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의 떠들썩한 명절 대이동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링 일기]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전가족 출동 아이들 친가·외가 방문하며 세뱃돈 모으기 “아이 많이 낳길 잘했다”는 어르신들 우울과 근심 날려버리는 7남매의 방문
오랜만에 방문하는 할머니댁, 외할아버지댁
최근 몇 년간 코로나로 부모님 댁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 지금은 벌써부터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4명, 5명 등 인원 제한이 있다 보니 그 때마다 많은 고민을 했다. 날짜를 달리하여 식구를 나누어서 방문을 하느냐, 아니면 주차장에 온 식구가 대기하면서 제한 인원만큼만 교대로 왔다 갔다 하느냐. 양가 부모님들은 대식구의 움직임이 염려와 부담이 되시는지 한사코 몸 조심해라, 그리고 전염병이 잠잠해지면 와라 당부를 하셔서 고향에 가지 못한 명절이 많았다.
작년 추석 때도 하필이면 명절 전에 온 식구가 코로나에 걸렸다. 명절 직전에 격리가 해제되고 몸이 아픈 사람은 없었으나 부모님댁 방문을 미루었다.
기다리던 설날이다. 7명의 아이들은 오랜만에 할머니를 뵙기도 하지만 일 년 중 용돈을 왕창 벌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에 한 참 전부터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친가와 외가에서 각각 하룻밤씩 자고 오는 짧은 여행이지만, 식구가 많은 만큼 짐도 많고 가방도 크다. 여덟 살 이상은 각자 자기가 알아서 짐을 싼다. 옷은 물론이고 소지품과 먹는 약까지 모조리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한다. 그래도 엄마인 나는 어린 여섯째, 일곱째의 옷가지와 부모님께 드릴 선물 등 챙겨야 하는 것이 많다. 짐을 싸는 것 외에 더 신경써야하는 일은 이 많은 짐들을 차에다 알맞게 구겨 넣는 일이다. 사람이 타려면 말 그대로 짐을 싣는 것이 아니라 잘 구겨 넣어야 한다.

9명 대식구가 이동할 때 진풍경
9인승 승합차라 맨 뒤 트렁크 자리에는 여섯째와 일곱째가 앉는다. 좋아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군말없이 트렁크 자리에 앉는다. 트렁크 자리도 물론 양쪽 끝은 짐이 기둥처럼 차 있다. 그래도 두 세 시간은 잘 참고 간다.
이런 형편도 9인승이라 매우 여유 있는 것이다. 다섯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지금은 거의 사라진 7인승 레조를 타고 다녔는데, 뒷 트렁크에는 유모차며 짐이 잔뜩 있었기 때문에 2열 자리에 넷째의 카시트가 한자리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 한 자리에 세 아이들이 찡겨 앉아야만 했다. 정신이 멀쩡할 때는 다행이지만 셋 중 누구 하나가 잠이 들면 옆 사람에게 늘어져 기대니 운행 중에 누군가 잠이 들것 같으면 서로서로 어깨를 치며 “자지마!, 자지마!”하면서 눈치 없이 찾아오는 잠을 쫓기도 했다. 혹여 짐이 좀 줄었을 때는 짐과 함께 트렁크에 탈 사람에게는 짧은 거리 200원, 긴거리는 왕복 500원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 항상 계산에 밝은 셋째가 자원해서 쏠쏠치 않게 돈을 모으곤 했다.
‘왜 내가 트렁크로 가야하냐’고 하소연하는 여섯째에게 큰 아이들은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해주며 ‘지금 너희가 타는 트렁크가 얼마나 호사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면 두 어린동생들은 체념한 듯 순순히 트렁크에 앉아 둥지를 틀 듯 먼 길 떠날 자리를 잡는다.
사실 레조를 타던 시절엔, 지금 우리가 타는 차와 같은 승합차에 캠핑짐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울 때가 많았다. ‘우리는 사람이 탈 자리가 없는데, 저 차는 사람 탈 자리에 짐을 싣는구나’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작은 공간에서 있었던 사연들이 아이들과 내게 그립고 따뜻한 추억이 되어 가끔씩 모두 함께 그 시절의 회상에 잠기곤 한다.
명절에 갈 때는 그나마 다행이다. 돌아올 때는, 차에 짐을 실을 데가 없다는 것을 아시는 아이들 할머니지만 하나라로 더 싸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봉다리 봉다리에 싸서 현관 앞에 쭈욱 내놓으신다. 그러면 테트리스처럼 빈틈없는 짐 쌓기 묘기를 부려야한다. 아무리 그렇게 쌓아도 차 실내 바닥에 발을 딛고 갈 수가 없다. 큰 아이들조차 발을 들고 서울까지 와야한다. 아이들은 차 바퀴가 펑크 나서 집에까지 제대로 갈 수 있겠냐고 다들 한마디씩 떠들다 바퀴의 위대한 힘을 극찬하며 웃어재끼곤 한다.
