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꾼 7남매...’언니는 가족 미용사’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 일기] 스스로 일꾼, 선생님 역할하는 아이들 부모는 ‘용돈’ 보상...행복한 대가족
아이들이 많은 우리부부에게 사람들이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대식구인데 아빠 혼자 벌어서 어떻게 사냐는 것이다. 이 질문엔 궁금함 보다도 걱정스러움이 더 묻어있다. 사실 식구가 많은 우리는 사소한 일까지 다 목돈이 들곤 한다. 그러나 다 돈으로만 해결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 많은 만큼 다양한 색깔의 아이들의 재주가 돈이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가 가족구성원으로 성숙해가고 가족공동체라는 풍성한 행복을 누리기도 한다.
아홉 식구 머리 커트는 어떻게?
7남매에 엄마 아빠까지 아홉이나 되는 식구다 보니 미용실에서 커트만 해도 큰 부담이다. 우리 집에 정말 필요한 기술이 미용기술인데, 나는 배우러 다닐 시간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집 근처 청소년수련관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미용수업이 개설됐었는데 당시 열 네 살이었던 큰 딸에게 미용을 배우게 했다. 큰 딸은 흔쾌히 시작했다. 나는 딸에게 가족의 머리를 잘라줄 때마다 대가를 지불하기로 약속했고, 딸은 1년 가까이, 가끔씩 둘째도 데리고 다니며 미용기술을 배웠다. 홈스쿨을 하며 평소 어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아줌마들 이야기 듣는 게 좋고 가발 만지는 것도 재밌다며 즐겁게 배우는 듯했다.
선생님의 폭풍같은 칭찬에 힘입어 배운 지 몇 달 만에 가장 먼저 아빠 머리 자르는 도전에 나섰다. 어린동생들은 물론이고 모든 식구들이 신기방기한 첫째의 가위질에 넋이라도 나간 듯 정신 줄을 놓고 쳐다보며 “여기 패였네”, “어, 이 쪽이 더 짧네” 하다가 점점 짧아지는 머리를 보고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제 더 이상 손을 대면 정말 밀어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제는 가위를 내려놓는 것이 최선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또 한바탕 웃어재꼈다.
개그프로그램의 바보 영구까지는 아니지만 요리조리 뭔가 파먹은 것 같은 머리를 보고 정작 당사자인 아빠는 만족스럽다면서 큰 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미용실에서 손을 좀 볼 것을 권했으나 아빠는 정말 흡족해하며 지하철을 타고 인구이동이 많은 삼성동 코엑스로 출근했다.

아빠의 칭찬을 먹고 자라는 아이
나는 솔직히, 어른들 틈에서 미용을 배워 가족의 머리를 손질한 딸의 대견함보다도 딸을 믿고 머리를 맡기고 또 그대로 출근한 아빠가 더 대단해 보였다. 딸이 최초로 잘라준 머리에 대한 아빠의 이런 충만한 자부심이 딸의 가위질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아빠의 딸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으로 딸의 마음은 이미 미용사가 되었다. 전혀 머뭇거림과 두려움 없이 모든 식구들의 머리를 과감하게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딸의 자신감에 압도된 우리는 한치의 동요 없이 그녀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머리를 자르는 날은 한바탕 웃음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딸의 가위질로 헬멧을 쓴 것처럼 되어버린 내 머리를 보고 또 한바탕 가족들 웃음이 터졌다. 식구들의 믿음 속에 딸의 가위질은 점점 발전해갔고 이제는 남들에게도 칭찬을 듣는 수준급이 되었다. 할아버지도 놀러 오실 때마다 손녀딸에게 머리를 맡기시곤 했다. 이발사에게 줄 돈을 아껴 손녀딸에게 넉넉한 미용비를 지불하시고 손녀딸의 가위질을 무척이나 대견해 하시며 행복해 하셨다.
요즘 큰 딸의 방은 미용실이다. 가족이 외출을 할 때면 셋째 아들부터 네 살 난 막내딸까지 첫째의 방 앞에서 자기 순서가 되기를 기다린다. 첫째와 둘째의 손이 드라이어와 고데기 등 각종 도구를 통해 정말이지 어린 동생들의 머리를 사진 찍어 간직할 정도로 예쁘고 화려하게 만든다. 동생들의 옷 코디도 큰 아이들의 몫이다.

