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과거청산’, 반드시 해야한다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2023년 12월 14일 연구노조 간부들이R&D 예산 회복과 과기정통부 장차관 사퇴를 촉구하며 세종 과기정통부 앞에서 삭발 시위를 하고 있다.
2023년 12월 14일 연구노조 간부들이R&D 예산 회복과 과기정통부 장차관 사퇴를 촉구하며 세종 과기정통부 앞에서 삭발 시위를 하고 있다.
  • R&D 잔혹사의 기록 ‘카르텔 척결’이라는 불투명한 구호 아래 33년 만에 자행된 초유의 예산 삭감 사태와 그로 인한 연구 생태계 파괴의 전모를 ‘백서’로 낱낱이 기록해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상처받은 존엄의 회복 카이스트 졸업식 ‘입틀막’ 사건으로 상징되는 행정부의 폭압적 태도에 대해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며, 무너진 연구자들의 자부심과 심리적 안전망을 복원하는 것이 예산 복구만큼 시급하다.
  • 가짜 청산과 진짜 세대교체 인맥 중심의 ‘진짜 카르텔’ 의혹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함께, 후배들의 고통에 침묵하며 기득권을 누려온 무능한 원로 과학 기구들의 인적 쇄신을 통해 과학계의 원천적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돈이 없어서 연구하고 공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2022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과학자들 앞에서 이런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이 어떻게 부서졌는지, 아니 왜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것이 있다. 단순히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후 우리 과학기술계가 스스로에 대해 무엇을 드러냈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과오는 검찰 개혁과 사법적 단죄만으로 청산될 수 없다. 그 과오의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고, 가장 오래 지속될 상처는 바로 이 나라 과학기술 생태계에 새겨져 있다. 그 상처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예산을 되살리고 새 정부를 맞는다 해도 우리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동문은2024년 2월 16일 졸업동문에 대한 경호원의 폭력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R&D 예산 원상복원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동문은2024년 2월 16일 졸업동문에 대한 경호원의 폭력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R&D 예산 원상복원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첫째, ‘R&D 카르텔’의 전모를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2023년 6월 28일,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말 한마디를 던졌다.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정기한을 단 이틀 앞두고 나온 이 한마디로, 과기부가 8개월에 걸쳐 준비한 예산안은 모두 백지화되었다.

이후 두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졸속으로 재편성된 2024년 국가 R&D 예산은 전년 대비 4조 6천억 원, 무려 16.6%가 삭감되었다.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IMF 외환위기에도 깎인 적 없던 과학기술 예산이, “이권 카르텔 척결”이라는 구호 아래 단숨에 무너졌다. 1만 4천여 개의 연구과제가 영향을 받았고, 700억 원이 넘는 매몰 비용이 발생했으며,

중소벤처기업부가 집행 중이던 연구과제 200건이 중단됐다. 연구비를 잃은 한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원은 중국 국책연구소의 제안을 받아들여 떠났다. “국내에서는 이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그의 말은, 이 시대의 묘비명이 되어버렸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카르텔의 실체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불명확한 기준에 근거한 예산안”이라고 공식 비판했고, 과기부 장관조차 국감에서 “대통령은 R&D 카르텔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발뺌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왜, 무엇을 근거로 1만 개가 넘는 연구과제를 일괄 삭감했는가? 이 질문에 아직도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전모는 반드시 백서로 남겨야 한다. 어떤 정치적 판단이, 어떤 경로로 과학기술의 심장을 향해 칼을 겨눴는지, 누가 지시하고, 누가 집행하고, 누가 침묵했는지를 낱낱이 기록해 역사에 남겨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남은 연구자들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빚진 최소한의 책무다.

둘째, 카이스트 졸업식의 ‘입틀막’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2024년 2월 16일 대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 그날 한 석사 졸업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외쳤다. 그는 사지가 붙들려 끌려 나갔고, 입이 막혔다. 카메라가 그 장면을 포착했고, 세계가 보았다.

대통령실은 “경호 원칙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검찰은 그 졸업생 신민기 씨에게 업무방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법적으로 아무 잘못이 없는 한 젊은 과학도가, 자신의 졸업식장에서, 입이 막힌 채 끌려 나갔다. 그것도 과학기술 예산 삭감에 항의했다는 이유 하나로.

이것은 폭력이다. 물리적 폭력이기도 하거니와, 그보다 더 깊은 상징적 폭력이다. 행정부는 연구자들의 입을 막았다, 먼저 예산으로. 그다음 경호원의 손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민법 연설 도중 이민자 청년의 항의를 들으며 연설을 멈추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과, 이 장면을 나란히 놓고 보라.