떠날 준비를 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에게는 신나게 달릴 수 있는 버스전용 차로가 있다. 그러나 그 버스 전용 차로에서도 생각지 않은 단속에 걸려 지체될 때가 가끔 있었다. 한번은, 오남매와 함께 버스전용 차로를 달리는데 경찰차가 우리 차를 갓길에 세워서 창문을 내렸더니, 경찰관이 웃으면서 “여섯명 안 타셨죠?” 한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이 5명 탔어요” 했더니 작은 아이들이 눈에 안 띄는지 “죄송하지만 뒷문을 열어 봐도 될까요?”했다. 뒷문을 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아이들을 발견하곤 함박 웃으며 죄송하다고 인사한 뒤 조심해서 가라고 한다.
이런 경우 차가 막히면 버스전용에서 갓길로 나오고 다시 갓길에서 전용차로로 진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한 때는 갓길에 나가지 않고 7남매가 탔다는 표시를 어떻게 할까 재치 있는 고민을 한 적도 있다.
7남매의 요란한 세배와 역대급 세뱃돈
이번 설명절, 드디어 친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잠든 아이들을 깨우는 것부터 구겨넣은 짐을 다시 빼고 두 번에 나누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할머니는 현관에서 길게 줄 서서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줄줄이 악수와 포옹으로 더할 나위없는 환대를 해주신다. 겹치지 않게 신발을 벗어 놓느라 들어가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 집이 부쩍 큰 아이들로 좁아졌다. 아이들은 거실에 2열로 앉아야한다. 거실을 가득 메운 손주들을 보시는 할머니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북적대는 것이 그대로 명절 분위기다. 일곱 명의 아이들이 할머니 한 분 앞에 ‘쫄로리’ 줄을 서서 단체로 절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렁찬 새해 인사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할머니는 여러 겹의 봉투를 꺼내어 일일이 이름을 불러가며 악수와 포옹과 함께 세뱃돈을 나누어 주셨다. *쫄로리는 경북지방 사투리다. 여럿이 줄지어 늘어선 상태라는 뜻의 부사어다.
그리고 나서 할머니 정이 가득 담긴 한상 명절 밥을 먹고 나면 정말 잔치 한번 치른 것 같은 분위기다. 소화가 필요한 배를 위해 산책을 하러 늦은 저녁에 큰아이들 넷과 밖으로 나왔다. 산책겸 걸어서 15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외가에 미리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이들이 제안했다. 아마도 이유는 지난 수년간 설에 보지 못한 외삼촌에게 세뱃돈을 받고 싶은 속내가 있는 듯했다. 이번에도 외삼촌이 설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난다고 했으니 미리 가서 외삼촌한테 세뱃돈을 받아보자는 속셈인 것이다.
큰 기대를 안고 갔는데 아이의 외삼촌이 외출중이다. 그러나 이모가 아이들 선물을 한 아름 준비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이모의 생각지 못한 선물에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덩달아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아이들의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대학생 사촌 오빠가 와 있는 조용한 외가에 4남매는 다음날 7남매 정식 신고식에 앞서 맛보기 선물을 하고 다시 친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고 해도 한상 잔칫상이다. 아침 먹고 치우니 점심 때가 됐다. 하나 밖에 없는 화장실에 줄줄이 예약 및 대기가 시작됐고 한번에 나가기 힘드니 준비된 사람은 먼저 나가 있으라는 외침과 여기저기서 짐 찾는 소리들로 할머니의 평온했던 정신을 쏘옥 빼놓고서야 떠날 채비가 끝이 났다.
아쉬우면서도 뭔가 안도의 표정인 할머니에게 동네 떠나가라 “할머니 사랑해요, 안녕히 계세요. 또 올게요”를 한 사람당 2번 이상씩 반복하며, 떠들썩하게 할머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다음 행선지인 외갓집으로 향했다.
한번에 올라갈 수 있는 외할머니집 엘리베이터도 가까스로 문이 닫힌다. 아파트 마당에서부터 떠들썩하기에 외할머니는 미리 현관문을 열어 놓고 환대를 하신다. 들어오고 들어와도 계속 되는 손주들을 맞이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실 웃고 계셨다. 줄줄이 서서 세배를 하는 손주들이 얼마나 뿌듯하신지 두둑한 세뱃돈 봉투 뭉치를 들고 봉투마다 써 놓은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세뱃돈을 손에 꼬옥 쥐어 주셨다. 작년엔 나에게 세뱃돈을 맡겼던 아홉 살 된 다섯째도 이제는 자기가 보관하겠다면서 지갑을 챙겨왔다. 아침에 일찍 떠날 예정이었던 외삼촌이 남아 있는 덕에 올 해 세뱃돈은 역대급이라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예전엔 계속되는 딸의 임신 소식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던 외할머니도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기뻐하시는지. 그저 가만히 있어도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 손주들을 보면서 외할아버지는 연신 나에게 “너 정말 잘했다. 이렇게 낳길 정말 잘했다”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떠나는 길도 들어올 때처럼 떠들썩하다. 배웅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저마다 두 세 번씩 인사를 한다. 그렇게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또 올게요“를 무한 반복하며 떠나오면 서울 집으로 전화가 온다. 아이들 웃음 때문에 그간 있었던 우울과 근심들이 다 사라졌노라고 말이다. 건강을 위해 챙겨드린 그 어떤 선물보다도 아이들의 생기와 웃음이 부모님들께는 가장 큰 보약이고 선물임을 항상 느끼게 되는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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