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백인 석학들의 뻔한 수업②

한국에서 젊고 뛰어난 사상가들은 왜 안찾나 ‘위대한 스승’이 되고자하는 분들 있어 김근배, 홍기빈, 이상하, 강유원 등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과학 분야 이외의 석학에 대해 굳이 감별을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개고기 식용화 금지라는 화두를 꺼낸 한국의 맥락에서, 굳이 수십년 동안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피터 싱어를 소환하느니, 좀 더 새로운 학계의 인물을 부르는건 어땠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폴 크루그먼과 마이클 샌델, 제프리 삭스, 유발 하라리도 너무 뻔한 선택이다. 이들이 모두 백인 남성이라는 점을 넘어서, 이미 한국에서 이들의 번역서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현실에서, 다시 이들의 이야기를 밀도조차 낮은 강연으로 듣는다는 게 EBS의 시청률을 높이는 것 외에 어떤 학문적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나마 이 기획에서 칭찬할 점은 대만의 해커 출신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기획에 섭외된 몇 안되는 동양인이며 동시에 성소수자다.

2017년 4월 방한했던 대만의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사진= 연합뉴스
2017년 4월 방한했던 대만의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사진= 연합뉴스

한국사회를 위한 위대한 수업

비판만 하는 것보다 만약 국민의 세금으로 한국적 맥락에서 꼭 필요한 위대한 수업을 기획한다면 어떤 학자들을 초청해야 할지 제안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아직 짧은 공부이지만, 지난 십여년 한국의 학자들이 치열하게 내놓은 논문과 저술을 읽으면서, 그 공부의 치열함과 성과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이들이 있다. 이 기회를 빌어 그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도, 한국의 학문생태계에 작은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사상가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거의 없다.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과학자들이 있지만, 그들에게서 어떤 사상적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그건 한국 과학생태계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과학자사회는 물론 한국사회가 한국사회에서 과학을 단지 도구적으로 소비하는데 만족하기 때문이다.

한국 과학계에서 일리아 프리고진이나 자끄 모노 같은 과학사상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과학계는 물론 사회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쉽지만 도킨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학’의 경우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그 분야가 인문사회과학이기도 하지만, 과학학 중에서도 특히 과학사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한국적 맥락에서 연구가 진행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과학사는 서울대 과사철 협동과정을 중심으로 약 40여년 동안 발전해왔지만, 근현대 한국과학기술사가 체계적으로 종합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분야에 천착해온 몇몇 과학사가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중 전북대학교 김근배 교수의 저술이 가장 탁월하다. 특히 최근 그가 내어놓은 <한국 과학기술혁명의 구조>는 그의 수십년 학문의 집대성이라 부를 만하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든 아니든간에, 만약 한국에서 과학과 과학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김근배의 강의야말로 위대한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수준 강의할 한국 학자 충분히 있어

사실 한국의 제도권 강단학자들 중에서만 정말 위대한 수업을 기획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몇년 전부터 네이버가 <열린 연단>이라는 기획으로 각 분야의 석학이라는 이들의 대중강연을 진행하고 있지만, 강연자의 대부분이 명문대의 늙은 남성 교수로 구성되어 있는데다, 그들의 강연 또한 다른 곳에서도 이미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의 재탕에 불과하다.

왼쪽부터 김근배 전북대 교수, 홍기빈 재야경제학자, 강유원 인문학자.
왼쪽부터 김근배 전북대 교수, 홍기빈 재야경제학자, 강유원 인문학자.

석학이라면 하나의 강연을 통해 그가 준비해온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할텐데, 한국의 소위 석학이라는 이들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에서 단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소개하는 몇 인물은 제도권 학계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어온, 진정 위대한 스승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개인적으로 내가 그들을 통해 학문의 태도와 치열함을 배웠다는 것으로 이 추천을 변호하고 싶다.

홍기빈은 재야경제학자로 불린다. 그는 제도권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학자이지만, 강단을 거부하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번역을 생계로 먹고 살고 있으며 칼 폴라니를 비롯한 비주류 경제학의 여러 저작들을 번역해 한국 사회과학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최근 커먼즈 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이상하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철학자이자 사상가다. 그는 독일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카이스트와 계명대 등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했으나, 한국 대학의 강단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학계를 떠났다. 과학철학과 과학사를 시공간적 맥락에서 분석하는 그의 논문은 더이상 읽을 수 없으나, 그는 꾸준히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며 학원 강사의 삶을 살고 있다. 특히 그의 책 <과학 철학>과 <세속화 ‘저기’와 ‘여기’: 무종교인의 관점>은 한국 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사상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강유원은 회사원 철학자로 유명한 인문학자다. 2000년대 초 그의 공부법은 한국의 인문학 연구자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그는 회사를 다니며 꾸준히 강의와 번역과 저술을 통해 인문학적 공부법을 널리 알려왔다. 듣기로 그는 심장이 좋지 않아 지금은 약간의 녹음 파일을 올리는 것 외엔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짧은 공부지만, EBS가 위대한 수업이라며 소환한 백인 남성 노인들보다 더 위대한 수업을 다른 방식으로 기획하는 일이 이제 한국에서도 얼마든 가능할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 학자들 외에도 EBS 기획보다 나은 수준의 강의를 할 수 있는 학자는 한국에 꽤 많이 존재한다.

굳이 그런 학자들을 찾는 수고까지 바라지는 않겠다. 하지만 도킨스 류의 대중적 인지도로 학문을 현혹하는 향원들을, 이제는 좀 대중매체에서 그만 봤으면 좋겠다. 적어도 공영방송 EBS는 학문적 기획에서 다른 매체들보다 더 치열했으면 한다. 아직도 도킨스와 핑커라니, 부끄러운 일이다.

글쓴이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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