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도려낸 중국, ‘심장’ 멎게 한 한국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한중(韓中)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엇갈린 운명
- 중국의 외과적 수술 중국은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권과 행정권을 결합해 연구비를 착취하던 ‘학계 군벌’들을 **솽카이(당적·공직 박탈)**로 영구 퇴출하는 무관용 원칙을 단행했다.
- 한국의 무차별 학살 반면 한국은 진짜 카르텔인 관료와 폴리페서는 놔둔 채, 타노스처럼 R&D 예산을 난도질하여 신진 연구자들의 생명선인 ‘풀뿌리 연구 사다리’를 통째로 붕괴시켰다.
- 거버넌스의 극명한 대조 부패한 기생충(행정 권력)만 핀셋으로 도려내며 효율을 극대화하는 중국과 달리,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기초과학 생태계)을 태워버린 한국 과학기술의 참혹한 미래를 경고한다. 정작 과학계 관료주의는 손도 대지 못했다.
생물학적 진화처럼 지식 생태계 역시 치열한 군비경쟁의 장이다.
수많은 ‘보통 과학자’들이 미시적인 실험실에서 피땀 흘려 축적한 데이터는 동료 평가라는 거름망을 거쳐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진화한다.
과거에는 순수한 진리 탐구의 영역으로 여겨졌으나, 혁신의 속도가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21세기에 이르러 이 생태계 내부에는 숙주의 양분을 착취하고 지배하려는 극도로 탐욕스러운 돌연변이가 출현했다. 바로 학술 생태계에 똬리를 튼 ‘행정 권력과 관료주의’라는 기생충이다.
현재 글로벌 기술 패권을 놓고 사활을 건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동아시아의 두 지식 생산국, 중국과 한국이 이 기생충을 다루는 방식과 거버넌스는 참혹할 만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우리에게 뼈아픈 시사점을 던진다.
중국이 정조준한 진짜 암세포
중국은 ‘과학기술 강국’이라는 국가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학계 내부의 부패를 척결하는 전례 없는 외과적 수술에 돌입했다.
중국 공산당 최고 사정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CCDI) 주도로 2024년부터 속도를 내고 있는 이 대대적인 사정은 대중을 향한 단순한 보여주기식 먼지떨이가 아니다.
미국과의 반도체,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단 한 푼의 연구비도 부당하게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아래, 비효율의 온상인 ‘행정 권력의 부패와 남용’을 도려내겠다는 체제 생존의 선언이다.
중국 당국이 가장 치명적인 암세포로 인식한 것은 행정 권력과 학문 권력이 기형적으로 융합되어 탄생한 이른바 ‘학계 군벌(Academic Warlords)’이다. ‘경제 행동 및 조직 저널’에 발표된 실증적 연구는 이들의 착취 구조를 수치로 명확히 증명한다.
명문대 학장 등 핵심 행정직에 오른 인물들의 특허 출원 건수를 분석한 결과, 승진 후 재임 기간 동안 특허 출원 건수가 이전보다 무려 15.2%나 비정상적으로 증가했다가 퇴임 직후 원래 수준으로 급감하는 전형적인 ‘학장 효과’가 확인된 것이다.
이는 순수한 연구 역량의 상승이 아니라, 직위가 부여하는 막강한 행정 권력과 연구비 배분 권한을 무기로 일선 연구자들의 특허나 논문에 부당하게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기생적 착취 행태의 산물이다.
권위주의 국가조차 기초과학의 뼈대를 부식시키는 부패 앞에서는 철저한 무관용 원칙을 적용했다.
베이징대 최초의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생) 최연소 부총장으로 추앙받던 런위중은 직위 남용과 권력 거래 혐의로 공직과 당적을 모두 박탈당하는 최고 수위의 ‘솽카이(雙開, 공산당 장적 박탈, 모든 공직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고, 중남임업과학기술대의 당 서기를 비롯한 학계 실력자들도 줄줄이 영구 추방되었다.
더 무서운 점은 이들의 개혁이 꼬리 자르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국의 과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자금 배분 방식부터 성과 평가 시스템까지, 고질적인 관료주의적 갑질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보다 제도화되고 효과적인 메커니즘(institutionalised and effective mechanisms)’의 구축을 강력히 촉구하며 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치고 있다(주- 中 ‘학계 부패’ 대대적 사정…행정 권력 부패·남용 정조준 | 연합뉴스, accessed March 7, 2026, https://www.yna.co.kr/view/AKR202603050649000091.)

