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공부할 기회를 주세요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 일기] 1년반동안 잠만 자던 첫째아이 갑자기 일어나 “대학가겠다” 선언하더니

열여덟 살일 때 첫째 아이가 잠시 밭에 나와 일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미영
열여덟 살일 때 첫째 아이가 잠시 밭에 나와 일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미영

간신히 ‘수포자’ 탈출한 첫째 아이

홈스쿨을 하는 동안 첫째 아이는 그야말로 모든 시행착오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포자(수학공부 포기자)였던 나는 첫째 아이가 수포자가 될까봐 두려움이 컸다. 나중에 대학 간다고 하면 그 때도 수학 공부가 필요할텐데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수학만큼은 반드시 기초를 잘 다져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이가 초등학교 나이일 때부터 수학 학습지를 병행하면서 내가 직접 붙들고 가르쳤다.

그러나 아이는 수학에 흥미가 없었다. 수학을 논리가 아니라 상상력으로 풀어내려는 딸아이와 나는 끝없이 부딪혔고, 내려놓고 지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열세살 초등 6학년 나이때부터 다시 수학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하루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이의 외할아버지가 놀러 오셨다. 6학년 나이의 손녀가 4학년 수학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짐을 싸들고 다시 오셨다. 두 달 반 정도 우리 집에 머무시며, 큰 손녀를 붙들고 하루 여섯시간 이상 가르쳐주신 덕에 아이는 초등수학을 끝마칠 수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두 살 아래 둘째 아이까지 덩달아 초등수학을 끝내버렸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7남매의 외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계신 모습. 사진=김미영
7남매의 외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계신 모습. 사진=김미영

이후에 첫 아이는 홈스쿨 모임에서 진행하는 중학수학 선생님의 강의를 따라가기 힘들다면서, 또 2년 동안 수학공부를 놓았다. 다시 나는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에 빠졌고,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수학 교습소를 찾아갔다. 마침 아이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재개할 수 있었다. 아이는 수학이 재밌어졌다고 해 한숨 놓는 듯 했다.

첫째 아이는 열다섯 살에 중학교 수학을 시작해서 잘하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던 둘째 아이는 뭐든지 언니를 따라하면서 자기 나이 또래보다 앞선 공부를 하게 됐다. 이렇게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둘째 아이 덕분에 첫째도 덩달아 영어 공부까지 하게 됐다. 입시를 위한 대비라고 한다면 이게 전부였다.

“스스로 인생의 길 찾겠다” 선언하더니

하루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어느 날이었다. 첫째가 이제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기의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며 스스로 길을 찾아보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그의 진지한 선언을 믿었고, 과감하게 수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뭔가 각오에 차 있어 보이던 첫째가 잠만 자는 것이었다. 하루의 절반을 자는데 낮 12시쯤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부엌에 와서는 “점심 뭐에요?” 하고 묻는다. 나는 참 속이 뒤집어졌지만, 공부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던 나에게 하루 두 끼의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주신 엄마를 생각하며 꾹꾹 참고, 딸아이에게 잔소리 없이 밥을 차려주었다.

첫째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반 정도 그렇게 잠을 잤다. 자기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잠이라면서, 떳떳하게 잠을 잔다. 아니 세상에 열일곱 살이나 돼서 이렇게까지 자는 애가 또 있을까? 몇 번은 깨워도 봤다. 그러나 일어나도 “할 일이 없다”며 다시 누워버리니. 타는 속을 애써 쓸어내리며 딸아이 방문 앞을 참 많이도 서성댔다. 이 아이는 손재주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재능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다양한 진로를 소개도 시켜주었다. 그런데 다 하고 싶지 않단다.

