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김미영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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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언제든 집으로 오세요 “웰컴 홈”
큰 아이가 열 한 살이 되던 해, 당시 막내였던 넷째 아이가 두 돌이 지나면서 기저귀도 뗄 준비가 되어가자, ‘이제 홈스쿨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 새해 달력과 함께 항상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수학 문제집을 꺼냈다. 초등 4학년 나이에 3학년 수학부터 다시 시작하려니 마음만 바빠 1년 열두 달도 빡빡했다. 그래도 촘촘한 계획이 있어야 실천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들을 앉혀놓고 각자에게 맞는 수학 1년 진도를 문제집의 페이지 수에 맞추어 계획성 있게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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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나는 오빠를 좋아해”
아이가 여섯 명일 때까지도 방이 세 개인 집에서 살았다. 옹기종기 붙어사는 것도 재미나긴 했지만 큰 딸과 작은 딸의 소원은 친구들처럼 자기 방을 갖는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갑작스런 일로 인해 6년 전, 방이 4개인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때 당시에 중3, 중1들과 같은 나이였던 큰 딸과 작은 딸에게 방을 하나씩 주었다.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했던 아들은 자기에게 방을 줄 생각일랑은 절대로 하지 말라며 묻지 않아도 먼저 만류했다. 그런 터라 제일 큰방에서 나머지 4명의 아이들도 만족스럽게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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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내 이름을 불러줘~”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한 가지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혹여나 사람 많은 데서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염려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우리 가족이 어디 여행이라도 간다고 하면 애들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각자 스스로 집을 찾아 올 수 있는 나이가 되기까지는 큰 놀이공원에 가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큰 딸도 중학생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롯데월드를 가게 됐고 둘째 셋째 동생들도 중학생 나이가 되어서야 에버랜드라는 말로만 듣던 놀이공원을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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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아이들을 참 편하게 키우시네요
“아이들을 참 편하게 키우시네요” 가끔 뵙는 소아과 의사선생님이 종종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또 가끔씩은 ‘애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엄마 얼굴이 항상 밝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홈스쿨로 아이들을 키운지 20년이 넘어간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얼굴은 삶의 무게에 지치고 눌려버린 얼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이 밝은 얼굴은 사실 아이들이 만들어준 얼굴이다. 인생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자유하게 사는 법을 나는 아이들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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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엄마, 심심해, 심심해” 입에 달고 살더니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결혼할 때부터 일부러 사지 않았다. 남편은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고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던 나는 드라마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TV를 사지 않게 됐고 이 결정은 오늘까지도 TV가 없는 집이 되게 만들었다. 물론 컴퓨터가 있기에 필요할 때는 컴퓨터로 보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가끔 컴퓨터를 통해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TV 없이 지냈기에 심심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지가 큰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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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서로 싸울까, 안싸울까...다둥이의 사랑법
가끔씩 사람들이 묻곤 했다. 아이들이 많은데 어떻게 형제들이 질서 있고 우애 있게 지내냐고 말이다. 넷째 출산후 한 달 남짓 아이들 셋이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있었다. 한꺼번에 애들 셋을 돌 볼 자신이 없어서 먼저 큰 딸만 내가 있는 서울 집으로 다시 오게 했고 2주 정도 후에 둘째와 셋째를 서울 집으로 데리고 왔다. 둘째가 2주 동안 너무나 정성스럽게 준비했던 선물을 소중하게 꺼내어 엄마가 아닌 언니에게 준다. 앗, 그런데 이건 쓰레기 봉지가 아닌가. 내가 보기엔 그냥 쓰레기를 모아 놓은 봉다리였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얘기를 들어보니 한 달간 언니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는지 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가 보고 싶을 때면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 모래 속에 파묻혀 있는 보물들을 발굴해서 고이고이 봉다리 안에 모아 두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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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아들을 키우는 아빠, 아빠를 지키는 아들
