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심심해, 심심해” 입에 달고 살더니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링 일기] 심심함을 이겨내며 단단해지는 아이들 이들은 심심함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홈스쿨 자녀들에게 듣기 힘들었던 말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결혼할 때부터 일부러 사지 않았다. 남편은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고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던 나는 드라마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TV를 사지 않게 됐고 이 결정은 오늘까지도 TV가 없는 집이 되게 만들었다. 물론 컴퓨터가 있기에 필요할 때는 컴퓨터로 보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가끔 컴퓨터를 통해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TV 없이 지냈기에 심심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지가 큰 숙제였다.
홈스쿨을 하면서 아이에게서 나오는 말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말도 바로 ‘심심해’였다. 이 말을 들으면 내가 뭔가 그 심심함을 채워줘야 할 것 같고 아이가 느끼는 무료함은 곧 나의 ‘무능함’처럼 느껴졌다. 뭔가 놀거리를 만들어줘도 금방 또 심심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나에게 홈스쿨을 할 자격이 있는가, 심심해하는 이 시간이 아이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특히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와 분주한 아이들을 보면서 홈스쿨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또 아이가 연신 “심심해”를 외쳤다. 온 몸으로 바닥을 파고 들어갈 기세로 “심심해, 심심해”. “심심한데 어떻게 해요?”, “재밌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한다. 나는 아이에게 이것 저것 제안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건 다 해봤고 재미도 없단다. 나는 아이에게 알아듣진 못하더라도, “인생, 재미로 사는거 아니야. 인생엔 재미보다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하고, 또 심심한 게 훨씬 더 많아”라고 말하면, 아이는 또 같은 얘기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포기하듯이 “그래도 할 게 없어요”한다. 나도 이에 지지 않고 “그럼, 자!”하고 돌아서는 아이 등 뒤에 대고 말을 하면, 아이는 “자는 것도 심심해요”하고 맞받아치곤 했다.
이렇게 ‘심심해’ 타령을 한참 하다가 조용해서 돌아보면 책을 들고 있었다. 심심해의 극치를 경험하면 그 끝에 이르는 곳이 대부분 책이었다. 적막이 흘러서 돌아보면 심심해서 바닥을 긁던 아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 책에 빼져 있곤 했다. 지금도 자기 전에는 열세 살 언니부터 다섯 살 막내까지 세계명작 이야기를 함께 읽곤 한다. 열 세 살인 넷째는 특히 밤에 엄마가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자는 시간이 늦어져서 책을 읽지 못할까봐 저녁 설거지며, 부엌 정리 및 아이들 잠자리 정리에 엄마인 나보다 더 부지런을 떤다.
내가 조명 후레시를 켜고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눈을 감고 잠시 다른 세계에 여행을 간 듯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든다.

심심함을 이겨내는 아이들의 분투
큰 딸이 열 살 무렵, 한동안 TV 대신에 라디오 드라마를 틀어준 적이 있었다. 내가 듣던 드라마였는데 좋은 내용이라 아이들과 종종 듣곤 했더니 어느 날부터는 그 시간이 되면 마치 화면을 보듯이 아이들이 의자를 가져다가 라디오 앞에 ‘쫄로리(경북 사투리-편집자 주)’ 앉아 청취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언젠가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효과음을 동작으로 묘사하면서 라디오에 나오는 대사에 따라 서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들도 웃긴지 상대의 연기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연기를 하곤 했다.
그러더니 우리 집에 공연 문화가 생겼다. 아이가 셋만 돼도 공연자, 관객, 사회자 또는 촬영감독이 나선다. 한 사람을 관객으로 두고 돌아가면서 사회도 보고 공연도 하고 심심할 틈이 없었다.
선유도에 나가면 작은 무대가 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덕에, 대낮엔 그 공연장도 오롯이 우리 것이다. 네 명의 아이들이 함께 서로가 연출가 역할을 하며 무대를 만들기도 하고 서로를 관객으로 앉혀 놓고 공연도 하고 자기들끼리 퀴즈 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주로 퀴즈대회 진행은 둘째가 했는데, 뭐든지 아껴두는 둘째에게는 상품으로 줄 만한 간식거리들이 많았다. 둘째는 퀴즈대회의 호응을 위해 자기 몫의 간식거리들을 일부러 보관해놓곤 했다.
이렇게 평소에 다져놓은 공연실력은, 특별히 할머니 댁을 방문할 때마다 아주 좋은 호재로 쓰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 서기만 하면 서로 눈짓만 해도 평소에 맞추었던 춤과 노래가 즉석에서 흘러나왔다.

인형극까지 만들어내다니!
몸으로 하는 공연에 익숙해지더니, 어느 해 겨울엔 인형극을 해보겠단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공연 계획을 세웠다. 동화책의 내용을 당시 열 세 살이던 큰 딸이 각색을 하고, 주인공들을 손가락 인형으로 만들고 여러 무대배경을 큰 도화지에 그림으로 그렸다. 재활용품 버리는 날을 기다려 손가락 인형극장에 맞는 큰 박스를 구해오더니 후레시를 매달아 조명까지 설치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게 인형극을 진행하기 위해 서로 아이디어를 짜내며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더니 정말 그럴듯한 손가락 인형 소극장이 탄생했다.
“우와~” 아이들이 셋만 되어도 1인 2역의 이런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고, 특별한 재료 없이 집에 있는 의자와 보자기, 버려진 박스와 문구사에서 사온 도화지를 이용해 막연했던 기획이 실행된 것이 너무 신기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여러 가정을 초대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 소박하지만 신선한 이 소극장은 초대된 어린이 관객들을 엄청난 몰입도로 사로잡았고 어른들에게도 큰 칭찬을 받았다.

아이들이 진정 얻는 것은
언니들과 오빠의 어린 시절을 보지 못하고 자란 어린동생들은 지금도 “심심해”를 입에 달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여전히 인생이 재미로만 사는게 아니라고 아주 심심한 대답을 한다. 본인의 심심함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엄마를 뒤로 하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 아이가 뭐 하고 있나 살펴보면 어떨 때는 책에 빠져 있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만들기에 빠져 있기도 한다.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가 두 살 차이가 나는 세 자매이니 다양한 역할 놀이를 만들어서 때론 “엄마”라고 부름에 내가 달려 나갈 정도로 자기들끼리 아주 실감나게 놀곤 한다.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면, 인생에 대한 깊은 질문과 씨름하는 고독한 시간을 통해 단단한 성인으로 준비될 수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도 이 심심한 시간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단단해지는 것 같다.
맑고 차가운 물을 얻기 위해서는 암반을 뚫고 들어가야 하듯이, 심심함 끝에서 그 무료함을 뚫어내는 힘으로 찾아낸 놀이는 아이에게 자립심과 절제의 힘을, 책임감 있는 인생의 주체가 되는 단단한 힘을 길러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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