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럼 관장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그 전에는 5년동안 야구선수 생활을 했는데, 전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조계현, 백인호 등 동료들과 우승한 경력도 있다. 1983년 복싱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쳤으며 1989년 지도자로 변신했다. 용산공고, 서울체고를 거쳐 천안 충의소년원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복싱강사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조영섭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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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국제적인 돌주먹 조동범과 스승 이흥수
지난 7월 27일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에 위치한 다목적회관에서 생활체육대회가 열렸다. 마침 경기도 구리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김민기 관장과 함께 방문했다. 김 관장은 국내 아마복싱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전설의 복서다. 애초엔 태릉선수촌에서 최장수지도자로 15년을 근무한 박형춘 전 감독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이미 떠나고 안 계셨다. 그 현장에서 눈에 들어온 사람은 경기도 심판위원장 이흥수 감독, 아마복싱 국가대표로 국제대회 4관왕을 달성한 조동범 심판 두사람이었다. 조동범을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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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소매치기 출신 김성준 챔프, 검사와의 약속 지키다
지난 2월 3일은 전(前)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이 타계한지 36주년을 맞이한 날이었다. 또 6월 3일은 그가 살아있었다면 71살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때 전 국민의 환호를 받았던 복싱챔피언 김성준에 관해 언론에서 단 한 줄의 기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내 프로복싱 1백년사에 43명의 챔피언이 탄생했지만, 이중에서 김성준만큼 영욕과 파란이 점철된 챔피언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직도 가슴이 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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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 안영수의 LA올림픽
잊혀질 만하면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고, 불현듯 생각이 나면 한 번씩 얼굴을 마주하는 불원불근(不遠不近) 관계를 유지하는 필자의 40년지기가 있다. 주인공은 1984년 LA올림픽 복싱 웰터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안영수다. 안영수와 필자는 1983년 7월 제3회 세계청소년대회 대표로 뽑혀 함께 합숙훈련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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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제갈량’이라 불리던 지략의 복서 홍성식
지난 주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1990년대 아마복싱을 대표하던 홍성식이었다. 국가대표 시절 은사인 김승미 감독, 그리고 동료 복서 최기수, 채성배와 함께 신촌역 근처에서 회식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오는 5월 18일 김승미 선생의 팔순 잔치를 위한 장소 및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3명의 복서가 이곳에 모인 것이다. 한국 아마복싱 1990년대를 대표하는 홍성식, 채성배, 최기수 등 3명의 복서는 1991년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선수권대회, 1992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회 서울컵, 그리고 그해 스페인에서 열린 제26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모두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해 국위를 선양한 복서들이다. 특히 바로셀로나 올림픽 라이트급에서 동메달을 따낸 홍성식은 최근 의미있는 행사를 가졌다. 지난 3월 전북체육회에 올림픽 당시 준결승전에서 미국의 오스카 델라 호야와 대결할 때 착용했던 의상과 동메달, 1992년 세계군인선수권대회 금메달과 마우스 피스등 소장품 5점을 전북체육회에 기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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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최고의 복서에서 멋진 사회인으로...이해정의 성실
봄기운이 완연하던 3월 중순 주말에 귀한 손님이 체육관을 방문해 오찬과 함께 담화를 나눴다. 주인공은 서울 상계 백병원 협력진료센터 이해정 팀장이었다. 필자의 ‘30년 지기 이해정’은 컴퓨터 복서 허영모와 함께 고교생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마지막 선수다. 1963년 1월 충남 대천에서 태어난 그는 1978년 대천서중 2학년 때 복싱에 입문했다. 입문하자마자 그해 3월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된 전국학생 신인대회(라이트급)에 출전, 3연승(1KO)을 거둔 후 결승에 진출해 김영준에 판정패했다. 이 패배가 그에겐 약이 됐다. 승부욕이 발동한 이해정은 본격적으로 훈련에 매진, 1979년 제3회 김명복 배를 재패하면서 학생대표로 선발됐다. 이어 박재규 경남대 총장의 주선으로 대만 원정도 경험했다. 1980년 서울체고에 입학한 이해정은 김창석 선생의 조련을 받으며 한뼘씩 성장했고 그해 30회 학생선수권 라이트미들급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은사인 김창석 선생은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밴텀급)로 출전한 복서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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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복싱은 심장으로 싸우는 거야!” 김춘석 관장