그 대비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다. 시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국가 철학의 문제다.

새 정부와 과학기술 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 당시 그 자리에서 피켓을 들지 못하고, 손을 모으고 앉아 있어야 했던 수백 명의 연구자들에게도,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보며 이 나라의 과학기술 미래를 포기하려 했던 모든 젊은 연구자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

연구자들의 분노는 연구비 복원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상처받은 존엄을 인정받아야 치유가 시작된다.

셋째, 가짜 카르텔을 척결하면서 진짜 카르텔을 키웠다.

역설은 이렇다. 정부는 “R&D 카르텔 척결”을 명분으로 수십 년 쌓아온 기초 연구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예산 삭감의 칼바람 속에서 특정 연구자의 예산은 오히려 불어났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사례가 있다. 무용과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김형숙 한양대 교수는 AI 관련 논문 실적이 전무했음에도, 코로나 이후 비대면 정서장애 치료 플랫폼 사업 명목으로 총 365억 원의 국가연구비를 지원받은 사업의 총괄 책임자가 되었다.

국회의 수많은 언론의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업은 끝까지 진행되었고, 2025년 최종평가에서 ‘미흡’ 낙제 판정을 받았다.

이 의혹의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지낸 김창경 한양대 교수와의 관계,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의 공동 활동 경력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재임용 조건에 ‘연평균 외부 연구비 수주 5억 원 이상’이 명시된 것도 드러났다. 사실상 연구자가 아닌 ‘연구비 영업직’으로 채용된 셈이었다.

이러한 난맥상은 대형 국제협력 사업에서도 반복되었다.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 역시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다 최근 신규 과제가 전면 취소되는 사태를 맞았다. 이는 카르텔 척결을 외치며 행해진 또 다른 방식의 무능과 예산 낭비일 뿐이다.

한쪽에서는 진짜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다른 쪽에서는 인맥과 코드로 수백 억이 흘러갔다. 진짜 카르텔을 파괴한다며 등장한 정부가, 또 다른 카르텔의 온상이 되어 있었다. 이 아이러니는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라 국정감사 기록에 남은 공식 의혹이다.

이런 사업들이 과학기술계에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구조적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연구과제의 기획부터 선정, 평가,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해야 한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연구비’를 갖고 가는 구조는, 예산을 삭감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제도를 바꿔야만 사라진다.

넷째, 침묵한 원로들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 과학기술계의 원로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박정희 시대의 과학입국 이래 반세기 동안,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을 비롯한 한림원들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는 이 나라 과학기술계의 대표 기구로 자임해왔다.

원로라는 이름으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수십 년간 모든 이익과 예우를 누렸다. 각종 정부 위원회에 자리를 잡고, 훈장을 받고, 정책의 방향타를 쥐었다.

그런데 R&D 예산이 33년 만에 처음으로 삭감되고, 젊은 연구자들의 계약이 끊기고,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한 청년의 입이 막히는 동안 이 기구들은 무엇을 했는가. 정부의 예산 삭감 결정에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저항한 원로 과학자나 단체가 얼마나 되었는가.

현장 연구자들이 스스로 연대회의를 결성하고 성명을 발표하는 동안, 그 ‘어른들’은 침묵하거나 뒤늦게 입을 열었다.

이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현장의 연구자들에게 그 침묵은, 일종의 배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행정부의 폭력에 눈을 감은 어른들로 기억될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과거사 청산은 정치권의 인사 교체만으로 완수되지 않는다. 이 원로들과 기구들이 스스로 자신의 침묵에 대해 사과하고, 다음 세대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과학기술계의 ‘과거사 청산’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정치적 과거사 청산의 중요성을 논해왔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에도 청산해야 할 과거가 있다. 부당하게 파괴된 연구 생태계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폭력에 침묵했던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기초연구 예산을 17% 늘리고, 신진 연구자 안전망을 언급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신호다. 그러나 현장 과학기술인의 상처는 예산 복원만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예산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연구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존엄을 느끼고, 이 나라가 자신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믿음이 회복될 때, 그때야 비로소 동기가 살아나고 과학기술의 토양이 다시 비옥해질 수 있다.

-백서를 만들라.
-사과하라.
-제도를 수정하라.
-물러나라.

이 네 가지는 분노의 요구가 아니다.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글쓴이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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