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백인 석학들의 뻔한 수업①

EBS ‘위대한 수업’의 강연자들 대부분 늙은 백인 남성 학자들의 낡은 강연 세금 쓰며 ‘한물간’ 사상 들어야하는 이유 뭔가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EBS의 소위 ‘위대한 수업’이라는 천박한 기획

한국의 지식생태계에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석학이 드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에겐 세계에 내놓을만한 독창적인 사상가도, 한 분야를 선도하는 학파도 없다. 메이지 유신 이전부터 서구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완벽한 번역과 축적의 시간을 거친 일본과의 비교는 말할 것도 없고, 수천년간 동아시아의 학문을 이끌어온 중국과의 비교도 불가능하다.

주자학의 학문적 독단에 빠져, 형이상학적 도덕심성론에 매몰되었던 조선시대의 학문적 지체를 핑계댈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조선에도 서학을 받아들이려던 노력이 존재했고, 이를 통해 실학이 등장했으나, 그 흐름이 근대를 형성하기엔 조선의 국력이 이미 쇄잔해 있었다.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었고, 조선의 학맥은 철저히 끊겼다. 우리가 아는 한국의 학문생태계는 식민지 이후 완전히 새로 시작된 짧은 역사의 결과다.

과학기술분야의 학문이야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지식에 속하는 것이라, 딱히 과학자나 엔지니어의 국적과 그 지식 사이엔 별다른 상관관계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인문사회분야의 학문은 그 시대와 지역적 맥락으로 인해 특수성을 갖게 된다. 특히 모든 학문분야의 석학이 다다르게 되는 사상의 영역은, 불가피하게 시간과 공간적 맥락 속에서 사유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유럽과 중국의 철학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이유다.

공자가 살던 시공간적 맥락과, 현대인이 살아가는 시공간은 다르다. 유럽이라는 공간을 축으로 발전한 사회과학 이론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된다. 철학과 사상의 영역이야말로 한국의 지식생태계가 지켜내야할 마지막 보루이며, 이제 선진국에 진입하는 한국의 국격이 도달해야 하는 종착역인지 모른다.

얼마전부터 교육방송 EBS는 <위대한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전세계 최고의 지성을 한 자리에 모은 강연을 선보이고 있다. 언론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교육방송이 있다는 사실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이 놀라 강연을 수락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대서특필되고, 바쁘다는 이유로 단 한시간 강연만 수락했던 과학자 조셉 르두는 제작진의 간곡한 호소에 감명을 받아 노래와 공연까지 선보였단다. 도대체 세계적인 석학과 지성이라는 이들의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뻔한 강연이, 왜 지금 한국에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기획을 소개하는 언론은 그저 이 위대한 석학들의 권위를 선전할 뿐이다. 그들은 노벨상 수상자이거나 서구 선진국에서 잘 알려진 학자들이다. 그들의 사상이 도대체 왜 한국사회에 필요한지,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무려 전세계에서 예외적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방송 EBS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 비싼 강연을 준비하면서,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은 것 같다. 위대한 지성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EBS는 아예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위대한 낡은 백인 남성 학자들의 향연

위대한 지성이라는 학자들의 목록을 살펴본다. 현재 <위대한 수업> 홈페이지에 사진이 올라와 있는 12명의 석학 중 11명이 백인이고, 이 중 10명은 늙은 백인 남성이다. 단 한명, 국제무역 제도 전문가인 비노드 아가왈 교수만 피부색이 다른데 그 또한 미국 버클리 대학의 교수로 미국인이다.

물론 한국의 학문생태계가 오랜 서구종속성에 갇혀 있고, 대부분의 한국 인문사회학계가 서구이론에 매몰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학문적 상황에서, 이들은 분명 한국 학자들에게 위대한 석학일 것이다. 하지만 소위 석학으로 초대된 이들의 면면을 하나씩 살펴보면, EBS가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위대한 수업으로 포장한 이 학자들이, 이미 학계에서 낡았거나 한물간 이들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리처드 도킨스는 1974년 <이기적 유전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 과학자라기보다는 종교비판자이자 대중강연가로 살아온 인물이다. 정말 제대로 된 진화론 강의를 듣고 싶다면 리처드 도킨스 말고 더 나은 대안이 국외는 물론 국내에도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EBS 기획자가 필자에게 물었다면, <센스 앤 넌센스>라는 번역서를 통해 도킨스류의 얄팍하고 대중적이며 편향된 진화론의 대중화를 경계한 케빈 랠런드나 길리언 브라운을 소개했을 것이다.

또한 EBS가 원하던 목적이 석학이 아니라 대중적 진화론 강의였다면, 굳이 학계에서 퇴물이 된 도킨스를 데려오느니, 한국에서 이미 유명한 최재천 교수나 꾸준히 한국에서 활동해온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를 섭외했어도 될 것이다. 도킨스와 더불어 국내 과학교양시장에서 유명한 스티븐 핑커나 제레드 다이아몬드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미 별로 새롭지 않으며 혁명적이지도 않다. 그런 의미에서 리처드 니스벳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의 제자인 최인철 교수가 서울대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심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니스벳을 굳이 소환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EBS 위대한 수업의 주요 강연자들. 사진캡처= EBS 홈페이지
EBS 위대한 수업의 주요 강연자들. 사진캡처= EBS 홈페이지

세포생물학자 로버트 와인버그를 암의 권위자로 불러오는 모양새도 우습다. 정말 최신 암생물학과 그 치료제에 대해 알고 싶다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와인버그 이상의 석학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고, 2018년 면역항암제 개발로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수를 초대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본다.

와인버그의 <세포의 발견>은 훌륭한 세포생물학 개론서지만, 그는 이미 현장에서 은퇴한 과학자에 불과하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조셉 르두, 이언 스튜어트, 폴 너스 모두 석학이라 부르기엔 어색한 은퇴 과학자들이다. 물론 그들의 학문적 업적은 뛰어나지만, EBS가 이들을 위대한 석학이라 추켜세우며 초청한 이유는, 이들이 대중서를 집필했거나 노벨상을 받았다는 정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과학분야에서 정말 석학을 초대하고 싶었다면, 나이든 과학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치열하게 연구중인 젊은 과학자를 선택했어야 한다. 만약 EBS가 과학사상가를 초대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자들 중에, 일리야 프리고진이나 자끄 모노처럼 과학사상가의 반열에 들어가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계속)

글쓴이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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