7남매 중 유일한 ‘청일점’ 셋째인 아들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염려를 했다. 학교도 안 다녀서 남자애들하고 어울릴 기회도 많이 없는데 집에서 여자들 틈에 여자처럼 크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여자애들은 홈스쿨을 해도 남자인 아들만큼은 학교에 보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한 것이 종종 누나들이랑 집에서 공주 옷을 입고 신데렐라 구두를 신고 놀기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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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7남매를 한강으로 불러낸 봄
봄이다. 움츠러들고 추웠던 겨울을 밀어내고 나온 봄. 기다리다 보면 늘 오는 봄이지만, 봄은 올 때마다 새로운 설렘, 소망, 기쁨을 선물한다. 기다림에 대한 값이라도 지불하려는 듯 봄은 따스한 햇살과 은은한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와 겨우내 사라졌던 땅과 나무들에게 입혀준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깔들로 아이들에게 세상으로 나갈 즐거움과 설렘과 기쁨으로 충만한 기대를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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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7남매의 떠들썩한 명절 대이동
최근 몇 년간 코로나로 부모님 댁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 지금은 벌써부터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4명, 5명 등 인원 제한이 있다 보니 그 때마다 많은 고민을 했다. 날짜를 달리하여 식구를 나누어서 방문을 하느냐, 아니면 주차장에 온 식구가 대기하면서 제한 인원만큼만 교대로 왔다 갔다 하느냐. 양가 부모님들은 대식구의 움직임이 염려와 부담이 되시는지 한사코 몸 조심해라, 그리고 전염병이 잠잠해지면 와라 당부를 하셔서 고향에 가지 못한 명절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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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7남매는 왜 피자조각에 이름을
아이들은 참 많이도 먹는다. 더구나 모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그 먹는 양이란. 냉장고를 아무리 채워 넣어도 메뚜기 떼가 다녀간 듯 며칠 안에 텅 비어 버린다. 넷째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만 해도 자장면 곱빼기 두 개를 시키면 세 아이에게 한 끼를 먹일 수 있었다. 모자란다 싶으면 양념에 밥을 비비면 되니까 자장면은 미처 밥을 준비하지 못했을 때에 가성비 좋은 대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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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작은 엄마들
제일 위인 큰 딸에게 홈스쿨링을 해서 좋았던 점이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큰 아이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를 발견하게 됐다는 것과 예쁘고 어린 동생들의 성장과정을 다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큰 딸은 동생들이 많은데도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 대학 전공으로 유아교육을 선택할 정도였다. 동생들이 많으면 귀찮고 벗어나고 싶을 법도 한데 아이들이 참 좋다며 입시가 끝나자마자 교회에서도 유아부교사로 봉사를 시작한 아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에 학원에서 지쳐 집에 올 때도 어린 동생들이 뛰어나와 반기면 “모든 피로가 다 사라진다”며 동생들의 인사에 일일이 응대를 해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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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홈스쿨의 가치: 스스로 배우는 아이들
주변에 홈스쿨을 하는 많은 아이들을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파고들어 그 일을 끈기 있게 성취해 내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검정고시를 일찍 통과하고 고1이나 고2 나이에 대학을 가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 그리고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라는 것을 대학에서 처음 경험해서 그런지 학교생활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교우관계 또한 기대이상으로 잘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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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남편이 ‘7남매 아빠’가 된 사연
7남매를 둔 우리 부부를 보고 사람들은 말하길, “아이들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두 형제로 자란 남편은 자녀는 둘이면 됐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삼남매로 자란 나는 커보니 셋도 많지 않은데 최소한 셋은 있어야할 것 같았다. 어찌하다 셋째 아이까지 낳고 셋을 키우기까지 육아는 전부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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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재주꾼 7남매...’언니는 가족 미용사’
아이들이 많은 우리부부에게 사람들이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대식구인데 아빠 혼자 벌어서 어떻게 사냐는 것이다. 이 질문엔 궁금함 보다도 걱정스러움이 더 묻어있다. 사실 식구가 많은 우리는 사소한 일까지 다 목돈이 들곤 한다. 그러나 다 돈으로만 해결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 많은 만큼 다양한 색깔의 아이들의 재주가 돈이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가 가족구성원으로 성숙해가고 가족공동체라는 풍성한 행복을 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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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사랑하는 우리 닭, 생일 축하합니다!”
