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포퓰리즘에 종속된 文정부 과학기술정책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평가 ①] ‘인문학 정부’, 과학기술에서 철저히 실패 박정희 패러다임 벗어나지 못해 과학기술의 무지, 인사참사 이어져
윤석열 당선자의 인수위원회가 ‘국민께 드리는 20개 약속’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정과제 이행의 지향점인 국정비전은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로 정해졌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2017년 7월 19일 문재인 정부 역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고, 당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국정비전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다. 두 정부 국정기조 모두에서 ‘국민의 나라’가 강조되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두 정부가 내세운 국정 목표 또한 크게 다르지 않고 좋은 어감의 단어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윤석열 정부의 5대 국정목표는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이고,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목표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였다. 국정목표에서 당선자의 이름을 지우고 나도 둘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훌륭한 말들 뿐이다. 굳이 차이를 발견하려 애쓴다면, 윤석열 정부는 ‘민간’을 강조하고, 문재인정부는 ‘국가’를 강조한다는 정도와, 윤 정부는 ‘미래’와 ‘글로벌’을, 문 정부는 ‘지역’과 ‘통일’을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둘의 국정목표를 바꾸어 놓아도 국민 누구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국정목표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두 정부의 정책기조는 몇가지 쟁점, 예를 들어 검찰권력과 원전정책 등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제와 국회의 양당정치로 상징되는 한국의 정치생태계는, 놀랄만큼 서로 닮은 세력들이 이념보다 권력을 위해 다투는 이전투구의 장소인 셈이다.


두 정부의 같지만 서로 다른 과학기술정책
두 정부 모두 ‘더불어 잘사는 경제’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라는 국정목표의 아래에 과학기술정책의 비전을 담아두었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전략은 ‘과학기술 발전이 선도하는 4차산업혁명’이었고, 미래부(과기정통부로 개명), 산업부, 국토부가 함께 추진하는 6개의 과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소프트웨어 강국, ICT 르네상스로 4차 산업혁명 선도 기반 구축(미래부)’, ‘고부가가치 창출 미래형 신산업 발굴ᆞ육성(산업부, 미래부, 국토부)’,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조성(미래부)’, ‘청년과학자와 기초연구 지원으로 과학기술 미래역량 확충(미래부)’, ‘친환경 미래 에너지 발굴ᆞ육성(산업부)’, ‘주력산업 경쟁력 제고로 산업경제의 활력 회복(산업부)’으로 구성된 과학기술 관련 6대 국정과제가 있었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전략은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으로 이어지고, 중기청(뒤에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됨)이 주도하는 3대 과제인 ‘혁신을 응원하는 창업국가 조성(중기청)’, ‘중소기업의 튼튼한 성장 환경 구축(중기청)’,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축소 등을 통한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중기청)’가 보인다. 즉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관련 전략은, 4차산업혁명 기반의 핵심기술을 육성하고 가능한 이를 중소기업의 혁신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 또한 경제 카테고리 아래 핵심전략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재도약과 중소벤처기업이 경제의 중심에 서는 나라를 내세웠는데, 문재인 정부의 4차산업혁명 기반의 고부가가치 미래형 신산업 발굴 및 육성 전략과 전혀 다르지 않은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특이하게도 윤석열 정부는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라는 사회 관련 국정목표 아래 과학기술관련 전략과 과제들을 포진해 놓았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 관련 국정목표의 주요전략은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 ‘국민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 ‘노동존중, 성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로, 문재인정부의 사회 관련 국정목표에는 과학기술관련 전략이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다만, 문재인정부는 사회 관련 국정목표의 아래에 ‘탈원전’ 전략을 포함시켰고,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응하는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 마련’을 포함시켜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약속14는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7개의 국정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순서대로 ‘국가혁신을 위한 과학기술 시스템 재설계(과기정통부)’, ‘초격차 전략기술 육성으로 과학기술 G5 도약(과기정통부)’, ‘자율과 창의 중심의 기초연구 지원 및 인재양성(과기정통부)’, ‘민관 협력을 통한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 실현(과기정통부)’,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구축 및 디지털 혁신 가속화(과기정통부)’, ‘우주강국 도약 및 대한민국 우주시대 개막 (과기정통부)’, ‘지방 과학기술주권 확보로 지역 주도 혁신성장 실현(과기정통부)’이 각각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윤석열정부는 교육부 주도 국정과제로 ‘100만 디지털인재 양성’을 포함시켜, 과학기술인재양성을 교육부의 주요 정책중 하나로 묶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에 종속된 문재인정부와 박정희 패러다임
각론에서 두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국정과제엔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첨단과학기술 발전전략을 최우선시하고, 과학기술인재육성을 주요시한다는 점에서 두 정부는 심지어 이전 박근혜 정부 및 역대 정부와도 별다른 차별점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두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흥미로운, 아니 어쩌면 의외의 차이 한 가지룰 발견할 수 있다.
