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레전드’ 유명우와 김광선이 맞붙었다면?

[조영섭의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선수들] 동갑내기 김광선과 유명우, 누가 더 셌을까 김광선, 아웃복서에 강했지만 파이터에 약해 유명우, 유연성 뛰어나지만 아웃복서에 약해 필자가 아는 두 위대한 복서의 승부예측은?

1990년 '복싱인의밤' 행사에서 한 테이블에서 포즈를 취한 유명우 챔프(왼쪽)와 김광선 챔프.
1990년 '복싱인의밤' 행사에서 한 테이블에서 포즈를 취한 유명우 챔프(왼쪽)와 김광선 챔프.

필자의 서재에 한 켠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광선 선수가 1990년 프로 전향후 ‘복싱인의 밤’ 행사에 참석해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와 포즈를 함께 취한 사진이 놓여있다. 그 시절과 두 사람에 대한 얘기를 이번 칼럼에 풀어본다.

프로복싱 신기록 제조기 유명우

두 선수는 1964년 용띠생 동갑내기다. 유명우는 1982년 3월 1승 3패의 아마 전적을 뒤로하고 18세에 일찍 프로로 전향했고 김광선은 1980년 한양공고 1학년 때 한국체육관에 입관, 동국대 복싱 감독 김진영 선생의 지도로 그해 서울 신인대회 코크급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50승 10패의 화려한 아마 전적을 뒤로 하고 1990년 11월 매니 멜초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펼쳤다.

WBC 주니어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 도전한 유명우(오른쪽)와 챔피언 조이 올리버.
WBC 주니어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 도전한 유명우(오른쪽)와 챔피언 조이 올리버.

유명우는 프로로 전향해 18전 전승(4KO)을 기록하다가 1985년 12월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조이 올리버를 꺾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6년 9일 동안 17차례나 세계타이틀 방어에 성공, 수많은 기록을 쏟아냈다. 1991년 12월 18차 원정 방어전에서 일본의 이오까에 판정패하며 벨트를 풀었지만 다시 1년, 정확히는 337일 만인 1992년 11월 18일 재경기를 펼쳐 이오까에 판정승을 거두고 세계챔피언에 복귀했다. 그리고 1993년 7월 1차 방어전에 성공한 뒤 타이틀을 자진반납, 12년간의 복서 생활을 마감하면서 한국 복싱의 진정한 레전드가 됐다.

그는 통산 39전 중 21차례의 세계타이틀전을 치러 20승(10KO) 1패를 기록했다. 또 36연승이라는 국내 최다 연승 기록도 갖고 있으며 이를 필두로 세계 타이틀 최다승(20승), 최다방어(17차). 최다 KO(10회), 주니어플라이급 최단 KO 기록(1회 2분46초) 등 각종 국내 신기록을 수립했다. 또 상실한 타이틀을 최초로 되찾아 온 복서이기도 하다.

이오까와 대결하는 유명우(오른쪽).
이오까와 대결하는 유명우(오른쪽).

아마복싱의 별 김광선

아마복싱 백년사에서 가장 밝은 별 중 하나인 김광선은 1964년 6월 전북 군산시 조촌동에서 태어났다. 1982년 제5회 핀란드 국제대회에 2진으로 참가, 소련의 에스자노프를 판정으로 잡으며 라이트플라이급 금메달을 획득하고 최우수복서까지 선정되면서 주목을 받는다. 초창기 허영모, 오광수에 5패를 당하는 성장통을 딛고 일궈낸 금자탑이었다. 그는 허영모가 플라이급으로 승급하자 1983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킹스컵, 로마 월드컵을 차례로 휩쓸었고, 1986년 아시안게임, 1987년 아시아선수권, 월드컵, 1988년 서울컵과 서울 올림픽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국제대회 최다금메달 보유자(9개)로 등재되기도 했다.

