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영원한 꿈...’고슴도치’ 황복수

[조영섭의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선수들] 원로복서 정복수 이름 따 개명한 황복수 돋보인 프로근성과 체력...불운에 발목잡혀 카라스키야 펀치 무력...딱 한방만 있었으면 은퇴후 멋진 인생 2막...다시 복수를 꿈꾸며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복수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복수

‘복수’는 나의 것

예전에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필자가 운영하는 체육관을 방문하는 복싱 선배가 한 분 계셨다. 바로 전(前)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복수다. 그를 지난해 어느 날 행사장에서 홍수환 챔프와 함께 만날 수 있었다. 그는 1954년 1월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났는데 이름은 황정윤이었다. 학창시절 육상과 유도에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했던, 작지만 단단한 소년이었다. 1968년 5월 필승복싱체육관에 입관하면서 복싱계에 발을 들였다.

1968년 그해 5월은 국내 유일의 세계챔피언인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김기수가 이탈리아에 원정 가 산드로 마징기와 벌인 3차방어전에서 판정패를 당한 안타까운 한 해였다. 김기수 챔프의 모습을 보며 세계챔피언의 야망을 품은 황복수는 1970년 전국 신인대회에 출전해 플라이급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1년 10월에 혼혈복서 나대성을 잡고 험난한 프로복서 전선에 뛰어든 황복수는 일발필도의 묵직한 파워를 보유한 복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다운 근성과 동물적인 감각의 디펜스 능력을 발판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프로복서 입문후 파죽의 10연승을 질주한다. 화끈한 그의 복싱에 매료된 이영원 필승복싱체육관 관장은 6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한 원로복서 정복수가 연상된다고 극찬했다. 이때 그는 본명인 황정윤 대신 황복수로 개명한다.

선배 홍수환처럼 열심히

황복수는 11전째에 왼손잡이 복서 김학영에게 첫 패배를 당했다. 잠시 주춤했지만 1974년 3월 한국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날다람쥐 김영식에 판정승을 거두면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김영식은 1972년 뮌헨 올림픽 최종선발전(플라이급)에 진출해 유종만(익산 남성고)과 일전을 펼쳤던 복서였다. 이후 황복수는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웅크린 자세에서 뿜어내는 정교한 타격 메카닉으로, 염동균과 무승부를 기록한 극강의 최영철을 비롯, 박덕용, 최용호, 최일성, 박춘하 등 국내 밴텀급 정상급 복서들을 차례로 잡으면서 5차방어전까지 성공했다. 1975년 2월 황복수는 태국에 원정을 가 밴텀급 동양챔피언 베네스 보코솔과 타이틀전을 벌이게 됐다. 당시 31전 30승(12KO) 1패를 기록한 황복수는 적지의 헨디캡에도 불구, 선전을 펼쳤지만 9회 눈 부상에 의해 TKO패를 당했다. 32전 31승 (24KO) 1패를 기록한 보코솔은 1972년 9월 베툴리오 곤잘레스(베네주 엘라)를 10회 KO로 제압하고 WBC 플라이급 정상에 올랐던 복서였다. 그는 1차 방어 성공후 밴텀급으로 올려 WBC밴텀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판정패를 당한 후 동양 밴텀급 정상에 올라 연착륙에 성공한 복서였다. ‘태국의 별’로 불리던 보코솔은 국내 선수와 8전 7승(4KO) 1패를 기록한 강자였다. 유일한 1패는 1976년 5월 한국에 원정 와서 홍수환에 당한 1패였다.

귀국한 황복수는 반납한 국내 밴텀급 타이틀을 놓고 김영식과 또 한차례 붙는다. 일전에 김영식과 2차례 싸워 연승을 거둔 황복수는 이번에는 판정패를 당했다. 그러자 두 체급이나 올려 페더급에서 활약하기로 한다. 1975년 8월 현수만을 판정으로 잡고 국내 페더급 정상에 오른 황복수는 신운철, 김효성을 차례로 잡으며 국내 페더급을 평정했다.

이아 1976년 5월 WBC 페더급 타이틀에 도전한 경력이 있는 강자 클레멘테스(필리핀)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동양 페더급 정상에 오른다. 1977년 4월에는 필리핀의 콜리 살로마를 상대로 1차 방어전도 승리를 거둔다. 살로마는 6년전 당시 14전 12승 2무(3KO)를 기록한 국내 밴텀급 챔피언 홍수환에 첫 패배를 안긴 복서였다.

수경사에 입대한 황복수는 여기서 천호상전 동문인 페더급 국가대표 전학수를 만나는데 그와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우정을 나누는 절친이 된다. 1975년 대한체육회 선정 우수복서에 선정된 전학수는 당시 박태국, 이거성, 서인석, 한창덕, 백종우, 강우영 등 국내 페더급 강적들을 차례로 꺾었던 테크니션이었다. 황복수는 1977년 10월 염동균을 2회 KO로 잡은 전력이 있는 요시다 슈조와 2차 방어전을 일본에서 벌인다. 그는 공격과 수비, 체력 등에서 상대를 압도, 12회 판정승을 거두며 기량을 맘껏 과시한다.

