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기관차’ 황준석, 피피노 쿠에바스를 꺾다

[조영섭의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선수들] 황충재 꺾고 화려하게 등장한 황준석 강력한 훅으로 두차례 세계타이틀전 도전 ‘링의 도살자’와 강펀지 대결 끝 승리해

전 WBA웰터급 챔피언 피피노 쿠에바스(왼쪽)와 대결하는 황준석.
전 WBA웰터급 챔피언 피피노 쿠에바스(왼쪽)와 대결하는 황준석.

연중 가장 화사한 날씨를 뽐내는 5월, 절정에 다다른 신록의 쾌청함과 어우러져 전국 곳곳에서는 축제의 팡파레가 한창이다. 이런 청명한 5월이면 오래전 남한산성 기슭에서 순박한 시골 청년 황준석과 담화를 나누던 지난날이 생각난다. 황준석은 1991년 5월 WBA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질베르 데일에 15회 판정패 당한후 은퇴했다. 이후에 경기도 성남에서 개인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필자도 성남 모란역에 위치한 성남체육관에서 1997년 11월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제리 페날로사(필리핀)와 타이틀전을 앞둔 동급 8위 조영주의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그와 교류하곤 했다. 이번주 칼럼의 주인공은 황준석 전 동양 웰터급 챔피언이다.

13차 방어전까지 성공했던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준석
13차 방어전까지 성공했던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준석

무명 복서에서 중량급 신데렐라로

한국 프로복싱의 손꼽히는 파이터였던 황준석은 유제형, 황충재, 백인철, 이승순 등 정상급 국내 복서들과 진검승부를 펼치며 성장하고 실력을 검증받은 복서다. 또 도널드 커리,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 길버트 데일 등 세계챔피언들과 자웅을 겨뤘다. 비록 세계정상에 오르진 못했지만 47전 42승(29KO) 5패의 통산전적을 자랑하는 한국웰터급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그는 1961년 4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청양은 이해찬, 이완구 두 거물 정치인을 배출한 고장이다. 이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상경한 그는 김현치 관장이 수장으로 있던 동아체육관에 입관, 김윤구 사범의 지도로 복싱을 배워나갔다. 체육관에 기숙하면서 20개월이 지난 1979년 11월 황준석은 당시 엘리트 복서 등용문인 MBC 전국신인왕전에 출전, 4연승(2KO)을 기록하며 웰터급 신인왕에 등극했다. 6전째에 일본에 원정, 2회 KO승을 거두면서 무난히 국제전까지 소화하며 7연승(3KO)을 기록한 황준석은 1980년 9월에 유제형이 보유한 한국 웰터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세계챔피언 유제두의 친동생인 그는 아마추어 3관왕 출신으로 프로에 전향해서도 8연승 (5KO)를 기록한 원숙한 챔프였다. 그렇지만 황준석은 모든 예상을 뒤집고 치열한 접전 끝에 판정승을 거두면서 국내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1년여 뒤인 1982년 4월 그는 우여곡절 끝에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충재의 14차 방어전 상대로 내정돼 일전을 벌이게 된다. 양 선수 모두 창원 황씨다. 여담이지만 황철순, 황복수등 저명한 황씨 복서들은 모두 창원 황씨다. 하다 못해 홍수환 전 챔프의 모친인 황농선 여사 또한 창원 황씨다.

같은 체육관 소속이었던 이승순과 대결하는 황준석(오른쪽)
같은 체육관 소속이었던 이승순과 대결하는 황준석(오른쪽)

‘상극’이었던 두 창원 황씨 복서

황충재는 오래전 필자와 대화에서 1981년 5월 벌어진 황준석의 국내 웰터급 타이틀 2차방어전(對 오광렬 전)을 직관한 일이 있다고 했다. 이 대결에서 황준석이 쉽게 경기를 풀지 못하고 진땀을 흘린 끝에 6회 오광렬의 반칙으로 인해 실격승을 거둔 장면을 지켜본 것이다. 오광렬은 황충재가 태릉에서 국가대표로 훈련을 할 때 스파링 파트너로 와서 황충재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복서였다.

그런 상대에게 별다른 임팩트 없이 졸전으로 일관한 황준석의 경기를 지켜본 황충재는 힘만 좋을 뿐 기술이 단조로운 복서라고 평가했다. 이런 황준석이 도전장을 내밀자 황충재 측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고 프로에 전향 22전 전승(19KO)를 기록하면서 동양 타이틀 13차 방어(12KO)에 성공한 거함 황충재는 동양권에서는 박종팔, 백인철과 더불어 난공불락 요새였다. 반면 15전 전승(6KO)의 황준석은 중량감이 떨어지는 새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황준석의 순발력을 동반한 필살기인 위력적인 양훅을 무방비 상태에서 허용한 황충재는 2회 첫 다운을 당하는 등 일방적으로 몰렸다. 결국 황준석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한 황충재는 4차례 링 바닥에 쓰러지면서 8회 백기를 들었다.

정통파 복서 황충재와 러씽(rushing) 파이터 황준석은 스타일상 상극(相剋)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다른 스포츠에서도 흔하다. 프로야구에서 2010년 타격 7관왕을 차지한 이대호(롯데)는 SK 잠수함 투수 정대현에겐 40타수 2안타 5푼의 타율에 그쳤다. SSG 최정은 NC다이노스 사이드암 투수 이재학에겐 26타수 1안타 12 탈삼진을 당한 선수다. 또 이만기에 4승(2패)을 걷어올린 강호동은 이봉걸에게 4전 전패를 당한 기록이 있다.