닭들이 양평 밭으로 간 지 1주년이 막 지났다. 춥고 긴 겨울을 잘 날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염려가 무색할 정도로 잘 지냈다. 닭장을 짓고 나서 생쥐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때마다 필요한 보수는 물론이고 별 탈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세 번 이상 발이 닳도록 양평 밭을 오갔다. 닭장을 짓는 것으로 일단락 될 줄 알았는데 돌보는 일에 이리도 품이 들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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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제발, 공부할 기회를 주세요
홈스쿨을 하는 동안 첫째 아이는 그야말로 모든 시행착오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포자(수학공부 포기자)였던 나는 첫째 아이가 수포자가 될까봐 두려움이 컸다. 나중에 대학 간다고 하면 그 때도 수학 공부가 필요할텐데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수학만큼은 반드시 기초를 잘 다져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이가 초등학교 나이일 때부터 수학 학습지를 병행하면서 내가 직접 붙들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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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우리는 언제든 U턴...뜬금없는 여행들
홈스쿨을 하면서 누린 생각의 자유로움은 하루 밖에 없는 짧은 시간 안에서도 생각의 경계를 넘어서는 과감한 여행을 시도할 수 있게 해주었다. 큰 아이가 열 살 즈음 된 추석이다. 원주에 계시는 아이들 친할머니가 바리바리 싸주신 명절음식을 싣고서 막히는 길을 뚫고 여주까지 왔을 때다. 갑자기 남편이 “아~~바다 보고싶다. 우리 바다 보고 갈까?” 뜬금없는 제안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난 당황스러웠다. 문막도 아니고 여주인데 거기다 막히는 길을 뚫고 온 노력은 또 뭐고 트렁크에 실린 이 음식은 어쩔 것인가? 그 중에 제일 걸린 것은 얼린 생선이었다. 아이스팩도 없이 어머니가 꽁꽁 얼었으니 갈 때 까지는 괜찮지 않겠냐며 넣어 주셨는데 집으로 곧장 가겠다고 주시는 것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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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7남매의 겨울놀이와 ‘초원의 집’
나는 강원도 횡성에서도 버스를 타고 30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서 자랐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은 놀거리가 풍성한 여름과는 또다른 환상적인 놀이터를 제공해 주었다. 처마 밑에 달리는 고드름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매일 먹을 수 있는 신나는 얼음과자였고, 지붕아래에 석순처럼 생긴 아주 작은 얼음산은 양발로 올라서서 미끄러져 내리는 스릴 만점의 놀이기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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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언제나 전 재산을 선물하는 아이들
홈스쿨 하는 아이들이 열 살 이전에 매일 같이 하는 일과중 하나는 ‘엄마’를 그리는 거였다. 그림 옆에는 항상 ‘엄마 사랑해요, 고마워요’가 써 있었다. 이면지와 색종이에 그려진 엄마는 늘 왕관을 쓰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받은 선물의 시작이었다. 큰 딸이 열 살이 넘어가던 해 어버이날부터 아이들이 문구점에서 선물을 사오기 시작했다. 주로 천원이 좀 넘는 것들로, 은행이나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줄이 달린 볼펜이나 수첩 등 참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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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엄마, 똥 좋아해요?”...’엄마’라 불리는 특권
[김미영 전업주부] “엄마, 똥 닦아주세요~~~.” 마치 자명종처럼 아침을 깨우는 소리다. 자명종은 끌 수 있지만 다섯째 아이의 이 외침이 점점 커지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너 똥 싸는 거 동네가 다 알겠다.” 아침 인사처럼 내가 다섯째에게 했던 말이다. 다섯째가 여섯 살이던 지난 해까지 혼자 배변을 처리하기 힘든 애들이 세 명이었다. 한 화장실에서 세 아이가 동시에 처리할 때도 종종 있었다. 다섯째는 어른 변기에서, 여섯째는 유아변기에서, 막내는 기저귀에 말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똥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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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아프면서 크는 아이들, ‘극복’ 에너지를 나누며
