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추고 싶어요”...둘째아이의 반란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 일기] 모범생 둘째, 연극 본후 눈물 뚝뚝 흘린 사연

태권도 대신 춤으로 내면의 끼를 발산하고 있는 둘째(가운데). 왼쪽은 첫째, 오른쪽은 셋째 아이. 사진제공= 김미영
태권도 대신 춤으로 내면의 끼를 발산하고 있는 둘째(가운데). 왼쪽은 첫째, 오른쪽은 셋째 아이. 사진제공= 김미영

[김미영 전업주부] 7남매중에 둘째는 첫째와 정 반대 성격이다. 둘이 한 배에서 나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다르다. 첫째는 무언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매사가 마냥 좋기만 하지만, 둘째는 규칙을 만들고 따르길 좋아하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 남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제대로 된 우리집 군기 반장이다. 약속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하기에, 대식구가 치장을 차리느라 모임에 늦기라도 하면 둘째 눈치를 봐야한다. 이른 아침에 모임이 있을 때면 둘째는 알아서 일찍 일어나 식구들을 다그치고 누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일일이 형제들에게 지시를 한다. 놀랍게도 둘째의 말대로 하면 일이 돌아간다.

둘째는 모범조교

규칙과 권위를 중요시 여기는 둘째에게 선생님의 말씀은 하늘이다. 학습지 선생님의 말씀을 칼같이 지키느라 39도 이상의 열이 펄펄 끓어도 그날의 숙제를 밀린 적이 없다. 선생님들도 놀란다. 과제를 완벽히 해낼 뿐 아니라 지나가면서 하는 말도 다 기억하고 그걸 하는 아이는 우리 둘째가 처음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그대로 하니 학습지 선생님을 비롯해서 피아노학원, 청소년수련관 등 가는 곳마다 칭찬을 받고 줄넘기, 인라인 스케이트, 태권도 등 하는 것마다 시범을 보이는 학생이 되었다.

홈스쿨 가족 발표회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김미영씨 아이들. 가운데가 둘째 아이. 사진제공=김미영
홈스쿨 가족 발표회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김미영씨 아이들. 가운데가 둘째 아이. 사진제공=김미영

어려서부터 자기주도는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되었다. 형제들이 옆에서 다 잠 자도 아침 7시 30분이면 항상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자기가 계획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식구들과 여행을 다녀와도 가방을 놓자마자 책상에 앉아 수학문제를 푼다. 이것이 가능하다니 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집에 아무리 많은 손님이 와도 할 일이 있으면 주변을 차단하고 자기 일을 다 끝낸다.

참 낯설게 느껴지는 성격이기도 했으나 내가 첫째와 씨름하는 동안 이런 아이도 있다는 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두 살 많은 언니와 함께 같은 진도의 수학 영어 수업을 들으며 공부도 아주 열심히 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김미영씨 아이들. 까만 옷을 입은 아이가 둘째. 사진제공=김미영
새로 이사한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김미영씨 아이들. 까만 옷을 입은 아이가 둘째. 사진제공=김미영

“댄스가 꿈이라니”

그러던 어느날, 둘째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의 일이다. 누군가 대학로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표를 주었다. 별 기대 없이 첫째부터 넷째까지 데리고 공연장에 갔다. 공연의 내용은,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했던 한 아이가 할머니가 돼서도 끝내는 꿈을 포기 못하고 춤으로 아이돌 스타가 된 이야기다. 나에겐 뭐 특별히 재밌는 것도 인상적인 것도 없었다. 애들이 혹시 시시하게 느껴서 여기까지 힘들게 온 걸 후회하면 어쩌나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둘째가 운다. 소리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진짜 이런 뜬금없는 눈물은 처음 본다. 다른 애들도 ‘왜 울지?’ 멍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둘째가 말하길 그 할머니 심정이 자기 마음이란다. 자기도 춤을 좋아한단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꿈을 이룬 것이 너무 감동이라고 한다. 자기도 그렇게 춤을 추고 싶었고 지금도 춤을 추고 싶다고 한다.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뭐라고? 춤? 춤이라고?’ 나는 둘째가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알고 있었고 가끔씩 아이돌 춤을 따라하는 걸 본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운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춤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둘째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고 단 한번도 그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이때부터 이제까지 없었던 둘째와의 심각한 대화가 오갔다.

“춤을 언제부터 좋아했는데...?”
“오래 전부터요.”
“계기가 뭐니?”
“할머니 집에서 TV로 아이돌 춤을 보고 따라해 봤는데 춤이 잘 춰지고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왜 한 번도 춤을 추고 싶다는 얘기를 안했니?”
“엄마가 싫어할 것 같아서요.”
“너, 공부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오. 그냥 한 거에요.”
“그럼 이제까지 수학 영어 학원 다닌 거는 의미가 없니?”
“네. 의미 없어요.”

서운한 맘을 접고...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나는 딸의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주저 앉았다. ‘이제까지 나는 뭘 한 거지?’ 홈스쿨한 세월이 얼만데 딸아이 마음하나 마주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이제까지의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한편으론 너무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서 학원을 보냈는데 그게 아무 의미 없다고?’ 아이들을 위해 TV없이 산 지가 십 수년인데 할머니 집에서 잠깐 본 것이 그렇게 큰 영향을 주었다니 그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째가 지금 이 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오직 춤을 마음껏 추는 것이고 아이돌 오디션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남편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둘째의 이야기에 크게 당황했다. 처음에 우리는 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첫째와 공부로 인해 공허한 씨름을 하는 동안, 나의 마음에 만족을 주는 둘째를 보며 위안을 삼았던 내 이기심을 직면하고는 눈물로 몇 날 밤을 지새웠다. 내 만족의 척도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바라보았던 것이, 그리고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결국 남편과 나는 딸의 인생이니 딸에게 맡기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맘껏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수학 영어 학원을 다 그만 두고 대신 댄스 오디션 반에서 춤을 배우고 오디션에 올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딸은 1년 반 정도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던 춤도 맘껏 춰보고 오디션도 보게 됐다. 이후, 나는 둘째에게서 부드러운 눈빛을 처음 보았다. 둘째는 항상 눈이 매서웠다. 예리하고 싸늘한 눈빛이 성격 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춤을 추고 나서 그 매서움이 사라지고 입가에 웃음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고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둘째의 사건은 다른 아이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글쓴이

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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