아무튼 황충재와의 일전은, 영국의 계관시인 바이런의 어록처럼 ‘자고 일어나니 한순간에 유명’해진 황준석의 출세작이었다. 그는 이어 그해 6월 27일 문화체육관에서 마이크 구즈만을 상대로 동양타이틀 1차방어전을 벌여 2회 KO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이어간다. 반면 황충재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멕시코의 무명 레오날도 치노와 벌인 재기전에서 판정패를 당하고 만다.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도널드 커리와 결전을 벌이고 있는 황준석.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도널드 커리와 결전을 벌이고 있는 황준석.

실패의 아쉬움, 쿠에바스를 저격하다

탄력을 받은 황준석은 다음해 2월 9연속 KO 퍼레이드를 펼친 후 미국에 원정을 떠났다. 전설적 챔피언 슈거레이 레너드의 은퇴로 공석이 된 WBA 웰터급 타이틀을 놓고 15전승 (11KO)을 기록한 도널드 커리(미국)를 상대로 타이틀 결정전을 치렀다. 경기전 황준석은 바로 3개월전 WBA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투혼 끝에 목숨을 잃은 김득구의 한 맺힌 세계타이틀 벨트를 영전에 바치겠다고 선언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 대결에서 그는 전매특허인 강력한 라이트훅으로 7회 한차례 다운을 뺏는 등 상승 무드를 탔다. 위협을 느낀 업 라이트 스타일의 커리는 ‘코브라’란 별명처럼 독침같은 스트레이트를 연거푸 품어냈다가 물러서는 힛 앤드 어웨이(Hit and away) 전술로 대응, 포인트에서 밀린 황준석은 결국 판정패를 당한다.

그 대결 이후에 동양 웰터급 8차 방어에 성공하면서 전열을 추스린 황준석은 1984년 7월 전WBA 웰터급 챔피언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멕시코)와 일전을 펼친다. 그는 ‘링의 도살자’란 닉 네임으로 세계챔피언 시절 11차례 방어전 중 10번을 KO로 방어한 강타자였다. 황준석은 날다람쥐처럼 도망다니는 도널드 커리 전과는 달리, 멧돼지처럼 근접전을 펼치는 쿠에바스와 격렬한 타격전을 펼친 끝에 적지나 다름없는 미국 링에서 판정승을 거두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백인철이 가장 긴장한 게임

자신감을 얻은 황준석은 1986년 10월 38승(36KO) 2패를 기록한 백인철이 보유한 동양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도널드 커리의 테크닉과 피피노 쿠에바스의 강펀치를 겸비한 완전체 복서 백인철도 바짝 긴장한 채 그를 맞았다. 백인철은 같은 극동체육관 소속인 황충재의 아성을 무너뜨린 황준석을 만만히 보지 않았다. 챔피언 백인철을 상대로 황준석은 선전했지만 5회 한차례 다운을 당하는 등 자로 잰듯한 백인철의 리드 펀치를 봉쇄하지 못하고 판정패를 당한다.

백인철은 경기 일주일 전에 이미 한계체중을 맞출 정도로 하드 트레이닝을 소화했다. 훈련후 주기적으로 마시던 술도 보름동안 끊은 채 철저하게 대비했다. 백인철의 회고에 의하면 50전을 싸우면서 황준석과의 대결이 가장 긴장했던 일전이었다.

황준석은 다음해인 1987년 2월 같은 체육관 소속이었던 이승순을 상대로 동양 웰터급 14차 방어전에 출격한다. 이 대결에서 29연승(22KO)을 달리던 도전자 이승순에게 6회 KO패를 당해, 5년간 13차례 지켜온 타이틀 벨트를 풀게 된다. 경기후 황준석은 이승순에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젠틀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리고 2년 6개월 후 두 복서는 다시한번 맞붙엇다. 이번엔 도전자 황준석이 이승순에 10회 판정승을 거두면서 설욕에 성공했다. 패한 이승순은 36전 32승(24KO) 4패를 남기고 은퇴했다.

남한산성 계곡의 한 식당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필자와 황준석(오른쪽)
남한산성 계곡의 한 식당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필자와 황준석(오른쪽)

난적 이승순을 잡고 다시 WBA 웰터급 1위에 오른 황준석은 1991년 5월 두번째 세계타이틀전에 나섰다.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질베르 데일과 타이틀전에 지명 도전자 자격으로 파리로 날아간 황준석은 27전 26승(18KO) 1무의 챔피언 질베르 데일에 판정패를 당해 8년 만에 찾아온 세계타이틀 쟁취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곧바로 복싱을 접는다. 은퇴 후 개인사업에 성공한 황준석은 인생 3막에서 운동선수의 모범상을 보이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황소 황준석의 건승을 바란다.

글쓴이

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럼 관장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그 전에는 5년동안 야구선수 생활을 했는데, 전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조계현, 백인호 등 동료들과 우승한 경력도 있다. 1983년 복싱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쳤으며 1989년 지도자로 변신했다. 용산공고, 서울체고를 거쳐 천안 충의소년원,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복싱강사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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