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무경험자가 과기정책을 좌우해선 안된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평가 ⑤-2] 문재인 정권의 과학기술정책 브레인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과학기술에 무지한 이들에게 헌납할 것인가”
과학기술혁신정책은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찾아져야 한다
일반인과 전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컷 해놓고, 거기에서 과학기술인재의 사회적 지위 및 경제적 보상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어놓고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을 내놓는 연구원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씽크탱크임을 내세우는 수많은 연구위원들은 디지털이니 융합이니 하는 화려한 개념들을 사용하며 마치 그들의 과학기술혁신정책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에게 가슴으로 와닿는 정책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설문조사를 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면서도 그 결과가 정책제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이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관료들의 경력을 위해 왜곡되고 있다는 의심을 낳게 만든다.
STEPI의 보고서를 읽으며 무엇보다 화가 나는 점은, 책상머리에서 서류만 읽고 있는 이들 연구원들이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을 무슨 부품이나 도구처럼 다루고 있는 지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과학기술생태계의 머리이고, 현장 과학기술인들은 자신이 부리는 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관료주의와 책상머리 행정가들이 장악한 한국의 과학기술생태계의 문제는 연구현장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초과학의 메카로 불리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연구원이 아니라 행정원의 연봉과 대우가 더 높고, 행정원들이 연구자들을 지배하는 구조로 왜곡되어가고 있다.
연구소의 주인이 연구원이 아니라 행정원과 관료가 되고 연구소장들이 연구가 아니라 정치에 매몰되어가는 현상이야말로 한국에 왜 과학기술혁신이 필요한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만약 STEPI 연구위원들이 단 한번이라도 현장의 과학기술자들과 진지하게 대화해봤다면, 이런 화려한 정책들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과학기술자들이 한국에서 연구자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정책들을 내놓았을 것이다.
필자가 2020년 1년간 대전에 머무를 기회가 있었을 때 1년 내내 과학기술분야의 노동조합들이 문미옥 전 차관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어놓은 모습을 보았다. 실제로 공공연구노조는 “과기정책 실패 책임자가 과기정책연 원장 웬말이냐?”는 현수막까지 걸며 문미옥 원장의 임명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공공노조는 문재인 정권의 과학기술계 인사는 3류라고도 말했다.
과학기술계의 한 원로는 “문재인 정부는 이념에 매몰돼 과학기술정책이 아예 없다. 과기계 인사 선임하는 것마다 실망을 주고 있다”라고 말한다. 박기영 교수로 시작해서 박성진과 문미옥 등으로 이어진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계 인사를, 과학기술계는 거의 참사로 받아들인다.
다시는 무경험자가 과학기술정책을 좌지우지해선 안된다
문미옥 원장이 STEPI로 옮겨가자마자 과기부가 추진하는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의 유치기관으로 STEPI가 선정되었다.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과 함께 국가 우주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기관인데, STEPI는 과기정통부 소속도 아니다. 공공노조는 이 유치기관 선정과정에 의혹을 제기했으며, 특히 우주정책센터장에 내정된 직전 STEPI 원장 조황희 박사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문미옥 원장은 문재인 정권의 소위 ‘탈원전 수사’에도 연관되어 있는 인물이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사람이 문미옥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을 앞장서 지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미옥은 문 정권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좌지우지하며 큰 정치적 자산을 쌓았다. 하지만 그가 과학기술정책을 주무르며 쌓은 자산의 대부분은 현장의 과학기술인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치에 불과했다. 그는 한국의 과학기술을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한 담보로 사용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숙제>라는 책에서 경제학자 한지원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포퓰리즘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다수 여론의 지배로 이해하며 “정치적 경쟁보다 정적의 청산을, 합리적 제도보다 대중의 열광을, 집단적 숙의보다 영웅적 결단을 선호하는 정치성향”이며, “개인적 자유, 개성을 키우는 다원주의, 과학에 근거한 제도, 전문가 존중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와 상극”이다.
문미옥을 중심으로 펼쳐진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이와 같은 포퓰리즘의 특성에 딱 맞아떨어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과학기술정책은 현장전문가에 대한 존중 없이, 오직 문재인 정권을 추종하는 여론과 그들이 추종하는 시민사회정부라는 이념 속에 과학에 전혀 근거하지 않은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일관했다.
문 대통령은 퇴임 전 누리호라는 과학기술계에서 매우 드문 이벤트성 행사에나 등장해 과학기술자들을 병풍으로 세우고 누리호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이용했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이면서도 위원회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으며, 자문회의에 거의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런 불만은 그가 직접 임명한 국과위 부위원장인 염한웅 교수에게서 터져나오기도 했다.
한국사회처럼 제왕적 대통령제가 정착한 국가에서 국가지도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과 비전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단 한권의 과학책도 휴가 중 읽지 않았고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의 수상 소식에는 축전을 보내면서도, 과학기술인들에게 따뜻한 메시지 한번 보내지 않았다.
그가 과학기술정책의 컨트롤타워로 내세운 문미옥은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내놓는데 주력했고, 그보다 더 자신의 경력을 쌓는데 몰두했다. 그는 과학기술인이 아니라 국민을 내세우며 과학기술정책을 그의 정치적 도구로 삼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과학기술계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야 했다. 국회의원-청와대 보좌관-차관-원장으로 이어지는 그의 화려한 이력은, 과학기술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특혜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특혜를 한국의 과학기술발전과 그의 동료들인 과학기술인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사용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과학기술정책이 표류하는 사이, 한국은 미중패권경쟁의 사이에 끼여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전략적으로 쏟아부었지만 한국형 백신은 개발조차 하지 못했고, 결국 K-방역이라며 추켜세우던 코로나 방역마저 선거와 맞물리며 무너져버렸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포퓰리즘이 어떻게 우리의 생활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실패의 교훈으로 영원히 남아야 한다.
특히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과학기술정책이 포퓰리즘에 의해 망가질 때, 우리는 단지 5년이 아니라 10년의 후퇴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는 과학기술현장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과학기술정책을 좌지우지해선 안된다.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문재인 정권의 과학기술정책에서 드러난 포퓰리즘의 위험과 현장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반드시 정치권력과 관료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과학기술에 무지한 이들에게 과학기술을 헌납할 생각인가.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평가 칼럼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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