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참 편하게 키우시네요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링 일기] 7남매 홈스쿨링이 어찌 편했을까 스스로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도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해

항상 같이 다니며 노는 3총사, 김미영씨네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아이
항상 같이 다니며 노는 3총사, 김미영씨네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아이

내 얼굴이 밝은 까닭

“아이들을 참 편하게 키우시네요” 가끔 뵙는 소아과 의사선생님이 종종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또 가끔씩은 ‘애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엄마 얼굴이 항상 밝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홈스쿨로 아이들을 키운지 20년이 넘어간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얼굴은 삶의 무게에 지치고 눌려버린 얼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이 밝은 얼굴은 사실 아이들이 만들어준 얼굴이다. 인생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자유하게 사는 법을 나는 아이들에게서 배웠다.

내가 듣는 말과 똑같이, 큰 딸도 한결같은 말을 사람들에게 듣는다. ‘동생이 많아서 눌리고 억울한 것이 많을 것이다. 형제 많은 집 장녀들은 한이 많아 얼굴이 어둡고 동생이라면 진저리를 낸다’ 등의 말이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우리 큰 딸을 장녀로 보는 사람은 이제까지 한 명도 없었다. “엄마, 사람들이 다 저를 그냥 막내인 줄 알았대요. 제가 7남매라는 것보다 장녀라는 게 더 놀랍대요.”

큰 딸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집에 와서 항상 하는 말이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 실습을 나간 큰 딸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아니요,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이 앉아 있는 것만 봐도 행복해요” 한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긴 하다.

아이들 양육이 항상 뜻대로 되지 않지만

인생이 주는 무게에 눌리지 않고 동산을 산책하듯 아이들과 손잡고 여기까지 동행하는 길이 처음부터 쉽고 편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스케치한 그림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수도 없이 맞닥뜨리며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아쉬움과 자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고 아이들과의 갈등이 해결되기까지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홈스쿨의 시간표 때문에 이 길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참 많았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작가를 끌어갈 때 비로소 읽을 만한 글이 되어간다는 걸 느낀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빗대어 생각해보면 잘 세운 계획이 홈스쿨을 이끌어간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것, 그냥 삶이라는 것이 홈스쿨을 이끌어 왔고 홈스쿨은 계획과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 그 자체임을 지금은 잘 알게 됐다.

젊어서는 인생이라는 것이 도화지에 스케치한 대로 끝까지 잘 그려질 거라 생각했고 또 스케치를 변경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결국에는 그리고자 했던 의도를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나의 스케치를 다 지우게 됐다.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나의 밑그림과 다른 그림이 그려질 때마다 원래의 스케치로 되돌리려는 나의 씨름을 내려놓고 나니 남편은 남편의 그림을, 아이들은 다 각자 자기의 그림을 그려 나갔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밑그림을 잘 그려주고 그 그림대로 색칠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란 걸 많은 세월을 거치고야 깨닫게 됐다.

애들이 많다보니 사건 사고도 많았다. 생각지 못한 질병을 만나 오랜시간 치료를 해야할 때도 있었고 중하진 않지만 여러 번의 수술을 거쳐야 하는 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도 있다. 처음 이런 일들을 만났을 때는 세상의 끝이라도 온 것처럼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보니 아이는 그 아픔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기의 성장을 이루어갔다. 아이마다 가지고 있는 약점이 오히려 그 아이의 인생에서 그를 그답게 만들어가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건강했더라면 만날 수 없는 많은 경험과 함께 소중한 인연도 만나게 되고 더불어 아이의 세계도 함께 커져갔다.

아이가 갖고 있는 약점이 오히려 아이의 인생을 열어주는 열쇠가 됨을 지금은 잘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잘 찾아 걸어가도록 함께 손을 잡고 부모로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평안함으로 동행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동행은 아이의 부모인 나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또 이 길에서 아이 때문에 누리는 기쁨은 나에게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사이가 좋은 김미영씨네 네 자매.
사이가 좋은 김미영씨네 네 자매.