지난 주말 1980~90년대 이영래, 권재우, 김진길 관장과 함께 프로복싱 지도자로 4대 천왕을 형성한 김춘석 관장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에 있는 극동 서부체육관을 찾았다. 체육관에 들어서자 그가 배출한 제자들 사진이 일제히 눈에 들어왔다. WBA 주니어 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를 비롯, 동양챔피언 정영길, 박봉춘, 김종길, 한국챔피언을 지낸 김우천, 이재희, 최규운 김봉철, 그리고 아마추어로 눈을 돌리면 2000년 시드니 올림픽(페더급)에 출전한 국가대표 박흥민을 비롯, 라이트 플라이급 국가대표 박상현, 미들급 국가대표 장형욱 등 반세기에 걸쳐 김 관장이 배출한 명 복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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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왼손잡이 복서 킬러 고희룡, 제주를 빛내다
새해 시작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월이 마지막 주를 앞둔 어느날 서재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번 주 칼럼의 주인공으로 제주 출신의 아마복싱 국가대표 고희룡을 선택했다. 그를 소개하기 전에 우선 그가 나고 자란 한반도 남단의 섬 제주 복싱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1930년대 암울했던 일제 시절 일본 복싱계를 주름잡던 대표적인 복서 현해남 선생이 바로 이 고장 출신이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정착하면서 이름을 현해남으로 바꾼 그는 1934년 16세에 프로에 데뷔, 1936년 1월 일본 페더급 챔피언에 오르면서 일본 복싱계를 평정한다. 1937년 복싱의 본고장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 현해남은 3체급을 석권한 헨리 암스토롱과 빅 이벤트를 추진할 정도로 세계 강호대열에 우뚝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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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美스포츠계 부끄럽게 만든 ‘동양의 진주’ 김동길
얼마 전, 필자는 대전 복싱협회 한정훈 회장의 초청을 받고 대전대학교로 향했다. 서울 상계동 백병원 이해정 팀장이 동행했다. 대전대학 복싱부 감독을 겸하고 있는 한회장은 1979년 60회 전국체전 코크급 결승에서 경기대표 김종옥을 판정으로 잡고 금메달을 획득한 경력을 가진 복서 출신이다. 한국체대를 졸업한 한 회장은 이후 지도자로 변신, 1997년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 신은철, 서울컵 2연패를 달성한 고지수 선수를 비롯,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한 명장이다. 1963년 충남 대천에서 태어난 이해정 팀장은 서울체고, 한국체대를 거치면서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한 관록의 복서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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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쿠바 복서 꺾고, 첫 올림픽 금메달 꿈꿨던 황철순
필자가 27살에 복싱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은 지 어느덧 3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짧지 않은 세월 속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단 한 명의 복싱인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황철순’이란 인물을 선택할 것이다. 필자가 용산공고와 서울체고에 복싱강사로 11년 재직할 당시, 백마고지 전투처럼 링 위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면서 전우애가 묻은 스승 같은 존재. 바로 리라공고에 계셨던 황철순 감독이다. 그는 언제나 솔직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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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8체급 석권의 김민기 대(對) 헤비급 지존 채성배
최근 한국 복싱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헤비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후배 복서 채성배를 만나러 경기도 구리시로 향했다. 복싱과 인연을 끊고 지내는 채성배가 자신의 조카를 구리의 ‘김민기 복싱체육관’에 입관시키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는 채성배의 국가대표 시절 은사인 박형춘 전대표팀 코치를 모셨다. 1940년 보성 출신으로 ‘복싱계 페스탈로치’라 불리는 박 코치는 1982년 대표팀에 들어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까지 12년 동안 선수촌에서 최장수로 있으면서 자라나는 선수들을 지도한 분이다. 그는 1987년 대표팀에 합류한 19세의 새내기 채성배를 정성을 다해 지도하며 기본을 탄탄하게 구축시켰다. 필자가 채성배를 득달같이 찾아간 이유는 그가 은퇴한 지 20여년 되도록 한 번도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많은 이들로부터 궁금증을 낳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필자와 그의 만남에 가교 역할을 한 이는 구리시 인창동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김민기 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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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최고 테크니션’ 허영모, 안타까웠던 한평생
