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캠프의 철학자들...과학기술 외면한 한국정치
이재명은 도올, 윤석열은 법사들과 손잡아 대선후보들, 과학기술을 뭘로 보고 있는가
대선후보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대전 카이스트에선 과학기술정책대학원과 카이스트 총학생회 등이 주관하는 ‘대선캠프와의 과학정책 대화’가 열렸고, 서울에선 과총(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이 주관하는 ‘대선후보 초청 과학기술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내용을 말하기 전에 과연 이런 행사를 주관한 과학기술계가 진정으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행사를 열었는지 묻고 싶다. 비슷한 시기에, 국민의 눈높이에선 비슷비슷해 보이는, 온갖 과학기술단체가 둘로 쪼개져 서울과 대전에서 각각 바쁜 대선후보를 부르는 전략을 써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한 쪽은 카이스트와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등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젋은’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담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은 ‘과총’을 중심으로 30여개 단체가 뭉쳤다는데, 외부에서 보기엔 과학기술계의 공익보다 각 단체의 자존심 싸움으로 행사를 둘로 쪼갠 못난 짓으로 보인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한심한 ‘중인의식’
국민의 관심이 쏠린 경제문제를 해결할 대선후보들의 철학과 비전은 유튜브 방송 ‘삼프로TV’가 온 국민에게 확실히 전달해주었다. 과학기술계 처럼 화려하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은 행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경제에 관한 철학과 비전만큼은 이제 국민들이 확실히 대선후보 간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둘로 쪼개진 과학기술정책 토론회의 문제를 넘어, 유력 대선 후보들이 두 행사 모두에 참여하지 않거나 한 쪽 행사에만 참여하는 등의 선택으로 행사는 이미 파행으로 끝났다.
언론도 파행으로 끝난 과학기술정책 토론회만 조명했을 뿐, 후보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과 비전은 결국 알 수 없게 되었다. 대전 행사를 주관했던 카이스트의 총학생회장은 두 유력 후보가 “청년과 과학기술을 강조했지만, 결국 말과 행동이 달라 실망감이 컸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후보들이 과학을 국정 운영에 필요한 주체라기보단 객체로 판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한국 대선후보들에게 과학기술은 ‘계륵’이고, 과학기술인은 ‘중인’이다. 대선후보 캠프엔 언제나 과학기술전문가들이 몰려들지만, 그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엄연히 존재하고 과학기술이 한국사회에 중요한 분야라는 인식 때문이지, 그들이 캠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적은 없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시각은 박정희 시대에 확립되었고, 그 패러다임 속에서 한국의 ‘과학기술담론’은 계속 헛바퀴를 돌고 있다.
나는 과학기술의 강국을 꿈꾼다면 쓸데 없는 화려한 공약을 거두고 ‘사람’을 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노쇄해버린 과총이 대선후보들에게 물었던 질문과 젊음을 내세운 카이스트에서 등장한 질문들 모두 과학기술을 국가발전의 도구로, 과학기술인을 경제성장의 노예로 바라보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구태였다. 그 누구도, 과학기술인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의 처우를 미국과 중국처럼 올려줄 것인지 묻지 못했다.
파행은 예정된 일이었지만, 행사를 주관한 두 세력 모두 자신들이 무의식적으로 빠져 있는 ‘중인의식’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그 중인의식이 세대를 가로질러 지속된다면 한국에서 메르켈이나 시진핑 같은 국가지도자를 만날 일은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표가 있는 방향으로 걷는다. 당연한 일이다. 과학기술정책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하지만 국민에게 인기 없는 주제는 당연히 후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요하다는 당위를 내세우기보다 대선후보들이 부르지 않아도 오게 만드는 행사를 기획했어야 한다. 과학기술계가 사심을 모두 내려놓고 중의를 모았다면 가능했을 일이지만, 과학기술계가 주도한 두 행사는 가장 낡은 형태로 진행되었고 다른 분야와 아무런 차별점도 찾을 수 없었다. 말로는 디지털대전환이니 메타버스니 하는 말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한국 과학기술계는 ‘이그노벨상(미국 하버드대의 유머과학잡지사에서 기발한 연구나 업적에 대해 주는 상으로 노벨상을 풍자해 만들었다-편집자 주)’을 만든 선진국의 과학기술계처럼 참신하고 엉뚱한 창의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이가 중요한게 아니라, 뜻과 열정이 중요하다는걸 다시 깨닫게 만든 처참한 행사를 통해 과학기술계가 교훈을 얻길 바란다.
한국정치의 뿌리 깊은 문과적 취향
바이든의 과학중시 표명
코로나19 사태에서 파우치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바로 옆에서 과학적 사실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 시민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떠올랐고, 바이든 정부는 ‘과학’이라는 단어를 트럼프 정권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축으로 사용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과학계에서 모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권위 있는 유전학자 에릭 랜더를 과학기술정책국장으로 지명하고, 과학기술정책국의 비범함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나아가 한화 약 2,098조원 규모의 ‘미국 구조 계획’을 발표하고, 대규모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바이든은 “세계적 명성의 과학자들이 우리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과학, 사실, 진실에 근거하도록 해줄 것이며, 과학은 언제나 행정부 최선에 서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과학자가 정치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연구하며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국민들에게 직접 말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대선후보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메시지다.
