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우상’과 지식 생태계의 붕괴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학술용병, AI, 논문공장 ‘숫자의 우상’ 이들이 드러낸 상업화된 학문의 민낯
- 한국 명문대의 ‘학술용병’ 실태 연세대는 중국의 한 학자(6년간 496편 발표, 1만 1천 회 인용)에게 억대 성과급을 주며 소속을 빌렸고, 고려대는 ‘K-클럽’을 통해 영입한 외부 학자들의 실적으로 세계 순위를 156위까지 수직 상승시켰다.
- AI 환각과 논문공장의 침공 2023년부터 2026년 2월까지 250만 편의 논문을 조사한 결과,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참조문헌 4,046개가 발견되었으며, 챗GPT 보급 이후 이런 가짜 참조 발생 빈도가 3년 만에 12배나 폭증했다.
- 상업 출판의 탐욕과 지표의 왜곡 거대 출판사들이 최대 2,400만 원의 게재료를 챙기며 ‘논문공장’의 결과물을 방치하는 사이, 임팩트 팩터(IF)라는 수치가 멱함수 분포의 허구를 가리고 학계의 질적 평가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다.
- 수치의 우상에서 벗어나라 대학과 학계는 ‘순위’와 ‘지표’라는 수치적 우상에서 벗어나, 평가자가 직접 연구 내용을 읽고 검증하는 ‘질적 평가’의 원칙을 회복함으로써 AI 환각과 논문 공장이 오염시킨 지식 생태계의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강의실 없는 교수들
올해초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세계 대학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이른바 ‘학술용병’을 대거 동원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국내 체류도, 강의도, 실질적 연구 교류도 전무한 해외 다작 학자들을 비전임 교수로 무더기 영입하고, 그들이 어딘가에서 써낸 논문에 한국 대학의 이름을 슬쩍 끼워 넣는 대가로 억대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다.
연세대 객원 연구원으로 등록된 중국의 한 학자는 6년간 496편의 논문을 연세대 소속으로 발표하며 1만 1천여 회 인용됐다. 일주일에 논문을 한 편 반씩 찍어내는 이 기묘한 생산성의 비결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한국의 명문대는 세계대학 순위를 올리기 위해 그에게 성과급을 지불했다.
고려대 역시 ‘K-클럽’이라는 이름의 국제 연구 네트워크를 출범시켜 고인용 연구자 180여 명을 특임·겸임 교수로 임용했다. 2023년 한 해 고려대 전체 논문의 11.6%가 이 외부 학술용병들의 작품이었으며, 다중 소속 논문 비율은 31%에 달했다. 그 결과 고려대의 THE 세계 대학 순위는 200위권 밖에서 156위로 수직 상승했다.
순위는 올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의 지적 역량은 오히려 추락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학문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이, 그것도 한국의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그저 순위를 위해 제대로 된 논문인지조차 검증되지 않은 학자들을 돈으로 샀다는 사실은, 그 대학의 리더들의 지적 역량이 처참할 정도로 후졌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적 역량이 뛰어난 이가 총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내 정치에서 승리한 이가 총장이 되는 아이러니는, 결국 이런 상상조차 못할 저급한 수준의 순위조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수법은 전혀 새롭지 않다. 10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학들이 오일머니를 앞세워 서구 유명 연구자들에게 연 7만 유로를 지급하고 ‘주 소속’만 바꿔달라는 계약을 맺었을 때, 세계 학계는 분노했다.(주-https://revistapesquisa.fapesp.br/en/saudi-universities-suffer-from-purge-of-list-of-highly-cited-researchers/
명단 관리 기관 클래리베이트는 2023~2024년에 걸쳐 부정행위자 1,000명 이상을 고인용 연구자 명단에서 영구 제명했다.(주- https://english.elpais.com/science-tech/2024-12-05/dozens-of-the-worlds-most-cited-scientists-stop-falsely-claiming-to-work-in-saudi-arabia.html
그 생생한 전례를 목도하고도 한국의 명문 대학들은 동일한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합리성의 산물이다. 정부가 BK21 예산을 대학 랭킹에 연동시키고, 언론이 순위를 스포츠처럼 중계하는 한, 대학들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숫자를 올리려 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논문들
학술용병이 외부에서 지표를 부풀리는 동안, 학문 생태계의 내부에서는 더 조용하고 더 치명적인 붕괴가 진행 중이다.