지난 3월 9일은 한국 아마복싱 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던 허영모가 55세로 일기로 세상을 떠난지 4주년 되는 날이었다. 2019년 3월 그의 이른 죽음은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필자가 친구인 허영모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가 있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1988년 이후 수많은 언론사의 취재 요청에 단 한 차례도 접촉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나에겐 두 차례에 걸쳐 러브콜을 보내 자신의 고향인 순천에서 가슴에 묻어둔 과거사와 숨은 비화를 기탄없이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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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미국에서 돌아온, 첫 올림픽 금메달 신준섭의 인생유전
지난 3월 모친상을 당한 필자에게 귀한 손님이 빈소를 찾아왔다. 주인공은 한국복싱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신준섭 전북 체육회 사무처장이었다. 그 자리에는 신준섭과 함께 1983년 4월 대통령배 대회에 전북 대표로 출전한 강영한도 동석했다. 당시 그 대회에서 전북 팀은 3개의 메달을 획득했었다. 미들급에서 신준섭이 금메달, 라이트 미들급에서 강영한이 동메달, 그리고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필자가 동메달을 획득해 종합 4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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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천재 복서’ 김태호, ‘검은 9월단’에 날아간 대망
김태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복서 중 한 명이다. 가끔 필자의 체육관에 들릴 때면 그가 국가대표로 출전한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발생한 비화(祕話)가 떠오른다. 1952년 6월 서울에서 태어난 김태호는 1965년 장충중학교에서 입학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장충중 동기동창이다. 중학교 때 야구선수로 활약한 김태호는 1966년 서울 성동 중앙체육관서 입관, 복싱선수로 전환한다. 천부적인 스피드와 동물적인 복싱 감각을 지닌 순발력을 바탕으로 졸업반인 1967년부터 전국 무대를 호령한다. 특히 그해 8월 원주에서 벌어진 학생선수권대회 모스키토 급 (42Kg)에 출전, 압도적인 기량으로 5전 전승(3KO)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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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복수는 나의 영원한 꿈...’고슴도치’ 황복수
예전에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필자가 운영하는 체육관을 방문하는 복싱 선배가 한 분 계셨다. 바로 전(前)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복수다. 그를 지난해 어느 날 행사장에서 홍수환 챔프와 함께 만날 수 있었다. 그는 1954년 1월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났는데 이름은 황정윤이었다. 학창시절 육상과 유도에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했던, 작지만 단단한 소년이었다. 1968년 5월 필승복싱체육관에 입관하면서 복싱계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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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폭주기관차’ 황준석, 피피노 쿠에바스를 꺾다
연중 가장 화사한 날씨를 뽐내는 5월, 절정에 다다른 신록의 쾌청함과 어우러져 전국 곳곳에서는 축제의 팡파레가 한창이다. 이런 청명한 5월이면 오래전 남한산성 기슭에서 순박한 시골 청년 황준석과 담화를 나누던 지난날이 생각난다. 황준석은 1991년 5월 WBA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질베르 데일에 15회 판정패 당한후 은퇴했다. 이후에 경기도 성남에서 개인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필자도 성남 모란역에 위치한 성남체육관에서 1997년 11월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제리 페날로사(필리핀)와 타이틀전을 앞둔 동급 8위 조영주의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그와 교류하곤 했다. 이번주 칼럼의 주인공은 황준석 전 동양 웰터급 챔피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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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금녀의 세계’ 전설적 여성 프로모터 심영자
이순(耳順)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절실하게 깨닫는 사실 하나는 인생은 사주팔자에 의해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향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1983년 나는 아마복서로 활약하며 대학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8월 고(故) 심영자 88프로모션 회장을 만나면서부터 잔잔하던 인생의 물줄기가 요동치면서 프로행으로 급선회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는 “인생을 B(Birth)와 D(Death) 사이에 C(Choice)”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꽃피우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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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불꽃 같았던 삶....나의 제자, 나의 챔프 최요삼
