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우보다 못한 딱 한가지, 윤석현의 아쉬움
[조영섭의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선수들] 선배 유명우 챔프와 같은 체육관 출신 두번의 동양챔피언 등극...짧았던 영광 가장 강한 선수였지만, 폭음에 발목잡혀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2년 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다 접고 연락이 두절된 윤석현 관장이었다. 통화내용인즉 복싱 후배가 개관한 복싱체육관에 한 달 전부터 출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윤석현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체력 좋으나 승운이 없었던 윤석현
윤석현은 1972년 4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윤영수옹은 청년 시절 당진에서 개최된 20㎞ 단축마라톤 대회를 여러차례 석권한 마라토너였다. 그 때문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선수로 활약한 윤석현은 천부적으로 체력과 힘이 특출났다. 윤석현이 나고 자란 충남 예산은 추사 김정희, 매헌 윤봉길의 고향이고 운동선수로는 축구의 황선홍, 씨름의 박광덕이 이 고장 출신이다.

복싱계로만 보면, 충남 예산은 1929년 9월 17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이 땅에 최초의 복싱체육관인 <조선 권투 구락부>를 설립한 ‘한국복싱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의경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또 1991년 세계선수권 동메달 신은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신동길, 1997년 한미 국가대항전 라이트 웰터급에 출전한 백승영, 동양 웰터급 챔피언을 지낸 박봉관을 비롯, 차상준, 유화룡, 문태진 등 정상급 복서들이 나고 자란 곳이다.
윤석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상경해 서울 구로구에서 가발공장에 다니면서 필자가 소속된 영등포 88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를 지도한 트레이너는 1982년 아마추어 국가대표였던 황동용이다. 1984년 1월 프로에 데뷔한 황동용은 단 4전(전승)의 전적으로 54전 48승(34KO) 1무 5패를 기록한 멕시코의 백전노장 헤르만 토레스를 꺾고 WBA 세계 6위에 진입한 선수였다. 이런 경력을 보유한 황 사범에게 3개월간 기본기를 탄탄하게 배운 윤석현은 첫 스파링에 나선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다. 상대는 경력 4년의 아마복싱 선수권자 임성태였다. 그도 황동용의 수제자로 훗날 WBA 플라이급 랭커에 올랐고 21전 무패로 은퇴했다.

뒤늦게 꽃핀 승운...조용갑과 특별한 인연
윤석현은 1989년 7월 직장 관계로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대원체육관(관장 김진길)으로 이적했고, 라이트급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1992년 2월 코리아체육관 조용갑과 대결전까지 그는 8전 4승 4패를 기록한 반타작 복서에 지나지 않았는데, 조용갑에 8회 판정승을 거두면서 비로소 승률 5할을 넘겼다.
조용갑을 잠시 얘기하자면, 그는 은퇴후 복서출신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이력을 쌓게 된다. 그는 전 동양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조용인의 친형으로, 은퇴 후 성악가로 변신해 2008년 토티 달 몬테 국제 콩쿠르대회 1등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성악가 반열에 오른 그 사람이다.
윤석현은 이어 그해 10월 박원이 보유한 한국 주니어 웰터급 타이틀전에 첫 도전했지만, 판정패하며 고배를 마신다. 6개월뒤 박원과 리턴 매취를 벌였지만 또 판정패. 그러나 박원이 반납한 국내 타이틀전을 놓고 유종훈과 결정전을 펼친 경기에서도 역시 10회 판정패, 주니어 웰터급 한국타이틀전에서 3연속 판정패를 당했다.
얼마 후 동양 웰터급 챔피언 박정오 측에서 연락이 왔다. WBA 웰터급 챔피언 아이크 퀘테이(미국)와의 세계 타이틀전을 성사시킨 박정오 측은 한 체급 아래인 윤석현을 워밍업 상대로 선택했다. 18전 10승(3KO) 8패를 기록한 국내 랭킹 3위의 윤석현과 32전 27승(20KO) 3패 2무를 기록하고 동양 타이틀 12차 방어(8KO)에 성공한 WBA 4위 박정오와의 대결에 대해 당시 언론들은 토끼와 사자의 싸움이라 평할 정도로 전력차가 컸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데 자존심이 상한 윤석현은 이때부터 잠자고 있던 승부사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선 매일같이 폭음하던 버릇을 고쳐 보름간 단주하면서 운동의 강도를 높였다. 새벽마다 관악산 10Km를 뛰면서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시합이 열리자 박정오의 전매특허인 날카로운 레프트 보디샷에 충격을 받고 경기를 포기하고픈 충동도 몇번 일었지만, 윤석현은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치열한 백병전을 펼쳤다. 10회전 경기가 다 끝난 뒤 윤석현의 손이 올라가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국복싱사에 기록될 정도로 큰 이변(異變)이 연출됐다. 이 경기는 윤석현 복싱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됐다.
인정받는 실력...두번의 동양챔피언 등극
1995년 4월 29일 박정오가 반납한 동양 웰터급 타이틀을 놓고, 윤석현은 동향의 선배 박봉관과 결정전을 갖지만 접전 끝에 판정패를 당한다. 승자 박봉관은 1991년 72회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복서로 그해 프로로 전향, 11전 전승(7KO)을 기록한 체력이 좋은 복서였다. 여담이지만 충남 예산이 고향인 이들 둘의 대결이 열린 이날은 마침 충남 예산군의 상징적인 인물 매헌 윤봉길 의사가 1932년 이날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시라까와 대장등 여러 요인을 폭살시킨 의거를 일으킨 날이었다. 윤석현은 이 대결을 포함해 4차례 한국 및 동양 타이틀전을 펼쳐지만 전폐를 당했다. 3개월 후 5번째 한국 웰터급 타이틀 결정전에 도전, 상대인 박종호를 3회 침몰시킨다.
한마디로 4전5기의 결실이었다. 후원자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정신차리고 훈련에 매진한 끝에 이룬 값진 승리였다. 프로 데뷔 6년 만에 국내 정상에 오른 후 윤석현은 1996년 8월 한충과 3차방어전을 펼친다. 아마시절 전국체전, 대통령배를 석권한 한충은 1995년 프로에 전향해 6전 전승(5KO)를 기록한 강펀치 소유자였다. 그런 한충도 윤석현의 파상공격에 6회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윤석현 주먹에 물이 제대로 오른 것이다.
그는 1996년 10월에는 세계군인선수권 은메달리스트 출신 송국열마저 판정으로 제압했다. 상승세의 윤석현은 1996년 12월 일본에 원정 요시노 히로유끼가 보유한 동양 웰터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요시노는 일본 신기록인 12게임 연속 KO승을 기록한 강자였다. 이 대결에서 일본 심판으로부터 승점을 인정받아 2대 1 판정승을 거두면서 동양 정상에 올랐다.
그해 5월 필리핀에 원정, 알레스나를 7회 KO로 잡고 1차 방어에 성공한 그는 2차방어전에서 52전 37승(24KO) 14패를 기록한 필리핀의 알란 알레그리아와 대결을 펼쳐 레프트 훅 단발로 3회 KO승을 거둔다.
알레그리아라는 선수는 만만한 복서가 아니었다. 그는 1983년 10월 한국에 원정, 30전 전승(25KO)을 기록한 최우수신인왕 출신의 이상호를 상대로 3회 KO승을 거둔 강펀치 소유자였다. 또 1986년 4월에는 20전 전승(10KO)의 동양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안경덕과 대결을 펼쳐 1대 2로 판정패를 당했다. 또 1993년에는 웰터급의 무적함대 박정오의 8차 동양타이틀 방어전 상대로 맞대결, 12회 무승부를 기록한 다크호스였다. 필자는 수년 전 경기장에서 알레그리아 선수를 만났다. 짧은 영어로 상대한 4명의 한국선수중 누가 가장 강했느냐고 물었는데, 알레그리아는 주저없이 윤석현을 꼽았다.