올해 5월 《Lancet》에 발표된 컬럼비아 대학 간호대의 연구는 충격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2023년부터 2026년 2월까지 PubMed Central에 수록된 250만 편의 바이오메디컬 논문 1억 2,560만 개의 참조문헌을 AI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수 감사했다.
그 결과 2,810편의 논문에서 어떤 과학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허구의 참조문헌 4,046개가 발견됐다. (주- Nearly 3,000 peer-reviewed medical papers have fake citations, a Columbia Nursing AI-assisted audit finds | EurekAlert!, accessed May 11, 2026, https://www.eurekalert.org/news-releases/1127364)
더 섬뜩한 것은 속도다. 2023년에는 논문 1만 편당 가짜 참조가 약 4개 수준이었다. 2026년 1~2월에는 57개로, 불과 3년 사이에 12배 이상 폭증했다. 이 곡선이 치솟기 시작한 시점은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연구자들의 일상적 작문 도구로 보급된 2024년 중반과 정확히 일치한다.
AI는 그럴싸한 저자명, 저널명, 제목의 파편들을 확률적으로 결합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논문을 창조한다. 연구자들이 그 결과물을 검증하는 수고를 생략하는 순간, 기계의 환각은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에 사실로 인쇄된다.
실제 사례는 더 기괴하다. 스프링어 네이처가 발행하는 《Intensive Care Medicine》에 실린 750단어짜리 짧은 논문은 15개의 참조문헌 중 10개가 검색조차 불가능한 가짜였다. 그중 하나는 이 논문이 실린 저널 자체에 존재하지 않는 저자가 발표했다는 가상의 논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널은 해당 논문을 철회했지만, 이미 그 가짜 참조들이 다른 논문들에 재인용됐을 경우 그 허구는 영구적 오염으로 남는다. 과학의 토대인 재현 가능성은 바로 이렇게 바닥부터 허물어진다.
욕조에서 숟가락으로 물 퍼내기
2023년 출판 그룹 와일리의 자회사 힌다위는 단 한 해에 8,000편이 넘는 논문을 대량 철회했다. 학술 출판 역사상 단일 연도 전체 철회 건수를 웃도는 규모였다. 논문공장 조직들이 특별호의 객원 편집자 시스템을 장악하여 조작된 데이터, 이미지 합성, 가짜 동료 심사로 저질 논문들을 대거 통과시킨 것이다. 힌다위는 결국 브랜드 자체를 폐기해야 했다. (주- https://retractionwatch.com/2023/12/19/hindawi-reveals-process-for-retracting-more-than-8000-paper-mill-articles/)
지난해 《PNAS》에 발표된 아마랄 연구팀의 분석은 더 냉혹하다. ‘논문공장’의 허위 논문 산출 속도는 1.5년마다 두 배씩 폭증하는 반면, 학계의 철회 속도는 3.5년마다 두 배에 그친다. 조작 의심 논문의 약 75%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학술지에 버젓이 실려 합법적 지식의 외양을 유지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상황을 ‘넘쳐나는 욕조에서 숟가락으로 물을 퍼내는 것’에 비유한다. 10년 내에 매년 출판되는 연구의 절반 이상이 사기일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주- Richardson RAK, Hong SS, Byrne JA, Stoeger T, Amaral LAN. The entities enabling scientific fraud at scale are large, resilient, and growing rapidly. Proc Natl Acad Sci U S A. 2025 Aug 12;122(32):e2420092122. doi: 10.1073/pnas.2420092122. Epub 2025 Aug 4. PMID: 40758886; PMCID: PMC12358853. )
‘논문공장’이 이토록 번성하는 구조적 자양분은 ‘오픈 액세스’의 이념을 변질시킨 상업 출판 카르텔의 탐욕이다.
독자에게 구독료를 받지 않는 대신 저자에게 천문학적인 게재료(APC)를 뜯어내는 구조 속에서, 엘스비어·스프링어·네이처 같은 거대 출판사들은 논문을 많이 게재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
연구자들은 국가 세금으로 연구하고 동료 심사 노동을 무급으로 제공하면서도, 정작 지식을 출판할 때 최대 2,400만 원에 달하는 통행세를 이 ‘지적 포주’들에게 강탈당한다. 논문공장이 찍어내는 조작 논문은 윤리 강령 앞에서는 골칫거리지만, 재무제표 앞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임팩트 팩터’라는 통계적 허구
학술용병, AI 환각, 논문공장. 이 세 가지 파국의 공통 뿌리는 하나다. 임팩트 팩터(IF)와 대학 랭킹이라는 수치로 학문의 질과 과학자의 가치를 치환해버린 측정 강박이다.