특히 1987년 제5회 유고 월드컵 대회 준결승에서 쿠바의 레갈라드를 5 대 0 판정으로 잡은 경기는 압권이었다. 레갈라드는 극강의 복서 페드로 레예스를 꺾고 쿠바 국가대표로 발탁된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였다. 레예스는 1983년 로마 월드컵대회 플라이급 결승에서 허영모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진 1986년 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던 선수였다.

1982년 핀란드에서 개최된 템머 대회와 1983년 로마 월드컵 결승에서 만난 구소련의 에스자노프는 1988년 서울올림픽 라이트플라이급 결승에서 마이클 카바할을 꺾은 불가리아의 무스타 포프를 무찌른 세계적인 아마추어 복서였다. 김광선은 에스자노프를 가볍게 눌렀다.

아웃복서 킬러였던 김광선(왼쪽)이 아마추어 경기를 하는 모습.
아웃복서 킬러였던 김광선(왼쪽)이 아마추어 경기를 하는 모습.

김광선 vs. 유명우 맞대결하면

이런 화려한 아마추어 전력을 보유한 김광선이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단 1승에 불과했던 유명우와 프로무대에서 맞대결했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이들은 동갑내기였고 같은 시대를 풍미했지만, 맞붙은 적은 없다.

필자 생각에 김광선은 인파이팅의 교과서라 할 만큼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킬러본능이 뛰어난 복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김광선은 유명우가 상대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다. 김광선은 풍차가 돌아가듯이 양 훅으로 맹폭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유명우는 철갑을 겹겹이 두른 듯한 견고한 커버링이 철옹성 같다. 몸놀림도 수양버들처럼 유연하다. 좀처럼 김광선이 타점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포물선을 그리는 양 훅은 유명우의 레이더망에 쉽게 포착돼 요격됐을 가능성이 크다.

중반을 넘어가면 체력이 소진된 김광선은 유명우의 정밀타격에 몸통과 안면을 허용해 붕괴될 가능성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기생 관계, 공생 관계, 천적 관계로 나눠지는데 필자가 볼 때 이 두 복서는 스타일상 천적 관계란 생각이다. 천적 관계는 스포츠 세계에서 흔히 발견된다. 프로야구에서 국민타자 이승엽은 한화의 구대성만 만나면 솔개를 만난 병아리처럼 옴짝달싹 못했다. 이승엽은 구대성을 상대로 51타수 6안타 1할 1푼 7리를 기록했다.

유명우가 세계 타이틀 1차와 8차 방어전에서 상대했던 19전 18승(15KO) 1무 전적의 호세 데 헤수스(푸에르토리코, 나중에 WBO 동급 챔피언에 등극), 3차와 12차 방어전에서 맞붙은 32전 25승(9KO) 4무 3패의 데마리코(아르헨티나), 6차 방어 상대였던 WBA·WBC·IBF 3개 기구 1위의 블랑코(콜롬비아), 1985년 9월 도전자 결정전을 벌였던 WBA 동급 3위이자 20전 19승(9KO) 1패의 손오공(한국) 등은 들소처럼 과감하게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인파이터 유형이다. 이들은 유명우의 고무줄처럼 유연한 몸놀림과 방탄벽처럼 견고한 커버링에 막혀 마치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날개만 퍼덕거리다가 완패를 당했다. 이들에게 유명우는 천적이었다. 프로야구에서 구대성 투수가 던지는 공의 궤적과 이승엽의 히팅포인트가 상극이어서 천적 관계가 형성되었듯이, 김광선과 유명우 두 복서의 스타일 역시 상극에 가까웠으리라.

한편, 김광선은 아마 시절부터 파이터들에게 가끔씩 고전했다. 1985년 11월 4일 벌어진 제5회 서울 월드컵대회 플라이급 준결승에서 베네주엘라의 린코네에게 2회 2분37초만에 RSC패를 당했고, 1987년 2월 올림픽 2차 선발전에서 현 용인대 교수인 김진표에게 한차례 녹다운을 당한 끝에 힘겹게 판정승을 거뒀다.

