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싱 전성기를 연 유제두와 제자들
[조영섭의 잊을 수 없는 선수와 순간들] 유제두가 설립한 동양체육관 출신 제자들 유제형, 박정오, 최응산의 뜨거운 열정
세계 챔피언 4명이 모인 자리
며칠 전 경기도 양주에서 청무관이란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최응산 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 4월 폐막된 제39회 MBC 신인왕전에 출전한 선수 및 임원들에게 산양삼 35박스를 협찬한 박상수 회장이 프로복싱 전 세계챔피언들을 초청해 만찬을 한다는 전달이었다. 필자는 경기도 이천에서 <호텔 인트라다>를 운영하는 박치순 회장, 장정구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과 함께 박 회장의 사업체(산삼골 건강원)가 있는 경기도 광주시 역북동으로 향했다.
만찬장에 도착하자 이어 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유제두 관장,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박종팔, IBF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전주도, 그리고 동양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이상호, 동양 웰터급 챔피언 박정오, 동양 페더급 2위 최응산 관장 등이 속속 합류했다.
한국 프로복싱은 1965년 12월 서강일이 첫 세계타이틀전의 서곡을 올린 후 지금까지 43명의 세계챔피언을 배출했다. 단일종목으로 최고의 국위선양 종목이 아닐까 싶다. 43명의 챔피언중 초대 챔피언 김기수를 비롯, 김성준, 유환길, 이열우, 신희섭, 최요삼 등 6명은 고인이 됐다. 현재 생존해 있는 챔피언은 모두 37명. 이들 중 4명의 세계챔피언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자리를 만든 박 회장은 “지난 2006년 12월 17일 WBC 페더급 챔피언 지인진을 끝으로 챔피언의 맥(脈)이 끊긴 한국복싱의 부활을 위해 연례행사로 이 모임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스승 유제두를 모시는 제자들
경기도 광주는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과 임시정부 시절 내무부 차장을 지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본향이다. 신익희 선생은 광복 후 귀국해 1956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 유세중 호남선 열차 안에서 급서(急逝)한 독립운동가다. 현장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눈에 띄었다. 태양체육관 출신인 박정오와 최응산 두 전직복서가 스승인 유제두 관장을 모시는 모습이었다. 이 두 복서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스승인 유 관장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직하고 의협심이 강한 박정오, 최응산 챔프와 유 관장은 ‘그 스승에 그 제자’ 즉 호부호자(虎父虎子)였다.
진중한 성품의 유 관장은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진 장정구 챔프가 가장 존경하는 복싱원로. 유 관장은 은퇴후 1982년 독산동에 태양체육관을 설립, IBF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장태일을 비롯, 동양 챔피언 김성윤, 정선용, 차남훈, 박정오, 장영순, 박환영과 국내 챔피언 유제형, 송성운, 나치오를 발굴했다. 그는 또 동양 페더급 2위 최응산, 국내 페더급 3위 김오남, 1992년 MBC 최우수 신인왕 양상익, 국가대표 상비군 송유남, 정경배, 황이태 등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유제두의 친동생 유제형에 대해
이들 중 유제형(1958년 고흥 산)은 유관장의 친동생이자 애제자였다. 유제형은 남산공전 재학시절 김지원, 장윤호와 트로이카를 형성해 남산공전을 전국최강으로 끌어올린 핵심이었다. 그는 1975년 전국 신인대회 웰터급 결승에서 황충재를 잡고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가 꺾은 황충재는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될 선수였다.
기염을 토한 유제형은 1977년 4월엔 제8회 아시아선수권 1차 선발전 16강에서 김기년을, 결승에서 이진훈을 꺾고 성인무대를 접수, ‘그 형에 그 동생’이란 찬사를 들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1978년 2월 세계선수권 1차 선발전에 출전해 1회전에서 강성태를 판정으로 잡은 그는 결승에서 천갑수에 강펀치를 터뜨려 2회 2분 19초 만에 RSC승을 거두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 경기에서 패한 천갑수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나경민과 이남의를 잡고 우승을 차지한 조용래와 1승 1패를 기록한 베테랑 복서였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3차례 전국을 석권한 유제형은 이때까지만 해도 친형 유제두와는 대조적이었고, 팬들의 기대는 더 컸다. 유제두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웰터급) 1차 선발전 결승과 최종결승, 그리고 전국체전 결승에서 이민호와 박구일, 유장호에서 잇따라 패해 은메달 3개를 획득한 게 다였기 때문이다.
동생 유제형은 프로로 전향, 1978년 12월 MBC 신인왕전 웰터급에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1979년 4월 한일신인왕 교류전에서 일본의 다까시를 6회 KO로 잡으며 8연승(5KO)을 기록했다. 하지만 1980년 9월 KBC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황준석에게 고배를 마시며 슬럼프에 빠졌다가 1982년 1월 서석과의 재기전에서 6회 KO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16연승(15KO)을 펼쳤다. 장종배, 김경순, 문정원, 서영섭, 정상도, 김재훈, 장병인, 김대겸 등 국내 정상급 복서들이 포함된 순도(純度) 높은 행진이었다.
