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에 끌려다닌 文정부 과학기술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평가 ②] 청년·여성과학인 지원..지위 향상엔 무관심 과학기술을 인문계 시민사회가?...’리빙랩’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문미옥 당시 과학기술보좌관.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문미옥 당시 과학기술보좌관. 사진= 연합뉴스

‘사람이 먼저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 캠프의 슬로건이었던 구호다. 정철이라는 홍보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슬로건은 이후 2017년 캠프에서 ‘나라를 나라답게’로 변용되었고, 이재명 캠프에선 ‘이재명은 합니다’로 이어졌다. 슬로건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서 과학기술인에 대한 존중은 당연한 상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관련 국정과제 중에서, 과학기술인에 대한 과제는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조성’과 ‘청년과학자와 기초연구 지원으로 과학기술 미래역량 확충’ 둘 뿐이었다.

'문재인 미터' 홈페이지.
‘문재인 미터’ 홈페이지.

’사람이 없는’ 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2019년 문재인 정부 3주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중간평가하는 ‘문재인미터’의 작업에 동참했다. 당시 33개의 과학기술관련 공약을 중간평가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국가비전 속에서 과학기술인은 사람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 시절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부품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인문학 정부에서 서민과 노동자, 여성과 청년, 소수자와 장애인은 사람으로 존중받고 정책으로 보호되지만, 과학기술인은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는 국가연구 개발과제에 참여하는 청년 과학기술인의 근로계약을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정권 초기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의 주도 하에 정부출연연구원에 근무하는 학생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근로계약 체결이 의무화되었으나, 정출연 연구자들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체결된 근로계약 제도가 과연 연구현장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까지 정출연 일부의 청년 과학기술인을 제외하면, 여전히 청년과학자를 지원하겠다던 문재인정부의 공약은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부 정출연과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 국한되어 추진되었다. ‘청년 과학기술인을 포함한 모든 단계 연구자의 적정 임금체계 마련’이야말로 과학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문재인정부의 유일한 공약이었으나, 한국에서 연구직의 적정 임금체계는 마련되지 않은채 문재인정부의 손을 떠났다.

청년 과학기술인 연금은 백지화되었고, 과학기술 연구직에서조차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되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윤석열정부의 초대 과기정통부장관으로 지명된 이종호 교수는 과학기술 인재를 블라인드 채용하는건 말도 안된다며 선을 그었다. 선진국에서도 과학기술인재를 블라인드로 채용하는 국가는 없다.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조차 정원미달이 될 정도로⁠ 문재인 정부 하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과학기술분야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든 눈에 띄는 성과는 전혀 없었지만, 적어도 문재인 정부가 신진연구자를 위한 여러 체계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는 점만은 인정하고 싶다.

‘청년’ 정책은 진보와 보수, 여와 야를 막론하고 지난 정권 내내 정치권의 핵심적인 화두였고,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인을 위한 정책의 최우선 기조를 청년과학기술인에 대한 지원으로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실제로 신진연구자에 대한 연구비지원은 대폭 증가했고, 세종과학펠로우십, 혁신선도 고급인재 허브지원사업, 생애첫연구 지원사업⁠ 등이 신설되었다.

국민소득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세계1위에 달하는 한국은 이제 신진연구자들이 연구자로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는 곳이 되었다. 적어도 청년과 신진연구자에 대한 지원과 한국의 연구개발비에 국한해 본다면, 여전히 연구개발비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과학기술자사회는 과연 지원에 비해 얼마나 충분한 성과를 냈는지를 먼저 반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청년’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과학기술인에 대한 정책에서 집중한 키워드는 ‘여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여성과학기술인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2017년부터 ‘여성과학기술인 R&D 경력복귀 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있으며, 출산 및 육아휴직자의 직무에 적합한 대체인력 풀을 확보하고 일자리 매칭을 지원하는 사업도 꾸준히 추진되고 있고, 이공계 여학생 맞춤형 취업 역량 강화 프로그램도 제공되고 있다.

