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Y 데이의 편지: 연구는 팔리지 않는다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연구가 상품이 된 시대의 비극 입시에 팔리는 미 명문대 교수들의 몰락
- 학문의 스펙화와 시장의 탄생 미국 아이비리그 입시가 ‘연구 경험’을 필수 스펙으로 요구하면서, 고등학생 논문에 교수 이름을 붙여 파는 수만 달러짜리 ‘교육 자본주의’ 시장이 고착화되었다.
- 과학적 윤리의 붕괴와 제도적 부패 연구비 압박을 받는 교수와 스펙이 급한 부모가 결탁하여 논문을 찍어내는 구조는, 은밀한 비리를 넘어 아예 ‘공개된 시장’으로 변질되어 과학의 신뢰도를 근본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 재현성 위기의 가속화 돈으로 산 논문들이 지식 체계에 편입될수록 과학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가짜 지식의 탑’이 되며, 결국 자본이 없는 인재와 과학 정신 자체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내 이름 붙은 논문은 1만 달러야”
지난 27일 오전 9시(미 동부 시간 기준 3월 26일 목요일 오후 7시)는 아이비(IVY) 데이였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콜롬비아. 미국 명문 사립대학들이 일제히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로 유명하다. 그날 밤, 어딘가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있었을 것이고, 어딘가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리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웃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시장의 설계자들이다.
소셜미디어에 버젓이 올라온 어느 아이비리그 교수의 포스팅을 보았다. 내용은 단순하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 프로그램, 싼 건 1,000달러, 비싼 건 아이비 교수 이름을 붙이면 1만 달러 이상이다.
Lxxxx, Cxx, Cxxx, Cxxxx Ixxx, Pxxxx 등 입시용 연구 컨설팅 업체(extracurricular research) 들이름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가슴을 친다. “우리 애, 꼭 돈부터 써야 리서치 시작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나는 한 과학자로서, 그리고 이 구조의 외부에서 오래 싸워온 한 사람으로서 대답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연구가 상품이 된 날
먼저 이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사기나 일탈이 아니다. 교육과 자본주의가 교배한 필연적 결과다.
미국의 대학 입시는 오래전부터 ‘연구 경험’을 차별화 요소로 요구해왔다. SAT 점수, GPA만으로는 부족하고, 논문 한 편, 학회 발표 한 번, 교수 추천서 하나가 합격의 무게를 결정한다. 수요가 생겼다. 그러자 공급이 따라왔다. 그 공급자가 바로 ‘대학교수’들이다.
미국 명문대학 교수들의 연봉은 일반인의 상상과 다르게 그리 높지 않다. 종신교수를 받기까지의 경쟁은 살인적이다. 연구비는 늘 부족하며, 부업은 제한적이다. 그런 그들에게 한 학기에 수만 달러를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고등학생에게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연구실 학생들을 동원해 논문을 쓰게 해주면 된다. 아이는 논문을 얻고, 부모는 합격 가능성을 사고, 교수는 수입을 얻는다. 시장은 완성된다.
이것이 교육자본주의다. 연구는 더 이상 진리를 향한 여정이 아니다. 이력서에 붙이는 상품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미국을 비웃을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는 이미 보았다. 자신의 대학원생을 동원해 자식의 이름을 논문에 올린 교수들을. 유력 정치인이 친분 있는 교수에게 자녀를 보내 단기간에 논문 저자가 되게 한 사건들을.
그 사건들이 터졌을 때 한국 사회는 분노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것이 공개적으로, 버젓이, 소셜미디어 홍보물로 올라온다. 가격표와 함께.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그것을 ‘프로그램’이라고 포장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그것은 ‘은밀한 연줄’이었고, 미국의 그것은 ‘공개된 시장’이다. 어느 것이 더 정직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것이 더 부패한지는 분명하다. 제도화된 불평등이 은밀한 비리보다 더 무섭다.
타운랩, 혹은 내가 꿈꾸었던 것
나는 타운랩(Town Lab)을 구상했던 사람이다. 대학의 담장 밖에서, 연구비와 임용의 압박 없이, 시민들과 함께 과학을 하는 공간. 누구든, 돈이 없어도, 유명 교수를 모르더라도, 지적 호기심만 있으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그 구상이 얼마나 어리석고 낭만적이었는지를 이 시장의 실체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연구는 원래 팔릴 수 없는 것이어야 했다. 초파리 한 마리를 관찰하며 유전자의 비밀을 캐는 행위에는 가격이 붙을 수 없다. 그것은 인류가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공공재’다. 그런데 지금, 그 공공재에 1만 달러짜리 가격표가 붙었다. 아이비리그 교수의 이름값을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연구실에서 제자들에게 늘 말했다. 과학자의 이름은 ‘데이터가 결정한다’고. 그런데 이제 과학자의 이름은 ‘시장이 결정한다’. 얼마에 팔리는지가 그 이름의 가치다.
진짜 피해자는 누구인가
이 시장에서 가장 명백한 피해자는 ‘돈이 없는 아이들’이다. 재능은 있으나 1만 달러가 없는 아이들. 연구에 대한 진짜 열정이 있으나 아이비 교수를 아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
하지만 더 깊은 피해자가 있다. 과학 그 자체다.
논문이 입시 도구로 전락할 때, 연구의 신뢰성은 무너진다. 고등학생이 수개월 만에 논문 저자가 되는 구조 속에서, 그 논문들이 인용되고 쌓이고 과학의 지식 체계에 편입될 때, 우리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식의 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재현성 위기(replication crisis, 과거에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유명 연구 결과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실험해 봤더니, 결과가 똑같이 나오지 않는 현상- 편집자주)가 이미 과학계를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교육자본주의는 기름을 붓는다.
과학의 위기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윤리의 문제다.
그러니까, 꼭 돈을 써야 할까?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 애, 꼭 돈부터 써야 리서치 시작할 수 있나요?”
솔직하게 답하겠다. 지금 이 시스템 안에서는, 그렇다. 불평등한 입시 구조, 연구를 스펙으로 요구하는 명문대학들, 그 수요를 먹고 사는 교수들과 컨설팅 업체들이 만든 이 생태계 안에서는, 돈이 없으면 불리하다.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전제가 잘못 끼워져 있다. 왜 아이비리그에 가야 하는가. 왜 논문이 스펙이어야 하는가. 왜 연구는 입학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가.
그 전제를 의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이 시장의 소비자로 남는다. 나는 그 전제를 의심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타운랩은 그 시도였다.
실패했을 수도 있고, 여전히 진행 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연구는 팔리지 않는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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