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뇌, 혁신이라는 이름의 잔인함
자넬리아가 쥐를 버리고 물고기를 택한 날에 부쳐
- 모두가 연구하는 쥐 대신 물고기를 선택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 자넬리아가 ‘설치류 모델’ 연구를 전면 중단하고, 평생 투명한 물고기 ‘다니오넬라’를 활용한 뇌 전체 이미징 연구로 대담한 방향 전환을 단행했다.
-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구를 포기하는 비용 이는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연구는 하지 않는다’는 기관의 설립 철학을 지키기 위한 극단적 혁신이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연구자가 정든 연구실을 떠나야 하는 잔인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용기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과거를 과감히 삭제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불편한 길을 택하는 용기이며, 우리 과학계에 “무엇을 지울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신경과학 연구기지인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HHMI)의 자넬리아 연구캠퍼스(Janelia Research Campus)가 뇌 과학계의 판도를 뒤흔들 대담하고도 가혹한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1.
자넬리아는 기존에 운영되던 ‘4D 세포 생리학(4D Cellular Physiology)’과 ‘기계론적 인지신경과학(Mechanistic Cognitive Neuroscience)’ 프로그램을 전격 폐지하고, 오랜 시간 전 세계 뇌과학 연구의 핵심 표준으로 군림해 온 설치류(마우스 및 랫드) 연구 모델을 향후 3년 안에 완전히 종료(Sunset)하겠다고 선언했다.
자넬리아가 연구소의 모든 자원을 집중하여 새롭게 출범시키는 기함급 프로젝트는 다름 아닌 알부터 배아, 치어 및 성체 단계까지 온몸이 유리처럼 투명한 초소형 민물고기 ‘다니오넬라 세레브룸(Danionella cerebrum)’, 흔히 ‘제브라피쉬’라고 불리는 물고기의 전뇌(Whole-brain) 기능 이미징과 이를 해석하기 위한 ‘루프형 인공지능(AI-in-the-loop)’ 도구의 개발이다1.
설치류를 버리고 물고기를 택했다는 문장은, 현대 신경과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거의 도발처럼 들린다.
인간의 뇌를 이해하겠다는 학문에서 생쥐는 사실상의 표준이다. 포유류이고, 유전학적으로 다룰 수 있고, 수십 년간 축적된 도구와 데이터가 산을 이룬다. 전 세계의 신경과학 실험실이 생쥐와 영장류의 뇌를 들여다보는 데 매달리는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민간 생의학 연구소 중 하나가 그 모든 흐름에 등을 돌리고 1센티미터(㎝)짜리 물고기에게 미래를 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넬리아는 동시에 두 개의 프로그램을 닫는다. 2019년에 출범한 ‘기계론적 인지신경과학(Mechanistic Cognitive Neuroscience)’과 2022년에 시작된 ‘4D 세포 생리학(4D Cellular Physiology)’. 둘 다 애초에 15년을 보장하겠다며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여섯에서 여덟 개의 설치류 연구실이 문을 닫아야 하고, 책임자들에게는 3년의 유예 기간과 각각 100만 달러의 전환 자금이 주어진다. 후하다면 후한 조건이다. 그러나 자넬리아의 연구책임자(group leader)들은 정년 보장도, 외부 연구비도 없이 5년 단위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의 말은 서늘하다. “장기적 안정에 대한 모든 약속이 깨졌다.”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HHMI를 믿을 수 없다. 그들은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이 배신감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먼저 자넬리아가 대체 어떤 곳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과학계의 예외상태
자넬리아는 2006년, 버지니아의 한적한 강가에 문을 열었다.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초파리 유전학자’ 게리 루빈(Gerald M. Rubin)이었고, 그가 의식적으로 본떠온 모델은 두 곳이었다.
트랜지스터와 정보이론을 낳은 벨 연구소, 그리고 분자생물학의 절반을 발명하다시피 한 영국 케임브리지의 MRC 분자생물학연구소(LMB)였다. 두 곳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당장의 응용이나 논문 편수가 아니라, 한 세대를 통째로 바꿀 만한 근본적인 도구와 발견에 베팅했다는 역사를 공유한다.
자넬리아의 설립 정신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대학에서는 할 수 없는, 과학을 위한 좋은 일을 하는 것.” 그래서 이곳의 규칙은 보통의 학계와 정반대다.
연구책임자는 작은 실험실을 꾸리되, 자주 논문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면제된다. 외부 연구비 신청은 아예 금지된다. 정년 트랙도 없다. 대신 그들은 다른 어디에서도 시도할 수 없는, 길고 위험한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매년 그랜트를 좇고, 임팩트 팩터를 계산하고, 리비전 코멘트에 영혼을 갈아 넣는 우리 같은 보통의 과학자들에게 자넬리아는 차라리 ‘신기루’에 가깝다.
