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경쟁력의 추락과 불안한 미래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평가 ④] 관료주의가 조작한’ 세계 2위’ 과학 지표들 혁신 위한 지원 ‘빈약’..고급 인재는 탈출중 문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콘트롤타워 누구였나
숫자에 매몰된 관료주의가 만든 한국의 모래성 같은 과학기술경쟁력
과학은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대상만을 탐구의 대상으로 한다. 이상하는 이를 “과학 공동체의 역사를 구성하는 주 연결고리는 재확인 및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과 가설의 연결성”이라고 표현했다. 즉, 과학자집단 혹은 과학자사회를 다른 영역의 공동체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특별한 방식으로 얻어진 ‘숫자’들을 ‘이론’ 혹은 ‘가설’과 연결하며 학문을 수행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유무인 것이다.
세상을 ‘양화(量化, quantification)’해서 이해하는 데에는 큰 주의가 요구된다. 과학은 자연을 숫자로 표현하면서 ‘재현가능성(reproducibility)’이라는 제약을 추구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재현되지 않는 숫자는, 과학의 토대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세상에서 다뤄지는 숫자들이 과학자사회가 다루는 ‘재현가능한 측정량’처럼 엄밀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료들이 권력과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원하는 각종 통계와 지표들이 그렇다. 통계 자체가 숫자로 표현되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그 숫자의 권위에 현혹되기 마련이지만, 실상 우리가 그 숫자들을 마주하며 집요하게 물어야 하는 질문은 ‘도대체 어떻게 그 숫자들을 측정했는가’이다.
숫자가 등장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구나 통계의 노예가 될 수 있고, 국가 전체가 그런 통계적 왜곡에 익숙해지게 되면 그런 국가는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 관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경력을 위해 숫자와 통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고, 관료주의에 매몰된 부패한 관료들은 국가의 패망 따위를 신경쓰지 않는다. 숫자는 축복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도구다.
과학기술 경쟁력의 하락과 혁신을 가로막는 관료주의
한 국가의 과학기술경쟁력 및 혁신지수를 나타내는 권위있는 지표로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발표하는 ‘IMD 세계 경쟁력연감’과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 ‘WEF 세계 경쟁력 보고서’가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 관료들은 매년 발표되는 이 보고서에 쓰이는 숫자와 순위에 목숨을 건다. 이중 IMD의 연감에는 총 4개 평가 부문중 발전 인프라 부분에 ‘과학’ 및 ‘기술인프라’ 항목이 포함되어 있어 한국 과학기술경쟁력을 조망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했던 2017년 한국의 IMD 국가경쟁력 순위는 29위였으나 2021년엔 23위로 6단계 상승했고, 과학경쟁력은 8위에서 2위로 상승, 기술경쟁력은 17위에서 17위로 제자리를 지켰다. 즉 IMD 지표를 통해 나타나는 문재인 정권의 과학기술경쟁력 평가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표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보면 국가 경쟁력은 2012년에 비해 22위에서 23위로 한 단계 하락, 기술경쟁력도 14위에서 17위로 3단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한국은 과학경쟁력에서 세계 2위로 뚜렷한 상승을 보여주는데, 이는 연구개발투자, 연구개발인력, 특허수, 첨단산업의 부가가치 비중 등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인구 천명당 R&D연구자 수 1위, GDP 대비 총연구개발투자비 및 기업연구개발비 비중 2위 등의 지표를 보여주는 독특한 나라로, 적어도 전세계에서 과학자들에게 연구개발비가 가장 많이 투입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20여년간 급격하게 상승한 과학 인프라의 발전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한국 과학기술자들에게 연구성과를 ‘강요’하는 명분으로 작동한다. 특히 한국의 과학기술경쟁력이 연구개발비 투자에 비해 초라하다는 지적은 지난 1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과학기술자사회를 옭아매는 굴레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엄청난 연구개발비의 76.6%는 민간에서 투자되는 것이다. 정부는 21.4%의 연구개발비만을 투자하며, 전체 연구개발비에서 공공연구기관 및 대학은 각각 11.5%, 8.2%의 연구비를 차지할 뿐이다. 또한 연구개발비의 대부분인 86%는 개발연구에 투입되고 기초연구에 투입되는 자원은 14% 정도에 불과하다. 