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백년대계, 깃발 뒤 기생충이 자란다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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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백년대계와 거대한 예산 폭탄 새 정부가 AI와 우주 개발을 내걸고 연구 생산성을 몇 배로 끌어올리겠다며 단기간에 거대한 국책 과제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 비전문가 인사와 검증 시스템의 붕괴 그러나 거창한 구호와 달리 벌써 정책의 키를 쥔 요직에 전문성을 의심받는 인물이 들어앉아 있다고 하며, 현장 전문가들의 차가운 ‘동료평가’ 대신 관료들의 헐거워진 도장 찍기식 검증이 작동하고 있다.
  • 가짜 혁신가들의 굿판과 과학계의 파산 검증을 잃은 거대 구호의 굿판이 끝난 자리에는 결국 사라진 예산과 현장을 떠나버린 젊은 과학자들, 그리고 다음 깃발을 노리는 브로커(기생충)들만 남게 될 것이다.

초파리는 슬로건을 모른다

토머스 헌트 모건의 좁은 실험실, ‘파리방(fly room)’이라 불리던 그곳에서 현대 유전학이 태어났다.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구슬처럼 꿰여 있다는 사실도, 스무 살 남짓의 스터티번트가 하룻밤 사이에 그려낸 최초의 유전자 지도도, 결국 2밀리미터(㎜)짜리 초파리를 렌즈 아래 올려놓고 한 마리 한 마리 세어가며 얻어낸 것이다. 멀러가 엑스선으로 돌연변이를 만들어낸 것도, 행동조차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는 낯선 생각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두 이 작은 몸에서였다.

1970년대, 생체시계를 돌리는 단 하나의 유전자가 초파리에서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보이지 않던 시간의 톱니바퀴마저 렌즈 아래로 끌려 나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초파리는 정직하다. 돌연변이는 돌연변이고, 붉은 눈은 붉은 눈이다. 렌즈 아래의 초파리는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무엇을 믿는지, 어떤 구호를 외치는지 단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다.

자연은 협상하지 않는다. 그것이 과학의 전부다. 과학의 첫 번째 미덕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권위와 신앙 앞에서도 끝내 속지 않는 능력이다. 문제는, 과학에 돈을 대고 과학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늘 협상을 한다는 데 있다.

AI 생성이미지.
AI 생성이미지.

기생충은 어디서 자라는가

유사과학의 진짜 해악은 그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학회를 열고, 진지한 과학자라면 아무도 펴보지 않을 학술지를 찍어내는 데 있지 않다. 그건 차라리 무해하다. 해악은 그들이 신념을 무기 삼아 공적 영역으로 스며들어, 끝내 국가의 예산과 정책을 주무르는 자리에 앉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과학이 수백 년에 걸쳐 벼려온 동료평가라는 차가운 렌즈 대신, 이해관계에 맞춰 셈을 맞추는 관료의 손이 검증을 대신하는 순간, 시스템의 빗장은 풀린다. 그리고 빗장 풀린 문으로 기생충이 걸어 들어온다.

기생충이 늘 신을 앞세우는 것은 아니다. 더 흔하고 더 끈질긴 종(種)은 따로 있다. 연구는 할 줄 모르면서 제안서는 누구보다 매끄럽게 쓰는 자, 실험실의 언어 대신 예산서의 언어에 능한 자, 자신의 유일한 혁신이 ‘지원금을 따내는 기술’뿐인 가짜 혁신가와 브로커들이다.

이들은 진리를 탐구하지 않는다. 진리를 탐구하는 척하는 법을 탐구할 뿐이다. 거대한 구호가 내걸리고 검증이 헐거워질 때마다, 이들은 가장 먼저 냄새를 맡고 모여든다. 국가의 곳간은 그렇게, 총성도 없이 조용히 파먹힌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진화론을 부정하는 이가 차기 정부의 청사진을 그리는 인수위원회의 교육·과학 분과에 앉은 적이 있다. 하필 그 정부는 스스로를 ‘창조’경제라 불렀다. 농담이 농담을 쓰던 시절이었다.