스스로 배우며 크는 아이들

아이들 역시도 인생이 계획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결정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수도 없이 망가져 버리는 경험을 통해 어려서부터 많이 배워 왔다.

아이가 넷이 되고 나서는 큰 아이들 셋이 외출하는 일이 많이 생겼다. 그러면 말이 통하지 않는 막내가 이 때를 기회삼아 언니들의 책상을 초토화시킨다. 내가 주의를 기울여도 방심하는 순간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막내가 말이 좀 통할 때에도 언니들의 책상은 항상 무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기회를 포착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다 열어본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나는 가시방석이다. 아무리 조치를 취해도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것들이 꼭 발생하고야만다. 그러면 외출에서 돌아온 큰 딸이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한다. “내가 나가지를 못해, 이래서 내가 나가지를 못해” 하면서 울기를 반복하곤 했다.

멋지게 그린 그림을 자랑하려고 하는 순간에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는 말 안 통하는 어린 동생의 횡포가 그림을 엉망으로 망쳐놓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큰 딸은 또 대성통곡을 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서 고통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처럼 통곡을 한다. 고작 열 살 밖에 안 된 딸한테, 아끼는 것이 사라져도 그 아픔과 기억은 곧 지나가고 네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 그 잃은 것 하나에 걸려있지 않다는 것을 이제 내일이면 알게 될 거라고 수도 없이 타일렀다.

아이이기에 노느라면 소중한 것을 잃은 기억이 금방 사라지게 된다. 나는 지나치지 않고 어제는 동생이 망친 그 그림이 없으면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는데 오늘도 그러냐고 묻는다. 그러면 큰 딸은 “그렇지 않다고, 그 그림이 없어도 여전히 재밌다”고 했다. 그리고 “그림은 사라져도 되는데 잠시나마 미워했던 동생은 사라지면 안 된다”고 “동생이 그림보다 더 소중하다”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했어도 같은 일은 또 일어난다. 그러면 그 때는 넘어가기가 더 수월하다. 고통이 끝일 거 같았는데 지나보니 지나가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를 만들거나 그리려고 할 때 유독 한 가지 재료에 아이들이 다 집착하며 싸울 때가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어도 다른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한 가지 재료에 집착하며 싸우는 걸 보는 내 입장은 그저 한심하다 못해 “다 하지마”하고 소리를 질러 이 혼란스런 상황을 종료해 버리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 시끄러운 소동에서 빨리 자유롭고 싶은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서로 고집하고 있는 그것이 없어도 만들기를 할 수 있고 충분히 그림도 잘 그릴 수 있음을, 한가지에만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이고 현명하지 못한 일인지 조곤조곤 알려준다.

김미영씨네 일곱살 여섯째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김미영씨네 일곱살 여섯째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집착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울 기회를

다른 재료로 만들거나 그릴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기를 반복하다보면 쉽진 않지만 아이들 스스로 대안을 생각하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되고 맘에 들지 않는 상황들을 참아내며 집착으로 빨려들게 하는 마음의 무게를 이겨내는 자제력도 생기게 된다. 또 서로의 욕구 충돌로 울고불고 난리를 칠 때면,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침묵을 지시하고 한 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하게한다. 천천히 자기 마음을 말로 풀어놓으면서 아이들은 묶여있던 매듭을 푸는 것같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스스로 문제도 발견하고 해결점도 찾아가게 된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소중한 것을 잃거나, 크고 작은 충돌로 아이들 사이에 소용돌이가 몰아칠 때, 이때야말로 아이에게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과 지킬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내가 원하던 많은 것들이 무너져도 그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이요, 잊혀지는 것이요, 끝내는 사랑하는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지킬만하다는 것임을 배워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혼란스런 상황들을 다스려나가면서 나와 아이들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아이를 참 편한게 키우시네요.” 살아온 인생이 내 얼굴에 그려졌나보다. 이 한마디가 오늘 내 인생의 회고록이다.

글쓴이

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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