즉, 통계상 한국의 연구개발비는 기업의 R&D에 투자되는 비중이 높고, 하이테크 산업에 집중되어 있으며, 연구개발의 다양성 및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은 매우 약한 편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고 IMD의 과학경쟁력 지표 산출과정을 살펴보면, 전세계 2위의 과학경쟁력을 보여주는 한국의 현실이 그대로 보인다. 한국은 각종 연구개발투자 및 연구인력의 숫자에서 압도적인 순위를 보인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노벨상 수상’과 ‘인구 백만명당 노벨상 수상’ 지표에서 29위인 것은 무시해도 좋다. 노벨상이 국가의 과학경쟁력 목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연구 관련 법률이 혁신을 지원하는 정도’에서 30위, ‘지적 재산권의 보호정도’에서 36위, ‘산학간의 지식 전달정도’에서 25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깊게 고민할 여지를 남긴다. 왜냐하면 연구개발비와 연구인력의 양적 규모에서 세계 상위권을 달성한지 이미 20여년이 다 되어가면서도, 한국의 과학기술생태계에서 혁신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술경쟁력은 2020년 13위에서 2021년 17위로 추락했다. 그 추락을 견인한 지표를 보면 과학경쟁력에서 한국이 낮은 순위를 보이는 영역의 문제가 어떻게 기술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지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한국은 ‘디지털 기술의 사용 용이성’에서 15계단 하락했고, ‘수준급 엔지니어 공급정도’에서 12계단, ‘평균 인터넷 대역폭 속도’에서 10계단 하락했다. 또한 ‘공공 및 민간부문의 벤처가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정도’는 38위, ‘법적환경이 기술개발 및 응용을 지원하는 정도’에서 45위를 각각 기록해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위한 제도적 환경이 낙후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경쟁력은 정치인과 관료의 합작으로 양적 규모를 확장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진정한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플랫폼과 환경조성에는 실패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한국 과학기술의 혁신을 구태적인 관료주의와 부패한 정치가 가로막고 있다는 점은 대체로 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과학기술경쟁력은 포퓰리즘적인 정치쇼나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의 과학기술경쟁력은 포퓰리즘 정치를 통해 증가한 투자규모 덕분에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혁신의 지속성을 위해 필요한 제도 및 인프라는 관료주의에 포섭되어 혁신을 가로막고 있고, 이는 투자 대비 성과의 미흡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과학기술정책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다. 관료들이 교묘하게 내미는 숫자의 이면을 정치권력이 읽을 수 없다면, 한국의 과학기술경쟁력은 지금처럼 성과없는 투자를 계속하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연명하게 될 것이다.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 또한 불투명하다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중 하나는 인재정책이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 ‘페이퍼클립(Paperclip) 작전’이라는 작전명으로 수천명의 나치 독일 과학기술자들을 미국으로 이주시켰고, 이후에도 H1B 비자 등을 통해 해외의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의 용광로가 되었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지금의 미국은 바로 그 과학기술계열 이민자들이 만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외국 과학기술자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해 자국의 과학기술경쟁력을 추동했고, 중국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백인계획, 천인계획, 만인계획으로 이어지는 과학기술 인재고용에 국가의 사활을 걸었다. 한국의 과학기술계도 1960~70년대 미국 및 일본에서 귀국한 유학파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고급과학기술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대표적인 국가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과학기술인재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것도 아니다. IMD 연감에서 드러나는 한국 과학기술경쟁력의 약점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국가의 투자는 충분하지만 과학기술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나라라는 점이다. 내국인조차 기회만 되면 미국이나 중국 등으로 이민을 떠나려 하고, 외국인들은 중국이나 싱가폴, 대만,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 과학기술연구를 하는 걸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는다.