이 모델이 헛돈 것은 아니다. 자넬리아에서 에릭 베치그(Eric Betzig)는 초고해상도 현미경을 발전시켜 2014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격자 광시트 현미경(lattice light-sheet microscopy, 편집자주- 살아있는 세포나 조직을 고해상도로, 매우 빠르게, 그리고 세포 손상 없이 3차원으로 관찰하기 위해 개발된 최첨단 현미경)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초파리 뇌의 회로도, 즉 커넥톰(connectome)을 신경 하나하나의 수준에서 완성한 것도, 신경 활동을 빛으로 읽어내는 칼슘 지시자(GCaMP, 편집자주- 신경세포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신호를 보낼 때, 세포 내부의 칼슘 이온 농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원리를 이용한 기술)를 정교하게 다듬은 것도 자넬리아였다.
흥미롭게도 이 도구들의 상당수는 초파리와 제브라피쉬 유충 위에서 벼려졌다. 작고, 다루기 쉽고, 무엇보다 일부가 투명한 동물들이자, 유전학의 사랑받는 모델생물들이다.
삭제의 시험
루빈은 자넬리아의 존재 이유를 또 하나의 잔인할 만큼 명료한 원칙으로 압축한 바 있다. “만약 그들이 자넬리아에서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 연구는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나는 이것을 ‘삭제의 시험’이라 부르고 싶다. 어떤 연구 앞에서 자넬리아라는 기관을 지워보았을 때, 그 연구가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어차피 일어났을 일이라면, 자넬리아가 할 이유가 없다는 철학이다. 닫히는 두 프로그램은 루빈의 표현대로 ‘일류(first-rate)’ 연구자들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이 ‘삭제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것이 배신감의 진짜 뿌리다. 자넬리아의 계약 구조는 5년이라는 시간을 준다. 한 연구자의 토로처럼, 5년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팅’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것을 ‘읽을 수 있는 논문(legible papers)’으로 바꾸기에는 명백히 부족한 시간이다.
외부 그랜트도, 두툼한 논문 목록도 없이 거리로 내몰린 채 이들은 다시 평범한 학계의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가장 자유로운 과학을 약속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그 자유의 제도적 이면 때문에 다시 취약한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혁신을 향한 기관의 용기와 그 결정이 개인에게 떠넘기는 비용은 이렇게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 글은 그 어느 쪽도 손쉽게 편들 생각이 없다.
왜 하필 물고기인가
그렇다면 왜 물고기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제브라피쉬’(Danio rerio)를 신경과학과 발생학의 모델로 끌어올린 사람은 오리건 대학의 조지 스트라이징어(George Streisinger)였다.

본래 박테리오파지를 다루던 유전학자였던 그는, 초파리처럼 유전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면서도 인간에 더 가까운 척추동물을 원했다. 그 답이 ‘제브라피쉬’였다. 몸 밖에서 수정되고, 배아가 투명하며, 빠르게 자라고, 한 번에 수백 개의 알을 낳는 이 물고기는 ‘척추동물판 초파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1990년대 중반,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튀빙겐)와 볼프강 드리버(보스턴)가 이끈 대규모 돌연변이 스크리닝은 발생을 지배하는 유전자들의 목록을 통째로 끌어냈다. 그리고 자넬리아의 미샤 아렌스(Misha Ahrens)에 이르러, 제브라피쉬 유충의 뇌 전체에서 신경 활동을 빛으로 실시간 촬영하는 일까지 가능해졌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다. 제브라피쉬는 유충일 때만 투명하다. 다 자란 성체는 이름 그대로 얼룩무늬와 색소를 두르며 불투명해진다. 즉, 우리는 갓 태어난 며칠짜리 물고기의 뇌만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었을 뿐, 행동하고 학습하고 짝을 찾는 ‘어른 척추동물’의 뇌 전체를 살아 있는 채로 본 적이 없었다.
신경과학의 가장 오래된 꿈- 행동하는 뇌 전체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것- 은 늘 이 색소의 장벽 앞에서 멈춰 섰다.
투명한 ‘어른’
다니오넬라가 등장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다니오넬라, 그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인 2021년에 신종으로 기재된 초소형 물고기 Danionella cerebrum은 ‘평생’ 투명하다. 유충 때만이 아니라, 짝짓기를 하고 소리를 내며 헤엄치는 성체가 되어서도 몸이 투명하게 비친다.