오는 4월 19일은 세상을 떠난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이 나와 인연을 맺은지 34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1989년 바로 그날 88프로모션에 지도자로 들어가 그해 창단한 신생팀 용산공고 복싱부를 맡아 첫 항해(航海)를 시작했다. 1989년은 다사다난 했던 해였다. 가요계에선 태진아가 부른 ‘옥경이’, 이동원 박인수가 부른 ‘향수’란 곡이 히트를 쳤다. 유럽에선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역사적인 한해였다. 필자가 입성한 88프로모션에는 WBA 밴텀급 챔피언 문성길이 있었다. 또 WBC 플라이급 챔피언 김용강, IBF 미니 플라이급 챔피언 이경연, WBC 플라이급 세계 7위 진윤언, 국가대표 출신의 장성호, 전칠성, 송광식, 김만수 등 역대급 복서들이 세계정상을 노리면서 포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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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동양의 무적’ 황충재, 한 방에 7억원 날린 사연
당대를 호령했던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충재를 최근 만났다. 필자의 체육관 인근에 위치한 모 행사장에서 황 챔프와 그의 절친 박장서, 그리고 배구 국가대표였던 장윤창 현(現)경기대 교수와 함께 자리를 했다. 황충재는 1958년 4월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야인시대에 등장하는 풍운아들의 결투에 매료되어 나주에 있는 영산포 상고에서 복싱을 시작했다. 복싱을 배우면서 그는 엘리트 복싱에 눈을 돌려 1976년 전국 신인대회에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그난 남산 공전의 다크호스 유제형에 아쉽게 판정패해 동메달을 따낸다.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유제두의 친동생 유제형은 아마추어 시절 전국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톱 복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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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국가 위해 금메달 양보한 국가대표 박형춘
2022년 숨가쁘게 한해를 달려왔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다. 이번 글의 주인공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1970년 4월 마닐라 아시아선수권, 12월 방콕아시안게임 대회에서 라이트 헤비급 복싱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박형춘이다. 그를 통해 그가 출전한 올림픽과 아시아 경기 대회에 얽힌 숨은 비화를 채굴하기 위해 지난 주말 박형춘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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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투혼의 화신’ 김득구...쓸쓸한 40주기
1912년 질레트라는 선교사가 이 땅에 권투를 소개한 이래, 1982년 11월 14일은 가장 큰 슬픔이 밀려온 날이다. 그 날은 한국 복서로는 최초로 복싱의 메카 미국 라스베가스 시저스 펠리스 호텔 특설링에서 벌어진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레이 맨시니와 일전을 벌인 김득구가 14회 비명에 간 날이다. 올해는 벌써 40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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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복싱 레전드’ 유명우와 김광선이 맞붙었다면?
필자의 서재에 한 켠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광선 선수가 1990년 프로 전향후 ‘복싱인의 밤’ 행사에 참석해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와 포즈를 함께 취한 사진이 놓여있다. 그 시절과 두 사람에 대한 얘기를 이번 칼럼에 풀어본다. 두 선수는 1964년 용띠생 동갑내기다. 유명우는 1982년 3월 1승 3패의 아마 전적을 뒤로하고 18세에 일찍 프로로 전향했고 김광선은 1980년 한양공고 1학년 때 한국체육관에 입관, 동국대 복싱 감독 김진영 선생의 지도로 그해 서울 신인대회 코크급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50승 10패의 화려한 아마 전적을 뒤로 하고 1990년 11월 매니 멜초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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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장웅 北 IOC위원 뺨 후려갈긴 조철제 전무
또 한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필자는 SM 프로모션 홍성민 대표, 조철제 전 대한복싱협회 전무 내외와 함께 압구정동의 한 식당에서 만찬자리를 가졌다. 동석한 홍 대표는 필자가 용산공고 복싱강사로 재직할 당시 훈련받던 학생이었다. 1993년 9월 제40회 전국선수권우승을 포함, 밴텀급에서 2관왕에 올랐던 복서출신이다. 그 후로 용인대를 졸업하고 국민대 석사학위를 받고 2005년 목동에 SM 프로모션을 설립했다. 현재 서울을 포함, 수도권 12곳에 복싱체육관을 총괄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사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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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비운의 천재복서 황동룡...장정구도 놀랐던 주먹