경제를 100배, 1000배 도약시키겠다던 어느 거대 국책 과제의 깃발 아래로는, 열역학 제2법칙이 금지한 영구기관을 믿는 이가 평가의 한 자리에 호명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구호가 거창할수록, 정작 그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창조과학 단체의 학술원장을 지낸 이가, 가장 엄밀한 진화생물학의 잣대로 평가받아야 할 생명과학 연구비의 배분을 몇 해 동안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진화의 빛 없이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도브잔스키는 썼다.

그 빛을 부정하는 손이 생명과학의 곳간 열쇠를 쥔 것이다. 그리고 연구비 앞에서, 이 나라의 생명과학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이것이 한쪽 진영만의 병이라 믿는다면 순진하다. 정반대 색깔을 내건 정부 역시, 벤처와 기술사업화라는 화려한 이력에 눈이 멀어 창조과학 단체의 이사를 장관 후보로 지명한 적이 있다. 유사과학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는다. 과학을 오직 ‘돈 되는 기술’로만 다루는 모든 곳에서, 그것은 권력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든다.

그러다 어떤 정부는 “진짜 기생충이 과학자들 자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국가 연구개발 예산에 도끼를 휘둘렀다. ‘이권 카르텔’을 걷어낸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걷어냈다는 기생충은 대체로 상상 속에 있었고, 피를 흘린 연구자들은 실재했다.

진행되던 과제가 멈췄고, 갓 출발한 젊은 연구자들이 자리를 잃었다. 기생충을 잡겠다며 숙주 째 베어낸 셈이다.

이번엔 무엇이 다른가

이제 새 정부가 가장 눈부신 깃발을 들고 도착했다. AI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달을 향해 쏘아 올리겠다고 한다. 연구 생산성을 몇 배로, 어떤 성과는 열 배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이 뒤를 잇는다.

오해는 말자. 과감한 투자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시대의 당위에 가깝다. 다만 2밀리미터(㎜)의 눈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질 뿐이다. 검증은 누가 하고 있는가. 가혹한 전문가의 렌즈가 작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저마다의 이해를 짊어진 정치와 관료 사이에서 계획이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는가.

검증은 도장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분야의 동료가 당신의 데이터를 의심하고, 당신의 전제를 물고 늘어지고, 안 되는 것을 끝내 안 된다고 말해주는 불편한 과정이다. 이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시스템은, 듣기 좋은 숫자에 도장을 찍어주는 기계로 전락한다.

약속의 숫자가 둥글고 극적으로 부풀 때 사기꾼들이 그 무대에 들어선다. 과학 지식의 생산성은, AI 도구 몇 개를 들이고 부처와 대기업을 총동원한다고 해서 컨베이어 벨트처럼 곱절로 늘어나는 물건이 아니다.

양질의 데이터, 흔들림 없는 기초연구, 연구자의 자율적 창의- 이것들이 받쳐주지 않는 자리에 기한만 못 박아 하달되는 ‘미션 달성형’ 과제는, 또 한 번의 전시 행정으로 끝나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헐거워진 자리야말로, 앞서 말한 브로커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식지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계획의 키를 쥔 어느 자리에, 전문성을 진지하게 의심받는 인물이 이미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돈다. 깃발이 클수록 그 그늘도 깊고, 그늘 속에서 기생충은 가장 잘 자란다.

다시, 2밀리미터의 눈으로

초파리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속인 적이 없다. 위험했던 것은 언제나 렌즈가 아니라, 우리가 렌즈에서 눈을 떼는 순간이었다.

검증을 잃은 과감함은 야심이 아니라 강령술이다. 보이지 않는 성과를 미리 불러내는 굿이다. 굿판이 걷히고 나면 남는 것은 사라진 예산과 떠나버린 젊은 과학자들, 그리고 다음 깃발을 준비하는 브로커들뿐이다. 예산이 클수록, 구호가 거창할수록,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차가운 2밀리미터의 시선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관료가 이해관계에 맞춰 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전문가만이, 거짓말을 못 하는 자연의 편에 서서 들이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깃발의 크기를 묻지 말라. 그 깃발 뒤에서 지금 누가 검증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한 나라의 과학이 살고 죽는 자리는 바로 거기다. 지금, 바로 그 자리를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7 수조 원 예산 뒤에 숨은 '가짜들', 우리 과학계를 어떻게 망치고 있나?
글쓴이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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