그러나 동양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의 벽은 두터웠다. 유제형은 1985년 4월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막강한 백인철의 주먹을 꺾지 못한 채 5회에 백기를 들고만다. 1987년 4월 일본 원정경기를 끝으로 9년동안 34전 29승(24KO) 5패의 기록을 남기고 링을 떠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복서는 은퇴해 기록을 남기듯, 그가 현역시절 기록한 13연속 KO승은 26연속 KO승의 백인철, 19연속 KO승의 박종팔에 이어 국내 연속 KO기록 3위에 해당하는 값진 기록이다.
‘동양의 쿠에바스’ 박정오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복싱 스쿨을 운영하는 동양웰터급 챔피언 출신의 박정오는 임병모, 황충재, 황준석, 이승순, 정영길로 이어진 한국웰터급 역사를 계승한 복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 1월 통산 12전 11승(10KO)을 기록한 거함 조용배를 6회에 침몰시키며 동양웰터급 정상에 오른 그는 이 타이틀의 열두 차례 방어에 성공했고 그중 여덟 차례를 KO승으로 장식했다.
특히 1993년 7월과 9월에 일본 동경에서 벌어진 9차, 10차 원정방어전에서는 일본의 사또 진토쿠, 요시노 히로유끼 선수를 상대로 폭발적인 맹공을 가해 각각 2회와 8회에 KO승을 거뒀다. 그때의 인상적인 경기 덕에 박정오는 ‘동양의 쿠에바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1995년 3월 5일 미국 원정 WBA 웰터급 타이틀 도전에서 28전 전승(20 KO)의 챔피언 아이크 퀘테이(가나)에게 4회 TKO패를 당했다. 결국 통산 34전 27승(20 KO) 3무 4패를 기록하고 복싱을 접었다.

‘바주카포’ 최응산에 대해
유제두 관장의 또다른 제자 최응산은 아마추어시절부터 ‘바주카포’라는 닉네임으로 이름을 날렸던 슬러거다. 현재 경기도 양주에서 청무관을 운영하는 그는 1962년 6월 충남 예산 출신이다. 인천기계공고에 다니던 1979년 플라이급 청소년대표로 선발되어 해외 원정에 나서기도 했는데, 아마추어 때부터 폭발적인 파괴력을 선보여 아마 전적이 24전 19승(14KO) 5패를 기록했다. 그리고는 1983년 5월 프로에 데뷔, 5년 3개월동안 16전 12승(10KO ) 4패를 기록하며 동양 페더급 2위까지 올랐다.
그는 1989년 지도자로 변신한다. 형제인 동양 미들급 챔피언 송국열과 국내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송진열, 그리고 동양 페더급 챔피언 노사명을 조련했다. 현재도 15명의 프로복서를 양성하고 있는 최 관장은 지난 2017년 6월 8일 자신이 발탁해 키운 노사명이 동양 페더급 챔피언 다케나까 료(일본)를 10회 KO로 승리하고 동양 정상에 올랐을 때가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회고했다.
그를 보면 일전에 읽은 신문의 글이 떠오른다. 전설이 된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두 분에게 어느 기자가 “글을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라는 질문을 했는데, 놀랍게도 두 분의 대답은 똑같았다. “증오”라는 답이었다. 최응산 역시 현역시절 출충한 복싱실력이었지만 불운이 겹치면서 정상에 오르지 못해 안타까움이 많은 복서였다. 그런 그가 지도자로 변신해 그 안타까움을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바꿔 토해내는 ‘무림계(武林界)의 고수’ 같다.

이들의 스승인 유제두 관장은 1970년 1월 윤필용 장군이 수경사 사령관에 부임한 후 그해 5월 수경사 복싱부가 창단되자 그 소속으로 현역생활을 연장, 이후 세계정상에 올랐다. 1979년 10·26 사태이후 해체된 수경사 복싱팀이 1982년 수방사로 재창단됐다. 그해 동양체육관을 설립했지만, 수방사 복싱팀 사령탑을 겸직하면서 현역시절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했다. ‘동양의 진주’로 불리기도 했던 이승훈을 비롯, 백인철, 박영균, 이경연, 유명우, 장태일 등이 세계정상에 오르는데 핵심적인 산파 역할을 했다. 안타깝게도 이 수방사 복싱팀은 1988년 중반 다시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한국 프로복싱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했던 수방사 복싱팀의 부활을 기원하며, 세계챔피언 출신으로 세계챔피언 배출에 헌신한 유제두 관장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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