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대선캠프, 왜 과학에 적대적인가
진보진영, 유럽좌파 영향 탓인지 과학기술에 ‘적대적’ 보수진영, 말로만 과학 외쳐...알맹이 없어 냉정한 현실인식과 과학적 합리성이 정치에 있어야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이재명 캠프의 과학기술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캠프 선대위 모습이 드러났다. 상임선대위원장과 상임총괄본부장 및 고문단/자문단/특보단/공보단에는 대부분 정치인들이 자리잡았다. 대통령후보 직속 위원회는 복지, 경제성장, 통일외교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부동산 분야에 설치되었다. 정책위 및 특위에 다양한 분야 인물들이 선정됐는데, 바로 이 정책위 및 특위의 구성으로 이재명 캠프가 추구하는 국정철학을 예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 문재인 대통령의 선대위 구성과 비교해보면 이 점이 더욱 확실해진다. 국정철학이란 정치지도자의 사유를 반영하며, 선대위부터 시작된 인적네트워크의 압력과 영향력은 정권을 잡은 후에는 더더욱 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가장 중요한 특위로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와 ‘일자리위원회’를 내세웠고, 이후 일자리와 지방분권 등의 문제를 국정철학의 기조로 삼았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기록될 부동산 문제는 당시 중요 아젠다로 채택되지 않았다. 바로 그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는 무너졌다.
이재명 캠프의 특위 명단에는 맨 앞에 기후위기탄소중립위가 있고, 양이원영 의원이 총책을 맡았다. 그 아래로 요즘 유행하는 ESG 외에 청년, 교육, 장애, 외교통일, 국방, 인권, 의료, 문화예술, 중소벤처가 보이고, 동물복지위와 E-스포츠위처럼 생소한 위원회도 보인다. 과학기술 관련 특위는 없다.
특위 구성으로 이재명 캠프의 국정철학을 예측해보면, 노무현 정부 이래 범민주계열에서 꾸준히 따라해온 서유럽 진보주의의 흐름을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전형적인 인문학 정부였다. 하지만 그런 인문학 정부조차도 문미옥, 유영민, 박경미 같은 과학기술계 인사를 중용했다. 하지만 이재명 캠프엔 과학기술계의 리더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보의 관심사가 과학기술에 전혀 닿지 않으니, 그들이 떠오를리 없다.
양이원영 의원의 임명은 이재명 후보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을 의심하게 만든다. 양 의원은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당시, 핵융합 발전이 지구에 태양을 구현하겠다는 것으로 착각한 평가서를 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탈핵 이념을 과학기술정책 예산에 반영하는 무모한 인물이다. 그는 한국이 국제연구팀과의 공조로 앞서나가고 있는 핵융합 연구예산 삭감을 주장했고, 과학에 무지한 정치가 초래할 수 있는 재앙들의 전조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과학계의 가장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기후위기탄소중립위의 수장으로 임명했다는 건, 이재명 후보는 물론 해당 캠프에 과학기술에 대해 조언해줄 그 어떤 이도 존재하지 않거나, 그들의 목소리가 후보에 닿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재명 캠프는 과학기술에 아무런 방점을 찍지 않았다.
기후위기와 원전을 둘러싼 민주당의 갈등과 딜레마
지난 6월 16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도입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통일외교의 전략을 제시했다. SMR은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의 빌 게이츠가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인류의 기후위기 극복 방안을 연구해 제시한 대안이었다. 중국과의 협력으로 진행되다가 트럼프 정부의 미·중 갈등으로 중단됐다가 현재는 미국 와이오밍주에 첫 SMR이 건설 중에 있다.
빌 게이츠는 얼마전 기후위기에 대한 책을 출판하면서, 기후위기를 막고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라는 이념적 구호 외에도 안전한 원자력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테라파워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워런 버핏 등과 함께 SMR의 개발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이 소형모듈원자로가 얼마나 장미빛 미래를 제시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초기개발단계에 있는 기술은 원래 대부분 그런 시기를 지나 상용화되기 마련이다.
양이원영 의원은 송영길 대표의 연설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작심 비판했다.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총선에서 핵융합 전문가 이경수 박사를 영입하면서 동시에 양 의원까지 영입,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기후위기와 과학기술정책의 관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전문가의 95% 이상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원전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전 문제는 ‘탈핵’이라는 이념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중요한 비전이지만, ‘탈핵’이라는 일종의 공포에 가까운 이념으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비전문가가 마음대로 휘젖는다면,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과학회의 수장을 교육과학인수위원장에 내정했던 박근혜 정부를 답습하는 셈이다.