첫째 아이를 앉혀놓고 진로 특강을 하고 있는 7남매의 아빠. 다른 아이까지 집중해서 듣고 있다. 사진=김미영
첫째 아이를 앉혀놓고 진로 특강을 하고 있는 7남매의 아빠. 다른 아이까지 집중해서 듣고 있다. 사진=김미영

그러다 어느 날 아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정말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다”며 “대학을 가야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첫째 딸에게 “공부는 아닌거 같고 직업학교가 어떻겠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기는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와 남편은 속으로 참 갑갑하고 답답했다. 공부 잘 할 것 같은 둘째는 ‘공부를 그만두고 춤을 추겠다’ 하고, 공부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첫째는 ‘공부를 꼭 하겠다’고 하니. 우리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겠다고 나서려는 아이들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도와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1년 반 동안의 긴 겨울잠을 깨고 일어난 큰 딸이 한 마디 한다. “오래자고 깨달은 것은, 많이 자는 것도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란다. 그렇게 긴 잠을 가볍게 털고 일어난 열여덟 살의 소녀는 영어, 수학 외에 다른 과목의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11월, 검정고시 다음으로 본 첫 시험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었다. 모의고사 한 번 안보고 처음으로 본 수능시험이었다.

중등검정고시 시험장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첫째 아이. 사진=김미영
중등검정고시 시험장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첫째 아이. 사진=김미영

우리는 본인의 성적에 맞춰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는 대학에 지원하기를 설득했다. 그러나 딸아이가 간절히 간청을 한다. 이제 ‘공부라는 것을 정말 후회 없이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공부를 한번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재수학원 좀 보내주시면 안되겠느냐고 간청 아닌 강청을 했다. 남편과 나는 비용도 문제지만 그것이 이제까지의 생활 습관을 완전히 뒤집어야 하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딸은 제발 기회만 달란다. 그래서 고민 끝에 열아홉 살 딸을 재수종합 학원에 보내주었다.

신기하기만 한 ‘재수학원’ 생활 끝에

딸에게는 학원의 모든 것이 신기한 듯했다. 칠판과 책상, 의자, 교실이라는 것과 급식실 등. 너무나 당연하고 삭막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아홉 살 딸에게는 참으로 신선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처음 몇 달간은 마치 소풍에서 돌아온 아이처럼 별 일 없이 지낸 똑같은 날에도 아이는 그날 하루 학원에서 보고 듣고 있었던 일들을 흥분해서 재잘거리기 바빴다. 동생들에게는 학원에서 돌아온 첫째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또 다른 하루 일과가 되었다.

늦은 밤에 잠들어 새벽에 일어나는 갑작스런 변화로 첫째아이 몸에 병이 오기도 했다. 병원에서 수액도 맞고 힘든 시간을 자기와 싸우자 나는 걱정이 되어 ‘학원을 쉬는 게 어떤지’ 물어보았으나 절대 안 된단다. 잠도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자봤고, 놀고 싶은 만큼 놀아도 봐서 미련이 없단다. 그리고 어차피 많이 자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인데 공부하느라 피곤한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렇게 1년간 딸은 자기와 싸우면서도 많은 비용을 들여 학원을 보내주는데 실망을 시켜드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도 했다. “엄마가 너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것은 좋은 대학 가라는 게 아니야. 그냥 내 딸이니까 사랑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싸주는 거야.”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드디어 시험 날이 왔고 결과가 나왔다.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몇몇 대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안정적이라 생각했던 대학도 안타깝게 놓쳤고 가슴 졸이며 또 다른 대학의 추가 합격을 기다렸다.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첫째는 울먹였다. 나는 “인생의 목적은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다. 재수라는 것을 해도 같은 터널을 다시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인생에서 배워야만 하는 인내라는 귀한 품성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그 길을 한번 더 가는 것도 갈만한 것”이라고 위로해주었다.

기다림 끝에 딸은 원하던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에 추가 합격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했던 만큼, 처음 목표의 차선에 차선이었지만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다. 나는 딸이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도전한 일이 이루어진 것이 기뻤다. 이제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이 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돌아보니 딸이 깊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딸에게는 자기를 채워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 성인으로 인생의 첫발을 시작하는 딸을 힘차게 응원한다.

글쓴이

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