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과학기술정책 브레인에게 묻는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평가 ⑤-1] 과학기술정책의 전문가들은 현장을 존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문미옥원장. 사진=STEPI 홍보 유튜브 캡쳐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문미옥원장. 사진=STEPI 홍보 유튜브 캡쳐

“글로벌 더블-뉴노멀은 우리가 기존과는 다른 사회로 전환해야 하는 분기점에 서 있음을 의미하며, 국가적으로 혁신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또한, 글로벌 충격에 따른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으로 이어가기 위해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선도적 어젠다를 제시하는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하겠습니다.”-문미옥, STEPI Outlook 발간사 중에서

문미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은 Outlook 2022 발간사를 통해 2022년 과학기술혁신정책이 세가지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첫째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미래혁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현재 시급한 상황중 기술안보처럼 시급한 현안에 대한 즉각적 대응 능력이며, 셋째는, 과학기술혁신정책이 국가난제, 사회문제 등에 대해서도 통합적 관점에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좋은 말들이다. 문제는, 이 좋은 말들을 어떻게 과학기술정책에 녹여낼 수 있느냐일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인과 전문가의 인식 차이와 과학기술인재의 중요성

STEPI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사회 구성원의 37%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보다 풍요로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 34.5%는 ‘보다 안전한 나라’를, 22.25%는 ‘보다 평등한 나라’를 원한다. 불과 1년 전인 2020년에 한국의 일반인의 40.57%는 과학기술 발전이 ‘보다 안전한 나라’를 보장해주길 바랬다. 즉,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한국사회 구성원 일반의 관점은 과학기술을 보다 풍요롭고, 안전하며, 평등한 나라를 만드는 만능도구로 간주한다.

실제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보다 평등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그건 정치와 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전 또한 과학기술이 직접적으로 보장할 수 없는 가치다. 그나마 경제적 풍요야말로 박정희 체제에서 성립된 한국 과학기술체제가 국민들과 동조하며 추구할 만한 가치체계일 것이다. 즉, 만약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이 과학기술정책을 포퓰리즘의 논리로 기획한다면,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은 이도저도 아닌 산으로 가게 될 것이란 뜻이다. 과학기술정책이야말로 일반인과 전문가의 역할이 가장 뚜렷히 구분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STEPI Outlook은 일반인과 과학기술혁신정책 연구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대비해 보여준다. ‘현재 한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일반인의 25%는 ‘소득, 지역, 세대간 갈등과 양극화’를, 전문가의 42.64%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꼽았다. 일반인의 18.75%만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만약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전문가의 의견이 아니라 일반인의 의견을 과학기술혁신정책에 반영한다면,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와 연구는 뒤로 밀릴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는 이미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민주주의를 다수 여론의 지배로 이해하는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져, 과학기술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문재인 정부가 선호하는 시민사회진영의 ‘사회혁신’ 같은 구호에 과학기술정책을 가두었다고 말했다.

경제와 포퓰리즘에 종속된 文정부 과학기술정책
‘사회혁신’에 끌려다닌 文정부 과학기술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와 리빙랩의 실패

이런 우려는 STEPI의 설문에 응한 전문가들의 의견에 그대로 드러난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정부가 보다 집중해야 할 정책’에 대해 일반인의 35.88%는 ‘기초 및 원천기술 연구 지원’을, 전문가의 37.6%는 ‘과학기술인재 양성 및 활용’을 꼽았다. 한국의 과학기술경쟁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원은 기초 및 원천기술 연구 지원과 인재양성이라는 점을,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일반인의 78%와 전문가의 84.5%가 한국이 과학기술선진국이라고 생각했고, ‘과학기술선진국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에서도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 ‘고급 과학기술 인력 보유’를 꼽았다. ‘보다 우수한 과학기술자 배출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일반인의 36.88%는 ‘일자리 확대’를, 전문가의 37.6%는 ‘사회적 지위 향상’을 꼽았다.

‘과학기술 선진국 위상을 갖추기 위해 가장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일반인은 ‘사고의 과정보다는 정답만 추구하는 교육방식’을, 전문가는 ‘안정지향적이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R&D 지원체계’라고 말했다. 사실상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정답을 선택하는 이런 설문에서 드러나는 일반인과 전문가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 한국에서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이 낮고, 한국의 과학기술인재 양성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할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없는 과학기술정책은 모두 공허하다