타노스의 손가락, 붕괴하는 기초연구의 사다리
이 대목에서 기시감과 참담함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지식 생태계의 ‘기생충’을 핀셋으로 도려내며 연구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을 때, 한국은 ‘최고 권력의 관료주의적 남용’으로 국가 과학기술계 전체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놓는 기현상을 연출했다.
이른바 ‘R&D 카르텔’을 때려잡겠다며 하루아침에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난도질해버린 비극적인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시스템과 구조를 개혁하려는 치열한 고민은 전혀 없이, 그저 엑셀표 숫자 지우듯 무지성으로 예산을 날려버렸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한범 교수의 절규처럼, 이는 영화 어벤져스의 최악의 빌런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겨 인류의 절반을 무작위로 날려버린 것에 비견되는 거대한 촌극이다(주- “잘못된 정책에 한국 과학 말라죽고 있다”...서울대 교수, R&D 예산삭감 ..., accessed March 7, 2026, https://www.mk.co.kr/news/economy/112567353.)
2023년 약 2,800여 개에 달하던 중견연구와 기본연구 과제는 이듬해 풀뿌리 역할을 하던 기본연구가 통째로 폐지되면서 1,800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불과 1년 만에 개수로는 40%가 삭감되었고, 1,000명에 달하는 연구자가 아예 연구비를 신청할 기회조차 박탈당해 연구비 ‘0원’의 집단 학살을 당한 것이다.
지식 생태계는 몇몇 스타 과학자들의 천재성으로만 굴러가는 기계가 아니다.
수많은 보통 과학자들이 실패를 거듭하며 축적한 잉여의 데이터들이 교차하고 결합될 때 비로소 거대한 혁신이 잉태된다. 5,000만 원 남짓한 소형 과제는 랩에 처박혀 묵묵히 피펫팅하며 밤을 새우는 대학원생들과 포닥들을 키워내는 생명선이자, 젊은 신진 연구자가 독창적인 가설을 검증하여 중견으로 도약할 수 있는 필수적인 ‘연구 사다리’이다.
이 중간 단계의 사다리를 부숴버리고 단기 성과가 보장되는 극소수의 대형 과제에만 예산을 몰아주는 낡은 방식은, 아래에서 위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의 통로 자체를 밀봉해 버렸다. 소규모 연구의 다양성이 말살된 단일 경작 농장 같은 생태계는 외부 충격에 대한 복원력을 잃고 서서히 뇌사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관료주의 해체와 민주적 지식 생태계의 복원
한국의 정책 실패가 끔찍한 진짜 이유는, 예산을 난도질하며 부르짖던 ‘카르텔 척결’이라는 명분이 완벽한 허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진짜 척결해야 할 ‘연구비 갈라먹기’와 현장을 통제하는 ‘관료들의 행정 폭력’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정작 카르텔의 정점이자 현장을 쥐어짜는 관료들과 해바라기 폴리페서들은 예나 지금이나 굳건히 건재하며 특권을 누리고 있는데, 엉뚱하게 생태계의 집 기둥을 뽑아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진짜 비극은 정교한 계획의 부재가 아니라, 현장성을 상실한 ‘실행의 공동화(空洞化)’와 그 틈을 메운 ‘행정적 거품’에 있다.
고위 관료들이 관료주의가 정성껏 차려놓은 화려한 의전과 공허한 구호의 유혹에 취해 있을 때,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해야 할 AI 기획의 수장들이 정작 자신의 다음 보직이라는 사익(私益)에 눈독을 들일 때,
그리고 연구 현장의 생리를 전혀 모르는 비전공자들이 책상머리에서 허황된 예산을 기획하며 현장을 통제하려 들 때,
우리가 목도한 지식 생태계의 참혹한 실패는 언제든 반복될 준비가 되어 있다. 실행력 없는 화려한 수사(修辭)가 현장의 진실을 압도하는 한, 한국 과학기술의 운명은 ‘보통 과학자’들의 절규를 뒤로한 채 끊임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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