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별 성격으로 대통령 측근을 만들 나라
청와대 이전에 동원되는 ‘’풍수’’라는 유령
윤석열 당선자가 현재의 청와대엔 결코 들어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국방부가 있는 용산에 대통령 집무실을 꾸리겠다고 한다. 여야가 이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중요한 건 현재 청와대 자리에 무언가 문제가 있긴 하다는 점엔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현 청와대의 주인인 문재인 대통령도 광화문 시대를 공언했을 정도면, 조선시대의 궁궐 뒤에 군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위치에 자리잡은 청와대엔 문제가 많은 것이다. 탁현민 비서관은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관실 사이의 거리가 뛰어가면 30초 정도 밖에 안걸린다고 항변을 했지만, 문 하나만 열면 비서관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백악관 구조를 고려해 볼 때, 그리고 한국 사회가 열린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탁 비서관의 고집과는 달리 청와대의 위치와 구조엔 분명 문제가 있다.
아마도 청와대의 위치가 시민들과 동떨어져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청와대로 들어가려면 경복궁을 우측으로 돌아 외딴 아스팔트길로 한참을 가야 하는데, 이 길은 걸어서는 갈 수 없다. 시민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위치에 놓인 백악관과는 정반대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승만이 스스로를 이씨 왕조의 후손으로 여기던 시대에, 그것도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함께 지은 건물 자리에 청와대 본관을 신축해 사용하고 있다는 건 문제다. 청와대 본관을 옛 궁궐 양식에 대입해 보면, 전면 9칸에 지붕 처마 끝에는 잡상이 11개 올려져 있어 황제의 격에 맞는 건축이라고 한다. 즉, 현 청와대 본관은 민주주의 체제 속 시민의 잠정적 대표격인 대통령이 아니라, 한국적 민주주의 체제에서 제왕적 권력을 부여받은 5년짜리 왕이 거하는 건물인 셈이다.
청와대라는 공간의 본질적 가치에서 본다면
공간은 인간의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페에서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햇빛 효과 때문이다. 버스에서 서로 가능한 한 떨어져 앉으려는 것도, 벽면 자리를 선호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 속에 선호하는 공간이 존재하며, 이런 공간에 위치하는 것이 역으로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드러낸다. 4인용 자동차에서 어디에 앉는지는 인간의 위계본능을 일깨우기도 한다. 검은 세단을 타고 나타나는 정치인, 기업총수 등은 모두 오른쪽 뒷자리에서 내린다. 법원에서 판사가 앉는 자리가 엄청나게 높은 이유는, 판사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공간은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우리의 행동을 조정하고 편향을 만들 수도 있다.
건축 천장이 높으면 창의성이 증가한다는 과학적 증거도 있다. 공간과 인간 심리의 관계를 다루는 ‘신경건축학’이라는 학문은 2005년경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건축에 응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교실은 지난 수십년동안 가장 많이 달라진 공간 중 하나다. 모든 것이 네모난 교실에서 공부하던 콩나무 시루 같던 교실이 아이들의 창의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양한 색깔에 노출되어야 행복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공간의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한다. 청와대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면, 단지 위치의 문제와 비용의 문제 뿐 아니라, 바로 이런 문제들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이 어떤 맥락 속에서 국가의 의사결정을 내리는가처럼 중요한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문제에 대한 토론이라면 더 많을 수록 좋을 것이다.
광기의 풍수지리설....등장 인물들
그런데 모두가 갑자기 풍수지리를 소환하고 있다. 이건 광기다. 청와대 이전 문제가 등장하자마자, 평소에는 조용히 숨어지내던 각종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한마디씩 보태기 위해 나서고 있다. 청와대와 풍수의 문제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건축가 승효상은 오래전부터 청와대 터가 풍수상 문제가 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승효상은 심지어 2017년 청와대 상춘포럼에서 이런 발언을 당당하게 했다. 문재인 정부의 광화문 시대를 준비하던 유홍준 전 장관도, 청와대가 지닌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물론이고,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후보의 대선레이스에서도 드러났듯이, 한국의 권력층은 진보와 보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무속에 진심이다. 머리로는 과학에 근거한 국정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들의 정서는 점복과 풍수가 주는 편안함에 더 가깝다. 한국은 무속과 돈을 신봉하는 지배세력을 지닌 불행한 나라다.
청와대 풍수 이야기만 나오면 언론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다. 스스로를 풍수학자라고 주장하는 그의 뒤에 달린 직함이 가관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윤 당선자는 서울 출신이기 때문에 서울 땅의 기운을 받았고, 서울의 산세가 양명하기 때문에 그 양명한 기운으로 국민과 함께 할 것이란다. 그는 아주경제에 실은 칼럼에서 점집 무당에게서나 들을 법한 말들을 늘어놓는다. 예를 들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집무실과 관저 이전 결정은 호운(好運)이자 길상(吉祥)이다. 길(吉)한 일에는 상서로운 조짐[祥]이 있다. 집무실과 관저 이전이 그 조짐이”라는 식이다.
그는 청와대터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한다. 그가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터에 살았던 3대가 흉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세 명의 대통령은 모두 임기말이 좋지 않았다. 그는 청와대를 풍수상 길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가 하나의 대안인데, 북악산 지맥 하나가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이어지니 그 곳에 대통령 관저를 만들라고 한다. 나아가 그는 용산을 지목한다. 용도 임금이고, 산도 임금이니 대통령 기운에 걸맞는다는 이유다. 한남동은 평창동 성북동과 더불어 서울의 3대 길지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게다가 한남동은 한강을 마주하여 명예와 재물운이 함께 한단다. 이건 “국가운명의 문제”란다.
