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무적’ 황충재, 한 방에 7억원 날린 사연

[조영섭의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선수들] 13초만에 KO승...아시아 기록 남겨 한국챔피언 황준석에 불의의 패배 레너드와 세계타이틀전 무산돼 “자만 탓” 깨끗이 인정...대신 멋진 인생을

황충재 선수와 세계웰터급 통합챔피언 슈거레이 레너드(우측)
황충재 선수와 세계웰터급 통합챔피언 슈거레이 레너드(우측)

프로 3년차 동양 최고의 주먹에 등극

당대를 호령했던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충재를 최근 만났다. 필자의 체육관 인근에 위치한 모 행사장에서 황 챔프와 그의 절친 박장서, 그리고 배구 국가대표였던 장윤창 현(現)경기대 교수와 함께 자리를 했다.

황충재는 1958년 4월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야인시대에 등장하는 풍운아들의 결투에 매료되어 나주에 있는 영산포 상고에서 복싱을 시작했다. 복싱을 배우면서 그는 엘리트 복싱에 눈을 돌려 1976년 전국 신인대회에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그난 남산 공전의 다크호스 유제형에 아쉽게 판정패해 동메달을 따낸다.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유제두의 친동생 유제형은 아마추어 시절 전국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톱 복서였다.

황충재는 고교 졸업반이던 1977년 10월, 제5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 그해 겨울 태릉선수촌에서 국가대표 평가전이 열렸는데, 당시 웰터급 국가대표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김주석 이었다. 그의 평가전 상대는 정용석이란 상비군복서였는데, 출전에 펑크를 내자 대한복싱협회 조철제 전무의 추천으로 황충재가 대타로 나선다. 김주석과 맞대결한 황충재는 한차례 다운을 뺏는 등 완승을 거두면서 국가대표에 발탁된다.

동양 웰터급 챔피언 시절의 황충재 선수.
동양 웰터급 챔피언 시절의 황충재 선수.

이어 그는 1978년 한국체대에 진학한다. 박형춘 한국체대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그해 4월 제2회 세계선수권대회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이어 5월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제4회 아시아 청소년대회의 결승에서 모하마드 야베드에게 1회 KO승을 거두고 국제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다.

그 이후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 해 12월 태국 방콕에서 벌어진 제8회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말레이시아의 마심 선수와의 일전에서 그는 공이 올리자마자 득달같이 상대에게 달려가 라이트 한 방을 날려 단 13초 (카운트 포함)만에 KO승을 거둔다. 이 기록은 아시아복싱경기 사상 최단 시간 KO승으로 등재되어 있다. 결승에서 태국 선수마저 꺾고 우승한 황충재는 1979년 프로로 전향하며 동국대학교로 편입한다.

1979년 4월 프로에 데뷔한 후 파죽의 6연승(5KO)을 기록한 황충재는 1980년 2월 필리핀 마닐라에 원정해 동양 타이틀전을 벌였다. 챔피언은 한국의 이만덕을 꺾고 동양웰터급 정상에 오른 단디 구즈만 선수. 이 대결에서 황충재는 한차례 다운을 뺏는 등 일방적인 공격으로 완벽한 판정승을 거둔다.

레너드와 세계 타이틀전을 눈앞에 두고

데뷔 3년차인 1982년 2월 단디 구즈만과 13차 타이틀 방어전에서 3회 KO승을 거두기까지 황충재는 초고속 행진을 펼쳤다. 관록이 붙은 그는 어느덧 WBA 웰터급 1위에 랭크되어, 당시 세계 웰터급 통합챔피언 슈거 레이 레너드에게 지명도전을 눈앞에 두게 됐다. 그러나 레너드 측은 황충재가 소속되어 있던 극동체육관의 전호연 회장에게 WBC 웰터급 1위 쿠에바스와 WBA 웰터급 1위 황충재가 도전자 결정전을 치르고 그 승자와 7월에 대결하자고 요청했다.

당시 브루스 핀치를 상대로 3회 KO승을 거두고 통합 타이틀 1차 방어에 성공한 레너드는 4월에 동급 4위 스태포드와 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쿠에바스측은 이런저런 이유로 경기날짜를 7차례나 변경하는 바람에 맞붙기로 했던 황충재는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전호연 회장이 일본 출장을 떠나면서 “레너드와 전인미답의 경기가 성사되었다”면서 동양타이틀을 반납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어떤 경기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레너드와 대결을 앞둔 황충재에게 책정된 파이트 머니만 7억원이었다. 당시 프로야구 최고 연봉으로 OB 베어스 박철순의 연봉이 2400만원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 웰터급 챔피언 황준석이 소속된 동아프로모션의 김현치 회장과 황충재가 속한 극동프로모션의 김종수 사장이 사석에서 담화를 나눈다. 대화를 나누던 중 동아 김현치 회장이 극동 김종수 사장에게 약올렸다.

“요즘 황충재 경기내용이 영 시원찮아. 방전된 배터리 마냥 체력이 약해 그런 스타일은 우리 준석이 같은 스타일에 걸리면 한방이면 끝난다”고 했다. 이에 김종수 사장은 “하룻강아지 황준석을 천하의 황충재와 비교하냐”며 발끈했다. 이때 김 회장은 “정말 자신 있다면 둘이 맞대결해서 이긴 사람이 3백만원을 갖자”며 부추겼다. 결국 치밀하게 계획된 김현치 회장의 시나리오에 휘말린 김종수 사장이 OK 싸인을 내면서 황충재의 동양타이틀 14차 방어 상대는 황준석이 됐다.