이런 아이들 덕에 정작 칭찬은 내가 듣는다. ‘어쩌면 엄마가 이리도 부지런하냐’, ‘엄마가 정말 대단하다’ 등. 젊어서는 듣지 못했던 칭찬이다. 큰 딸과 작은 딸이 이제 와서 얘기를 한다. 사실, 어렸을 때 머리를 예쁘게 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무척이나 부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들도 같은 마음일거 같아 동생들 머리를 이쁘게 만들어 주는 거란다. 돌아보니 나는 딸들의 머리를 거의 손질해 주지 못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머리를 예쁘게 꾸밀 수 있기까지, 나는 정신없다는 핑계로 빗질만 겨우 해 주었으니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다.
집안 수선, 동생 교육까지...아이들은 용돈 해결
한번은 청소기 손잡이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스위치가 고장이 났다. 서비스센터를 가든 기사님을 부르든 또 돈이 나갈 일을 만들었구나 한숨을 쉬고 있는데, 당시 열 한 살이던 아들이 내 한숨소리를 듣고 나섰다. 손잡이를 해체하는등 한 참 머리 굴리다 빵끈을 달라고 한다. 빵끈으로 떨어져나간 부속 자리를 채우고 어찌어찌하더니 다시 작동이 됐다. 나는 너무 놀랍고 고마워서 서비스센타를 가지 않게 해준 대가로 3000원을 주었다. 아들에게는 대단한 돈이었다.
그 뒤로 아들은, 집에서 고장 나는 곳곳에 관심을 기울이며 기사님 부르면 얼마 주느냐고 묻길래 기사님 출장비 만큼은 줄 수 없고 고치는 건당 3000원을 주기로 했다. 아들은 교체하기 힘든 천장 깊숙한 곳 매립등까지 전등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인터넷에서 같은 제품을 찾아 교체했다. 하다못해 비데 필터를 교체하는 것까지 사용기한을 달력에 체크하고 정확한 날짜에 맞추어 교체한다. 내심은 용돈벌이지만 겉으론 거창하게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단 하루의 기한도 넘길 수 없단다. 동생들의 잘못으로 막혀버린 세면대 배관까지 해체해서 복구시키기도 했다. 이제는 집안을 넘어서 자동차와 집에서 먼 농막에까지, 관심과 손재주가 뻗어나가고 있다.

수학을 잘했던 둘째는 본인도 초등학생 나이였지만 셋째와 넷째가 초등 저학년 나이일 때 수학을 가르쳐주고 용돈을 벌었다. 사실 수학은 나도 인내하며 가르치기 정말 어려운 과목이었는데 군기대장 누나를 무서워하는 동생들에겐 제대로 된 선생님 역할을 했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어린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대단한 끈기와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작년에 열 한 살이었던 넷째는 일곱 살이었던 다섯째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용돈을 벌었다. 다섯째가 배움에 대한 열의로 스스로 한글을 중간 정도 깨우쳐가고 있었는데 도움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술술 읽기까지 완성시키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거액의 상금 1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이미 동생들을 가르쳐본 언니들은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손을 들지 않았는데, 넷째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러나 넷째의 가르치는 열성보다 다섯째의 배우려는 열의가 훨씬 커서 약간의 도움으로 다섯째가 한글을 완전히 깨우치고 읽기까지 스스로 완성시켜나가자 큰 아이들은 10만원의 상금이 불합리하다고 아우성쳤다. 넷째도 이를 인정해 약속한 금액의 절반인 5만원만 받았다.
‘스스로 수고하고 섬기기’를 배우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지불해야할 인건비를 아이들에게 많이 지불하고 있다. 용돈을 아이들이 일한 대가로 준 셈이다. 아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정 내에서 자기의 색깔에 맞는 역할들을 찾아가고 이 과정에서 본인도 몰랐던 숨은 재능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홈스쿨을 하는 가정일수록 아이들이 스스로 수고하고 섬기는 훈련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 성장해가며 얻게 되는 행복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다. 오늘도 대식구 속에서 이런 섬김을 통해, 아이들이 또 고유한 인격체로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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