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키우는 아빠, 아빠를 지키는 아들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링 일기] 여자아이들 속 유일한 아들인 셋째 아들이 믿음직한 남자로 성장하기까지 밭 일구고 평상·수돗가 만드는 일도 척척

3년전인 2020년 어른들과 함께 수돗가를 만들고 있는 셋째(빨간 옷 입은 아이).
3년전인 2020년 어른들과 함께 수돗가를 만들고 있는 셋째(빨간 옷 입은 아이).

공주 옷을 입고 놀던 아들

7남매 중 유일한 ‘청일점’ 셋째인 아들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염려를 했다. 학교도 안 다녀서 남자애들하고 어울릴 기회도 많이 없는데 집에서 여자들 틈에 여자처럼 크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여자애들은 홈스쿨을 해도 남자인 아들만큼은 학교에 보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한 것이 종종 누나들이랑 집에서 공주 옷을 입고 신데렐라 구두를 신고 놀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들이 열 살쯤 되니 약간은 삐딱해 보이는 독립을 하기 시작했다. 실은 나도 여자 애들과 달리 점점 자기 고집과 주장이 늘어가는 남자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딸들을 책임 질테니 당신은 아들을 책임지라”고 남편에게 아들을 완전히 넘겨버렸다. 다행스러운 건 아기 때부터 아들은 유난히 아빠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아빠 것을 꼭 접시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다. 여러 개도 아니고 딱 한 개씩. 우스꽝스럽게 뻘쭘하니 접시에 혼자 앉아있는 작은 과일 열매는 다 아빠의 것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이쮸도 그렇게 한 개, 껍질을 벗겨 냉장고에 덩그러니 넣어 놨는데, 먹고 싶은지 냉장고 문을 열어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한번 빨아 보고 다시 원위치 시킨다. 어쩌다 얻은 조리퐁 과자 한 봉지를 누나들과 나누어 먹는데 주먹 쥔 손을 펴지 않고 돌아다닌다. 그 속에 뭐가 들었는가 펴보니 ‘아빠 주려고 보관중’이라는데 밥알 같은 과자는 문드러져서 형체가 거의 없어질 지경이었다.

아빠에게 남자다움을 배우다

이런 아들을 위해 남편은 회사 일이 끝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아들과 함께 보냈다. 두 부자는 물고기를 좋아하기에 밤이면 아들을 데리고 한강으로 낚시를 하러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주말이면 또 개울을 찾아다니면서 아들과 족대 질로 물고기를 잡으며 오갔다. 차 안에서 알아들을지 모를 남자다움과 인생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겨울이면 함께 산을 오르기도 하고 얼음의 냉기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까지 남들이 가지 않는 숨어 있는 장소를 찾아 빙어를 쫓아 다니기도 했다. 쉬는 날 새벽에 밭에 다닐 때는 인정없이 아들을 깨워 데리고 다니면서 동무삼아 함께 일을 했다. 남편에게도 아들은 좋은 친구였다.

아빠랑 낚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셋째.
아빠랑 낚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셋째.

아들을 키우는 아빠의 역할

아들이 열두 살 때, 밭을 살 때에도 공부라면서 아빠는 부동산 계약 현장으로, 그리고 농막을 제작하는 현장으로 일일이 데리고 다녔고, 아빠가 회사에서 하는 일 같은 잘 알아들 수 없는 이야기들도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다 큰 성인에게 하듯이 정성스럽게 설명해주었다.

밭을 마련하고 경계를 측량하고 지하수를 파고 농막을 세울 때도 아들은 모든 과정을 따라다니며 눈으로 배웠다. 이렇게 밭을 장만했는데 아빠는 회사 일로 바쁜 반면 홈스쿨하는 열세 살 아들은 가진 게 시간 밖에 없었다. 아빠가 특명을 내렸다. “앞으로 밭을 마음껏 경작해라.” 밭은 흙을 채워 넣느라 포크레인 바퀴에 다져져서 바닥이 아주 딱딱해져 있었다. 덩치도 크지 않은 아들은 매일 아침마다 묵묵히 곡괭이를 들고 밭에서 굳어버린 흙을 파고 헤치기를 반복하며 정말 뭐든 심을 수 있는 부들거리는 흙으로 만들어 놓았다. 힘들 것 같아 ‘쉬었다 하라’고 하면 아주 잠시 앉아서 한 숨 돌릴 뿐, 오래 앉아 있으면 일하기 싫어진다면서 목표로 삼은 일을 끝내기까지 쉬지도 않았다.

아빠가 주는 모종을 애기 같은 손으로 장난스럽게 흙속에 비벼 넣을 때가 어제 같은데 작물을 심을 밭을 손수 만드는 날이 오다니... 묵묵히 괭이질을 하던 아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던 이 때가 아들을 키우면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3년전인 2020년 5월, 열세살 아들이 혼자 밭을 갈고 있는 모습.
3년전인 2020년 5월, 열세살 아들이 혼자 밭을 갈고 있는 모습.

아빠의 신임은 날로 커져가고

이렇게 밭을 일구자 수돗가와 평상을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손재주가 없는 남편은 이제껏 연구는 많이 했으나 실행할 엄두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매일같이 머리만 싸매고 있을 때, 한 번도 이것들을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손재주가 뛰어난 딸의 친구아빠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평상 설계도 직접하고 나무도 직접 사서 일일이 재단하고 수돗가를 만들 땅을 파고 매 과정마다 어떻게 겨울에도 시멘트가 갈라지지 않게 튼튼하며 물이 잘 빠지는 수돗가로 만들까 함께 연구했다. 그렇게 두달 동안 주말에 시간을 내어가며 애쓴 끝에 아주 멋진 평상과 수돗가를 완성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아들은 설계와 드릴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수 개월 뒤 닭장도 혼자 설계하고 완성시키는 기술을 갖게 되었다.

또 답이 안 보이는 상황이거나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어른들과 함께 일해서 얻은 이 놀라운 결과물들은 아들에게 무엇이든 시작하면 된다는 도전정신과 결과를 얻기까지 필요한 끈질긴 근성을 가져다 주었다.

이렇게 밭이 모양을 다 갖춘 어느 날, 농막에서 낮잠을 자던 남편이 “바닥에서 물이 터져 나오니 빨리 돌아오라”며 무슨 일인지 물어볼 새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산책을 나섰다가 부리나케 돌아와 보니 농막 안에 있는 수도 파이프가 터진 바람에 쏟아져 나오던 물은 이미 그쳤고 바닥에 남은 물을 남편이 닦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해결이 됐는지 물어보니 다락에서 자고 있던 아들이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깨서는 밖에 연결되어 있는 밸브를 잠근 것으로 일단 문제를 막은 것이었다. 급한데 어떻게 그 생각을 했냐하니 농막을 설치할 때 눈여겨보고 나름 이런 상황이 오면 밸브부터 잠가야겠다고 생각해뒀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때 아빠에게 큰 신임을 얻은 아들은 농막관리에 대한 임무도 부여 받았다.

완성된 평상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
완성된 평상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

아들은 식구들이 깨끗한 지하수를 쓰도록 필요한 필터를 종류별로 알아서 구매해 설치하고, 수도관이 막힐 때도 거침없이 뜯어서 원인을 제거하는 등 집사처럼 그 작은 집 농막을 지금까지도 관리해오고 있다. 또래 친구는 별로 없었지만 아빠를 가장 친한 친구로 둔 아들은 아빠 대신 집을 돌보는 믿음직한 남자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일구어 놓은 작은 밭과 농막은 코로나로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던 시절에 우리들의 아지트로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산소통 역할을 해주었다.

글쓴이

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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