한국의 과학기술경쟁력에 대한 고민은 바로 이들 과학기술인재들에게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나라가 될 수 있느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해외 인재를 받아 과학기술경쟁력을 유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패권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대학 및 연구기관의 교육경쟁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경쟁력이 상승하면서도 교육경쟁력은 하락하는 나라다. 2021년 한국의 대학교육경쟁력은 47위로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안 그래도 인구절벽으로 대학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 한국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한탄을 하고, 대학내 비정규직 강사들의 처우는 점점 더 열악해지는 상황이다. 한국 대학교육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얼마전 네이처 인덱스는 아시아태평양 연구기관 순위를 발표했다.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기관 중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곳은 없었다. 10위권의 연구기관 중 동경대와 싱가포르국립대를 제외한 모두가 중국 소속이다. 네이처가 예측한 아시아의 유망한 과학기술연구기관 200개 중 170여개는 모두 중국에 있다. 한국은 겨우 9개 대학이 이름을 올린 정도다.
이런 지표들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지표를 넘어야 보이는 잠재력과 한국의 미래에 대한 지식인과 지배층의 철학과 비전일 것이다.
얼마전 몇몇 학교에서 QS 대학랭킹 인터뷰에 잘 대답해달라는 메일을, 그 학교의 총장 이하 여러 교수들로부터 무슨 스팸메일처럼 연속해서 받은 적이 있다. 대학 교수들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생각보다 대학평가에 매달려야만 하는 이 기괴한 현상은, 한국사회를 떠받쳐야할 이들이 한국의 실력에 자신이 없다는 기시감으로 다가왔다.
관료들은 국가의 실력보다 지표에서 점수를 더 받는데 몰두하고, 교육자들은 대학평가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으려 로비나 하는 사이에 한국의 과학기술경쟁력은 죽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과학은 숫자로 표현되는 세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제대로 측정되지 않은 숫자들을 가지고 그 숫자의 의미와 숫자가 나타내는 본질을 외면한 채 오직 숫자에만 매몰되는 사람을 우리는 과학자라 부르지 않는다.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바로 이런 숫자에 집착하는 관료와 정치인의 무지 속에 수십년 동안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지표와 순위가 아닌, 과학기술 현장에서 벌어지는 혁신을 매일 접할 수 있을 때 한국의 과학기술경쟁력은 의미 없는 숫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브레인
문재인 정부에서 과학기술정책의 컨트롤타워는 과기정통부에서 ‘왕차관’이라 불리던 문미옥 전 차관이었다. 그는 문재인 정권에서 여성 과학기술인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특혜를 누렸다. 민주당 비례대표 7번으로 국회의원이 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과학기술비서관이 되었으며, 포스텍의 창조과학자 박성진 등을 장관 후보에 추천하는 등 거듭되는 실수로 문재인 지지층에서도 비판의 표적이 되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과기정통부 차관에 임명했다.
이후 차관직을 내려놓고 21대 총선에서 송파구 갑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정치에서 거리를 두는 듯 했으나 2021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원장에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당시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문미옥 원장이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 과기부 차관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과학기술계를 표류하게 만든 책임을 져야 하는 인사인데도 불구하고 자중하지 않고 여전히 자리에만 연연한다”라고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문미옥이 원장으로 부임한 STEPI는 ‘과학기술활동 및 과학기술부문과 관련된 경제사회의 제반 문제를 연구분석함으로써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수립과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함’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1987년 설립된 정부출연연구소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을 기획하고 수립하는 이 기관이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이라는 점이다. STEPI와 헷갈리는 정부조직으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KISTEP)’이 있는데, 이는 과기정통부 소속이다.
사실상 이 두 조직이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씽크탱크라 할 수 있을텐데, 두 조직은 행정학, 경영학, 경제학 전공의 원장과 연구원들이 사실상 연구원을 장악하고 과학기술현장과 동떨어진 공상소설 같은 정책을 남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의 우수한 연구기관에서 과학기술행정과 경영학을 연구한 박사급 인력들이 내놓는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분석과 제안이 모두 의미없는 보고서 일리는 없을 것이다. 문미옥이 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STEPI는 2022년 STEPI Outlook이라는 ‘과학기술혁신정책 전망’을 내놓았다.

나는 STEPI의 연구원들과 문미옥 원장이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고,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이들이 내놓은 전망을 가지고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과학기술정책의 과오를 드러내볼 생각이다. ⑤번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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