1990년 11월 프로 데뷔전에서도 김광선은 14승 13패(4KO)를 기록한 필리핀의 매니 멜초에 7회 한차례 다운을 당한 끝에 8회 판정승을 거뒀고, 2차전에서도 일본 선수에게 8회 한차례 다운을 당한 뒤 10회 역전 KO승을 거뒀다. 또 1992년 6월 7일 챔피언 옴베르토 곤잘레스(멕시코)와의 WBC 주니어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12회 55초 만에 KO패 당했고, 1993년 7월 17일 세계타이틀 전에서도 챔피언 마이클 카바할(미국)에 7회 KO패 당하고 링을 떠났다. 이처럼 김광선은 파이터들을 상대로는 아마·프로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지 못했다.

챔피언인 옴베르토 곤잘레스와 WBC 주니어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을 치르는 김광선(왼쪽).
챔피언인 옴베르토 곤잘레스와 WBC 주니어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을 치르는 김광선(왼쪽).

이에 반해 39전을 싸우면서 단 한 차례의 다운도 허용하지 않은 유명우의 디펜스 능력과 왕성한 체력은 상대를 압도하고 남았다. 유명우는 프로복싱에 특화(特化)된 복서였다.

복싱은 서로 물리는 먹이 사슬같아

하지만 유명우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여담이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허영모란 친구를 생전에 2차례 그의 자택이 있는 순천에 내려가 취재를 한 적이 있다. 172cm로 상대적 큰 키의 허영모는 전형적인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정통파 복서였다. 그는 자신이 아마추어 룰로 대결했을 때 싸워서 이기기 힘든 복서로 우선 장정구와 박찬희를 꼽았다. 그리고 문성길, 홍수환, 유명우 순으로 나열했다.

허영모는 조이 올리버, 이오까와 접전을 벌인 유명우를 싸우기 비교적 편한 상대로 꼽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유명우는 172cm 키의 조이 올리버에게 잽을 많이 허용해 상당히 고전했다는 것. 유명우의 견고한 커버링은 양 훅을 던지는 복서들에게 특화된 것이었지만, 송곳처럼 날카롭게 찌르는 잽과 스트레이트에는 안면이 노출돼 취약했다. 유명우의 천적은 바로 장신으로 스트레이트가 주특기인 아웃복서였던 것이다.

김광선, 유명우, 이오까 3명의 복서들을 분석해보면, 만일 김광선이 유명우와 1승 1패를 기록한 아웃복서 이오까와 대결한다면 화염방사기처럼 뿜어내는 막강 공격력을 과시하며 펀치력과 체력이 평범한 이오까를 무난하게 제압했을 것 같다. 158cm의 단신의 파이터 김광선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스트레이트 전문의 장신 아웃복서를 잡는데 특화(特化)된 복서였기 때문이다. 150승 10패의 아마추어 전적을 자랑하는 김광선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미국·소련과 유럽권 아웃복서에게 패한 것은 단 두차례 뿐이었다. 이 같은 필자의 견해에 복싱 전문지 <펀치라인>의 기자로 7년간 활동한 L모 선배도 공감을 표했다.

자연계의 천적 관계와 먹이사슬처럼 복싱도 A선수가 B선수에게 강하고 B선수는 C선수를 이기지만 C선수는 A선수를 꺾는 기현상도 일어난다. 스포츠 격언 중에 ‘예상은 예상에 그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신(神)이 아닌 이상 인간이 스포츠 경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한국복싱이 하루 빨리 정상화 되어 유명우, 김광선 같은 세계챔피언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다시 나타나기를 바란다.

글쓴이

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럼 관장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그 전에는 5년동안 야구선수 생활을 했는데, 전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조계현, 백인호 등 동료들과 우승한 경력도 있다. 1983년 복싱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쳤으며 1989년 지도자로 변신했다. 용산공고, 서울체고를 거쳐 천안 충의소년원,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복싱강사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