 한 형태)을 섞고, 바이알을 은박지로 싸서 빛을 막는다. 며칠 뒤 붉은 LED를 켜면, 특정 신경세포에 빛 스위치를 단 파리가 그 순간 다른 행동을 한다.

날개를 떨며 구애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주둥이를 뻗기도 한다. 불을 끄면 파리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걷는다. 우리 실험실을 찾는 학부생들에게 가끔 빛을 비추면 바로 잠이 드는 초파리 광유전학의 신비함을 보여주곤 한다.

오늘(5일) 저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그 스위치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불렸다.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2026년 생리의학상을 빛으로 여닫히는 이온 채널과 광유전학에 관한 발견의 공로로 칼 다이서로스(스탠퍼드대), 페터 헤게만(베를린 훔볼트대), 게오르크 나겔(뷔르츠부르크대)에게 준다고 발표했다. 예측 기관 클래리베이트가 꼽았던 GLP-1 비만 치료제 연구는 이번에는 호명되지 않았다.

노벨상 전야마다 한국 언론은 ‘올해는 한국이?’를 묻고, 나는 그 질문보다 수상한 연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묻고 싶었다. 올해의 답은 뜻밖에도 연못이다. 오늘은 초록 조류(藻類) 한 마리의 눈에서 출발해, 그것이 어떻게 초파리 방의 붉은 불빛이 되었는지를 따라가 보려 한다.

빛을 향해 헤엄치는 초록 세포

‘클라미도모나스’라는 단세포 녹조류가 있다. 몸 앞쪽에 편모 두 가닥이 달려 있고, 한쪽에 붉은 점 하나가 박혀 있다. 이 ‘안점’ 덕분에 조류는 빛이 오는 방향을 알아차리고 그쪽으로 헤엄친다. 눈도, 뇌도 없는 세포 하나가 어떻게 빛을 보는가. 헤게만은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붙들고 조류의 빛 감지 단백질을 연구했다.

결정적인 장면은 지난 2000년대 초에 왔다. 전기생리학자인 나겔은 헤게만 등과 함께 조류에서 찾은 단백질 유전자를 개구리 난모세포에 넣고 빛을 비췄다. 그러자 세포막에 전류가 흘렀다. 이 단백질은 빛을 받아 신호를 다른 분자에 넘기는 수용체가 아니라, 빛을 받으면 스스로 열리는 ‘이온 통로’였다. 이들은 이 단백질을 ‘채널로돕신’이라고 불렀다.

노벨상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멈춰 생각을 좀 해봐야 한다. 조류의 주광성(走光性, 빛을 향해 움직이는 성질)은 산업 전략 보고서에 들어갈 주제가 아니다. 연구계획서에 ‘경제적 파급효과’를 쓰라고 했다면 연구자들은 아마 난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 신경세포를 켜고 끄는 스위치를 내놓았다. 이것은 결과를 알고 난 뒤에 하는 해석이지만, 기초연구를 옹호하는 말 가운데 이보다 구체적인 사례는 드물다.

스위치가 도구가 되기까지

빛에 열리는 통로가 있다는 것과, 그것으로 뇌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 사이에는 먼 거리가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과학자인 다이서로스는 그 거리를 좁혔다. 그의 연구팀은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포유류 신경세포에 넣어 푸른빛만으로 신경 신호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였고, 이어 살아 있는 쥐의 뇌에서 특정 회로를 빛으로 켜고 끄며 행동이 바뀌는 것을 보여 주었다. ‘광유전학’이라는 이름도 이 무렵 자리를 잡았다.

‘광유전학’이 강력한 이유는 정밀함에 있다. 약물은 뇌 전체에 퍼지고, 전극은 근처의 세포를 가리지 않고 자극한다. 반면 광유전학은 유전학으로 고른 세포에만 스위치를 달고, 빛을 비추는 순간에만 작동시킨다. ‘이 세포들이 이 행동에 필요한가,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처음으로 깔끔하게 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도구는 빠르게 퍼졌다. 내가 보기에 그 속도는 기술의 우수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이 유전자 구조물을 다른 실험실에 나누어 주었고, 개량된 채널들이 잇따라 공개됐다. 도구가 공유지(共有知)에 놓일 때 비로소 한 실험실의 발명이 과학 전체의 기반이 된다.

초파리 방의 붉은 불빛

초파리 연구자에게 광유전학은 특히 잘 맞는 옷이었다. 이유는 파리방이 백 년 넘게 쌓아 온 유전학 도구에 있다. 효모에서 빌려 온 GAL4/UAS 시스템을 쓰면 원하는 신경세포 무리에만 특정 유전자를 켤 수 있고, 전 세계 스톡센터에는 서로 다른 세포를 겨누는 수많은 GAL4 계통이 쌓여 있다. 조류에서 온 스위치를 꽂을 ‘콘센트’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셈이다.

