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줘~”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링 일기] 7남매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심초사 이름 대신 몇째라며 태어난 순서로 불러 골고루 사랑 나눠주기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그 엄마 사랑도 독점 안하려...

한강공원에서 술래잡기 하고 있는 5, 6, 7번 아이들 '삼총사'.
한강공원에서 술래잡기 하고 있는 5, 6, 7번 아이들 '삼총사'.

아이들 잃어버릴 뻔했던 악몽들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한 가지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혹여나 사람 많은 데서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염려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우리 가족이 어디 여행이라도 간다고 하면 애들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각자 스스로 집을 찾아 올 수 있는 나이가 되기까지는 큰 놀이공원에 가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큰 딸도 중학생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롯데월드를 가게 됐고 둘째 셋째 동생들도 중학생 나이가 되어서야 에버랜드라는 말로만 듣던 놀이공원을 가게 됐다.

이렇게 조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내 손에서 놓치는 사건을 몇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아이와 우리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 스토리가 전개됐을지도 모를 그 엄청난 순간은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하다.

아이가 넷이었을 때 아빠 없이 월드컵공원 안에 있는 놀이터에 갔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넷째를 보느라 혹여나 눈에서 잠깐 안보이더라도 놀이터 안에 있으니 절대로 놀이터를 벗어나지 말 것과 셋이서 서로서로를 확인하면서 놀 것을 당부했다.

말은 안전장치이고 나도 막내를 보면서 위의 세 아이들의 동선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순간 셋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첫째와 둘째도 자기들 놀이에 빠져 있었는지 셋째에 대해 아는 행방은 바로 방금 전까지 옆에 있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졌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셋째가 없다. 막내를 언니들에게 맡기고 절대 이동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정신없이 셋째를 찾고 있는데, 혼비백산한 나를 보고 어떤 아주머니가 혹시 빨간 셔츠를 입고 있는 아이를 찾고 있느냐 물으시더니 본인이 방금 그 아이를 방송실에 데려다 주고 왔다고 일러주셨다. 그 때의 안도감은 세상을 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셋째와 넷째를 데리고 외출할 일이 있으면 집에 남아 있을 법도 한 둘째가 굳이 나와 동행하겠다고 항상 따라나섰다. 동생을 잃어버릴까봐 염려가 돼서 그런단다. 그런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서 주의를 많이 기울였지만 여섯째가 태어났을 때 다섯째를 잃어버릴 뻔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렸던 아이들

수년 만에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동생을 볼 수 있는 큰 딸이 수련회를 가고 집에 없어 둘째부터 여섯째까지 다섯 명을 데리고 약속장소로 갔다. 밥을 먹고 용산 아이파크 몰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 의자에 아이들을 앉혀 놓았는데 모두가 앉기에 장소가 협소해 다른 카페로 자리를 이동하게 됐다. 이동 후에 음료수도 시키고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둘째가 점심 먹던 식당에 작은 가방을 두고 왔단다. 가방을 놓은 위치를 둘째 딸이 알기에 또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방을 찾으러 나섰다. 식당에서 가방을 찾아 나오는 길에서 정면으로 먼저 갔던 카페가 보였다. 둘째가 저 까페에 다섯째랑 비슷한 애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나도 보니 옷도 생김새도 정말 비슷했다. 그 카페가 점점 가까올수록 우리는 다 “와~정말 많이 닮았네”하고 감탄했다. 그런데 둘째가 화들짝 놀라면서 닮은 게 아니라 다섯째란다.

그제서 둘러보니 옆에 다섯째가 없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 있었고 세 명의 아이가 나를 둘러싸고 있으니 그냥 옆에 애들이 많다고 생각했지 걷는 아이중 제일 작은 아이가 없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카페도 손님들로 번잡해서 아이가 혼자 앉아 있었던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15분가량 되는 시간 동안 아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녔다면 어땠을까...지금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그날 이후 정신을 더 바짝 차리고 아이들을 챙겼는데 여섯째 손을 또 놓칠 뻔했다. 어버이날, 어머니를 모시고 댁 가까운 식당에서 외식을 했다. 밥을 먹고 난 후 나는 일곱째 임신 중 생긴 임신성 당뇨를 앓고 있어서 운동한다며 근처 공원으로 걸으러 갔다. 남편은 가족들을 태우고 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한창 걷고 있는데 남편한테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했는데 차에 여섯째가 없다는 것이다. 순간 정말이지 하늘이 내 심장에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나는 임산부라는 사실을 잊고 단거리 선수처럼 식당으로 마구 달려갔다. 남편도 식당에 전화할 틈도 없이 미사일처럼 식당으로 차를 몰고 왔다. 너무나도 천만 다행스럽게도 세 살짜리 아이가 식당을 벗어나지 않고 식당과 주차장 사이에 있는 데크 위를 신나게 왔다갔다 하고만 있었다.