[김미영 전업주부] ‘홈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자 결심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가르치느냐와 돌발 상황이 생길 때는 어떻게 스케줄을 관리해야 하느냐였다. 여기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의욕을 갖고 아이 별로 멋진 계획표와 타임테이블을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타임테이블은 내 머릿속에서 조차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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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홈스쿨’의 8할은 밭에서 배운다
[김미영 전업주부] 한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경기도 양평 양수리에서 홈스쿨 가정들과 모임을 가졌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부모들이 재능을 나누어 오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운동을 좋아하는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생태공원에서 축구나 야구와 같은 놀이를 했다. 그 외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은 공원 안에서 쑥을 뜯거나 곤충과 올챙이를 잡거나 다양한 놀이거리들을 찾아서 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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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춤 추고 싶어요”...둘째아이의 반란
[김미영 전업주부] 7남매중에 둘째는 첫째와 정 반대 성격이다. 둘이 한 배에서 나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다르다. 첫째는 무언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매사가 마냥 좋기만 하지만, 둘째는 규칙을 만들고 따르길 좋아하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 남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제대로 된 우리집 군기 반장이다. 약속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하기에, 대식구가 치장을 차리느라 모임에 늦기라도 하면 둘째 눈치를 봐야한다. 이른 아침에 모임이 있을 때면 둘째는 알아서 일찍 일어나 식구들을 다그치고 누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일일이 형제들에게 지시를 한다. 놀랍게도 둘째의 말대로 하면 일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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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내일이 온다니, 정말 기쁘지 않아요?”
[김미영 전업주부] 대학 시절에 잠시 뉴질랜드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룸메이트가 8남매의 맏이였고 홈스쿨을 한다했다. 가족 신문을 만들었다며 보여주었다. 두 살 아이부터 시작해서 룸메이트까지 동생들 얼굴 사진이 마치 전깃줄에 참새들 앉아있듯 나란히 붙어있었다. 이 많은 애들이 학교를 안가고 다 집에 있다고? 나는 정말이지 이게 실화인가 싶었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워낙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또 집에서 학교가 멀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룸메이트와 홈스쿨에 대한 대화는 이걸로 끝이었다. 나와 관계될 일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 이상 궁금한 것도, 물어볼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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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아이의 꿈은 이루어진다
[김미영 전업주부] 나이들면서도 다양한 부모들과 교제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 덕분이다. 아이들 덕에 다양한 나이대의 좋은 부모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에게 없는 재주를 지닌 부모들을 만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된다. 아이 아빠는 벽에 못 하나 박지 못하는 실력이지만 7남매중 셋째인 아들은 친구 아빠에게서 드릴 사용법과 설계도구를 사용하는 법 등 일상에 필요한 소소한 기술들을 배웠다. 그 기술을 바탕으로 닭장 설계와 재료구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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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꼬끼오 나와라~~ 7남매의 ‘병아리 키우기’ 소동
[김미영 전업주부] “꼬 끼오~꼬~옥” 새벽에 전기 불을 켜자 해가 떴는 줄 알았는지 닭이 운다. 베란다에 다 커버린 닭이 네 마리. 으악~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민원이 들어오기 전에 빨리 어디론가 보내야한다. 아이들이 병아리를 부화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6년 전 현재 열아홉 살인 큰딸이 직접 부화기를 만들어 병아리 부화에 도전했다. 마트에서 산 유정란 다섯 알 중 두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다. 어미닭이 없어서인지 마치 산모가 초산의 고통을 겪듯이 밤새도록 껍질을 깨고 나오느라 병아리도 아이들도 애를 먹었다. 습도와 온도를 수동으로 일일이 맞추어 주며 밤 낮 가리지 않고 전란을 해준 정성이 아이들에게 어미 닭의 마음을 갖게 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