조금 더 진보적인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과학기술전략은 철저히 경제에 종속된 과제로 인식되는 반면, 좀더 보수적인 정권이라는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기술전략은 산업발전전략과 구분되어 사회 분야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미래부’ 과제의 위치는 모두 경제 분야 카테고리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과기정통부’ 과제의 위치는 모두 사회 분야 카테고리에 위치하고 있다. 당선자의 철학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윤석열정부는 과학기술 관련 국정과제를 모두 사회 분야의 국정목표에 두었고, 이는 과학기술 관련 국정과제가 모조리 경제 분야의 국정목표에 종속되었던 문재인정부와는 크게 달라진 차이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 정권이 보수 정권보다 더 과학기술을 경제에 종속된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차이는 한국에 특수한 과학기술정책의 몇가지 특징을 드러낸다. 첫째,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박정희 시대에 고착된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기술을 국가경제 발전의 도구로, 과학기술인을 산업발전을 위한 인력으로 관리하는 철학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 걸쳐 여전히 박정희 체제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둘째, 과학기술의 정치적 종속이다. 이 또한 박정희 시대에 고착화된 것이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응으로 급조된 것이겠지만, 윤석열 당선자는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국정 의사결정’을 국정철학으로 명시했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기술정책을 흔드는 사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고 천명했다. 즉, 진보정권이 보수정권보다 과학을 정치에 이용하는데 더 적극적이었다는 뜻이다.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측면 뿐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건강한 문화의 지속과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즉, 과학기술관련 정책은 단순히 경제정책이 아니라 문화정책이자 교육정책, 나아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촛불혁명과 진보적 세계관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정부보다 더 좁은 맥락에서 과학기술정책을 관리했다는 점은, 한국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특징인 동시에 선진국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여전히 과학기술에 대해서 만큼은 개발도상국 수준의 시각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포퓰리즘과 인문학 정부의 무능
뒤에서 다루겠지만, 나는 문재인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현 정부가 다른 분야에서 보여준 실책과 동일한 맥락에서 잘못되어 있었다고 규정한다. <대통령의 숙제>에서 경제학자 한지원은 문재인 정부를 규정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포퓰리즘’을 지적한다. 한지원은 포퓰리즘을 “민주주의를 다수 여론의 지배로 이해하며, 정치적 경쟁보다 정적의 청산을, 합리적 제도보다 대중의 열광을, 집단적 숙의보다 영웅적 결단을 선호하는 정치 성향”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희생되는 가치들은 개인적 자유, 개성을 키우는 다원주의, 과학에 근거한 제도, 전문가 존중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다. 한지원은 그의 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얼마나 여론에 휘둘리며 갈팡질팡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전문가의 조언이나 과학적 근거보다 여론조사를 더욱 중시하는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지만,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인사는 처참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지금은 다들 잊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분야의 중요한 첫 인사로 황우석 사태와 연관된 박기영 교수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했다. 촛불혁명 당시 다른 청년 과학기술인들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탄핵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과학기술인들은 문재인 정부가 박기영 교수를 임명한 것에 대해 큰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당시 많은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은 서명과 성명서를 통해 박 교수 임명을 반대했었다.