특히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원활동이 펼쳐지고 있고, 문재인 정부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미옥 전 차관을 중심으로 이공주 과학기술보좌관, 박수경 과학기술보좌관, 첫 여성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인 임혜숙 교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과학기술계에서 소외되었던 여성과학기술인들을 전면에 배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국과위 등에서 여성의 비율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과 여성과학기술인을 과학기술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정책이 전문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좋은 결과로 나타났느냐의 여부는 다각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문재인 정부는 청년과 여성이라는 정치적 연계점이 있는 분야에선 과학기술정책에서 사람을 우선시했으나, 과학기술인 전체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같은 문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사회혁신’ 아젠다에 강제로 속박된 과학기술

과학기술과 관련해서 문재인정부의 포퓰리즘 기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두 분야는 ‘탈원전’과 ‘리빙랩’ 사업이다. 이중 탈원전은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으니 특별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이 바로 탈원전 관련 수사 덕분에 문재인 청와대와 큰 갈등을 겪고, 결국 대선후보까지 되었다는건 이제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백지화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잠정 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까지 가동하며 시민사회의 의견을 물었지만, 공론화위원회는 문재인정부의 정책기조와 반대되는 판단을 내렸⁠고, 문재인정부가 밀어붙였던 탈원전 정책은 바로 그들이 믿었던 시민사회에 의해 제동이 걸리게 되는 역설을 마주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문미옥 전 과학기술보좌관이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으로 검찰의 수사라인에 오르기도 했고⁠, 탈원전의 대안으로 야심차게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신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은 태양광사업 특혜의혹에 휩쌓인 운동권 대부인 허인회씨의 구속과 더불어 여의도 17배 면적의 산림을 베고 태양광을 설치하는 소위 ‘좌파 시민단체 비즈니스’로 전락하면서⁠ 이 사업에 동참했던 기업들이 손을 빼버린 ‘완벽한 실패’로 평가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육성정책이야말로 전문가보다 시민사회와 여론에 근거해 정책을 입안하고, 철저한 과학적 검증보다 지지층의 정책선호도만 믿고 추진한 문재인 정권 포퓰리즘 정책의 상징적 사례라 말할 수 있다. 경제분야에선 소득주도성장이 경제학자 및 경제전문가 대부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추진되어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고, 부동산 정책에 대해 무지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 의해 주도된 각종 부동산 관련 정책들은 처참하게 실패해 서민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런 맥락에서 추진된 리빙랩(살아있는 실험실, Living Lab)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과학기술분야에 적용된 사례로,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정책 등에 비해서는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리빙랩이야말로 과학기술에 무지한 정권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국가의 과학기술경쟁력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행정안전부는 2017년 ‘사회혁신 추진단’을 발족하고 “시민주도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정부는 뒷받침하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 구현”을 비전으로 삼았다. 당시 사회혁신 추진단은 국장급인 단장 아래에 기반조성팀, 시민소통팀, 정책협업팀, 디지털 사회혁신팀, 시민해결팀 등 5개팀으로 꾸려졌고, 행안부 외에 다른 부처와의 협업을 위해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통부 등 관계부처의 인력을 파견받고 사회혁신과 관련한 공조체제를 형성하기도 했다. 2018년이 되면서 ‘사회에 책임지는 연구혁신(RRI)’에 대한 연구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등을 통해 등장하기 시작한다.

RRI는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과학기술개발에 투자되는 연구개발비는 국민의 세금이며, 따라서 연구개발의 결과는 경제적 효율성이나 연구자와 기업 등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RRI는 2차세계대전과 원폭투하 등의 사건을 겪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온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맥락의 정책일 뿐 그다지 특별한 개념도 아니다.

문제는 이 RRI라는 개념 속에 과학기술의 연구혁신 과정에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참여 모델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RRI 논의를 주도하는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과 오래전부터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주장해왔던 과학사회학자들은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전과정에 시민사회가 관여해야만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의 논의는 ‘과학상점’ 등으로 구체화되기도 했으나, 과학상점 모델은 ‘과학기술자의 새로운 사회적 실천’이라는 찬사까지 들으며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각광을 받았지만 곧 실패하고 만다.

시민사회가 과학기술의 전과정에 관여해야 한다는 과학기술민주화의 주장은, 과학기술계에서 줄곧 외면당했지만 2005년 황우석 사태를 기점으로 각 대학마다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RRI에 대한 논의는 2013년 경부터 STEPI 등의 과학기술정책 싱크탱크를 통해 제안되기 시작했는데, 몇몇 연구자의 주도로 점차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의 개념으로 확장되어간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연구자들 대부분이 인문사회계열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과 이들이 자신들의 보고서와 논문을 통해 노골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제어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현장을 잘 모르는 정책관료들이 주조해낸 사회문제해결형 과학기술이라는 개념은, 문 정부가 집권하기 전까지 논의정도만 되는 단계에 머물다가 문 정부가 들어서고 시민사회단체의 구성원들이 대거 청와대와 행정부에 등용되면서 ‘리빙랩’이라는 사업을 통해 과학기술정책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③에서 이어짐.

글쓴이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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