이 물고기는 알려진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작은 축에 들고, 두개골의 지붕이 뇌의 상당 부분을 덮지 않은 채 열려 있다. 약 65만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뇌 전체를, 살아서 행동하는 어른 척추동물의 머릿속에서, 광시트 현미경으로 한꺼번에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작은 물고기는 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우렁차다. 수컷은 물속에서 140데시벨(㏈)을 넘나드는 소리를 내며 의사소통을 한다. 투명한 몸, 소리 내는 행동, 척추동물의 뇌. 신경과학이 오래 갈망해온 조건들이 한 마리 물고기 안에 모여 있다.
자넬리아가 함께 내건 두 번째 프로젝트도 이 맥락 위에 있다. ‘AI가 개입하는(AI-in-the-loop) 연구 도구’.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에 인공지능을 끌어들여 “인간 과학자의 사고를 더 날카롭게” 벼리겠다는 것이다. 뇌 전체를 통째로 촬영하면 인간이 손으로 다룰 수 없는 규모의 데이터가 쏟아지므로, 이런 도구는 사실상 필연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넬리아는 이 신기술의 ‘시험대(test bed)’로 초파리와 제브라피쉬 유충 연구를 활용하겠다고 했다. 한 사람의 초파리 유전학자로서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멈칫했다. 우리의 초파리는, 그리고 제브라피쉬 유충은, 새로운 척추동물 모델로 가는 다리이자 발판으로 호명되고 있다. 도구를 벼리는 ‘모루’가 되는 것은 영광이지만, 모루는 끝내 ‘칼’이 아니다.

초파리를 아는 사람의 결정
이 거대한 베팅을 이끈 게리 루빈이 다름 아닌 초파리 유전학자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루빈은 1980년대에 앨런 스프래들링과 함께 P-인자(P-element)를 이용한 형질전환 기술을 확립한 사람이다. 초파리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넣고 빼는 이 기술이 없었다면 ‘현대 초파리 유전학’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또한 초파리 유전체 사업을 이끌었고, 작은 모델 생물 하나가 생명과학 전체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작은 모델 생물의 힘을 평생 목격해온 사람만이, “포유류가 표준”이라는 신경과학의 거대한 관성 앞에서 1센티미터짜리 물고기를 꺼내 들 수 있다.
모두가 생쥐와 영장류의 뇌를 들여다보는 자리에서,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이라는 철학으로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그것은 한 동물의 장단점을 깊이 아는 유전학자의 직관이자, 자넬리아라는 기관이 제 존재 이유에 충실하려는 몸부림이다.
루빈 자신의 말마따나, “우리의 매우 큰 과학적 자원을, 남들과 다른 일, 고유한 기여를 하는 데 쓰는 것”이 지도부의 책무라면, 이 결정은 그 책무에 더없이 충실한 셈이다.

혁신적 기초과학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대체 ‘혁신적인 기초과학’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혁신을 새로움이라 오해한다. 더 비싼 장비, 더 큰 데이터, 더 그럴듯한 키워드. 그러나 자넬리아의 이번 결정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혁신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진정한 혁신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잘 작동하는 것을 과감히 지워내는 데서 시작한다.
생쥐 연구는 틀린 과학이 아니다. 오히려 안전하고, 검증되었고, 모두가 그 길을 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넬리아는 그 길을 떠난다. ‘어차피 다른 곳에서 일어날 일’은, 가장 자유로운 연구소가 굳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 혁신의 본질은 새로움이 아니라 불가피한 불편함, 즉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일부러 택하는 용기에 있다.
기초과학의 가장 위대한 도약들은 늘 이런 베팅에서 나왔다. 벨 연구소가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고체물리학에 자원을 쏟았기에 트랜지스터가 태어났고, 케임브리지 LMB가 단백질 결정학이라는 막막한 분야에 매달렸기에 DNA 이중나선과 분자생물학이 열렸다.
위대한 과학은 개인의 천재성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실패를 견뎌줄 시간과, 검증되지 않은 방향에 자원을 거는 제도적 용기를 요구한다. 한국의 연구개발이 ‘예측 가능한 성과’와 ‘단기 지표’의 감옥에 갇혀 허덕이는 동안, 자넬리아는 정반대의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진다. 우리는 그 무엇을 지울 용기가 있는가.
2밀리미터(㎜)의 렌즈로 들여다본 한 마리 투명한 물고기의 뇌가, 결국 우리에게 비추는 것은 척추동물의 신경회로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감히 시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리고 그 용기의 대가를 누가 치르는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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