1955년 유진 가필드가 IF를 처음 제안했을 때 그 목적은 도서관 사서들이 어떤 저널을 구독할지 결정하기 위한 행정 편의 도구였다. 사서의 장부 정리를 위해 태어난 이 숫자가 과학자의 임용·승진·연구비 수주를 결정하는 신탁으로 변질된 것이다.
1997년 페르 세글렌은 《BMJ》에서 이미 이 우상의 통계적 허구를 입증했다. 논문의 피인용 횟수는 정규분포가 아니라 ‘멱함수 분포(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극소수가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미미한 수준에 머무는 극심한 불균형 분포- 편집자주)’를 따른다.
특정 저널이 받는 전체 인용의 50% 이상은 상위 15%의 스타 논문이 끌어올린다. 나머지 85%의 논문들이 ‘고인용 저널에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위대한 연구로 둔갑하는 것은 통계적 폭력이다.
네이처에 실렸다는 사실이 그 논문의 내재적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료와 행정가들에게 ‘IF가 몇 점인가’는 초등학생도 비교할 수 있는 수치인 반면, ‘이 연구가 진정 중요한가’는 너무 피곤한 질문이다. 측정의 편의가 평가의 진실을 삼킨 것이다. (주- Seglen PO. Why the impact factor of journals should not be used for evaluating research. BMJ. 1997 Feb 15;314(7079):498-502. doi: 10.1136/bmj.314.7079.497. PMID: 9056804; PMCID: PMC2126010.)

카르텔과 군벌 사이에서
그렇다면 IF와 랭킹을 당장 폐기하면 문제는 해결되는가. 불행히도 아니다.
투명한 동료 심사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은 토양에서 정량 지표만 증발하면,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학연·지연·파벌로 작동하는 ‘학계 군벌’이다. 맹목적이지만 최소한 투명했던 숫자가 사라진 자리에, 권력을 쥔 아는 사람들이 밀실에서 평가를 주무른다.
정량 지표를 유지하면 상업 출판 카르텔이 지식을 착취하고, 폐기하면 군벌이 권력을 사유화한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이 진퇴양난 속에서 카르텔에 게재료를 바치거나 군벌에게 고개를 조아려야만 생존하는 구조에 갇혀 있다.
문제 해결의 출구는 평가 철학의 근본적 전환에 있다. 2012년 ‘연구 평가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DORA)’은 IF를 개별 연구자 평가의 척도로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결성된 연구 평가 혁신 연합(CoARA)은 더 나아가 ‘내러티브 CV’의 도입을 현장에 강제하고 있다.
‘내러티브 CV’ 체제에서 연구자는 긴 논문 목록과 IF 총합을 나열하는 대신, 자신의 연구가 인류의 지식 지평을 어떻게 확장시켰는지를 직접 이야기로 서술해야 한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평가받는 연구자에게만 증명의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평가하는 측- 관료, 대학 행정가, 동료 학자-도 텍스트를 직접 읽고 비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숫자 대신 읽기의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후약방문의 반복과 학문생태계의 몰락
교육부가 뒤늦게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클래리베이트는 부정행위자 명단을 정리했다. 이 모든 사후 처방이 시스템의 타락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논문 편수와 랭킹 수치로 대학과 학자를 평가한다’는 근본 패러다임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소속 표기 규정을 손봐도, 랭킹 게임의 규칙이 살아있는 한 카르텔은 규제의 틈새를 비집고 또 다른 형태의 돌연변이로 진화한다. 네이처 자매지 논문 한 편에 대학 본부가 보도자료를 뿌려대고, 신임 교수 임용의 절대 기준을 SCI급 논문 편수로 획일화하는 이 식민지적 ‘지적 사대주의’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다.
평가자가 직접 눈으로 읽고 지성으로 검증하는 원시적이고 철저한 과정만이, AI의 환각이 만든 가짜 참조와 논문공장의 복제 논문을 솎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다.
학문은 편수라는 닫힌 감옥이 아니라 미지를 향해 던지는 예리한 질문들을 통해 전진한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디에 실렸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발견했는가’다. 그 질문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순위라는 타락한 우상 앞에서 지식의 주권을 팔아넘기는 이 제사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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