과학기술계가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황우석 사태에 대한 기억을,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그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고, 단지 박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을 후보 시절부터 도왔다는 사실만이 임명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박 교수는 다행히 임명되지 못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적 사고방식은 실제로 현장이 필요로 하는 정책들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인기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서 시민사회인사들로 구성된 문재인 정부가 ‘사회혁신’이라는 포퓰리즘적 아젠다를 활용해서 현장에 필요한 과학기술정책과 괴리된 공허한 정책들로 과학기술예산을 얼마나 낭비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이는 심지어 진보적인 아니, 적어도 리버럴에 가까운 정치성향의 정부에서도 얼마나 쉽게 과학기술정책이 포퓰리즘에 의해 망가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사건으로, 우리 역사에 기록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적 정책기조는 과학기술분야에선 인문학 정부의 무능으로 나타났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를 ‘인문학 정부’로 규정했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충실한 스피커 노릇을 해온 방송인 김어준이 문재인 청와대를 ‘인문학 정부’로 규정한 것을 패러디한 용어였다. 김어준은 문재인 정부가 탁현민 식의 쇼를 통해 상징을 적극 활용한 정치를 한다는 점을 그의 강점으로 추켜세우면서, 이런 상징을 통한 정치는 인문학적 소양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를 ‘인문학정치’라고 평가했다. 지금 읽으면 이상한 어감이 되겠지만, 김어준은 “문재인 정부는 조국, 강경화, 윤석열 등 인사를 통해 진보적인 것이 굉장히 쿨하고, 세련되고, 스마트하고, 정의로운데 실제 성공도 한다”는 말과 함께 그 문화적 헤게모니가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과학기술인을 배제한 인문학 정부
김어준의 말처럼 문재인 청와대엔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전직 운동권과 시민사회운동가 출신의 인사들이 대거 영입되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아젠다를 선전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징적인 인물들이 주요보직에 임명되었고, 부동산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된 김현미는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전략과 실패를 모두 상징하는 인사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정치인 출신을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한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참혹한 결과로 끝났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그 실패를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인사참사는 다른 분야보다 과학기술계에서 더 자주 일어났지만, 대부분의 대중은 조국 사태나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처럼 언론에서 더 자주 다루어진 인사 문제만 기억할 뿐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로 박성진 포스텍 교수를 지명했는데, 그가 창조과학회라는 유사과학단체에 소속된 주요 인물이라는 점은 인사평가에 반영조차 하지않았다. 지구의 역사가 6000년이라고 믿는 과학자를 한국의 중소기업 전체를 관장하는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한 사건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적 정책기조가 왜 인문학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무능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인 전 과기정통부 장관 유영민은 과학기술과 동떨어진 대기업 임원 출신의 산업계 인사였고, 유사과학자와 함께 책을 저술한 인물이었음에도 인문학 정부에서 중용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었던 과학기술부총리 제도는 문재인정부에 계승조차 되지 못했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된 염한웅 교수는 문재인 정부 내내 국과위 위원장인 대통령이 회의에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체가 문재인 정부에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기관이었음을 여러 인터뷰에서 불평하곤 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된 크래프톤 대표 장병규는 ‘타다 사태’를 막지 못했음을 사과하며, 문재인정부는 “친기업/반기업 아닌 무기업”이라고 작심비판을 하기도 했다. 민경우의 말처럼 문재인정부는 “진보적인 배경을 가진 최첨단 이과 엘리트들을 권력내로 흡수하지 못했고, 이를 넘어 그들을 흡수하기는 커녕 그들과 대척점에 서있다”. 인문학 정부인 문재인 청와대는 이공계 인재를 전혀 중용하지 않았고, 이런 인문학정부의 편향은 결국 요소수 사태와 같은 참사로 이어졌다.
박기영 교수에 대한 임명으로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분야 인사참사는, 이후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였던 국과위 부위원장 염한웅 교수, 4차산업혁명위원장 장병규 대표, 혁신성장본부 민간 공동본부장으로 임명되었던 이재웅 타다 대표 등의 과학기술계와 혁신산업계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4차산업혁명을 내세웠지만, 문재인 청와대엔 그 어떤 과학적 혁신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에 과학기술인을 중용하지 않는 국가리더의 나이브한 철학이 결국 국가과학기술혁신에 있어 얼마나 큰 실책이었는지를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경제정책을 경제관료와 경제전문가가 이끌어야 하는 것처럼, 과학기술정책 또한 과학기술인이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인문학 정부는 그 당연한 상식을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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