지난 주 일요일(23일) 제주도 한라체육관에서 제5회 제주도지사배 한·중·일 프로복싱 3개국 국가대항전이 펼쳐졌다. 대회를 참관한 필자는 원로인 한보영 해설위원을 비롯, 장정구, 박종팔 챔프 등 많은 복싱관계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행사가 열린 한라체육관은 역사적인 곳이기도 했다. 지난 1983년 7월 WBA 플라이급 챔피언 라시아르(아르헨티나)에게 도전한 신희섭이 단 79초 만에 KO패로 주저앉는 경기가 열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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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유명우보다 못한 딱 한가지, 윤석현의 아쉬움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2년 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다 접고 연락이 두절된 윤석현 관장이었다. 통화내용인즉 복싱 후배가 개관한 복싱체육관에 한 달 전부터 출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윤석현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윤석현은 1972년 4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윤영수옹은 청년 시절 당진에서 개최된 20㎞ 단축마라톤 대회를 여러차례 석권한 마라토너였다. 그 때문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선수로 활약한 윤석현은 천부적으로 체력과 힘이 특출났다. 윤석현이 나고 자란 충남 예산은 추사 김정희, 매헌 윤봉길의 고향이고 운동선수로는 축구의 황선홍, 씨름의 박광덕이 이 고장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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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김승연 회장이 이끈 한국 아마복싱 전성기
지난 8월 7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부인 서영민 여사가 암 투병중 향년 61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미국에 체류하는 동정과 함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를 비롯 김 회장의 세 아들 사진이 인터넷상에 올라왔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현 한화생명 김동원 부사장의 얼굴이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 유학 중인 2005년 8월 잠시 귀국해 대한복싱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한화 이경재 사장과 함께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입관원서를 쓰며 등록해 체육관 관원이 됐다. 필자가 기억하는 약관 20세의 김동원은 평범하고 해맑은 대학생이었다. 그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이번 주 <더 칼럼니스트> 연재 글은 그의 부친이자 전 대한복싱협회 회장을 역임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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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이경연 챔프 키워낸 ‘전설의 명조련사’ 이영록
필자는 1983년 10월 88체육관(관장 김철호) 창단 멤버로 입단, 1994년 5월 폐관할 때까지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한곳에서 활동한 ‘원클럽맨’이라 할 수 있다. 그곳에서 숱한 지도자들이 혜성처럼 나타나 유성처럼 사라지는 장면을 수없이 목도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지도자 한 명을 꼽으라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영록 사범을 첫손에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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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소중한 신의(信義) 저버릴 수 없었던 오장균
지난 주말 필자는 40년 지기로 국내 챔피언 세 차례, 동양챔피언 두 차례를 지낸 전 WBC 밴텀급 3위 오장균을 취재하러 충남 조치원으로 향했다. 오장균을 만나 인근인 세종시에서 강경덕 관장이 운영하는 복싱체육관에 들러 함께 담소를 나눴다. 강 관장의 선친인 강창수 전 조치원체육관 관장은 오장균을 발탁, 조련시킨 평생의 스승이었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선산 2개까지 팔아가면서 선수양성에 매진했다. 오장균을 비롯 민영천, 김정환, 오석교등 굵직한 대형선수들을 잇달아 배출한 그는 지난 2007년 7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평생 복싱 외길을 걸은 올곧은 복싱인이었다. 강경덕 관장은 선친의 유업을 이어받아 2대에 걸쳐 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103회 전국체전 고등부 60Kg급에서 세종시 대표로 선발된 유망주 이영웅 선수를 비롯, 현재 70여명의 관원들을 조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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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대학교수 농락한 세계 첫 ‘대학생 챔프’ 박찬희
수도권에 엄청난 물 폭탄이 쏟아져 난리가 났던 지난 8월 중순 한국 프로복싱의 8대 챔피언 박찬희를 만났다. 이번 주 <더 칼럼니스트> 주인공은 바로 박찬희다. 그를 주제로 칼럼을 쓸려고 하니, 수년 전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한 박찬희의 한영고 동기동창이자 이만기, 이봉걸과 80년대 민속씨름 트로이카를 형성한 천하장사 이준희 감독과 오찬하며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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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델라 호야도 꺾을 뻔...’복싱계 히딩크’ 김승미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을 복싱 현장에 몸담은 필자가 지난날을 회상해보면, 링 위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이 지도자의 지휘능력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장면이 많았다. 인탠지블 파워(intangible power)가 바로 그것이다. 직역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다. 경기는 링 위에서 선수가 하지만, 세컨의 파워나 팀웍, 심지어 라커룸 분위기 등에 의해 박빙(薄氷) 경기에서 균형이 깨졌다. 마치 쇠붙이가 자기력이 센 자석(磁石)으로 기울 듯 승패에 중요한 변수(變數)가 된 것이다. 