도올과 동학을 얘기한 이재명
이와는 반대로, 한국의 대선후보들은 조선시대부터 식민지를 거쳐 내려오는 뿌리깊은 문과적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전 카이스트에서 젊은 과학기술인을 만나는 자리엔 불참했지만, 그 바쁜 시간을 쪼개 도올 김용옥을 만나 대담을 나누는 일에는 열심이었다. 도올은 이재명 후보를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극찬했고, 둘은 농촌에 대한 대담을 진행했다.
농촌 문제 또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아젠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반도체와 인공지능으로 전세계가 미·중을 중심으로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이 시대에 과연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만나야 했을 사람이 늙은 철학자였는지, 아니면 젊은 과학기술인이었는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이재명 후보는 과학기술에 대한 강연에서 일본군의 캐틀링건에 몰살당한 동학군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에 중요하다는 인식은 존중하지만, 21세기에 동학이 국가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철학자와 동학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대선후보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법사들에 둘러싸인 윤석열
윤석열 후보도 과학기술인보다는 주변에 철학자가 많은 모양이다. 게다가 그 철학자들은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위 ‘철학관’의 법사와 도사들인 것 같다. 처음엔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나와 온갖 추측을 낳더니, 그 다음엔 그 배우자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각종 법사와 도사들을 윤 후보에게 소개해주었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이젠 무슨 법사가 후보 캠프에 중요한 직책을 얻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우리 국민이 무당이 다스리는 나라를 뒤집으려고 그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왔던 게 겨우 몇 년전 이야기다. 윤석열 후보와 캠프는 부인 김건희 씨를 비롯해 후보 주변에서 하이에나처럼 기회만 노리고 있는 각종 무속인들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 의혹을 깨끗이 떨쳐내지 못한다면, 바로 그 무속인들과의 연결점이 윤석열 후보의 가장 큰 약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학자는 커녕 철학자나 사상가도 아니고, 수염과 머리를 기른 법사들이 대선캠프에 득실대는 이 괴이한 풍경은,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한 좌절감으로 다가온다.
‘암기식 철학자’와 손을 잡은 안철수
안철수 후보는 아예 ‘과학기술’을 캠프의 아젠다로 내걸고, 자신이 유일한 이공계 후보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던 안 후보가 선대위 원톱으로 내세운 인물은 놀랍게도 철학자 최진석이었다. 최진석 교수가 실천철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통해 펼쳐온 사상이 안철수 후보의 철학과 일치한다면 이런 선택을 비판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 철학자가 21세기에 여전히 조선시대 서당식 교육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는 ‘건명원’이라는 교육기관의 원장인데 이 곳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양성하겠다며 소수정예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건명원을 검색하면 ‘건명원 실패’라는 연관검색어가 가장 먼저 뜰 정도로, 이 곳의 교육은 계속되는 암기의 연속이라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건명원의 초대원장이었던 서울대 교수는 명백한 표절로 원장직에서 직무정지되었지만, 단 한번도 자신의 표절에 대해 반성한 적이 없다.
최진석 교수는 ‘외우기와 창의성’이라는 칼럼에서 사람은 시를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으로 가를 수 있다고 말하며 “무엇보다 시를 지배하는 인간이 가장 상급”이라는 지극히 문과적 취향을 보이는 철학자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작금의 시대적 상황이 명청 교체기의 조선과 똑같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친중노선을 비판했다. 그리고 이 인터뷰에서도 다시 한번 자신의 문과적 취향을 드러내는데 “한국이 생존 발전하기 위해선 철학적 높이에서 사유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참고로 그는 5·18특별법이 자유를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정신을 위반한다는 비판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물론 그는 자신의 생각을 무려 ‘시’로 썼다. 시가 인간 사유의 최고라고 생각하는 철학자를 선대위 원톱으로 앉힌 안철수 후보가 과연 과학기술에 대해 무슨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심상정은 한국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토론회에 불참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아무런 비전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가 며칠간 대선일정을 중단했을 때, 나는 페이스북에서 정의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말로 충분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정의당 대선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정의당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이 정의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벌어질 일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심상정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에서 국가경쟁력은 무너지고, 국민의 삶은 불안정해질 것이다. 경제는 더욱 망가질 것이고, 부동산은 물론 외교 또한 믿고 맡기기엔 한국의 안보가 위험해질 것이다. 국민은 거기까지 판단을 하고 있다.
비록 이번에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정의당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길은 인기에 영합한 타투입법 같은 법안들 외에 정의당이 수권정당이 되었을 때 만들 나라의 모습을 뚜렷하게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 정의당이 그렇게 증오하는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무엇이며, 정의당은 윤리적 비판 외에 어떻게 대기업들과 함께 한국사회를 경영할 수 있는가. 한국의 50년 후 먹거리 산업은 무엇인가. 바이오산업에서 한국의 강점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풀어야할 규제는 무엇인가.
나아가 에너지 소비의 측면에서 소형모듈원자로는 어떻게 도입해야 하고, 만약 끝까지 대체에너지를 원한다면 그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까지 정의당 대선 후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애완동물 건강보험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보험을 나라가 미·중의 경제적 식민지가 된 후에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선은 막바지로 흐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들리는 소식은 후보와 캠프 간의 비방과 정치적 이권 다툼 뿐이다. 한국의 미래가 과학기술경쟁력에 달려 있다는 소리는 아무런 언론의 조명도 받지 못한다. 망국이 시작되던 19세기 말의 조선이 그랬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제발 누군가는 한국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권력의 아전투구장으로 변질된 이 선거에서 국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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