초파리 광유전학에는 작은 요령들이 있다. 파리는 이 채널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레티날(비타민 A의 한 형태, 눈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흡광 분자로 작용)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아서 먹이에 섞어준다. 레티날을 먹지 않은 형제 파리는 훌륭한 대조군이 된다.

또 파리는 붉은빛을 잘 보지 못하고 붉은빛은 큐티클(식물과 동물의 표피 구조)을 잘 통과하기 때문에, 붉은빛에 반응하도록 개량된 채널을 쓰면 ‘빛을 봐서 생긴 행동’과 ‘신경세포가 켜져서 생긴 행동’을 가르기 쉽다. 초파리 방의 불빛이 붉은 까닭이다.

광유전학 이전에도 초파리 연구자들은 신경세포를 켜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온도에 반응하는 통로 단백질을 신경세포에 넣고 파리를 따뜻한 방에 옮기는 식이다. 이 방법은 지금도 유용하지만, 온도를 올리고 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빛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켜고 끌 수 있다. 구애처럼 몇 초 단위로 이어지는 행동의 순서를 해부하려는 사람에게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초파리에서 빛으로 행동을 조종하는 연구는 채널로돕신이 널리 쓰이기 전부터 있었다. 게로 미젠뵈크의 연구팀은 2000년대 중반 다른 방식의 유전적 광스위치로 파리의 행동을 일으켜 보였다. 이번 수상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지만, 초파리 연구자들에게 그 실험은 광유전학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20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칼 다이서로스(왼쪽부터), 페터 헤게만, 게오르크 나겔.
20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칼 다이서로스(왼쪽부터), 페터 헤게만, 게오르크 나겔.

세 사람의 이름, 수많은 실험실

노벨상은 한 분야에 최대 세 명까지만 준다. 광유전학처럼 여러 실험실이 거의 동시에 길을 연 분야에서 이 규칙은 늘 누군가를 바깥에 남긴다. 지난 2005년 신경세포 실험의 주요 저자였던 에드 보이든도, 초파리에서 길을 낸 미젠뵈크도, 채널로돕신 초기 연구에 함께한 다른 연구자들도 이번 명단에는 없다. 상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상은 원래 많은 이름을 세 개로 압축하는 장치다.

압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상 바깥에서다. 연구비 심사와 임용 평가가 상의 문법을 닮을수록, 기여는 맨 앞이나 맨 끝의 이름 하나로 줄어든다. 수백 마리의 쥐를 기록한 대학원생, 플라스미드를 포장해 다른 대륙으로 보낸 기술원의 노동은 그 문법 안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노벨상이 그 구조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해마다 그 구조를 가장 화려하게 보여 주는 무대인 것은 분명하다.

상 바깥에서 압축을 풀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연못의 조류를 들여다본 광생물학자, 개구리 알에 전극을 꽂은 전기생리학자, 쥐의 행동을 기록한 신경과학자, 그리고 그 도구를 받아 각자의 동물에서 새 질문을 던진 수천 개의 실험실. 초파리 방도 그 중 하나였다. 모건의 파리방이 돌연변이 파리를 다른 연구실에 나누어 주며 유전학의 공유지를 만들었듯, 광유전학도 결국 나눔의 연쇄로 완성됐다.

같은 날 한국 신문에는 4조 7천억 원 규모의 프런티어 AI 개발 계획이 실렸다. 큰 목표를 정하고 자원을 모으는 일도 필요하다. 다만 오늘의 노벨상은 목표가 없던 질문, 연못의 초록 세포가 어떻게 빛을 보느냐는 질문이 수십 년 뒤 어떤 일을 해냈는지를 보여 준다. 한 나라의 과학 예산에 그런 질문을 위한 자리가 얼마나 있는지, 나는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내일부터 다시 묻고 싶다.

오늘 밤에도 어느 실험실에서는 은박지에 싼 바이알 속 파리들이 어둠 속에서 레티날을 먹고 있을 것이다. 내일 누군가 붉은 불을 켜면, 그 파리들은 연못의 조류에게서 빌려 온 스위치로 무언가를 보여 줄 것이다. 빛을 향해 헤엄치던 세포 하나가 뇌를 들여다보는 창이 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과학을 문화로 가진 사회란, 그 수십 년을 기다려 주는 사회일 것이다.

글쓴이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