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서 크는 아이들, ‘극복’ 에너지를 나누며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 일기] 멋진 홈스쿨 계획표는 온데간데 없고 수시로 찾아온 병치레...그래도 희망은 있다
[김미영 전업주부] ‘홈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자 결심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가르치느냐와 돌발 상황이 생길 때는 어떻게 스케줄을 관리해야 하느냐였다. 여기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의욕을 갖고 아이 별로 멋진 계획표와 타임테이블을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타임테이블은 내 머릿속에서 조차 사라지게 되었다.
잇따른 출산과 아이들 질병에 혼란만
그냥 일상이 온통 돌발 상황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사건 사고와 반복되는 엄마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다. 아이들이 아픈 것은, 언제 어디가 얼마 동안 아플지 예측할 수가 없다. 큰 아이에게는 17살이 될 때까지 엄마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 셈이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과 뜻하지 않은 아이들의 질병과 각종 사고로 우리에게 스케줄이라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유난히 열이 잘 났던 둘째가 어느 날은 얌전히 내 다리에 얼굴을 묻고 눕더니 갑자기 온몸을 울컥울컥하며 일으킨다. 몸이 활처럼 휘어지더니 눈이 뒤집혀 흰자위만 보이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리며 휘어진 몸이 나무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 때 나는 열경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아이가 죽는 줄만 알았다. 울면서 119를 부르고 남겨진 아이들을 이웃에게 부탁하고 응급실로 향했다. 이후로 열만 나면 남편과 나는 밤을 지새워 아이들을 돌보았다.
하루에 몇차례씩 119 부르기도
어느 날은 둘째와 셋째가 연달아 열경기를 한 적도 있었다. 둘째가 응급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셋째가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경기를 한다. 다시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갔다. 아이를 검사실에 들여 보내자 마자 첫째가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 하며 소리 지르고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전화가 다시 되지 않는다. 나는 또 둘째가 다시 경기를 했나 싶어 119를 부르면서 5분 거리의 집으로 택시를 타고 달렸다. 돌아오니 아이들이 엄마가 왔다고 기쁘게 반긴다. 그냥 내가 없어서 엄마를 찾았는데 전화가 고장이 났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응급실에 두고 온 셋째가 생각이 나 병원에 전화를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보호자가 없어서 당황했었다며 아이는 괜찮아졌고 혼자 울다 잠들었다고 한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니 어제 둘째가 누웠던 그 침대에 셋째가 누워있었다.

넷째가 태어난 후 사건사고는 가히 4차원적이었다. 둘째로부터 시작한 A형 독감이 4남매를 돌았다. 셋째까지 병원치료를 받고 오니 넷째가 다시 열이 난다. ‘아, 너마저. 그렇지. 가장 어린 너를 비켜갈 리가 없지.’ 독감이라 열이 안 떨어진다. 두 시간마다 다른 종류의 해열제를 번갈아 먹이는데 누가 어떤 해열제를 몇 시에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이들 별로 차트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사극에서 봤던, 전염병으로 인해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여기 저기 널브러져 누워있는 풍경이다. 며칠 밤새 아이들의 열을 관리하느라 나도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참다못해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는 것들은 다 일어나”했더니 오한에도 불구하고 큰 애부터 주섬주섬 일어나 앉는다.
이렇게 독감은 또 지나가고 어느 날 수족구가 왔다. 역시 하나 둘씩 4남매가 다 같이 걸렸다. 아픈 것은 뒤로하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왜냐면 입이 너무 화끈거리고 아프다고 해서 일어나자마자 아이스크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수족구는 전염력이 강해서 2주간 외부와 격리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식탁에 앉아 수족구에 대한 칭찬으로 웃음 꽃이 한가득이다. “걸려본 병 중에 가장 좋은 병”이란다. 졸라도 잘 안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눈 뜨자마자 시작해서 하루에도 몇 번을 먹으니 말이다. 2주간 우리는 사람들이 한강공원에 나오지 않는 시간을 틈타 나름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없는 모래사장에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모래 목욕을 실컷 했다. 형제가 많으니 격리된 시간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수족구도 지나갔다.
아파도 아픈줄 모르고...극복하는 아이들
이렇게 아픈 것도 힘든데 안 나도 되는 사고가 날 땐 정말 화가 났다. 심상치 않은 비명이 터졌다. ‘큰 일이구나’ 반사적으로 뛰어가 보니 넷째가 레고에 있는 가늘고 긴 창을 귀에 꽂고 놀다가 그대로 옆으로 넘어져 창이 귀에 박힌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고막을 비껴갔다. 그런데 고름 증상이 2주 동안 점점 심해진다. 대학병원을 갔더니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됐단다. 생각보다 쉽게 빨리 치료가 됐다는데 8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남편이 휴가를 받고 남은 아이들을 돌보는 와중에도 눈이 고름으로 심하게 부은 둘째를 통원치료 시켰다.

셋째는 남자라 뛰고 운동하다 손가락, 발가락에 금이 가는 것은 일도 아니요, 손목이 부러지는가 하면 미끄럼틀에 부딪혀 머리가 찢어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고들이 주구장창 일어났다. 작년 어린이 날에는 보드를 타다 시멘트 바닥에 곤두박질 쳐 앞니 절반이 깨지고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는 사고도 있었다. 그런데 웃는다. 마지막 어린이날을 기념했다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며 혼자 즐거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처음 홈스쿨을 하면서 중요하게 여겼던 계획표라는 것이 나에게는 늘 짝사랑처럼 이룰 수 없는 대상이었지만 나와 아이들은 이 모든 아픈 과정들을 통해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 예기치 않은 사건들과 다양한 아픔을 견뎌야 했던 시간들을 통해 본인이 아픔을 대하고 극복하는 태도 뿐 아니라, 다른 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하며 그것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는 삶의 태도들을 덤으로 배우게 되었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같은 돌발 상황들이 파도처럼 덮치듯 올 때 파도를 타듯 즐겁게 마주쳐 오르는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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