날아간 파이트머니 7억원

한편 웰터급 통합챔피언 레너드와의 대결을 목전에 두고 훈련을 강행하고 있던 황충재는 김종수 사장의 얘기에 “이런 애송이가 감히 어디서...”하며 화답해버렸다. 그때 황충재가 여유 있게 허허 웃으면서 ‘레너드 경기 끝나고 담에 천천히 한번 생각해 봅시다’고 말했다면 그 경기는 성사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칼자루는 극동프로모션이 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4세의 황 챔프 역시 끓어오르는 혈기를 조절하지 못해 시합에 응하면서 경기가 성사됐다.

1982년 4월 22전 전승(19KO)를 기록한 ‘동양의 무적’ 황충재의 14차방어전은 이렇게 성사됐다. 15전 전승(6KO)를 기록중이던 21세의 동양웰터급 1위 황준석과 대결에서 황충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초반부터 서둘렀다. 그리고 2회 성급하게 접근전을 시도하다 황준석의 기습적인 좌우 훅에 다운을 당한다. 3회에도 황준석의 장타, 단타에 속수무책으로 두 차례나 다운됐고, 이후 침몰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결국 황충재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질 못하고 8회 백기를 들었다.

황충재는 이 경기에 대해 필자에게 “황준석은 순발력과 투지가 좋은 한 수위의 복서였다”며 “상대를 과소평가한 자신의 실책이 컸다”며 반성했다. 황충재는 자신의 패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필자에게도 자신을 미화하는 글을 절대로 쓰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직하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행동에 고개가 숙여졌다.

황준석의 트레이너였던 김윤구 관장도 “아마 경력이 전혀 없는 준석이는 모든 면에서 열세였지만 황충재 전에 대비해 치밀하게 연구분석을 했다”면서 “황충재가 초반부터 자신의 평소 스타일대로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경기를 진행했다면 준석이가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 회고했다. 파이트머니 7억원도 날아가버렸다. 세계 랭킹1위와의 지명전이었기 때문에 이날 경기 패배로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내놔야 했고 지명도전권도 사라진 것.

이 무렵 같은 동아체육관 소속의 박종팔도 한 수 아래의 복서로 생각하고 만만하게 스파링을 펼쳤던 황준석이 황충재와의 경기 이후엔 기량이 급성장하자, 상대하기 매우 힘들었던 모양이다. 박종팔은 필자에게 “오메, 오메, 어쩐다냐, 준석이 실력이 허벌나게 늘어, 나가 힘들어 미치겠땅께”라고 구수한 특유의 사투리로 말할 정도로 황준석은 급성장해버렸다.

한편 절치부심한 황충재는 이후에 5승(5KO) 1패를 기록하며 황준석과 재대결을 추진했지만 실현되지 않자 그는 1984년 8월 잠정은퇴를 선언한다. 상황이 반전된 황준석은 동양 타이틀 8차 방어전까지 전부 KO승으로 장식하고 있었기에, 전세가 역전된 상황에서 황충재와 굳이 대결할 이유가 없었다. 와신상담한 황충재는 5년 3개월이 지나 21㎏을 감량하고 링 컴백, 1989년 11월 복귀전에서 2회 KO승을 거두며 황준석과 재대결을 향해 마지막 러브콜을 외쳤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31전 28승 (25KO) 3패의 기록을 남긴 채 영원히 링을 떠난다.

왼쪽부터 장윤창 전배구 국가대표, 황충재의 절친 박장서, 황충재 전동양챔프.
왼쪽부터 장윤창 전배구 국가대표, 황충재의 절친 박장서, 황충재 전동양챔프.

돌고 도는 인생, 가수로 인생 3막을

황충재의 14차 방어전을 무너뜨리며 동양웰터급 정상에 오른 황준석도 황충재처럼 14차 방어전에서 도전자 이승순에게 6회 KO패를 당하며 벨트를 풀었다. 은퇴 후 황충재는 KBS 복싱 방송해설자로 활약했다. 그리고 강남에서 ‘피렌체’라는 양복점과 디스코텍을 운영하면서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황충재는 가수 겸 배우인 이동준 그리고 ‘갈대의 순정’을 부른 박일남과 친형제처럼 지낸다.

태권도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한 동갑내기 친구 이동준은 황충재가 1977년 제58회 전국체전에 고등부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때 태권도 종목에서 충북 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한 인연으로, 황충재와 추억을 공유한 친구다.

왼쪽부터 배우겸 가수 이동준, 가수 박일남, 황충재 챔프.
왼쪽부터 배우겸 가수 이동준, 가수 박일남, 황충재 챔프.

1939년 부산출생의 가수 박일남은 부산에서 복싱에 입문, 라이트급으로 3차례 각종 선수권에 출전한 운동선수 출신이다.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고(故) 김기수와 친구인 박일남은 후배 복서 황충재와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1990년대 초반 KBS 권투 방송해설을 맡은 황충재 챔프에게 해설 자료를 정리해 챙겨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사업에 바쁜 그를 위해 도우미 역할을 한 것이다.

황충재는 2017년 오래전부터 깊게 인연을 맺은 가수 남진의 권유로 2017년 가요계에 데뷔해 인생 3막을 지내고 있다. 친구인 설운도가 작곡한 ‘뻥이야’란 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던 그는 조용필의 3집 앨법 타이틀곡인 ‘고추잠자리’를 작사한 김순곤의 신곡 ‘싸나이’를 받아 조만간 팬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60대 중반에도 꿈을 잃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황충재 챔프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글쓴이

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럼 관장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그 전에는 5년동안 야구선수 생활을 했는데, 전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조계현, 백인호 등 동료들과 우승한 경력도 있다. 1983년 복싱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쳤으며 1989년 지도자로 변신했다. 용산공고, 서울체고를 거쳐 천안 충의소년원,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복싱강사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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