헥토르 카라스키야와 일전을 펼치는 황복수(오른쪽)
헥토르 카라스키야와 일전을 펼치는 황복수(오른쪽)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

44전 41승(14KO) 3패의 전적으로 마침내 WBC 페더급 1위에 오른 그는 1978년 1월 세계타이틀전 전초전을 갖는다. 상대는 한 체급 아래의 국내 챔피언 정순현. 이 대결에서 한수 아래로 평가받던 무명의 정순현에게 초반 허를 찔리는 기습적인 다운을 당하는 등 고전하다 10회 판정패를 당했다. 세계 타이틀 도전을 목전에 둔 그에게 먹구름이 덮친 것. 설상가상으로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 주먹이 함몰되는 부상까지 당했다. 치명적인 부상은 골수염으로 전이되어 은퇴하는 순간까지 황복수의 발목을 잡았다.

'지옥에서 온 악마' 헥토르 카라스키야.
‘지옥에서 온 악마’ 헥토르 카라스키야.

이 때 치른 대표적인 경기가 1978년 8월 헥토르 카라스키야(파나마)와 펼친 10회전 경기였다. 당시 15전 13승(13KO) 2패를 기록한 카라스키야는 홍수환에게 3회 역전 KO 패를 당한 우리에게 친숙한 바로 그 복서다. 홍수환에 패한 이후 2승 1패를 기록중이던 카라스키야는 10개월 만에 황복수와 일전을 펼치기 위해 한국에 원정을 왔다. 황복수는 1978년 4월 일본에서 로얄 고바야시와 벌인 3차 방어전에서 동양타이틀을 상실 한 상태였다. 와신상담한 그는 삭발까지 하는 결의를 보이면서 결전을 준비했다.

이 대결에서 3회전까지는 커버링을 하면서 카라스키야가 던진 펀치를 맞아본 황복수는 보코솔(태국)이나 로얄 고바야시(일본)의 펀치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펀치였다고 회상했다. 자신감을 얻은 황복수가 4회전부터 타격전으로 전환해 주도권을 잡고 카라스키야의 복부에 좌우 어퍼컷을 날리자 그는 욱! 욱! 외마디 신음을 질러댔다. 카라스키야는 턱보다는 복부가 약한 복서였다. 163cm 단신의 황복수는 그렇지만 부상당한 오른손 탓에 회심의 일격을 날리지 못했다. 10회전 경기가 끝나고 카라스키야의 2 대 1 판정승이 선언됐다. 이때 황복수 트레이너 이영원 관장이 거칠게 항의를 해보았지만 승부를 되돌릴 순 없었다.

왜 황복수는 홈 링에서 잘 싸우고도 판정에서 패했을까. 시합이 있기 얼마 전 국내에서 국제경기가 펼쳐졌는데 K 선수가 졸전을 펼쳤는데도 억지 판정승을 거두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때 KBC(한국 권투 위원회)는 심판진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며 공정한 판결을 지시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황복수는 오히려 안방에서 역풍을 맞은 것이다. 그는 1980년 53전 42승 (15KO) 9패 2무를 끝으로 쓸쓸히 링을 떠난다. 비록 단 한번의 세계 타이틀도 도전하지 못한 그였지만 세계챔피언을 지냈거나 그에 버금가는 선수들과 가리지 않고 싸웠던 프로 근성이 투철한 복서였다.

왼쪽부터 홍수환 챔프, 헥토르 카라스키야, 황복수.
왼쪽부터 홍수환 챔프, 헥토르 카라스키야, 황복수.

인생 2막에서 다시 ‘복수의 꿈’을

2017년 11월 홍수환 챔프의 세계타이틀 획득 40주년 기념행사 때 홍수환, 황복수와 일전을 벌인 카라스키야가 방한헤 세 명의 전직 복서가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다. 현장에서 보니 홍수환은 후배인 황복수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자신의 모친인 황농선 여사와 같은 ‘장수 황씨’라서 그런 듯했지만, 그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황복수는 은퇴한 후 삼립식품 과장으로 근무를 하다 1996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우봉산 자락에 ‘엔학고레 가든’이라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병풍처럼 펼쳐진 수려한 곳에 세워진 이 곳은 입소문을 타면서 연매출 10억원이상을 올리는 등 장사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비운의 복서 황복수는 인생 2막에 통쾌한 역전 만루홈런을 날리고 있다.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을 지닌 황복수 선수에게 무한한 건승을 바란다.

엔학고레 가든에서 황복수(왼쪽), 전학수와 아내들.
엔학고레 가든에서 황복수(왼쪽), 전학수와 아내들.
글쓴이

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럼 관장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그 전에는 5년동안 야구선수 생활을 했는데, 전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조계현, 백인호 등 동료들과 우승한 경력도 있다. 1983년 복싱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쳤으며 1989년 지도자로 변신했다. 용산공고, 서울체고를 거쳐 천안 충의소년원,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복싱강사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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