윤석현은 1999년 9월 호주로 원정에 나섰다. 상대는 22전 21승(14KO) 1무를 기록한 테일러였다. 일진일퇴의 공방전 끝에 1대 2 판정패로 벨트를 푼다. 2000년 8월 심기일전한 그는 일본에 원정해 기야마 도시마루를 12회 판정으로 꺾고 두번째 동양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러나 이 타이틀도 2001년 12전 전승(10KO)를 기록중이던 필리핀의 산틸론에 1대 2 판정패를 당한다. 원정에서 획득한 두차례 동양 타이틀을 원정방어전에서 똑같이 1대2 판정으로 벨트를 넘겨준 것이다.
무절제가 되살린 승운마저 잡아
2002년 8월 윤석현은 전국체전 금메달출신인 김연집에 3회 KO승을 거둔다. 그리고 6년의 공백을 가졌다. 2008년에는 37살의 나이로 KBS N코리안 콘텐더대회 미들급에 출전해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며 8강에서 우용기를, 준결승에서 전국체전 금메달출신 윤인영을, 결승전에선 안병근을 각각 KO로 잡고 대회 최우수복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다녔던 대원체육관 출신중엔 유명우 챔프가 있었다. 이 대회에서 선배 유명우는 체육관 후배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윤석현은 한때 유명우 챔프 못지않게 성실하게 훈련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유명우가 훈련 캠프에서 수도승처럼 자신을 절제하는 스타일인데 반해 윤석현은 무절제한 폭음으로 유명했다. 결국 세계타이틀전 한번 치러보지 못한 채 복싱인생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도 그런 무절제한 폭음이 원인이 됐다.

승자를 향한 환호와 영광, 그리고 승자만이 누리는 희열. 이런 것에 취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내리막길이 펼쳐질 거란 것을 직시하고 자신을 담금질한 유명우 챔프의 철학을 그는 본받지 못했다. 윤석현은 2008년 38전 26승(14KO) 12패를 기록하고 링을 떠났다. 은퇴한 그해에 체육관을 개관한 윤석현은 2013년 체육관 관원으로 등록한 견승보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견 대표는 2개월 전 체육관을 열기 위한 채비를 하고있던 옛 스승 윤석현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지금’ 윤석현 복싱체육관’이란 타이틀로 운영중이다. 윤 관장과 견 체육관 대표는 불암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남양주에 위치한 박종팔 챔프 자택에 들러 조언도 듣기도 한다. 두 사제의 변치않는 우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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