이번 <더 칼럼니스트>의 칼럼 주인공은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복싱 대표팀 감독 등으로 재임하던 3년간 아시아 복싱 무대를 평정, ‘한국 복싱계 히딩크’라 불리는 김승미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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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무술가’ 유대경은 파퀴아오를 이길 수 있을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초 복서 출신 사업가인 최완일 씨(펠다 아이 투시(주) 대표)와 무술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대경 선수가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 전(前)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인 필리핀의 제리 페날로사도 함께 했다. 최완일 대표는 학창시절 ‘복싱계 징기즈칸’이라 불리던 곽귀근 경북체고 감독으로부터 조련받은 복서 출신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왼손잡이 복서 최완일은 경북체고 졸업반인 1992년 4월 김명복 박사배(杯) 라이트헤비(LH)급에서 3연속 RSC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해 강력한 우승 후보로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다. 때마침 필자가 속한 용산공고의 김종표 선수 역시 같은 급에서 3연승을 거두고 결승에 선착해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최 선수가 준결승에서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하는 바람에 김종표 선수가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올라온 이리 남성고 선수를 판정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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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한국복싱 전성기를 연 유제두와 제자들
며칠 전 경기도 양주에서 청무관이란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최응산 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 4월 폐막된 제39회 MBC 신인왕전에 출전한 선수 및 임원들에게 산양삼 35박스를 협찬한 박상수 회장이 프로복싱 전 세계챔피언들을 초청해 만찬을 한다는 전달이었다. 필자는 경기도 이천에서 <호텔 인트라다>를 운영하는 박치순 회장, 장정구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과 함께 박 회장의 사업체(산삼골 건강원)가 있는 경기도 광주시 역북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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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괴도(怪盜)라 불리운 사나이 김일권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 프로야구(KBO) 원년 도루왕이자 필자의 초·중학교 야구 선배인 김일권이었다. 한참 통화를 나누던 김일권은 장정구 챔프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리곤 지난 주말 때마침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한 장 챔프가 김일권 선배와 통화를 했다. 그러자마자 김일권은 도루왕 답게 필자의 체육관으로 총알처럼 달려왔고, 인근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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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한국 최강의 주먹 ‘동양의 호랑이’ 박종팔
지난 4월 6년만에 부활한 제39회 MBC 전국 신인왕전이 펼쳐진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필자는 1970년대 한국 중량급의 대표적인 복서 유제두 챔프와 1980년대 중량급을 풍미한 박종팔 챔프, 이들 두 레전드(legend)를 만났다. 두 복서를 한 장소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이들 레전드를 마주하며 필자는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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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세계타이틀 3차례 실패...끝내 ‘날지 못한’ 정순현
지지난 주말 필자는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한국 프로복싱 3대 타이틀전에 이 고장 출신으로 두차례 동양 챔피언에 등극했던 정순현 챔프와 동행했다. 경기를 본 후 만찬을 함께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1952년 9월 30일 천안시 입장면에서 태어난 정순현은 마라토너 이봉주와 한동네 출신이었다. 이봉주도 중학교 시절 천안체육관 조성근 관장에게 복싱을 수학한 복서지망생이다. 1966년 천안 대광중에 입학한 정순현은 2학년 때부터 헨드볼 선수로 활약하면서 취미 삼아 천안체육관 최승철 관장에게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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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살아있는 전설’ 장정구...세계복싱의 역사를 쓰다
이번 주 칼럼의 주인공은 한국복싱계의 빛나는 전설 장정구다. 한국 프로복싱 제12대 챔피언이자 세계적인 복싱 랭킹 사이트 복스렉(Boxrxc)에서 세계 라이트 플라이급 (LF)급 올 타임 1위에 등극한 살아있는 신화 그 자체인 장정구. 부산시 아미동 출신의 장정구는 1975년 3월 14일 김현치와 벤 필라폴로의 경기를 보면서 적지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김현치에 반해 그해 7월 충무동 로터리에 있는 극동 체육관에 입관, 복싱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13살,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승리의 서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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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고교생으로 아마 최강...’전설의 국대’ 이현주