보고서는 ‘혁신체제 관련정책’, ‘연구개발 예산 및 연구비 정책’, ‘기초연구개발 정책’, ‘연구 인력 정책’의 네 분야에서 10점 만점으로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점수를 매겼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분야는 ‘연구개발 예산 및 연구비 정책’으로 5.0점이었고,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분야는 ‘연구 인력 정책’으로 3.6점이었다. ‘연구개발 예산 및 연구비 정책’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분야는 ‘현재 연구개발예산 규모의 충분성’으로 한국의 R&D 규모가 현장에서도 충분하다고 인식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연구 인력 정책’ 분야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분야는 ‘기업가 정신 보유 인재의 육성’으로, 이는 과학기술분야에서 양성된 대부분의 인재가 스타트업 창업 등의 도전적인 분야로 진출하지 못하는, 한국의 열악한 이공계 창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단순한 설문조사지만, 이 정도 설문만으로도 과학기술 현장에 필요한 정책방향을 결정하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은 인재정책이며, 그 다음은 혁신을 방해하는 관료주의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목표만 완료되어도 지금처럼 세계1위 규모로 투입되는 국가연구개발비는 반드시 혁신적인 성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STEPI는 이렇게 뻔히 눈에 보이는 결론을 놔두고, 여전히 박정희식 패러다임 속에서 국가주도형의 구태스러운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STEPI의 역할이 현장 과학기술자들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향식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라는 철학이 이 보고서의 연구원들의 연구요약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명화 STEPI 연구원은 ‘임무중심형 혁신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이 코로나19, 저출산, 고령화, 기후변화, 지역소멸, 일자리 창출, 미중 패권경쟁 등의 국가난제를 해결하는 ‘임무중심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적 기조는 유럽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연구원은 위에서 살펴본 일반인의 과학기술발전에 대한 관점, 즉 과학기술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나이브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는 임무중심형 혁신정책을 위해 무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영역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어쩌면 당연하고 그래서 쓸모 없는 결론을 제안이라고 내놓고 있다. 도대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영역의 연계가 왜 필요하며, 어떻게 이를 국가 첨단과학기술 발전의 대안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백신개발을 성공시킨 주체는 정부의 국가난제해결 시스템이 아니라, 민간기업이 중심이 되고 정부가 이를 후방지원하는 시스템을 통해서였다. 정부가 한 일은 다양한 감염병 관련 연구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지원해준 것 뿐이다. 정부는 그런 축적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환경의 조성자이지, 특정 임무를 지정해 과학기술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주체가 될 수 없다.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하는 이들은 조금 더 과학기술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현장의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로 국가난제를 해결한다는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미 과학기술혁신의 주도권이 민간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과학기술이 마치 일런 머스크나 테슬라 같은 혁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국가의 과학기술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이 해야 하는 일과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

또한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이제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유럽을 넘어서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정책을 가져다 베끼는 일이 과학기술정책연구자의 임무여야 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다뤄야 하는 모든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맥락 속에 위치한다.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싱크탱크 쯤 되는 연구원이라면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불과한 멋진 미사여구의 말들보다, 현장의 연구자들에게 좀 더 와닿는 정책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정우 STEPI 연구원은 R&D 혁신연구단장이라는 직책에 있는 인물인데, 정부 R&D 정책의 중장기적 전략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뻔한 말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위한 해법은 기초/원천 분야에 대한 R&D 투자 확대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R&D 투자 규모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과학인프라 분야에서는 세계 2위라는 근거가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그리고 더 많은 투자 외에 과학기술정책연구의 브레인들이 내놓을 해법은 없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정장훈 STEPI 전략기획경영본부장은 ‘전략적 재원배분을 통한 R&D 투자 혁신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장훈 본부장이 내놓는 해법이라는게 더 세세하게 지출 한도를 설정하고, 전략적 우선순위 판단을 위한 분류 기준을 재편하고, 포괄적 지출 검토 적용 등을 통한 재정적 방안들 뿐이다.

연구개발비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가장 잘 아는 이들은 과학기술정책연구자들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과학기술자들이다. 정장훈 본부장의 계획은 혁신이라기보단 관료주의가 현장 과학기술자들을 우스꽝스러운 행정업무로 질식시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반혁신적 제안에 가깝다. 이제는 사라진 ‘영수증 풀칠’도 한 때는 분명 이런 식의 혁신으로 포장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홍성민 STEPI 과학기술인재정책연구센터장은 ‘인구 감소로 인한 공급 충격’이라던가, ‘과학기술인재 모니터링 체계 구축’과 같은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그는 과학기술인을 무슨 기계부품 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저열한 의식은 ‘디지털 경제 시대 변화대응력을 높이는 과학기술인재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그의 제안 끝까지 계속된다.

그는 과학기술인재를 공급과 수요의 경제학적 논리 속에서 다루고 있다. 게다가 그가 내놓는 디지털 인재 양성계획이라는게, 산업현장과의 연계를 통해 과학기술인을 더 채찍질하자는 원시적인 해법들 뿐이다. 아마도 디지털 혁신이 필요한 곳은 과학기술현장이 아니라 STEPI 내부일 것이다. 홍성민 센터장은 도대체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 스스로 빅데이터를 분석해 과학기술인에게 도움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지 좀 알고 싶다.

박찬수 STEPI 신산업전략연구단 연구위원은 지난 글에서 분석한 ‘리빙랩’이라는 잘못된 정책에 여전히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온갖 미사여구로 첨단과학기술 분야의 개념들을 늘어놓고는,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을 경제 사회의 혁신성장에 적용하자고 말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예산과정에서 산업 현장과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정부 R&D 투자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실질적인 생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박찬수 연구위원은 일런 머스크가 우리 동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코로나19 백신개발을 위한 정부예산 투자에 시민사회 일반인의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런 소위 과학기술정책전문가들이 리빙랩에 수천억을 쏟아붇고 포퓰리즘으로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을 망친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인들은 과학기술 현장에 아무런 지식도 없는 이런 책상물림 과학기술정책 연구자들이 한국 과학기술혁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박환일 STEPI 글로벌혁신전략연구본부장과 신은정 STEPI 혁신법제도연구단장은 ‘과학기술혁신 외교’를 하자고 말한다. 과학기술 패권경쟁 시대에 과학기술외교는 분명히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외교관을 파견할 때 과학기술분야 전문가 한 두명을 얹어 보내는 것으로는 과학기술외교를 통해 국가과학기술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

과학기술외교란 박환일 본부장의 생각처럼 과학기술혁신외교법을 제정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내의 현장과학기술인이 세계의 과학기술인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데 필요한 네트워크를 국가가 지원하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재외 과학기술인들이 어떻게 한국의 도움을 통해 해당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우수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이를 국내 과학기술발전에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은하도시라는 사업을 제안했던 민동필 교수가 과학기술협력대사가 된 사례가 있지만, 그런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과학기술혁신 외교정책 또한, 현장의 과학기술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데서 시작되어야 탁상공론과 예산낭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⑤-2에서 계속

글쓴이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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