원자력 정책은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후보를 등장시킨 신호탄이었고,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실패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이원영 의원을 선택한 이재명 캠프의 판단이 과연 향후 한국의 에너지 정책과 탄소중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후원회장에 임명했던 재불작가 목수정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백신음모론자로 변신했다. 목 작가는 허브티를 마시는 것이 백신을 맞는 것보다 코로나19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황당한 주장 등으로 코로나19 음모론의 주요 확산지가 됐다. 이재명 후보의 과학기술에 대한 태도는 언젠가 반드시 민주당의 블랙홀이 될 것이다.
윤석열과 안철수의 ‘텅빈’ 과학기술
미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과학기술에 친화적이고 공화당은 적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그 반대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한국에선 보수당이 과학기술을 전면에 내세워왔고, 민주진보계열은 과학기술을 등한시하거나 적대시해왔다. 이런 특징은 선대위 구성에도 드러난다.
이명박 선대위는 교육과학기술 선대위원장으로 박찬모 전 포항공대 총장을 임명했고, 박근혜 선대위는 과학기술 특보로 최순흥 전 유엔 정보통신기술국장을, 벤처 특보로 장흥순 전 터보테크 대표를 임명한 바 있다. 최순홍은 나중에 미래전략수석으로 발탁되었으니, 선대위 인사가 향후 정권의 국정철학을 이끌어 가는데 꽤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는 건 분명하다.
윤석열 캠프의 선대위는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방문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윤석열 후보가 과학기술에 대한 국정철학을 보여준 게 없다. 지난 8월 발표된 42명의 정책자문단 역시 경제, 사회, 외교안보통일, 교육의 4개 분과로 이루어졌고, 저명한 과학기술계 인사가 캠프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는 보수당의 후보답게 외교안보통일 쪽에 큰 무게를 두고 캠페인 중이다. 최근 윤 후보 캠프의 총괄특보단장인 윤상현 의원이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을 비롯해 800여명의 과학기술계 인사를 영입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안철수 후보는 과학기술을 캠프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출마선언에서 ‘과학기술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추상적인 구호 외에 안철수 후보가 보여주는 구체적 청사진은 없다. 그는 최근 윤석열 이재명 두 후보를 겨냥해 “과학기술과 외교가 한 몸인 시대, 국내용∙내수용 법조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지킬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한 축이 되고 있으며, 수출과 반도체로 먹고 사는 한국의 대통령은 국제적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는 필자의 오랜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적이다. 문제는, 안철수 후보가 ‘새정치’의 후속편으로 준비한 이 과학기술담론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다. 그의 과학기술담론은 텅비어 있다.
정의당에도 과학기술은 ‘계륵’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시민의 삶이 선진국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는 불평등∙기후위기∙차별 시정의 줄임말인 ‘불기차’를 내세웠다. 여성, 청년, 노동 문제를 제외한다면 정의당이 과학기술과 관련해 다루게 될 아젠다는 기후위기 뿐이다.
한국 진보진영의 대표격인 정의당은, 과학기술과 관련한 의제를 단 한번도 전면에 내세운 적이 없다. 유전자조작식품의 위험성을 경고하거나, 원자력 발전의 폐기를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모습은 대부분 과학기술에 ‘적대적’이다. 정의당의 이런 스탠스도 유럽 좌파의 영향이다. 양이원영을 기후위기의 책임자로 임명한 이재명 캠프와 정의당의 기후위기 정책은 판박이다. 따라서 정의당도 기후위기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정의당은 SMR을 탈핵이라는 이념만으로 나이브하게 반대하고 있다.

며칠전 중국은 15년간 원전 150기를 증축한다고 발표했다.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원전 건설과 SMR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EU도 고민중이다. 미국은 이미 빌 게이츠와 함께 와이오밍에 SMR을 건설 중이고, 러시아도 17개의 SMR 모델을 개발중이다. 한국도 뒤늦게 SMR 모델 개발에 나섰지만 상용화 계획은 미지수다. 만약 심상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SMR 개발은 좌초될 것이다.
한 국가의 에너지정책과 탈핵이라는 이념 사이에서 현실적 대안을 찾지 못하는 대선후보는 국가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 본인의 신념만으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에너지를 포기하고 국민들에게 전기를 아껴쓰라는 조언이나 할 셈이면, 정의당은 영원히 수권정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심상정 후보가 기후위기를 국정철학의 기조로 놓고 싶다면, 이런 국제적인 움직임을 포착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의당은 그런 로드맵을 만들지 않는다. 수권정당의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과학기술을 정책의 중심에 놓는 그 날, 한국 정치에도 변화가 찾아오리라 믿는다. 진보진영에 필요한 건 이념으로 뜨거운 심장을 식혀줄 냉정한 현실인식과 과학적 합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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