김두규는 2017년에도 <월간조선>에 “청와대가 흉지라고?”라는 장문의 글을 실었다. 여기서 그는 청와대가 길지가 아니라는 설을 소개하고, 하지만 조선왕조 500년 지속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보면 경복궁과 청와대는 오히려 길지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이번엔 아예 세종시로 옮기는 방안과 정부과천청사를 대통령관저와 국회의사당으로 활용하는 대안을 말한다. 그리고 과천을 서울로 편입시켜 천도론 논쟁을 피하자고 제안한다. 더 흥미로운건 만약 4대문 안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찾는다면, 그가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고 제안한 장소들이다. 그는 우선 경복궁 동쪽 국립현대미술관을 제안한다. 국군기무사령부가 자리하던 곳이라 지하시설도 완비되어 있고, 경복궁 내청룡에 해당되어 명예와 벼슬을 주관하는 기운이 가득하단다. 다른 장소로는 송현동 빈터가 있다.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을 지으려다 허가를 받지 못한 장소다. 아니면 경복궁 궁궐을 대통령궁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것도 아니면 경희궁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그는 2017년엔 용산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학문으로까지 추앙되는 풍수
논문검색 사이트에서 청와대와 풍수로 검색을 하면, 생각보다 많은 논문목록이 쏟아진다. 그 중엔 최창조 교수가 쓴 <풍수로 본 ‘청와대 비극’과 천도 불가론>이라는 논문도 보인다. 최창조는 무려 서울대 지리학과를 나와 국토개발연구원의 주임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전북대와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교수까지 역임한 학자다. 이런 서울대 출신의 지식인이 한국의 자생 풍수 이론을 세운 인물로 추앙받으며, 청와대의 비극을 자신의 풍수이론으로 해석하는 논문을 자랑스럽게 써서 학술지에 낼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최창조 교수의 이름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서울대라는 권위를 지닌 인물이 풍수라는 주제를 가지고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를 똑똑히 목격할 수 있다. 아마도 유홍준이나 김두규 등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에 풍수를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던 이유가, 최창조 같은 선구자가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언론이라는 동아사이언스조차 2018년에 <‘풍수’는 21세기 환경공학이다>라는 글을 실었다. 그러니까 풍수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과학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오래된 환경공학이라는 관점이다. 그럴지 모른다. 좌청룡 우백호를 말하는 풍수에도 한의학처럼 경험법칙들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풍수의 효과를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할 수 없다면, 풍수를 국가중대사에 사용할 수는 없다. 한의사들은 의료법의 제한 속에 환자를 치료하는데, 심지어 풍수지리는 건축법의 제제조차 받지 않는다. 법의 테두리로 들어오지 않은 풍수에 비과학적이라는 딱지를 달아 마녀재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혈액형별 성격 정도의 신빙성 밖에 가지지 못한 풍수지리를, 한 국가의 중대사인 청와대 이전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려는 소위 인문학적 지식인들의 몰상식이 너무나 황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와대가 대통령 당선인의 혈액형에 따라 식단과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고 상상해보자. 그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그런데 도대체 왜, 풍수지리를 가지고 청와대 위치를 판단하는 일은 혈액형별 성격보다 좀 더 그럴듯해 보여야 할까. 그럴 이유가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나 재미로 사용되면 그만일 뿐인 풍수지리를, 국가중대사의 결정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려는 이들은 모두 국가를 망치려는 자들이다. 최순실이 사이비종교와 각종 기공치료로 국정을 농단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청와대 이전 문제에 풍수지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단 말인가. 이덕환 교수의 말처럼 “애써 몰아냈던 미신이 되돌아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갇힌 대한민국, 과학기술자에게 물어라
서울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 청와대에서 이어지는 광화문 일대에서 종각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서울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특히 광화문 광장은 서울시민들에게 여러 기억이 중첩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광화문대로로 이어지는 그 길을 자세히 뜯어보면,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이 여전히 조선시대에 갇혀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조선의 왕궁터를 사용해 지은 청와대와,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청와대 건물 아래로, 광장을 상징하는 두 동상은 세종대왕과 이순신이다. 김구와 안창호가 아니고,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광화문 한 복판에 세우면서, 미군정 시기 한국의 지배세력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아마 소수의 지배층이 다시 500년을 다스릴 새로운 조선이었을 것이다. 화폐의 인물 모두가 조선시대의 인물인 나라에서, 도대체 우리의 아이들에게 조선을 벗어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청와대는 바로 조선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국가로 진입하기 위해 옮겨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웅장한 이야기를 해도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운 시기에, 교수라는 작자들은 한가롭게 풍수이야기나 하고 있다. 풍수가 그렇게 중요하고 좋으면 본인이 죽어 묻힐 묘자리나 찾아다닐 일이다. 어디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하는 대명의 21세기에 국가중대사가 걸린 문제에 목숨을 걸고 책임조차 지지 못할 풍수타령을 하는가.
윤석열 당선자는 과학기술에 바탕한 국정 의사 결정을 공약했다. 온갖 사이비 같은 이론을 들고 대통령을 찾는 이들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박근혜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용산으로의 이전에 조금이라도 풍수지리가 영향을 미쳤다면, 윤석열 정부는 시작도 하기 전에 흔들리게 될지 모른다. 대통령 주변을 무당과 도사가 아니라 과학기술자와 젊은경제인들로 채워야 한다. 그렇게 해도 나라가 어찌될지 모르는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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