지난 3월24일 폐막한 2022 대한복싱협회장배 전국 복싱종별대회는 또 하나의 밝은 역사가 쓰여지는 무대였다. 전남체육중학교 복싱부가 알토란 같은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하며 중등부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충남 청양 군민회관에서 벌어진 이번 대회에서 42㎏급 김태수(전남체중 3학년)는 결승에서 이승훈(대전 가오중)을 만나 3 대2 판정승을 거뒀다. 또 46㎏급의 유태민(3 학년)은 최인우 (온양 신정중)를 5대 0 판정으로, 48㎏급 임유빈(2 학년) 역시 권종찬(대전 가오중)에 4 대1 판정으로 잡고 각각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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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박종팔· 유제두와 맞짱 뜬 ‘헤라클레스 강흥원’
지지난 주말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경동시장에서 <흥원인삼>이란 상호를 내걸고 수삼직판장을 운영하는 전 WBC 크루저급 2위에 랭크된 강흥원 선배에게 모처럼 전화 연락이 왔다. 44년 전 한차례 맞대결한 전 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유제두 챔프가 가게를 방문해 함께 식사를 하고 옛 추억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나눴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필자는 그곳을 방문해 강흥원 선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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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불도저’ 챔프 박영균, 그리고 한국복싱 부활을
훈풍이 부는 상쾌한 3월이다. 이번주 ‘더 칼럼니스트’ 연재의 주인공은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페더급에서 세계를 제패한, <불도저 박>이란 닉네임으로 불리며 한시대를 풍미한 박영균 챔프다. 1967년 전남 담양 출신의 박영균은 고교 2학년 때 그의 우상인 황충재의 호쾌한 복싱에 반해 광주 챔피언체육관을 통해 입문한다. 황충재는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1980년 2월 동양 챔피언에 올라 동양웰터급 타이틀을 13차 방어에 성공했고 그중 12차례를 KO로 방어한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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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8일 천하’? 진정한 세계챔프 염동균
가벼운 봄바람이 불던 지난 주말 필자는 국내 프로복싱 최고의 유망주인 장민혁(안산제일)선수의 경기를 참관하러 안산 실내체육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경기개최를 후원한 김성권 ㈜화선 회장, 경기를 주최한 전 WBC 슈퍼 밴텀급 염동균 챔프(72세)를 만날 수 있었다. 필자는 지도자생활 원년인 1989년 복싱사업가로 변신한 염 챔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일송 프로모션을 운영하면서 굵직한 세계타이틀을 개최하며 왕성하게 활약하는 중이었다. 이어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출신의 김철호 관장이 운영하던 88 프로모션에 속해있던 필자는 1994년 6월 88 프로모션이 경영난으로 공중분해되자 MBC 우수신인왕(1993년) 최요삼 등 용산공고 학생들을 이끌고 이거성 사장이 대표로 있던 풍산체육관에 ‘심봉사 심청이 동냥젖 먹이듯’ 의탁(依託)하여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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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세계챔프 유제두, 약물중독설의 실체는
지난해 5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 WBA 주니어(Jr) 미들급 세계챔피언 유제두 태양체육관 관장(75세)이었다. 함께 오찬을 하기 위해 종로3가 국일관으로 필자를 부른 것이다. 일전에 필자는 그해 6월 7일 유 관장 타이틀 획득 46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겠다며 반승락을 받은 상태였다. 일행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한 유 관장은 필자에게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도 있으니 기념행사를 50주년 때로 늦추자”며 다른 주제를 섞어 모처럼 많은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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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침묵의 도살자’ 백인철, 너무 늦었던 세계 챔프
‘더 칼럼니스트’에 첫 글을 게재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1973년 제54회 전국체전 복싱 충북대표로 ‘페더급’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한 후 가수로 활동했던 이동기 형이었다. 1983년 발라드 고고 리듬의 ‘논개’를 불러 KBS 가요톱10에서 3주 연속 톱으로 올라갈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그 여파로 그해 KBS 신인 가수상까지 받았던 형이다. 당시 허영란의 ‘날개’, 이태원의 ‘솔개’와 함께 히트곡 반열에 올라 1983년 그 해는 노래 제목 끝에 ‘개’가 들어간 곡이 유난히 히트를 친 해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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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아이돌 스타’ 박노준과 챔프 김태식의 짠한 인연
지난해 12월 27일 대한체육회 이사회가 열렸던 서울 잠실 롯데호텔 로비에서 필자는 박노준 안양대학교 11대 총장과 반갑게 인사했다. 박노준 총장은 그야말로 광풍이 몰아치던 80년대 고교야구의 이견이 없는 최고스타였다. 프로스포츠 출신 최초로 대학 총장에 임명된 박 총장과의 만남이 반가운 이유는, 그가 프로복싱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 축구 국가대표 정해원과 함께 1981년 3월 의형제(義兄弟)를 맺고 가깝게 지낸 관계임을 필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