이 일 후에 우리는 차에 탈 때면 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도 1번부터 7번까지 번호를 부르고 바로 자기 앞 뒤 번호가 있는지 확실하게 점검하고 출발하곤 한다. 그리고 가족이 다 같이 외출할 때면 누가 누구를 책임질지 정확히 짝을 지어 외출을 한다.

2년전 김미영씨 집에서 사진을 찍은 일곱 남매들. 사진=김미영
2년전 김미영씨 집에서 사진을 찍은 일곱 남매들. 사진=김미영

“데이트 합시다”...아이들과 데이트를

수가 많은 가족을 챙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번호로 부를 때도 있고 이름 대신 ‘얘들아’로 부를 때도 많았다. 그러나 각자가 소중하게 자기 이름이 불리길 바란다는 것을 느낀 나는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한 사람씩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큰 딸이 열 두 살 즈음 첫 데이트를 시작한 것 같다. 한 사람이 데이트를 나가면 나머지 형제들은 그 시간 동안 불평없이 최선을 다해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래야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데이트 할 때는 어디를 가서 뭘 할지는 각자가 계획하게 했다. 큰 딸은 영화를 보거나 분위기 있는 데서 밥도 먹고 선물가게도 가고 엄마랑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반면, 어린 동생들이 원하는 데이트 코스는 주로 마트의 장난감 코너였다. 장난감은 사지 않고 구경만 하는 조건인데도 그 눈요기를 너무나 기뻐했다. 어려서 깊은 대화는 안 되어도 엄마를 혼자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지없이 행복해 보였다.

다섯째를 낳고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줄 만큼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려웠다. 젖먹이 아기를 두고 멀리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데이트를 언제 할 수 있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집 근처 까페에서 이틀에 걸쳐 하루에 두 사람씩 데이트를 하는데, 첫날은 첫째와 둘째가 다음날은 셋째와 넷째가 데이트를 하는 식이었다. 먼저 엄마가 첫째와 함께 까페로 가는 길에 까페 앞에 있는 과자점에서 젤리를 고르고 까페에서 시간을 보낸 후 첫째를 집으로 돌려보내면 둘째가 혼자 까페로 온다. 까페에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엄마와 둘째가 함께 돌아오는 길에 과자점에서 젤리를 골라 집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은 셋째와 넷째가 전날의 코스를 밟는 것이다. 예전보다 많이 간소화 됐지만 데이트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와 설렘은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여전했다.

묵지빠 게임을 하며 놀고 있는 6남매와 혼자 딴짓(?)하는 막내. 사진=김미영
묵지빠 게임을 하며 놀고 있는 6남매와 혼자 딴짓(?)하는 막내. 사진=김미영

특별한 존재들의 질투없는 사랑법

데이트 후에, 아이들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를 들어보면 카페에서 뭘 시켜 먹었고 어떤 젤리를 골랐는지가 엄마와의 대화보다 더 큰 관심사였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마와 단 둘이만 눈을 맞추고 있던 그 짧은 시간이 엄마에게 자기가 특별한 존재임을 확인받은 시간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 역시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조용히 둘만의 눈을 마주칠 때 그 눈을 타고 아이의 마음으로 내려가면 “얘들아~”로 부를 때는 만나지 못했던 아이와 마주하곤 했으니까.

지금도 모든 아이들과 데이트를 할 만큼 시간을 할애하기 쉽지 않지만 큰 아이들과는 이 일 저 일 핑계 삼아 함께할 시간을 만들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서로 모르게 귓속말을 많이 한다. 아직은 귓속말 자체를 굉장한 비밀이 오간 것으로 아는 어린 나이인지라 “사랑해, 네가 엄마 딸이어서 너무 고마워.” 이 귓속말 한 마디에, 그리고 오가며 마주칠 때, 여기저기서 꺼내는 손가락 하트 하나에 자기가 엄마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느끼며 뿌듯함을 누리는 것 같다.

한달 전 한강공원을 놀러가서 찍은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아이들. 사진=김미영
한달 전 한강공원을 놀러가서 찍은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아이들. 사진=김미영

어느날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혼자 일어난 다섯 살 막내가 소파에 누워 있는 나에게 왔다. 아이들과 개별적인 시간을 만들기 어려운 우리집에서는 이런 때가 특별함을 선물할 절호의 기회다. 나는 과할 정도로 안아주며 뽀뽀세례와 함께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깔깔거리며 한참 웃던 막내가 “엄마, 언니도 깨워요. 제가 데리고 올게요”한다. 나는 의아해서 왜냐고 물었다. “좋아서요. 좋으니까 언니도 해줘요.”

이렇게 흘러내리는 사랑이, 감당 안될 것 같은 많은 아이들을 오늘도 넉넉히 품에 안게 만든다.

글쓴이

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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