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는 왜 피자조각에 이름을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링 일기] 먹기 경쟁하며, 나누며, 사랑하며 음식 앞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도
아홉 식구의 ‘잘 먹고 즐겁게 먹기’ 전통
아이들은 참 많이도 먹는다. 더구나 모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그 먹는 양이란. 냉장고를 아무리 채워 넣어도 메뚜기 떼가 다녀간 듯 며칠 안에 텅 비어 버린다. 넷째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만 해도 자장면 곱빼기 두 개를 시키면 세 아이에게 한 끼를 먹일 수 있었다. 모자란다 싶으면 양념에 밥을 비비면 되니까 자장면은 미처 밥을 준비하지 못했을 때에 가성비 좋은 대안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날, 아빠와 큰 아이들 넷이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카드 문자에 밥값으로 5만원가량 찍혔다. 나는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먹나보다’ 생각 했는데, 물어보니 탕수육도 안 시키고 자장면, 짬뽕만 시켰는데도 식사비가 그 정도 나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많아지고 또 아이들 덩치가 점점 불어나자 자장면은 자장라면으로 대체됐고 중국집에서 파는 자장면은 생일에야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그래도 생일이 1 년에 아홉 번(7남매와 엄마, 아빠 생일)은 돌아오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애들 먹는 것을 보시고는 “과일을 무슨 돈으로 당해내냐. 배추사다가 잘라 먹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실제 그랬다. 어릴 때는 과일보다 속이 노란 배추랑 양배추 그리고 오이를 많이 먹일 수 밖에 없었다. 언니들이 고추장 찍어 야채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아서인지,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양배추와 오이 당근 등 생야채를 접시에 담아 많이 먹었고 또 잘도 먹었다.
쌀도 한번 밥을 하면 일곱 컵씩 하니 금방 쌀 항아리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열심히 일해 쌀 항아리를 한번도 빈 채로 두지 않은 남편에게 고마움이 일었고, 아이들이 빈 항아리 긁히는 소리를 듣지 않고 크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번은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오셔서 끼니때마다 설거지통에 쌓이는 그릇에 놀라셨다. 외할머니는 “너네는 어떻게 매끼마다 생일잔치 한 거 같으냐”하며 웃으셨다. 실제로 우리는 생일마다 잔치할 여력이 없지만, 아이들 친할머니가 아이들 생일만큼은 자장면과 탕수육은 물론 생일 케익도 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용돈을 보내주셨다.

맛을 느끼려 하지마. 다 사라져버릴테니!
새해가 되면 친할머니가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새해 달력에 아이들 생일을 크게 동그라미 쳐 놓는 일이다. 덕분에 우리는 생일 때마다 생일 주인공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지정해서 외식을 했다. 그날엔 케익을 사 초를 꽂고 축하와 축복의 시간을 갖는 우리가족만의 전통도 만들어졌다.
어떤 생일날에는 케익 대신 베스킨라빈스31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때가 있다. 제일 큰 통을 사도 5분 이내에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 너무 빠른 속도로 숟가락을 놀리면 안된다. 드나드는 숟가락의 횟수를 제재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둘째의 몫이다. 그러나 점점 바닥에 가까울수록 빨라지는 숟가락질 속도를 제어할 길이 없다. 다 먹고 나서 아이들이 하는 말이 있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그냥 입이 차갑기만 하다.’ 서로 먼저 먹기 경쟁하느라 맛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는 즐거운 하소연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함께 나누어 먹는 비싼 아이스크림보다, 마음껏 맛을 음미하며 편안히 먹을 수 있는 할인점의 몇 백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한다.
한번은 내가 닭강정을 해 준 적이 있다. 양이 넉넉하지 못했다. 식탁에 내려놓자마자 정신없이 쟁탈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넷째아이가 너무 맛있다며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 사이, 빈 접시만 덩그러니 남았다. 당황한 넷째를 보며 둘째가 웃으며 말했다. “맛을 느끼지 마. 맛을 느끼는 순간 그게 끝이야.” 아이들은 라면을 함께 끓여 먹지 않는다. 여유있게 라면의 맛을 느껴야 한다며 아이들은 각자 냄비를 들고 라면을 끓이려 가스렌지 앞에 줄을 서곤 한다.
요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이 많이 비싸졌다. 아이들의 ‘1인 1닭’ 소원을 위해서 값싼 옛날통닭을 살 때도 있었지만, 지인들이 가끔씩 선물로 보내주는 치킨쿠폰을 활용하기도 한다. 보통 저녁시간에 치킨을 먹으면 남을 리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남게 되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어야지’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았다. 거기엔 나도 포함된다. 한번은 아이들이 잠이 깨기 전, 조용히 일어났는데 치킨이 없다. 알고 봤더니 잠 많은 큰 딸이 남은 치킨을 먹고자 알람을 맞추어 놓고 일어나 해치우고는 다시 잠자리에 누운 것이었다. 하나 둘 일어난 아이들이 다른 사람이 깰까봐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부엌에 갔다가 치킨이 없어진 걸 발견하고 놀라는 소리가 아침을 깨우기도 했다.
오, 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먹을 기회라니!
대형마트에서 파는 ‘라지’ 사이즈보다 큰 ‘훼밀리’ 사이즈 피자 두 판도 요즘은 모자란다. 세 판을 사서 좀 남으면 피자 조각을 비닐봉지에 싸서 봉지 위에 자기 이름을 적어 냉동실에 보관한다. 맛난 브랜드의 피자를 먹지 못해도 아이들은 늘 먹을 수 있는 것에 크게 감사해했다. 위가 작아서 지금보다 많이 먹지 못하던 시절에도 아이들이 소원을 말하는데, 피자 한판을 자기 혼자서 먹어 보는 것이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어둡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신촌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에 진료가 있어서 갔는데 입원한 어린이들을 위해 병원로비에서 피자 쇼와 함께 피자를 만드는 행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입원한 아이들을 위한 행사였기 때문에, 외래환자였던 우리 아이들은 피자를 만들 자격이 있는 환자복 차림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보고 있었다. 아, 그런데 아이들의 소원을 하늘이 들어 주신 건가? 빈자리가 세 자리 생겼다. 그 자리에 우리 아이들을 앉으라고 하니, 피자 한 판 혼자 먹는 게 소원이라던 큰 아이들 셋이 피자 한 판씩을 만들게 됐다. 그 소중한 피자가 오븐에서 나오기까지의 가슴 벅찬 기다림이란! 인내가 아니라 그 자체가 기쁨이었다. 각자의 손에 하나씩 들리운 피자를 안고 병원을 나온 그날 아이들은 또 한번 천국을 경험했다.

이웃의 격려 속 기쁘고 재밌는 가족으로
다섯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가족이 모처럼 식당을 찾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시키지 않은 군만두가 식탁에 나왔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눈이 먼저 말하고 있는 우리에게, 식당 사장님이 “저기 계신 할아버지 손님이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고 시켜주신 거에요”라고 한다. 놀람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밥을 다 먹고 났는데 만두를 주신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아이들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용돈을 건네주시고 나가셨다. 생각지 않은 선물에 아이들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계산대 앞에 선 남편이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떤 손님이 우리 밥값을 전부 계산하고 가셨다는 것이다. 그 분은 우리가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미리 계산한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까지 하셨다한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그 고마운 마음의 온기는 아직도 우리 부부의 마음에 살아있다.
여기까지 살아오는 여정에서 만난 이름 모를 많은 이웃들이 준 작고 소소한 나눔들이 우리에게 생각지 못한 기쁨과 아이 키우는 재미를 누리게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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